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360)

망원경으로 동태를 살피던 월러스가 포드에게 말을 건넸다.

“잭슨과 스털링이 서로 찢어진 걸 보면 사이가 단단히 틀어진 모양이네.”

“원래 전쟁에서 지면 남 탓하게 되어 있거든. 잭슨이 분명 스털링한테 뭐라고 했을 거야.”

“미주리주 민병대를 그나마 이렇게 조직해서 이끄는 건 전부 스털링 덕분인데. 잭슨이 분수를 모르는구만.”

스털링 프라이스는 미주리주 민병대와 게릴라들을 이끄는 사령관. 

경력이 꽤 화려하여 25년 전 미주리주와 몰몬교 전쟁, 멕시코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했던 인물이다.

월러스와 포드의 경우 멕시코 전쟁에서 스털링과 함께 싸운 적이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포드가 말했다.

“스털링과 250명의 병력을 이끌고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를 공격했을 땐, 정말 죽는 줄 알았지. 완전 적진 깊숙이 들어갔으니까.”

“그 작전이 실패했으면 스털링은 아마 교수형 당했을 걸? 공격하지 말라는 상관의 명령을 무시했잖아.”

“뭐, 어찌 됐든 전쟁은 결과가 중요한 거지. 스털링은 보기보다 꾀가 많은 놈이야, 다퉈봐야 잭슨이 오히려 잡아 먹힐걸?”

둘은 잭슨과 스털링이 왜 함께 이동하지 않는가를 두고 의견을 나누었다.

월러스와 포드는 그 원인을 의견충돌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막스는 좀 더 상황을 복잡하게 분석했다.

‘이건 꼼수가 분명하다.’

전쟁의 패배는 갑자기 튀어나온 기관총과 저격수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그 원인을 모르고 서로의 잘못을 따질 만큼 잭슨과 스털링이 바보일까?

‘절대 아니지.’

막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자 옆에 있던 피치가 힐끔 쳐다봤다.

“무섭게 왜 그래?”

“....... 들어봐봐.”

막스는 주지사 잭슨이 아칸소가 아닌 텍사스로 가는 걸 의심했다.

남부 연합에 속하지만 텍사스는 전선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변두리 지역. 그곳에서 병력을 모아봐야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그 정도 돌대가리였으면 암살할 필요도 없지. 안 그래?”

“그래서, 짐 싸자고?”

“조선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해.”

“그럼 조선 말로 하든가.”

“...... 아무튼.”

막스가 잭슨을 암살하려고 한 건, 원 역사에서 전세가 불리해진 잭슨이 남부 연합의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를 찾아가기 때문이었다.

여파는 상당했다. 

제퍼슨 데이비스는 미주리주를 남부 연합에 포함하고, 잭슨을 미주리주의 주지사 임명을 선포한다. 연방이 파면시킨 주지사를 남부 연합이 복권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그렇게 되면, 잭슨을 옹호하는 자들이 민병대에 들어가고 총을 쥐겠지. 그럼 미주리주가 또다시 전쟁터가 되는 거야.”

그런데 잭슨은 미주리주 민병대를 스털링에게 넘긴 채 남부 연합의 수도가 아닌 텍사스로 이동하고 있으니. 수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이건 눈속임이야.”

“눈속임? 그럼 우리가 뒤쫓는다는 걸 안다는 거야?”

“어느 정도는.”

피치의 물음에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윌슨 크릭 전투를 계기로 여러 연방의 군인들과 함께 움직였다. 이는 첩자가 있다면 SFBC 역시 그대로 노출된다는 걸 의미했다.

연방주의자와 친 남부연합주의자가 혼재된 미주리주에서 첩자를 만들기란 매우 쉬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첩자라니. 이제 우리도 안심할 수 없겠네.”

“첩자는 북군과 남군 전체에 퍼져있을 거야. 지금은 전쟁 초기라 더 하겠지.”

“포인트는 누가 이걸 이용하냐, 이거겠네?”

“바로 그거지.”

피치에게 미소 짓던 막스는 대원에게 다음을 지시했다.

“지금부터 잭슨이 이끄는 병력 중에 외부로 이탈하는 자를 유심히 지켜보도록 해. 반대로 놈들과 접선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도 반드시 추적해야 할 거야.”

“오케이!”

*

막스 일행이 잭슨을 쫓고 있을 무렵.

아칸소 북부에서 퇴각하던 스털링 프라이스 장군의 막사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리옹 장군의 휘하에 있던 미주리주 의용군이지만 스털링이 심어둔 첩자였다.

윌슨 크릭 전투 이후 스털링을 찾아온 첩자는 이번이 세 번째.

앞선 두 명이 가져온 보고를 종합해보면.

콜로라도의 SFBC가 북군에 가담했다는 것.

무기의 출처 또한 그들이며, 주목할 건 소문만 무성하던 SFBC 리더의 정체였다.

- 막스라는 자로 동양인이 맞더군요.

또한 첩자들은 SFBC 전략 전술의 핵심을 정찰과 첩보라고 보고했다.

- 놈들은 지금도 은밀히 이곳 움직임을 정찰하고 있을 겁니다.

스털링 프라이스는 이를 역이용하기 위해 잭슨의 이동 경로에 혼선을 주려 했다.

그만큼 잭슨의 움직임은 중요했다.

- 주지사님이 리치몬드로 가는 걸 굳이 적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남부 연합의 확실한 지원을 위해 잭슨은 남부 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를 찾아가기로 했다.

장소는 남부의 수도 리치몬드.

스털링은 혼선을 주기 위해 자신은 아칸소로 잭슨은 텍사스로 향하는 수를 썼다.

그렇게 두 갈래로 병력이 쪼개진 지 반나절.

세 번째 첩보원이 스털링을 찾아왔다.

“빨리도 왔군. 퇴각하는 지름길이라도 알려주러 왔나?”

“...... 죄송합니다. 몸을 빼내는 게 여의치 않았습니다.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무기에 관한 건 저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SFBC 대원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바람에 알 수가 없었거든요.”

앞선 첩보원들도 같은 소리였다.

스털링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물었다.

“아무튼, 지금 빠져나온 이유는 그만큼 중요한 정보가 있다는 거겠지?”

첩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난밤에 SFBC 대원 몇 명이 경계 부근을 빠져나가는 걸 확인했습니다. 조사 결과 암살을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암살?”

스털링이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대상은?”

“잭슨 주지사 아니면 장군님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리옹 장군도 뒤늦게 알고는 화를 냈다더군요.”

“사령관인 리옹도 모르는 작전이었군. 그럼 이 일을 누가 주도하는 거지?”

“아무래도 캔자스 레인 상원과 율리시스 대령, SFBC 리더 이 셋이 아닐까 합니다.”

미간을 찌푸린 스털링은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그래서 암살에 동원된 숫자는?”

“...... 다섯 명입니다.”

“뭐?”

볼살을 파르르 떤 스털링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놈들이 우리를 병신으로 알고 있구나. 고작 다섯으로 죽이겠다니!”

그게 잭슨이든 자신이든, 스털링은 터무니없는 작전에 실소를 흘려댔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곤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 놈들이 저격수일 가능성은?”

이미 된통 당한 경험이 있던 터라, 스털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도 그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 SFBC 대원들은 라이플도 이상한 걸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다섯 명이 움직였다면 저격수일 가능성이 큽니다.”

“흠.”

스털링은 턱을 매만지며 대응을 고민했다.

그런데 의외로 방법은 간단했다.

스털링은 밖에서 참모를 불러 다음을 지시했다.

“저격수 다섯이 잭슨 주지사를 노리고 있다. 소수의 호위만 이끌고 본래의 목적지로 향하라고 해. 움직이는 표적을 저격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전문 기병이 아닌 저격수는 기동성이 떨어질 터. 작심하고 달리는 잭슨을 맞추긴 불가능할 것이다.

스털링 본인은 저격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병력 속에 파묻혀 아칸소로 이동하면 그만이고. 또 한가지.

‘아무리 날고 기는 솜씨를 지녔다 해도 이곳은 남부다.’ 

저격수 다섯 명이 잭슨을 쫓아 들어오기엔 위험한 장소였다. 스털링은 이참에 놈들을 제거할 생각으로 또 다른 참모를 불러냈다.

“저격수 다섯이 잭슨 주지사와 우리 부대 근처에 쥐새끼처럼 숨어있을 수도 있다. 찾아서 제거하도록 해.”

*

아칸소 북쪽의 잭슨 부대.

“저격수?”

“그렇습니다. 스털링 장군께선 지금이라도 리치몬드로 향하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흠. 알겠네.”

얼굴이 굳은 잭슨은 옆에 있던 텍사스의 맥컬록 장군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리치몬드로 갈 때가 된 모양이군요. 제퍼슨 대통령에게 확실한 답을 듣고 오겠습니다.”

“미주리주가 연방에 넘어가면 서부 전선이 위태롭다는 걸 대통령도 알 겁니다. 아무튼, 주지사께서 다녀오는 동안 저는 텍사스에서 병력을 충원하고 있겠습니다.”

잭슨 주지사는 빠른 이동을 위해 열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부대를 벗어났다.

혹시나 저격당할까 싶어 직선이 아닌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나아갔다.

피치는 이런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표적 이동! 표적 이동!”

“숫자는?”

“열 한 명!”

“방향은?”

“동쪽으로 향하고 있어.”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들었지? 지금 우리가 지금 들어야 할 건 뭐다?”

“총? 근데 놈들이 멈춰야 쏘든 하지.”

월러스와 포드, 퍼디가 눈을 껌뻑일 때.

막스는 피치의 말 뒤에 있던 깃발 하나를 빼들었다.

“지금 우리가 들어야 할 건 바로 남군 깃발! 피치와 나머진 잭슨이 멈췄을 때를 노린다.”

막스는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남부 깃발을 휘날리며 잭슨의 뒤를 쫓아간다.

피치는 피식 웃으며 말에 올라탔다.

“뭐해? 바늘 가면 실이 따라가야지.”

“저렇게 간다고?”

포드와 월러스는 아직 막스가 실제로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심각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 무모한 거야, 대담한 거야?”

“그냥 미친 거 같은데.”

잭슨의 발을 멈추기 위해 남군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드는 보스. 

과연 믿고 함께 할 만한 인물일까.

< 깃발 들어 > 끝

< 아칸소에서 벌어진 일 >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

민주당원 클레이본 잭슨은 주지사 선거에서 자신을 반분리주의자라 선전했다. 

미국은 하나의 연방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게 그의 선거 구호였다.

하지만 남부 연합이 만들어진 후. 

잭슨은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쿠데타를 일으켜 미주리주를 탈퇴시키려 했다. 

결국 반분리주의자는 표를 얻기 위한 거짓 선전이었던 셈이었다.

‘노예제 폐지? 웃기고 있네. 악마 같은 연방 놈들에게 미주리주는 절대 넘겨줄 순 없지.’

다그닥, 다그닥.

잭슨이 수하들과 아칸소 평원을 가로지를 때.

뒤에서 말 한 필이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남부 연합 깃발입니다.”

“아군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멈추기엔 저격수가 신경 쓰인다.

수하의 물음에 잭슨의 시선은 주변부터 훑어갔다. 

아칸소의 비버호 주변에는 나무가 빼곡한 숲과 구릉지가 많다. 저격하기엔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많아 쉽진 않을 것이다.

결정을 내린 잭슨은 말 고삐를 당기며 속도를 줄였다. 수하들은 혹시 모를 저격에 대비해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걸 본 막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더욱 힘차게 깃발을 휘날렸다.

이렇듯 무모한 짓을 벌이는 데는 몇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잭슨이 무법자가 아닌 노회한 정치인이라는 것. 또한 하루라도 빨리 남부 연합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막스는 남부 연합 깃발을 든, 그것도 혼자 다가오는 자신에게 섣불리 총을 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물론 심장이 쫄깃쫄깃하긴 하다.

망원경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놈이 있는데, 저러다 총이라도 쏘지 않을까 등골이 오싹했다.

상대와의 거리는 300m.

거리가 좁혀질수록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막스의 볼 한쪽이 경련을 일으켰다.

‘어허, 이막산. 진정해라.’

모든 걸 몸의 원래 주인 탓으로 돌리며,

막스는 쓸 수 있는 카드들을 만지작거렸다.

남북전쟁을 위해 알프레도와 만들어낸 무기가 적지 않다.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카드는 다양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한 막스는 말 안장 뒤의 가방에서 슬그머니 뭔가를 꺼내 쥐었다.

다그닥, 다그닥.

거리가 30m까지 좁혀지자 잭슨의 수하가 소리쳤다.

“얼굴부터 보여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급하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막스는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 재빨리 말을 이으며 다가갔다.

“맥컬록 장군이 저격당하셨습니다!”

“뭐라고!?”

잭슨과 수하들이 놀란 표정을 지을 때.

막스는 손에 쥐고 있던 물건에서 핀을 잡아당겼다.

팅.

“맥컬록 장군께서 죽으면서 이걸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

막스는 냅다 손에 든 걸 집어 던졌다.

잭슨과 수하들의 시선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물건을 지켜봤다.

통.

그들 사이에서 떨어진 물건은 검은색 고무 공.

‘3, 2···.’

막스는 재빨리 안장에 다리를 지탱하고 반대쪽으로 몸을 눕혔다.

쾅!

굉음과 함께 고무 안에 있던 작고 둥근 납탄들이 비산하여 사람과 말들의 몸을 꿰뚫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말들은 발작하듯 사람들을 떨쳐낸다. 땅에 떨어져 신음하는 자들과 말에서 버티려 안간힘을 쓰는 자들이 아우성치고. 잭슨은 팔에 파편들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며 이를 멍하니 지켜봤다.

그리고.

타앙!

피치가 쏜 탄환이 나무 사이를 통과해 정확히 잭슨의 이마에 꽂혔다. 

고개가 꺾인 몸은 마른 짚단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즉사였다.

탕! 탕!

피치과 퍼디의 저격. 말에서 내린 막스까지 리볼버를 쏴대자 적들은 순식간에 몰살되었다.

짙은 화약 냄새와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막스는 고통에 신음하는 말들과 꿈틀거리는 자를 가려내 확인 사살했다. 

그러는 동안 저 멀리서 월러스와 포드가 다가왔다.

다그닥, 다그닥.

포드는 북군 깃발을 휘날리며 오고 있었는데,

방금까지 남군 깃발을 휘날리던 막스라 쉬이 믿지 않았다.

총구를 겨누자 월러스와 포드는 질겁하며 소리쳤다.

“에, SFBC 포에버!”

“보스! 나야 월러스!”

막스가 총을 허리춤에 집어 넣자, 둘은 그제야 안심하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참혹한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야, 대체 뭘 만든 거야.’ 

여러 가지의 보조 무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게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막스와 알프레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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