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병력이 불어나면 그들을 지휘할 장교들의 수요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위가 하루아침에 소령, 중령으로 진급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북군과 남군의 육군 편제를 살펴보면.
중대는 분대와 소대 1백 명으로 구성, 대위가 지휘. 연대는 10개의 중대 병력 1천 명으로 구성되며 지휘관은 대령이다.
여단의 경우 4~6개의 연대로 구성된 병력 4천 명을 준장이 지휘하고. 사단은 3~4개의 여단이 모여 병력 1만 2천 명을 소장이 지휘한다.
끝으로 군단은 3~6개의 사단으로 3만 6천 명에서 7만 2천 명으로 구성되고, 이를 중장이 지휘를 맡게 된다.
현재 연방의 동부 사령관은 은퇴를 앞둔 윈필드 스콧 대신 존 맥클라렌이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서부 사령관의 경우, 185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자 캘리포니아 인디언 학살에 관여한 존 찰스 프레몬트가 소장으로 임명되어 사단급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백악관 3층 대통령의 개인 집무실로 사용되는 트리티룸.
존 브라운이 외출하지 않을 때, 콜린은 이곳에서 시거를 물고 신문이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막스가 봤다면 당장에 미주리로 불러들였을 정도로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덜컥.
“나한테 임명하라면서 뭔 말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원. 막상 책임은 하나도 안 질 거면서 입만 살았다니까.”
회의를 끝내고 들어온 존 브라운은 거칠게 문을 열며 말을 내뱉었다.
뒤를 따라 들어오는 부통령 링컨은 담담한 얼굴로 콜린의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 대통령께서 자네 보스를 장군으로 임명했다네.”
링컨의 말에 콜린은 켁켁 거리며 시거 연기를 내뿜었다. 이를 본 존 브라운이 물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당연히 놀랄 일이죠. 동양인이 장군이라니. 너무 간 것 아닙니까?”
“자네가 한 말을 막스에게 그대로 전해주겠네.”
“...... 솔직히 우리 보스라면 준장이 아니라 소장급은 되어야죠. 실망입니다, 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됩니까?”
존 브라운과 링컨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콜린은 내심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서 결과는요?”
“당연히 통과시켰지.”
“그럼 율리시스 대령의 진급은 물거품이 된 겁니까?”
“헨리 할렉이 그 자리를 차지했네. 아쉽지만, 다음 전투에서 율리시스가 공을 세우길 기대하는 수밖에.”
“그래도 나쁘진 않은 거래였네요.”
콜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표정과 달리 말투는 시큰둥했다.
“뭐, 앞으론 보스가 아닌 제너럴 조로 불러야겠군요. 의미는 없겠지만.”
“의미라.”
어차피 막스의 특수부대는 대통령 직속이라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때문에 상징성을 빼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존 브라운에겐 그 상징성이 더 중요했다. 그는 턱을 매만지며.
“백인이 아닌 유색 인종이 장군으로 임명된 첫 사례네. 역사적인 일이지. 난 거기에 의미를 두고자 하네.”
혈연과 인맥만으로 자리를 차지한 무능력한 백인들을 밀어내고, 나아가서는 흑인이 장군이 될 수도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존 브라운이 나름의 거대한 의미를 부여할 때, 지극히 현실적인 링컨이 입을 열었다.
“동양인의 이름이 부각할수록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지금이야 그냥 넘어가지만, 막스의 능력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흠집 내려는 사람이 생길 테지요.”
“그걸 막아내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그 역할을 못 할 경우죠. 차기 대선에서 반대파들은 분명 막스를 이용할 겁니다.”
“보스가 누구에게 이용당한다고요?”
콜린은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하냐며 되물었다.
링컨은 손에 깍지를 끼며 턱을 괴었다.
“이용하지 못한다면 아예 부수려 하겠지. 내가 걱정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라네.”
막스를 적으로 규정한 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
막스가 이룩한 기반을 박살 내는 건 의외로 간단한 일이었다. 동양인을 위한 법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으니 말이다.
한편, 콜린은 링컨의 말이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막스가 부서진다니.’
미간을 찌푸린 콜린은 지난 일을 곱씹어봤다.
로렌스 보안관 시절부터 막스를 봤으니 그 시간이 적지 않다.
그동안 괴물 같은 능력에 가려져 있을 뿐.
어쩐지 막스가 한 모든 행동이 이 땅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처럼 여겨졌다.
그 하나하나가 주마등처럼 스쳤을 때.
“어흑.”
울컥한 콜린이 주먹을 가져가 입을 틀어막았다.
링컨은 못 볼 걸 봤다며 시선을 냅다 존 브라운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최근 의원들 사이에서 불거진 문제는 어쩔 생각입니까? 레인 의원의 겸직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만.”
존 브라운은 상원의원인 레인을 캔자스 민병대 사령관으로 준장에 임명했다.
“흠. 이번 윌슨 크릭 전투에서 레인 의원도 활약했으니, 그 문제는 알아서 해결될 거라 봅니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가급적이면 적이 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말입니다.”
“그 마음이야 왜 모르겠습니까. 하여튼, 대통령도 별거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존 브라운과 링컨이 허탈한 표정을 지을 때, 콜린은 여전히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근의 캠프.
막스의 진급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건 콜린의 편지 한 장이었다.
그 편지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지 말고.
동양인의 한계를 벗어나려 혼자 발버둥 치지 말고, 힘들고 외로울 땐 우리 SFBC가 있다는 걸 잊지 마!]
“뭐야, 워싱턴 가더니 약에 손댄 거야?”
같이 읽던 피치의 말에 막스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막스는 편지 봉투를 다시 보며 혹시 첩자가 보낸 게 아닐까 의심했다.
“필체 맞지?”
“어. 그런 것 같은데.”
막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마저 편지를 읽어갔다. 그리고 이내 링컨과 나눈 대화를 적은 부분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막스가 피식 웃음을 터트릴 때.
독해가 뛰어난 피치는 어느새 끝부분까지 다 읽고는 막사를 뛰쳐나갔다.
[끝으로 제너럴 조가 된 거 축하해.
곧 임명장이 날아갈 거야.
참고로 율리시스는 나가리임.]
‘정작 해야 할 사람을 안 하고 나를?’
막스는 어이가 없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특전사로서 조유강의 계급은 상사.
그런데 미국에선 준장이 되버렸다.
‘역시 인생 두 번 살고 볼 일이야.’
막스의 입꼬리가 꿈틀거릴 때.
천막이 젖혀지며 시커면 무리가 쳐들어왔다.
그새 피치가 대원들에게 알린 모양이다.
“축하합니다, 보스! 아니 제너럴 조!”
“제너럴 조!”
“제기랄 조!”
막스가 히콕을 빤히 쳐다봤다.
“네가 하면 왜 욕같이 들리냐.”
“...... 무슨 소리야. 다들 기다리니까, 밖으로 나가자고!”
천막 밖,
SFBC 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제너럴 조!”
“오오오, 우리의 제너럴 조!”
율리시스도 다가와 축하를 건넸는데, 어쩐지 포니 익스프레스가 망했을 때의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제너럴 조 > 끝
< 서부 사령관 >
미연방 특수부대 준장 막스 조.
진급한 덕분에 서부 사령관의 면담 요청까지 들어왔다. 그는 율리시스와 막스를 서부 사령부의 본부가 있는 세인트루이스로 불러들였다.
‘일단 그건 며칠뒤의 일이고.’
대원들의 조촐한 장군 기념 축하를 끝낸 막스는 막사로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콜린이 편지에서 언급한 링컨의 말이 다시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것이다.
‘나를 무너뜨릴 방법이라.’
적들이 권력을 손에 넣는 다면 방법은 너무나 많다.
콜로라도를 준주로 만들어 광산을 압류하고.
민간군사기업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동양인의 시민권을 조정하여 재산에 압류를 가하거나, 사업 영역을 축소하는 것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여기까진 양지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음지로 넘어가면 그 수단은 더욱 악랄하고 치명적일 수도 있다.
링컨의 말처럼, 막스의 이름이 퍼질수록 진짜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대통령을 바꾸기까지 했음에도 지금까지 일구어놓은 게 견고해 보이지 않았다.
“제너럴 조. 뭘 또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피치가 바구니에 삶은 감자를 가지고 왔다.
그걸 본 막스가 말했다.
“까줘.”
“어떻게, 발로 정강이를 까줄까? 아님, 왼쪽 볼?”
“흠. 근데 말야.”
막스는 직접 감자 껍질을 벗기며 물었다.
“아일랜드에서 감자 말고 다른 걸 키웠다면 어땠을 것 같아?”
“뜬금없네.”
“갑자기 궁금해져서.”
1845년 아일랜드는 감자 대기근으로 인구의 20~25%가 죽고 백만 명이 넘는 인구가 이민을 떠났다.
하루 세끼, 심지어 가축들에게도 감자를 먹였던 아일랜드인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식량을 다각화했다면?
피치는 감자를 오물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덜 죽었겠지. 그래도 결과는 비슷했을 거야. 우리 땅을 빼앗은 잉글랜드 놈들이 먹을 것도 전부 가져갔을 테니까.”
“나도 본 것 같아. 아일랜드인은 굶어 죽는데, 정작 식량들은 잉글랜드로 빠져나갔다는 거.”
“맞아. 가난한 아일랜드인은 식량을 살 돈도 없었거든. 운 좋게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왔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전부 굶어 죽었어. 시체가 썩고 악취가 진동했지. 거기다 콜레라와 이질, 장티푸스에 괴질까지. 난 그 지옥에서 탈출한 거고.”
피치는 오늘따라 감자를 더욱 맛있게 오물거렸다.
역시 정신력이 보통이 아니다.
‘트라우마나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했을 텐데.’
막스와 시선이 마주치자 피치가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가 평생 감자 요리만 해줄 것 같아서 불안해?”
“······ 그게 아니라,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나도 감자 말고 다른 음식도 쟁여 놔야겠다고 말이지.”
“대통령에 금광, 무기, 병사들까지 쥐고 있으면, 지금도 엄청 많이 씨를 뿌린 것 같은데.”
“그것만으론 부족해. 누가 작심하고 덤벼들면 공중분해 되는 건 순식간이거든.”
피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늘따라 약한 모습이네. 대통령이 시민권까지 줬으니 너도 이젠 엄연히 이 나라의 국민이야. 게다가 지금처럼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할거라고. 이제 혼자도 아니잖아.”
‘확실히 혼자는 아니지.’
막스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피치는 소화를 시킨다며 스트레칭을 했다.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곁눈질하며 물었다.
“어디 가?”
“갑자기 볼 일이 생각났어.”
막스는 냅다 막사를 벗어났다.
그리고 향한 곳은 일리노이주 제21보병연대의 연대장 막사. 씨는 뿌렸으나 좀체 싹을 틔우지 못하는 율리시스와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다.
막사 앞에 도착한 막스가 자신을 알리자,
"들어오게, 제너럴 조."
혼탁한 소리에 따라 막스가 천막 입구를 젖히고. 안을 본 순간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율리시스가 홀로 탁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싹이 안 자라는 이유가 이거였나!’
물이 아니라 술을 빨아들이고 있다니.
‘아주 싹수가 노랗···.’
“축하하네, 제너럴 조.”
“아까 했잖아요. 그리고 축하는 그렇게 우울한 얼굴로 하는 거 아닙니다.”
“...... 아무튼 축하하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막스는 율리시스의 술잔을 보며 물었다.
“리옹 장군이 진급을 반대했다고 들었는데, 둘의 사이가 안 좋습니까?”
“좋고 나쁘고가 있나. 아무래도 헨리 발렉 대령, 아니 이젠 준장이지. 아무튼, 그자가 나보다 더 뛰어났으니 추천한 거겠지. 우리 제너럴도 한 잔 하지.”
그러면서 술잔 하나를 꺼냈다.
쪼르르.
잔을 채우고 둘은 말없이 술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잔을 내려놓은 뒤에 율리시스가 말을 이었다.
“다음은 어디로 갈 생각인가? 나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신세지만 자넨 다르잖아?”
막스의 지휘권은 특수부대인 SFBC 대원에 국한되지만, 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는 오직 대통령뿐. 어느 전선을 가든 막스 마음이었다.
“우선 프레몬트 장군을 만나봐야죠. 서부 전선에 관한 작전 구상을 들어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원 역사와는 상황이 바뀌었다.
윌슨 크릭 전투에서 죽었어야 할 리옹이 살아있었고. 그 덕분에 경질되었어야 할 서부 사령관 프레몬트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막스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율리시스의 진급 역시 늦춰버렸다. 그의 존재감을 지우는데 본의 아니게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이는 미래를 위해서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그림이었다.
현재 서부 사령부의 주요 조직을 살펴보면.
사령관인 소장 존 C. 프레몬트 휘하에, 리옹 준장과 이번에 진급한 헨리 할렉 준장, 존 포프 준장, 프렌츠 시겔 준장 등이 있다.
주목할 점은 준장으로의 진급에 두 가지 루트가 있다는 거.
대통령 말고도 의용군의 경우 해당 주에서 주지사가 하원의원들의 동의 얻어 임명할 수 있었다.
현시점에서, 각 주는 비례적으로 할당 된 병사의 수를 채우기 위해 그들을 통솔할 장교와 장군을 서둘러 임명해야 했다.
이 말은 적당히 줄만 잘 타도 진급은 거저먹기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율리시스가 진급하지 못한 건 지휘관들이 그의 공을 가로채기보다 외적인 문제가 컸다.
‘술주정뱅이 방랑자’라는 평판이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율리시스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 모습이 한심한 모양이군.”
“뭐, 그정도는 아닙니다.”
“굳이 원인을 따져보면 멕시코 전쟁 이후부터 술을 즐겨 마신 것 같네.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을 겪었고, 가족과 떨어져서 캘리포니아에 있을 땐 더 심해졌지.”
“저는 아예 가족이 없습니다만.”
시선이 마주치자 율리시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거겠지. 나도 잘 알고 있거든.”
율리시스는 자신을 향한 세간의 인식이 형편없다는 건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
전쟁 발발 직후,
들끓는 애국심으로 정규군으로 지원했으나 누구도 받아주질 않았고.
멕시코 전쟁 당시 안면이 있던 맥클레런 장군에게 편지를 썼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으니까.
해서 율리시스가 택한 건 일리노이주의 의용군. 그나마 주지사가 그를 받아들여 대령으로 제21보병연대를 지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리옹이든 누구든, 장군의 지시를 따르는 연대장에 불과하다.
일리노이주의 주지사와 하원들이 다시 한번 율리시스를 장군으로 올려줄 명분이 필요했다.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는 게 최고려나.’
원 역사에서 율리시스가 두각을 보인 전투는 카이로 지역. 그곳을 단독으로 지휘하여 전선을 승리로 이끌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려면 서부 사령관을 꼬드겨 율리시스를 카이로에 배치시키게끔 해야겠지.’
막스가 술을 입에 털어 넣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