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 승리다!”
애국심이 끓어오른 병사들은 이에 호응하며 함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대열의 후미에서 누군가 SFBC를 외쳤다.
병사들이 뒤를 돌아보자 해를 등진 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
SFBC였다.
병사들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그들을 향한다.
선두에 선 동양인의 논쟁 따윈 접어두고.
미모의 여인이 왜 저기 섞여 있는지 의문도 잠시 묻어두자.
지금은 총과 칼을 높이 쳐들며 소리칠 때다.
“SFBC!”
“와아아!”
커다란 함성이 윌슨 크릭 평원, 오크힐에 울려 퍼진다. 사실 무기를 찬양하려 했으나, 이름을 모르기에 소리친 것이었다.
이유야 어떻든, SFBC를 향한 찬송은 병사들의 가슴 속에 불씨를 심어 넣었다.
이는 그 집단에 속하고 싶은 열망이었다.
*
막사에 짙은 어둠이 몰려오고 캠프 곳곳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평원에 즐비한 시체들.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혈향이 음식 냄새에 섞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율리시스가 막스를 한적한 곳으로 불러냈다.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낮의 일을 이야기했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보나?”
리옹의 말대로 아군의 희생을 무시하고 적을 추적하는 게 틀린 걸까.
율리시스는 막스에게 자신의 판단을 묻고 있었다.
“대령님의 작전에 찬성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래?”
율리시스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기분이 풀린 듯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자네 말대로 이 전쟁이 쉽게 끝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네. 만약 끝이 난다면, 그건 어느 한쪽이 부서진 다음이겠지.”
‘역시, 이때부터 핵심을 벌써 알고 있었구나.’
사실 역사를 몰랐다면 율리시스를 가까이 둘 이유가 있었을까?
건드리는 족족 사업에 실패하는 똥손.
일에 대한 열정도 이루고자 하는 꿈도 없었으니, 주목할 이유가 없을 정도의 평범함.
하지만 오늘에서야 막스는 율리시스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반란군이 도망가면 또 다른 반란군이 된다.
그리고 율리시스는 추격을 명령했다.
이는 적들의 병력, 무기, 물자를 고갈시키고 승리하는 소모전을 취하는 전략이 분명하다.
남북전쟁이 4년을 끌었던 건,
그만큼 남군이 버틸만해서였다.
식량, 무기, 인적 자원이 바닥나지 않는 한 로버트 리 장군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 터.
율리시스는 이를 잘 알고 소모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막스는 그동안 지켜본 율리시스에 대한 평가를 전면 수정했다.
‘이런 인물이라면 믿고 가야지.’
막스가 말했다.
“소모전으로 적을 절벽으로 밀어 넣고, 한편으론 섬멸전으로 적들의 의지를 꺾어두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작전이었는데, 혹시 엿들으셨습니까?”
율리시스는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꿈에서 자네가 하는 말을 들은 모양이네. 아무튼, 생각이 같다니 힘이 나는구만.”
“다만, 한 가지는 아셔야 합니다. 소모전은 아군의 희생도 크다는 걸요.”
“사실 그게 가장 걸림돌이지. 그런데 오늘 자네의 무기를 본 순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게 사실이네.”
양패구상에 가까운 궤멸적 타격을 압도적인 무기로 극복한다. 만약 아군의 병력이 우위에 있다면 차이는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남군은 무기에 대한 대응을 마련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건 무기를 제작한 자를 찾아내거나, 혹은 유사한 짝퉁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
남북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윌슨 크릭은 불런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전쟁이었다.
주목할 건 1만 8천 명이 교전한 불런 전투보다 사상자가 더 많았다는 점이었다.
북군 8천 명 대 남군 1만 2천의 충돌.
그중 북군의 사망자는 134, 부상자가 542명이고 탈영병은 53명으로 집계되었다.
남군은 더욱 처참하다.
사망자가 무려 1,231 부상자는 2,720이고, 탈영병은 451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남부 연합을 충격과 혼란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 서부에 있는 무기가 동부라고 없을까?
북군을 연일 몰아치던 남군의 진격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정체될 것이다.
이를 염려한 남부 연합의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발 빠르게 다음을 지시했다.
- 당장 그 무기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 조사해!
남부의 정보요원, 북부의 스파이들이 무기의 정보를 추적하는 데 동원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무기를 만든 제작자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런데 콜로라도가 아닌 미주리주였다.
윌슨 크릭의 충격적인 패배가 신문 기사를 장식하며 미 전역에 퍼지게 된 날.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선 한 남자가 신문을 들며 부들거렸다.
“제기랄! 내 특허가 거부당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리차드 개틀링은 망연자실한 채 자신이 만든 물건을 쳐다보았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도면을 만들고 이를 특허 신청했지만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사유는 이미 존재하는 발명품이라는 이유였다.
- 나 말고 이걸 만든 사람이 있다고?
아마 특허청 직원이 이해를 못 했을 것이다.
이 엄청나고 획기적인, 복잡한 총기 매커니즘을 돌대가리가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위안 삼고 개틀링 건을 완성하고 테스트까지 끝낸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벌써 전쟁에 투입됐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흥분한 개틀링이 개틀링 건의 손잡이를 마구 돌렸다. 물론 총알은 없었다. 하지만 분을 삭이기엔 효과적이었다.
“죽어라! 죽어!”
그런데 이때.
누군가 창고 문을 두드렸다.
개틀링이 멈칫하자 이내 소리가 들려왔다.
“리차드 개틀링씨!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까!”
< 미주리주 윌슨 크릭 전투(3) > 끝
< 리처드 개틀링 >
“개틀링 씨!”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리차드 개틀링은 흠칫하며 동작을 멈췄다. 그러자 개틀링 건의 손잡이가 드르륵 소리와 함께 정지했다.
‘갑자기 누가 나를 찾지?’
현재 미주리주는 북군과 남군 사이의 분열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 자그마한 원한에 방아쇠를 당기는 사건이 많았으니, 개틀링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버틴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미간을 찌푸린 개틀링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누군데 나를 찾습니까?”
문밖에서 ‘오오’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대답이 들려왔다.
“캔자스 토피카에서 왔습니다!”
갑자기 토피카라니.
개틀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밖에 있던 사내가 문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형제님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형제?’
개틀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경계심을 떨치고 문을 걸어 잠근 쇠막대를 잡아당겼다.
문이 열리자 턱수염을 기른 30대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자신을 소개했다.
“토피카 시장이자 그랜드 롯지의 사이러스 홀리데이라고 합니다.”
개틀링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얼마 전 캔자스의 마스터가 되신 분이셨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초기 캔자스 프리메이슨은 미주리주의 그랜드 롯지에 관리 감독을 받았다.
그 때문에 그들은 단위 롯지로서 미주리주와 가까운 곳에 사원을 지었는데, 모세 그린터의 페리 선착장이 있는 와이언 도트란 마을이었다.
당시엔 캔자스 유혈사태가 심각해서, 제이호커스와 보더 러피안의 게릴라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캔자스와 미주리의 프리메이슨은 서로의 신념이 달라도 곧잘 와이언 도트에 모여 회의와 의식을 행했다.
한마디로 낮에는 총 쏘고 밤에는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어찌 됐든,
와이언 도트 롯지는 캔자스가 주로 승격되면 그랜드 롯지로 승격이 유력한 곳이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발발 직전.
홀리데이는 캔자스 메이슨들을 설득해 토피카를 그랜드 롯지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미주리주와 가까운 와이언 도트가 위험하다는 말이 먹혀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홀리데이는 존 기어리, 키트 카슨, 사무엘 포메로이 등 유력한 인물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이 소문은 인근 미주리주로 퍼져 세인트루이스 롯지 회원인 리차드 개틀링에게도 전해졌다.
“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뭐라도 좀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러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요.”
“아 시장님이라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제가 바쁜 게 아니고.”
홀리데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사내는 시선이 마주치자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둘러야 합니다, 시장님.”
고개를 끄덕인 홀리데이는 개틀링을 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지금 남부 연합에서 박사님을 찾고 있습니다. 윌슨 크릭 전투에서 사용된 총기를 박사님께서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요.”
“허···.”
그걸 자신이 만들었다니.
개틀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사실 지금 만들어진 건 완성품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프로토타입이다.
실전에 배치하면 여러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는 조악한 수준이라는 걸 개틀링 본인도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제가 왜 남부 연합을 피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 이 편지부터 읽어 보시죠.”
홀리데이가 품속에서 밀봉된 봉투를 내밀었다.
“발신자가 없는데요?”
“음. 보낸 사람은.”
홀리데이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윌슨 크릭에서 사용된 무기를 만든 잡니다.”
“!”
리차드 개틀링은 곧바로 봉투를 뜯어 편지를 훑어갔다. 하지만 이내 똥 씹은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시작부터 상대가 뼈를 때린 것이다.
[다연발 총을 만들 때, 총신과 약실 부분의 고정력이 약하면 명중률이 떨어집니다.
또한 현재 사용되는 58구경의 탄약은 가스가 새어 실린더가 깨질 요소가 다분하고.
현재의 종이 카트리지와 납탄으로는 원하는 성능을 끌어낼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이걸 해결했죠.]
‘재수 없는 인간이군.’
그렇다고 마냥 건방지다고만 할 수 없는 게, 상대는 자신이 개발한 무기의 단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남부 연합이 박사님을 찾는다면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똑같은 성능을 가진 총을 만들어 달라는 거겠죠.
그런데 과연 그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가족을 인질로 협박할지도 모릅니다.
전쟁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가족이라는 말에 개틀링의 손이 부들거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에 그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화했다.
[해서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콜로라도에서 저와 함께 일하는 건 어떻습니까?
박사님의 연구 스펙트럼을 비추어볼 때, 굳이 무기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쓰레기통부터 의류까지 닥치는 대로 손을 대고 있으니까요.
자랑은 아닙니다만 제가 가진 특허만 150개가 넘습니다. 아니, 200갠가?]
‘......’
현재 리차드 개틀링은 10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 그런데 200개라고?
[참고로 제가 총 이름을 아직 안 지었네요.
개틀링 건이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신청했던데, 전 그 이름이 마음에 들더군요.]
‘특허 신청 때문에 나를 알았구나.’
물론 막스는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리처드 개틀링을 찾으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적당한 구실이 생길 때를 기다린 것뿐이었다.
게다가 막스는 정확히 개틀링이 사는 곳도 알지 못했다.
해서 핑커톤의 정보망을 동원하여, 프리메이슨인 앨런 핑커톤은 개틀링 역시 미주리주의 프리메이슨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개틀링을 포섭하는 건 캔자스의 그랜드 마스터 홀리데이에게 맡겼다.
프리메이슨으로 대동단결이랄까.
“참고로 이 친구도 우리의 형제입니다. 콜로라도 준투 롯지의 핵심 인물이거든요.”
“오, 그렇습니까?”
개틀링의 복잡한 생각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자신의 단점을 보완한 무기를 보고 싶은 마음.
200개의 특허를 지닌 발명가에 대한 경외심과 호기심. 그리고 같은 프리메이슨 형제.
하지만 무엇보다 개틀링은 남부 연합에 붙잡혀 무기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콜로라도로 갑시다.”
*
“박사님 가족들은 저희가 따로 이주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히려 지금 따라나서는 게 더 위험하니까요.”
리차드 개틀링은 가족들에겐 일리노이로 간다는 말만 남기고 무기 도면과 서류, 필요한 물건만 챙겨 홀리데이를 따라나섰다.
“마차에 타시죠.”
개틀링과 홀리데이가 마차에 오르자 말을 탄 사내 여섯이 주변을 둘러싸며 호위한다.
창밖으로 그들의 무장 상태를 훑어봤다.
‘캔자스 민병대인가.’
리차드 개틀링이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거렸다.
홀리데이는 이를 미소로 지켜보며, 문득 막스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 네가 만든 무기보다 후졌다며. 근데 그런 발명가를 굳이 데려갈 이유가 있어?
- 개틀링이 만든 발명품은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이에요. 대부분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물건들이죠. 분명 저와 함께 일하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