소설리스트

148화 (148/360)

섬너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성과를 내면 그 이상으로 대우해주면 되는 겁니다.”

율리시스의 초고속 진급. 이에 따라 책임감과 활동 범위가 늘어날 테고, 이는 곧 막스를 메인 전선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뜻을 내비친 걸 수도 있고.

“하여간 그냥 말하면 될 걸, 사람을 고민하게 만든다니까.”

“저도 그게 좀 불만이긴 합니다. 당최 꿍꿍이를 드러내질 않으니까요.”

이후 화제는 얼마 후 임명할 장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단기간에 모집된 병력을 조직적으로 운용하려면 현재의 장군과 장교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으니. 군단을 지휘하는 별들을 늘리는 게 급선무였다.

*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서 서쪽으로 10km 떨어진 곳.

SFBC 대원들과 섞여있는 사무엘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곧 합류할 연방 군대 속, 탈영한 남군 장교가 느낄만한 공포와 두려움이 원인이었다.

‘그때가 되면 수천 명이 자신을 둘러 쌀 테지.’

유일한 탈출은 죽은 영혼이 되어서야 가능할 터였다.

그렇게 속으로 끙끙 앓고 있을 때, 막스가 귀신같이 손을 내밀었다.

“도망가고 싶지?”

“······ 엉.”

“그럼 보내줄게.”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당황한 건 사무엘이었다.

“······ 제시 제임스를 확인해야 한다며?”

“그러려고 했는데. 적들이 너무 많아. 거기서 그놈을 어떻게 찾아내겠어.”

“하긴 그것도 그렇네.”

“너, 전쟁이 싫다고 했지?”

아주 넌절머리 나지. 

사무엘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이곳을 떠나. 가능한 멀리.”

“그, 그래도 돼?”

“이번 전투는 장난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가서 네가 하고싶은 일을 해. 그렇다고 전쟁을 너무 외면하진 마. 네가 사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거니까.”

“······”

사무엘의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 정체가 감동이든 살았다는 안도감이든. 혹은 죄책감이든.

그리고 입가에 맴돌던 말을 꺼낼 자신감도 생겨났다.

“그때 말한 신문사 말야.”

“혹시, 워싱턴 DC 조지아 애비뉴 노스웨스트 스트리트 28번가 5층에 있는 <프리덤 에코> 말하는 거야?”

막스의 말에 사무엘의 볼이 꿈틀거렸다. 그는 SFBC에 끌려온 이후,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줘. 거기가 어디라고?”

막스는 또박또박 다시금 주소를 말해주었다.

“진짜, 가도 된다는 거지?”

“말은 해둘게. 다만, 노예제 옹호론을 쓰면 쫓겨날 수도 있어. 글이 거지같아도 마찬가지고.”

“말했잖아. 나도 노예제는 반대한다고.”

“뭐, 그럼 그렇게 쓰면 되겠네.”

막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악수를 청했다.

“그럼 워싱턴에서 보자고.”

“······ 알았어. 나를 여기에 끌고 온 게 괘씸하긴 했지만. 뭐, 지금은 고맙게 생각해.”

“당연히 그래야지. 너한테 월급 주는 고용준데.”

‘그래서 얼마 줄 건데?’

입에서 맴돌지만 사무엘은 묻지 않았다. 전쟁을 피해 떠난 자가 돈을 따진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노새를 타고 대열을 이탈할 때, SFBC 대원들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무도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적대감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 전투에서 저들이 무사하길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만큼 SFBC는 굉장히 특이한 집단이었다.

‘하긴, 리더가 동양인인 것부터가 이상하긴 하지.’

막스는 멀어지는 사무엘을 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마크 트웨인이 과연 그 필명으로 <프리덤 에코>에 기고문을 올릴지 기대가 되었다. 적어도 몇년 이른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스트링필드에 다가갈 즈음. 

막스는 인근에 임시 캠프를 설치하고 병력이 집결하길 기다렸다.

그 와중에 정찰대가 속속들이 적들의 현황을 보고했다.

“남군을 지휘하는 장군은 벤 멕클록이란 자입니다.”

“아칸소에서 올라오는 병력이 상당합니다. 어림잡아도 5천 이상입니다!”

“잭슨 주지사와 스털링 프라이스 장군이 이끄는 병력도 그 수준으로 보입니다!”

아군의 상황도 보고되었다.

“율리시스 대령이 이끄는 부대가 5km에 근접했습니다.”

“나다니엘 리옹 준장이 휘하의 부대를 이끌고 스트링필드를 벗어났습니다. 아마 1시간 내외면 합류하게 될 겁니다!”

리옹 준장은 남북전쟁 전까지만 해도 중대를 이끄는 대위였다. 그러나  미주리주 잭슨 주지사의 음모를 분쇄하고 세인트루이스 무기고를 지킨 공으로 준장까지 초고속 진급을 한 케이스였다. 

연방에 대한 충성심과 리더쉽이 뛰어나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빨리 죽었단 말야.’

원 역사에서 리옹 준장은 북군에서 가장 먼저 사망한 장군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그가 죽는 장소는 바로 이번 전투에서였다.

잠시 후.

리옹 장군과 율리시스가 부대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작고 마른 체구의 리옹 장군은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막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막스 조입니다.”

“솔직히 동양인이라는 말에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 놀랍군.”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섬너 장관께서 편지를 보내셨네.”

에드윈 섬너는 한때 리옹의 상관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번 전투에서 원활한 지휘 라인을 정리하기 위해 미리 편지를 보낸 것이다.

“SFBC는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친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럴 생각인가?”

리옹의 말에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전투는 함께 움직일 생각입니다.”

“잘 생각했네. 아칸소주에서 작심하고 병력을 보냈으니, 게릴라 전투가 통하진 않을 테지.”

율리시스가 진중한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보셨습니다. 아마 이번 전투는 꽤 치열할 겁니다.”

남군 1만 2천 대 북군 8천.

전면전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투였다.

가뜩이나 북군의 연이은 패배 탓에 군의 사기도 그리 좋지 않았다.

리옹이 막스에게 물었다.

“혹시 생각해둔 전략이라도 있나?

섬너 장관이 편지에서 말하길.

- 말도 안되는 전략이 아니면 SFBC 리더의 의견을 존중해주게. 지금껏 내가 만난 군인 중 가장 전략, 전술에 능하다고 자부하니 말일세.

경험 많은 노장이 이렇게까지 편지를 쓸 정도면 없던 기대감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막스에게 바로 답을 들을 순 없었다.

기다리던 캔자스 제1, 2보병연대가 도착한 것이다.

이목을 끄는 건 캔자스 부대의 지휘관.

“오랜만이군, 막스.”

제임스 헨리 레인 상원, 아니 준장이었다. 

현재 그의 겸직을 두고 워싱턴 정계가 떠들썩 하다. 상원 의원으로서 군 직위가 가당치 않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레인은 이를 깔끔히 무시하고 직접 병력을 이끌고 전쟁터를 찾아왔다.

“그따위 직책이 뭐가 문제라고. 안 그런가?”

“총 들고 국회 의사당에 올까봐 무서웠나 보죠.”

막스의 말에 레인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요즘 같아선 대포라도 쏘고 싶다네.”

“워싱턴까지 숨기고 가는 게 문제네요.”

리옹 장군이 농담을 건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전략회의로 이어졌다.

한창 병력 차이와 지리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갈 때였다. 

레인이 생각난 듯 막스를 보며 물었다.

“캔자스에서 SFBC 대원들이 뭔가를 가져왔는데, 그게 뭔지 비밀이라며 알려주지 않더군. 참고로 난 지휘관인데 말일세.”

“저런.”

지휘관이 묻는데 비밀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리옹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율리시스는 SFBC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그 물건이 무엇인지를 궁금히 여겼다.

레인도 마찬가지, 말과 달리 기분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레에 끌고 온 것들은 어차피 콜로라도에서 보내진 걸로, 전적으로 SFBC 소관이었으니 말이다.

막스는 레인과 리옹, 율리시스를 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번 전쟁에서 사용할 무기입니다. 다만.”

“다만?”

“아직 테스트를 안 해봤네요.”

“······”

알프레도가 알아서 잘 만들어 보냈겠지···.

라고 믿기엔 역시 불안했다.

< 미주리주 윌슨 크릭 전투(1) > 끝

< 미주리주 윌슨 크릭 전투(2) >

144화

미주리주 스프링필드 인근.

막사에서 전략 회의를 끝낸 막스는 지휘관들과 함께 캔자스 부대를 찾아갔다.

의용군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SFBC 대원들이 콜로라도에 잔류했던 대원들과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피치가 중심에 있는 거로 보아 얼마 전 총 맞은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다.

“보스 왔습니까!”

“쉬어, 쉬어.”

막스는 대원들이 보호하고 있는 수레로 시선을 옮겼다. 천막으로 겹겹이 싼 덕에 안을 살펴보는 게 불가능했다.

“자, 그럼 테스트를 한 번 해볼까?”

“장소는요?”

“여기서 좀 떨어진 곳으로 가자.”

콜로라도에서 온 SFBC 대원들이 수레를 끌자 레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한 대만 움직이는 건가?”

“나머진 그냥 짐입니다.”

“9대가 짐이라고?”

테스트를 위해 대략 1km에 떨어진 숲을 선택했다. 보안을 위해 SFBC 대원들은 사방으로 퍼져 경비를 섰다.

잠시 후.

대원 셋이 매달려 수레 위를 감싼 천막을 풀었다.

그리고 껍데기를 벗기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레 위엔 굵은 삼각대 위에 길쭉한 원통형의 무기가 얹혀 있었는데 대포와는 또 달랐다. 그보단 훨씬 복잡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테스트부터 하죠.”

“최소한 이름이라도 알려줘야지.”

“유감스럽게도 아직 이름은 없습니다. 당분간 지을 생각도 없고요.”

일명 개틀링 건.

더욱이 막스가 만든 건 그보단 훨씬 개량된 모델이다.

여섯 개의 총열, 즉 배럴이 원통 안에 감추어져 있고 고질적인 과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랭식을 채택. 원통에는 물이 담겨 총열을 식히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총기 메커니즘을 가리기 위한 커버 역할이 컸다.

개틀링이 세상에 나오는 건 앞으로 1년 뒤.

막스는 자신이 만든 총과 개틀링 사이에 혼선을 주기 위해 이름 따위는 짓지 않기로 했다.

막스는 궁금증만 잔뜩 안긴 채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손이 방황한 채 움직이질 않았다.

율리시스가 눈을 가늘게 떠 물었다.

“설마, 작동법을 모르는 건 아니지?”

“······ 그럴 리가요.”

막스는 삼발이 아래에 있는 길고 가는 금속 막대기를 들고 고민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자, 옆에 있던 대원이 슬쩍 다가왔다.

“제가 할까요?”

“······ 내가 한다.”

막스는 도면을 머릿속에 떠올린 끝에, 금속 막대기를  총몸에 있는 구멍에 쑤욱 집어넣었다.

철컥.

정확히 맞물리는 소리가 나자 막스는 다행이라는 듯 손으로 이마를 훔쳐냈다.

“진짜 처음 같은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레인과 율리시스의 대화를 무시하고. 

막스는 수레 위에 천으로 칭칭 감긴 물건을 풀어 헤쳤다.

작은 케이스 뚜껑을 열자 수십 발의 뾰족한 구리 탄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옹 장군으로선 처음 접해보는 풀메탈재킷 총알이었다.

‘무슨 총알이 저렇게 생겼지?’

리옹의 입이 꿈틀거릴 때, 막스는 잽싸게 총알이 꼽힌 카트리지를 쥐고는 방금 총몸에 장착한 금속 막대에 이를 결합했다.

그리고 금속 막대를 만지작거리자 총알들이 흘러내려 그중 하나가 총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마침내 장전된 것이다.

총알이 들어가고 장전을 했으면 그다음은 격발이다.

“······ 근데 방아쇠는 어디 있나?”

“여기요.”

막스가 손잡이를 잡자 사람들의 동공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막스가 손잡이를 돌리면서 벌어졌다.

투두두두두두두.

100m 앞에 눕혀둔 기다란 통나무에 총알이 박히기 시작한다.

총몸 위에 맞물린 총알은 빠르게 사라지고, 총몸 아래는 그에 맞춰 탄피를 뱉어냈다.

충격과 경악에 휩싸인 율리시스와 레인, 리옹.

그들의 귓가에 막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탄약.”

“옛썰!”

탄창에 총알이 떨어지자, 또 다른 카트리지를 끼우다니!?

이 말은 총알이 있는 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발사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2백여 발이 사라지자.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그쳤다. 

옆에 있던 대원들은 바닥에 수북이 쌓인 탄피를 회수하고 그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막스는 고개를 돌려 지휘관들에게 말을 건넸다.

“참고로, 여섯 개의 배럴에서 발사되는 총알은 분당 400발입니다.”

“!!”

할 말을 잃은 율리시스와 리옹.

이들과 달리 막스의 어깨에 손을 올린 레인은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

산업혁명의 막바지에 이른 시기.

남북전쟁 기간에는 수많은 괴짜 발명품이 등장하게 되는데, 무기의 경우 추구하는 목표는 단순했다.

살상력이 높고 재장전은 빠르고 효율적일 것.

이러한 명제 아래 여러 무기가 만들어졌는데, 대부분은 채택되지 못한 채 사장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미연방은 신무기 개발을 장려하고 일부는 전략 무기로 채택하기까지 한다.

막스가 무기를 테스트하고 있을 즈음.

워싱턴에서도 신무기에 관한 시연회가 열렸다.

자리엔 존 브라운 대통령과 각료들이 직접 참관하여 관심을 보였다.

“신기하게 생긴 총이군.”

“윌슨에이가가 만든 연발(Repeating) 총인데, 분당 120발을 발사한다고 합니다.”

“허, 그게 진짭니까?”

전쟁장관 섬너의 말에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옆에 있던 부통령 링컨 역시  안경을 꺼내 곧 있을 시연회에 집중했다.

“어려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가 건을 발명한 윌슨 에이가라고 합니다. 먼저 이 총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수레바퀴에 실린 총은 단일 배럴에 그 길이가 길었다. 특이한 건 총몸에는 방아쇠 대신 회전을 일으키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는 거.

총몸 위에는 마름모 형태의 커다란 금속 상자가 달려 있었는데, 이 시대의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 그라인더 모양과 비슷했다. 

그 때문인지 후에는 ‘커피 밀 건(Coffee Mill Gu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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