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1/360)

실제로 리차드 개틀링의 첫 발명품은 증기선 프로펠러. 이후 농업과 관련된 이앙기, 트랙터 등 농업에 혁신을 불러올 만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이는 사람들의 생활을 이롭게 하는 발명품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개틀링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건 사람을 죽이는 무기였다.

일행이 세인트루이스 항구에 도착할 즈음.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무장한 채 선두에 있던 남자는 날카로운 눈매로 마차를 훑어봤다.

“잠깐 안을 확인해야겠다.”

“누구 맘대로?”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못하겠다면?”

마부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상대를 노려본다.

서로의 시선이 엉키며 숨 막히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 남부 연합일까요?

- 아마도요. 일단 지켜보죠.

마차 안에서 속삭이던 홀리데이와 개틀링은 이내 입을 다문 채 밖의 소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말들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누군가 움직이면 곧바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이런 분위기가 개틀링을 더욱 초조하고 긴장하게 했다. 

그가 손에 흐르는 땀을 허벅지에 닦아낼 때. 

팽팽한 긴장감이 깨졌다.

탕! 탕!

동시다발적으로 총성이 울리고.

놀란 개틀링은 머리를 쥔 채 마차 바닥에 엎드렸다.

반면 홀리데이는 살쩍 웅크리기만 할 뿐 침착하고 담담했다.

‘역시 그랜드 마스터인가.’

개틀링이 이런 착각을 하고 있을 때, 

톡톡.

마부가 마차 벽을 두드렸다.

“다시 출발합니다.”

‘벌써 끝났다고!?!’

이를 증명하듯 총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리처드 개틀링은 눈을 부릅뜬 채 창문 밖을 쳐다봤다. 호위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옆을 따라오고 있었다. 숫자도 그대로고.

‘이 자들은 대체 뭐지?’

덜커덩, 덜커덩.

시체를 넘는 건지 마차가 크게 출렁거린다. 

침을 꿀꺽 삼킨 개틀링이 홀리데이에게 물었다.

“캐, 캔자스 민병대가 저 정도였나요?”

“이런. 제가 말을 안 드렸군요. 우리를 호위하는 건 민병대가 아니라 SFBC입니다.”

“SFBC? 그 세븐스트롱인가 뭔가 하는 자들이 있는 곳이요?”

“산초 리나레스라고. 마차를 끄는 친구가 그중 한 명이죠.”

“오오, 그냥 평범한 마부가 아니었군요!”

개틀링이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마침 산초가 마차 벽을 두드렸다.

톡톡.

“시장님, 적들에게 위치가 노출된 이상 배로 가는 건 위험한 것 같군요.”

“그럼 두 번째 경로로 가죠, 산초.”

“알겠습니다. 충격이 있을 테니 꽉 붙잡으시죠.”

마차에 속도가 붙을수록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심해졌다. 뒤에서 쫓는 자들이 남부 연합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런 말 하면 뭣하지만. 형제들이 제 소문을 퍼트린 것 같군요.”

“남부 연합에도 프리메이슨은 있으니까요.”

윌슨 크릭 전투가 벌어진 지 사흘 만에 남부 연합은 무기의 개발자로 리처드 개틀링을 지목했다. 이는 그와 가깝게 지낸 프리메이슨의 입에서 흘러나온 정보 탓이었다.

몇 시간 뒤.

또 다른 적들이 거리를 좁혀왔다.

마차에서 망원경으로 창문 밖을 내다본 개틀링은 놀란 듯 소리쳤다.

“조엘 메이스! 저자가 나를 쫓다니!”

홀리데이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마차를 쫓아오는 무리는 대략 40명. 

그중 중 선두에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누굽니까?”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 롯지의 회원입니다!”

또한 메이스는 콴트릴에게 싸움 기술을 알려준 체로키 부족의 혼혈이기도 했다.

두드드드드.

미주리주 남서쪽 평원을 질주하는 마차.

그 뒤를 뒤쫓는 미주리주의 게릴라들.

마부석에 있던 산초는 대충 위치를 가늠한 뒤 쥐고 있던 고삐를 대원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어깨에 걸친 가방에서 특이하게 생긴 권총을 꺼냈다.

막스가 말하길.

- 개틀링을 빼내는 게 어렵거든, 배를 포기하고 남서쪽 설리번으로 방향을 틀어.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거든, 신호를 보내. 히콕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걸 쏘면 된다 이거지.’

산초가 총몸을 반으로 꺾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 손가락 세 개 굵기의 산탄 총알처럼 생긴 걸 집어넣었다.

‘하여간 보스는 별걸 다 만든다니까.’

철컥.

장전이 손쉽게 완료되자 총구를 하늘로 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터엉.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탄두는 이내 퍼엉 소리와 함께 붉은 연기를 뿜어냈다.

창밖으로 이를 지켜보던 개틀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 혹시 저것도?”

“이름이 플레어 건이라고 하더군요.”

홀리데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도 수많은 특허 중 하나겠지.’

개틀링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을 때, 

설리번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에 뜬 붉은 연기를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받은 일단의 사람들은 말에 올라 마을을 빠져나왔다.

막스가 설리번으로 미리 보낸 히콕과 SFBC 대원 50명이었다.

“가자!”

히콕이 산초를 도우러 갈 즈음.

윌슨 크릭에서 패한 남군은 후퇴를 거듭한 끝에, 미주리주 밖으로까지 밀리게 되었다.

파면당한 주지사 잭슨은 결국 아칸소와 텍사스에서 군대를 정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남군의 병력은 미주리에서 완전히 발을 빼게 되었다.

하지만 막스와 율리시스는 퇴각하는 적을 그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아칸소는 몰라도, 잭슨은 끊임없이 미주리주를 넘볼 겁니다. 죽일 수 있다면 죽여야죠.”

“가능하겠나?”

“단 한 명만 노린다면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대원 다섯만 대동한 채 막스는 퇴각하는 잭슨 주지사를 은밀히 뒤쫓았다.

< 리처드 개틀링 > 끝

< 깃발 들어 >

미주리주 설리반 마을 부근.

휘이이잉. 

퍼엉!

개틀링을 쫓던 조엘 메이스는 움찔하며 속도를 줄였다.

시선은 멍하니 하늘에 새겨진 붉은 연기를 향했다. 

‘저, 저게 뭐지?’

용도로 봐선 도움을 요청하는 듯하다.

주변에 동료가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뭐가 되었든 개틀링을 잡기 위해서 멈추는 건 시간 낭비였다.

“놈들의 수가 늘어나기 전에 서두르자!”

조엘 메이스는 수하들과 함께 맹렬히 개틀링을 추격했다. 그에겐 이번 일이 인생의 커다란 변환점이자 기회였다.

불과 얼마 전. 

메이스는 윌리엄 앤더슨과 윌슨 크릭 전투에 참전했지만, 변변한 싸움도 못한 채 미주리주 이남인 아칸소로 밀려나야 했다.

- 멍청한 지휘관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입니까? 이러다 다시는 미주리 땅도 못 밟게 생겼네요. 병력을 총동원해서라도 그 무기를 탈취했다면 이렇듯 개 쫓기듯 쫓기진 않았을 겁니다.

앤더슨의 분노는 반격은커녕 연일 퇴각만 하는 남군의 초라한 모습 때문이었다. 

실망한 앤더슨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행동을 원했다.

하지만 조엘 메이스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작전의 실패가 무기 탓이지 지휘관의 문제인가. 만약 앤더슨의 말대로 무기를 빼앗는데 집중했다면 이렇게 둘이 대화를 나눌 일도 없을 것이다. 

이미 죽었을 테니까.

가뜩이나 의견이 충돌하는 때에, 어쩐 일로 잭슨 주지사와 스털링 프라이스 장군이 메이스를 찾았다.

- 체로키 부족만으로 된 부대를 편성하고 싶은데, 어떤가? 자네가 앞장선다면 전폭적인 지원을 할 생각인데.

다른 인디언들과 달리 미주리주에 사는 체로키 부족은 남부 백인들과 동조되어 살고 있다. 메이스는 체로키 혼혈로 부족 내에서 인지도가 상당했다. 

그 때문에 잭슨과 스털링은 메이스를 통해 부족한 병력을 인디언으로 충당할 생각이었다.

- 이 일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 물론이지. 전쟁은 하루 이틀 안에 끝나지 않을 걸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잭슨 주지사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메이스를 쳐다봤다.

- 그 빌어먹을 무기를 만든 자를 찾아냈네. 리처드 개틀링이라는 형제라더군.

- 개틀링 박사요?

- 아는 자인가?

- 몇 개월 전 세인트루이스 롯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 그럼 이야기가 쉽겠군. 남부 연합에서도 사람을 투입하겠지만,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 어떤가? 자네가 개틀링을 포섭해 오는 게. 

말이 포섭이지, 납치라도 해서 끌고 오라는 표정이다. 그만큼 잭슨과 스털링은 무기를 증오하고 한편으론 갈구했다.

- 자네가 속한 게릴라 부대를 동원해도 되고, 원한다면 따로 병력을 내줄 수도 있네.

조엘 메이스는 갈등 끝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체로키 부족을 이끌려면 어차피 앤더슨과는 갈라져야 했다.

‘이제부터 나는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

체로키 혼혈을 넘어, 당당히 한 부대를 이끌고 공을 세울 것이다.

그 시작은 리처드 개틀링을 손에 넣는 것.

마차와 가까워질수록 조엘 메이스의 눈빛에 탐욕과 광기가 스며들었다.

한편, 정신없이 마차를 몰던 산초는 폭이 좁고 급회전 구간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덜커덩, 덜커덩.

바퀴가 들리고 한쪽으로 쏠리자, 

“워어어어!”

개틀링과 홀리데이는 파도를 타듯 마차 안에서 중심을 찾으려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무리하게 달린 나머지 말들은 지치고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다. 적들과의 거리는 육안으로도 확인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산초는 바람에 날려 희미해지는 붉은 연기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히콕, 이 새끼 설마 다 지켜보고도 늑장 부리는 건 아니겠지? 하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만약 그렇다면 생사를 두고 히콕과 승부를 겨룰 것이다. 일등 빼면 딱히 서열이랄 것도 없는 세븐스트롱.

“네놈부터 때려눕혀 주마. 빌어먹을 히콕!!” 

굽이진 코너를 돌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산초는 쥐고 있던 말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런데 이때. 

커다란 바위 뒤에서 일단의 무리가 튀어나왔다. 선두에 있던 자는 리볼버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소리쳤다.

“산초가 돕기도 전에 초를 치네. 그냥 갈까? 욕 다 들었어, 새끼야!”

“욕? 누가, 내가?”

산초는 발뺌하며 소리쳤다.

“아무튼, 뒤는 맡기마! 와일드 빌 히콕!”

“이럴 때만 와일드 빌이지?”

코웃음 친 히콕은 시거를 문 채 총 한 자루를 더 꺼냈다. 리볼버가 아닌 미리 장전해둔 플레어 건이다.

대원들은 굳이 저걸 써야 하는 표정이지만, 히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각기 다른 총을 든 채 눈을 감고는 바위 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0, 9, 8....’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고. 지척까지 다가오자 히콕이 언덕 바위에서 몸을 드러냈다.

선두에 있던 조엘 메이스가 황급히 총을 꺼내려 할 때.

히콕의 쌍권총이 각기 다른 화력으로 불을 뿜었다.

피우우우웅.

탕!

히콕이 발사한 플레어 건과 총알이 조엘 메이스의 가슴에 박혔다. 

신호탄이 신호가 되어 대원들의 총격이 시작되었다.

탕! 탕!

히콕은 플레어 건을 땅에 떨구고. 재빨리 리볼버의 손 위치를 바꿔 미친 속도의 패닝으로 다섯 발을 발사했다. 그런 뒤엔 허리춤에 있던 또 다른 리볼버를 패스트 드로우한 뒤 패닝을 이어갔다. 빠르고 정확함에 대원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말에서 떨어진 조엘 메이스는 가쁜 호흡을 내뱉었다. 가슴에 박혀 연기를 뿜어내는 신호탄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푸슉.

총알이 빗발치는 속. 

눈먼 총알이 몸에 박히며 메이스의 마지막 숨마저 거둬갔다.

원 역사에서 조엘 메이스는 체로키 부족을 이끌고 남북전쟁의 남군으로 참여한다.

전쟁 후에는 체로키 부족을 이끄는 추장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그깟 개틀링이 뭐라고, 이번 생엔 뜻을 펴지 못한 채 메이스는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

같은 시각 아칸소주와 미주리주 경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윌슨 크릭 전투에서 대패한 남군 병력은 둘로 쪼개어 퇴각했다.

막스는 이 일에 레인저스의 리더이자 텍사스 지리에 익숙한 월러스와 포드를 작전에 포함시켰다. 잭슨이 텍사스 깊숙이 들어갈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근데 대체 그건 왜 챙긴 거야, 보스?”

포드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막스의 말 안장에는 두 개의 막대가 꽂혀 있었는데, 거꾸로 꽂힌 연방군과 남부 연합의 깃발들이었다.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야?”

“아칸소지.”

“거긴 남군이지? 그러니까 잡히면 이걸 휘날려야지. 그러다 북군 오면 이거 들고.”

“...... 너무 모양 빠지는 거 아냐?”

“박쥐도 아니고 SFBC의 체면이 있지.”

포드와 월러스가 인상을 찡그리자 막스가 코웃음 쳤다.

“둘 다 체면 차리다 뒈지겠구먼. 남군 들어! 북군 들어! 살고 싶으면 미리 연습해 둬.”

“그러다 잘못 들면 좆되는 거네?”

포드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묻자 막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총알하고 포옹해야지.”

포드와 월러스가 막스를 한심하게 쳐다보는데 반해, 피치는 흥미를 보였다.

“피치 도전?”

“도전!”

“남군 들어! 북군 들어! 북군 들지 말고, 남군 들어! 남군인가 북군인가 모르겠다 남군 들까 하다가 북군 들어. 이걸 안 속는다고!? 천잰데?”

“...... 잭슨 부대 이동합니다요.”

퍼디라는 이름의 저격수 대원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피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막스와 일행은 잭슨의 부대를 뒤쫓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