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율리시스는 사정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벨몬트에서 조금 떨어진 헌터 농장에 캠프를 구축했다. 그리고 지휘관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들은 아칸소와 테네시에서 모집된 병력이다. 내가 우려하는 건, 추가로 미주리주의 스털링 프라이스가 전투에 가세하는 것이다. 꼭 그자가 아니더라도 남군의 병력이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난 이 전투를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다.”
운이 좋은 건지, 남군의 지휘관 레오니다스 포크는 콜롬버스 병력을 두 개로 쪼개 양쪽을 모두 지키려 했다. 그 덕에 벨몬트에 캠프를 꾸린 남군 병력은 2천 3백. 악수를 둔 것이다.
더구나 강을 등지고 있어 북군에게 포위되기 좋은 최악의 위치 선정이었다.
율리시스는 캠프를 꾸리자마자 전투를 준비했다. 당초 벨몬트로 남군을 유인한 오글스비 대령은 그보다 더 남쪽인 뉴 마드리드에서 북진하는 적들을 억제했다.
때문에 율리시스는 자신의 부대만으로 남군과 맞서야 했다.
전투 라인은 일리노이주의 제22, 30, 31보병 연대와 27보병 기병 중대의 혼합. 아이오와의 제7보병 연대가 전열을 갖추었다.
남북전쟁이 7개월째 접어든 시점.
자원병은 많지만 이를 감당할 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때문에 연대 병력의 숫자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5개의 연대를 긁어모아도 율리시스의 병력은 3천에 불과했다.
“전투는 기세 싸움이 중요하다! 이대로 적진을 공격한다!”
웨스트포인트 사관생도인 율리시스의 기본 전술은 낡은 병법에 머물러 있다.
막스에 의한 콜로라도의 참호전이 남군과 북군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지만, 이를 응용하고 적용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다만, 율리시스에겐 2개의 개틀링 기관총과 이를 조작하는 SFBC 대원 10명, 그리고 클루이 같이 전쟁 발발 직후 자신과 함께 의용군에 자원한 대원들도 있었다.
‘그나저나, 개틀링을 쏘기가 마땅치 않군.’
기관총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절벽의 포구가 어디로 향할지는 빤한 일이 아닌가.
‘막스라면 어떤 전략과 전술을 썼을까.’
율리시스가 머리를 굴려보지만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여기서 율리시스의 성향이 나타나는데, 그는 공격에서 그 방법을 찾으려 했다.
[가능하다면 언제나 공격하라. 그리고 계속 공격하라.]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건 온전히 자신의 역할이자 책임이며 연방을 위한 충성이다.
율리시스는 자신의 좌우명을 따라, 개틀링은 감춰둔 채 고전적인 전술을 선택했다.
“적진을 포위하고 사격을 개시한다!”
4개의 중대가 거리를 좁히며 사격을 개시했다. 교전이 벌어지자 통나무를 눕히고 그 뒤에서 엄폐 사격하는 남군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탕! 탕!
율리시스는 말을 탄 채 직접 전투를 이끌었다.
선두 중대의 사격이 끝나면 뒤에 있던 중대가 자리를 대신했다. 그렇게 교대로 총을 쏘며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전투가 벌어졌다.
“여기서 밀리면 우리가 갈 곳은 강물뿐이다!”
“양키 새끼들에게 접근을 허용하지 말라!”
오전에 벌어진 전투는 정오가 되기까지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양 캠프의 중간 지점인 옥수수밭은 화약 냄새로 가득했다.
하지만 오후 2시가 되자, 남군의 전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화력이 주춤해졌다.
‘드디어 승기를 잡았구나!’
율리시스는 공격을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남군의 지휘관은 급기야 퇴각을 명령해 캠프로 후퇴했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질서 있는 퇴각을 그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
“캠프까지 적들을 추격한다! 일리노이 31연대는 남쪽으로 빠지는 적들을 잡는다!”
율리시스의 지시로 말미암아 퇴각하는 적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고, 일리노이 31연대의 일제사격으로 수십명의 남군이 목숨을 잃었다.
“젠장! 뭣들 하나, 어서 포를 쏘지 않고!”
강 건너 이를 지켜보던 레오니다스 포크는 이를 갈며 포병들을 재촉했다.
차라리 벨몬트를 버리고 콜럼버스에 치중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병력을 반으로 가른 게 실수였을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레오니다스 포크는 이를 회피하며 여전히 콜럼버스를 점령하고 있다는 건 나름의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남군의 콜럼버스 캠프 후미로 은밀히 접근했던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내 자리를 잡고 배를 땅에 붙였다.
검은 천을 제거하자 보기 드믄 라이플이 드러난다. 일부 파츠를 장착해 표적을 조준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스코프를 보던 저격수들의 눈이 힐끔 한 사람으로 향했다.
특수부대의 임시 리더 와일드 빌 히콕.
그가 손을 내리자, 이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뚜쿵.
푸슉.
물을 잔뜩 머금은 총성과 함께 절벽 위에서 대포를 쏘던 포수의 머리에 피가 튀었다.
뚜쿵.
뚜쿵.
소리가 날 때마다 포를 운용하던 사수들의 몸 어딘가에서 피가 솟구쳤다.
“저격수다!”
뒤늦게 눈치챈 누군가의 외침.
총성은 벨몬트가 아닌 콜럼버스 후미에서 들려오고. 당황한 레오니다스 포크의 고개가 뒤를 향한다. 그리고 이때.
뚜쿵.
푸슉.
저격수의 총탄이 포크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고개가 심하게 꺾인 포크는 말에서 떨어진 채 그대로 절명했다.
‘1차 목적은 포병. 2차는 다가오는 기병이다.’
콜럼버스 진영과 저격수 사이에 은폐한 히콕과 대원들은 적들이 오길 기다렸다.
한편, 율리시스는 강 건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엔 적군을 섬멸하려는 집요함만이 가득했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붕괴된 진영, 혼란스러운 퇴각. 아수라장이 된 남군 캠프를 북군이 파죽지세로 몰아쳤다.
율리시스는 부하들을 이끌며 끊임없이 최전선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율리시스가 타던 말이 총에 맞아 발작하며 쓰러졌다. 땅을 구른 그랜트에게 클루이가 재빨리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을 건네줬다.
“고맙네.”
말에 올라탄 율리시스는 다시금 전장을 이끌었다. 클루이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마주치는 적들에게 리볼버로 응수했다.
총알이 떨어지자, 야전 장교가 쓰는 세이버 검을 휘두르며 전쟁터를 누볐다.
그리고 어느순간 함께 의용군에 자원한 9명의 대원들이 자연스레 모이게 됐다.
“이제야 SFBC 같네.”
“큭. 콜로라도와 텍사스 이야기 듣고 피가 끓었는데, 오늘에서야 푸는 구나.”
“누가 보면 미친놈으로 알겠다. 닥치고 총알이나 쳐맞지마.”
“죽으면 SFBC 1호가 되는 건데. 영광일까, 치욕일까.”
“후자에 백 달러 걸지. 전부 낄낄대면서 평생 조롱할 거라고!”
SFBC지만 의용군이 된 대원들은 난잡한 전투속에 그들의 정체성을 곱씹으며 전쟁터를 누볐다.
< 워싱턴의 첩자들 >
“젠장, 양키놈들이 미친놈처럼 달려드는구나! 모두 콜럼버스로 퇴각한다.”
벨몬트에서 남군을 이끈 필로우 장군은 캠프를 버리고 강을 건너려 했다.
하지만 절벽 위에서 힘차게 적군을 향해 포를 쏴야 할 대포가 너무 잠잠하다.
“콜럼버스에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참모의 말에 필로우의 얼굴이 일그러병?
‘애초의 목적은 벨몬트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더 많은 북군의 병력이 콜럼버스를 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퇴각하는 급박한 상황. 성급한 결론을 내린 필로우는 강을 따라 남쪽인 테네시로 퇴각을 결정했다.
한편 절벽에 있는 적 중수포대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은 율리시스는 ‘벨몬트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콜럼버스를 공략하겠다’라는 막스의 말을 떠올렸다.
‘그럼 지금이 기회로군.’
율리시스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퇴각하는 적을 더는 신경 쓰지 마라! 우린 강 건너 콜럼버스를 점령한다!”
율리시스는 강 상류에 있는 증기선과 나룻배를 이용해 병력을 이동시켰다. 그보다 앞서 도착한 클루이는 주변 상황을 정찰한 끝에 율리시스에게 다음을 보고했다.
“아군의 특수부대가 저격과 매복으로 적 캠프를 교란하고 있습니다만. 적들의 방어가 무너진 건 아닙니다.”
“놈들의 야포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망설일 거 있나. 보병들을 앞세워 콜럼버스 캠프로 진격한다.”
강을 건너 병력이 집결하자마자 율리시스는 과감한 공격을 지시했다.
‘이렇게 과감했었나.’
클루이는 새삼 율리시스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자신감 없고, 술에 취한 듯한 흐리멍텅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모한 지시도 아니었다.
남군의 병력이 벨몬트와 콜럼버스에 분산되어있었기 때문에, 율리시스 나름의 병력 계산이 끝난 뒤 내린 결론이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원 역사에선 콜럼버스를 점령하지 못한 채 퇴각하지만, 작금의 율리시스는 초반부터 벨몬트와 콜럼버스에서 남군을 쫓아내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
서부 전선과 달리 동부 전선의 휴식은 길게 이어졌다.
제1 불런 전투와 잇단 패배로 새롭게 동부 사령관에 오른 맥클레런은 여름과 가을 동안 포토맥의 군대를 조직하고 병사들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대중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맥클레런은 48개의 요새와 7,200명의 포병이 480개의 대포로 구성된 난공불락의 워싱턴 방어 시설을 구축. 7월에 5만 명이었던 포토맥 군대는 168,000명으로 숫자가 증가했다.
이는 미국 역사이래 가장 강력한 군대였다.
워싱턴 DC 백악관.
북군 총사령관이자 중장 윈필드 스콧의 은퇴식이 열렸다.
그동안의 노고와 공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윈필드의 퇴임사가 이어졌다.
“이토록 혼란한 시기에 제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게 되어 가슴이 무겁기만 합니다. 하지만 든든한 후배님들이 이 나라의 버팀목이 됐으니 늙은이의 쓸데없는 걱정은 사소한 잔소리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윈필드 스콧의 뒤를 이은 포토맥 사령관.
즉 동부 사령관이자 북군 총사령관이 된 맥클레런은 흡족한 얼굴로 퇴임사를 듣고 있었다.
‘이제야 저 영감의 얼굴을 안 볼 수 있겠군. 나머지는 나한테 맡기고,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있으라고.’
맥클레런과 윈필드 스콧은 수개월 간 논쟁을 벌여 왔었다.
맥클레런은 남군을 아사시키는 전략인 윈필드 스콧의 아나콘다 작전을 거부하고 나폴레옹 스타일의 압도적인 대규모 전투를 선호했다.
게다가 맥클레런 본인은 민주당 성향이 강하기에 급진적 공화당원의 반감도 컸고.
또한 노예 해방에 소극적이었으며 다분히 인종차별적이라 존 브라운과도 갈등을 빚어왔다. 그리고 최근 워싱턴에 이런 소문까지 떠돌았다.
- 윈필드 스콧이 은퇴하지 않으면 맥클레런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
작금의 은퇴식이 급히 이루어진 배경이었다.
맥클레런은 자신을 가로막았던 마지막 벽이 제거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윈필드 스콧의 말에 맥클레런의 눈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서부 전선이 이토록 선전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껏 서부 사령관이 보여준 전략과 전술에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문득 존 브라운 대통령께서 제게 한 말이 떠오릅니다. 중요한 건 피부색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그리고 그걸 서부 사령관이 입증해냈습니다.”
처음 윈필드 스콧은 동양인에게 비판적이었다.
북군 총사령관으로서 군대의 사기 문제를 거론하며 동양인 지휘관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따지고 들었었다.
하지만 그게 무색하리만큼 동양인은 전선을 모조리 승리로 이끌었다.
피부색을 단점을 따지기엔 장점이 이를 뒤엎고도 남을 정도였다.
“제게 아쉬움이 있다면 은퇴 전에 막스 소장을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그를 만나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군요.”
조지 워싱턴 이후 두 번째로 중장에 오른 윈필드 스콧 장군.
그가 이 정도로 칭찬하는 인물이 또 있었을까.
하지만 숨은 의도를 알고 있는 맥클레런은 입맛이 썼다.
동부 전선을 언급하여 깎아내리진 않았으나, 우회적으로 자신을 비판한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도 동양인이랑 비교하다니.’
맥클레런의 눈가가 분노로 꿈틀거리고.
윈필드 스콧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전쟁은 마음대로 시작할 수 있지만, 끝내는 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북군과 남군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그제야 비로소 멈출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물자와 인력이 바닥을 드러내려면 남군을 고립시키는 수밖에 없겠지요.”
다시 한번 자신이 내세운 아나콘다 전략을 상기시키며 퇴임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가 촉발한 서부 사령관이 장내의 화제로 떠오르며 맥클레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양인이라곤 캘리포니아에서 본 지저분한 쿨리가 전부인데, 그 사람은 다른 모양이네요.”
“텍사스 점령 소식을 들었을 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 뭡니까. 저는 동양인이라고는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니까요.”
‘망할 동양인이 워싱턴까지 들쑤시는구나.’
맥클레런의 짜증 섞인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렇다고 자리를 피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서부 전선은 규모가 작지 않나요? 최근 벨몬트와 콜럼버스도 고작해야 5천이라 들었는데요.”
‘그렇지. 동부 전선에 비교하면 턱도 없이 작지.’
맥클레런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향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아름다운 중년의 미부인이었다.
“콜로라도는 무기의 힘이 컸고, 텍사스는 병력이 없는 곳을 점령한 거라 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부인의 말에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말을 아꼈다. 워낙 워싱턴 사교계에서 꽤 이름난 부인이라 말하기가 조심스러워했다.
맥클레런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운도 전투에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죠. 하지만 부인의 말씀처럼, 동부 전선에 비해선 규모가 작은 건 사실입니다. 그 친구가 포토맥을 맡았다면, 글쎄요. 일단 군인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겁니다.”
“어머, 맥클레란 총사령관님이시군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로즈 오닐 그린하우라고 해요.”
로즈가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인다. 맥클레런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손등에 입맞춤으로 화답했다.
“워싱턴에서 장군님의 명성이 자자하더군요. 북군에 당신같은 분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답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사교계의 여왕답게 로즈 부인은 외모만큼이나 말투도 우아했다.
심지어 동양인을 비하하고 깔보는 모습조차 아름답다.
“지저분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동양인이 감히 장군님과 비교나 되겠어요?”
“뭐, 그렇게까지는. 일단 저도 만난 적은 없습니다만, 대충 짐작은 가지요.”
맥클레런은 기꺼이 대화를 즐겼다. 그리고 그 주제는 폭넓고 다양해서 어느덧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대통령의 경호는 군에서 책임지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죠.”
“그럼 저쪽은요?”
로즈는 존 브라운 곁을 지키는 콜린을 가리켰다. 삶에 찌든 표정은 도저히 군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 친구는 특수부대원입니다. 대통령 취임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지요.”
“특수부대면 그 동양인 부대 아닌가요?”
“이쪽에 관심이 많군요, 로즈 부인.”
“전쟁 기간이잖아요. 저와 가족의 목숨이 달렸는데, 당연히 많이 알아야 하지 않나요.”
“물론 그렇기야 하죠.”
맥클레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때 한 여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기 계셨군요, 로즈 부인. 어머, 이쪽은?”
“조지 브린턴 맥클레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부인.”
“워싱턴에서 가장 유명한 분을 만나 뵙다니, 영광이네요. 전 에밀리에 런치라고 해요.”
로즈는 불쑥 끼어든 에밀리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한참의 대화가 끝나자 로즈 부인은 대통령의 경호원 콜린에게 다가갔다.
쭈뼛거리던 에밀리에 런치는 이내 그녀와 동행했다.
경호보다는 먹을 것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이는 콜린. 그는 입속에 과자를 잔뜩 오물거리며 접근하는 두 여인을 쳐다봤다.
찰나지만 시선은 에밀리에 런치의 위아래를 훑어내렸다.
로즈가 물었다.
“대통령 경호원이시죠?”
“그런데요.”
로즈의 물음에 대답도 시큰둥했다.
“특수부대원 소속이라면서요?”
“...... 내가 어느 소속이든 관심 끄쇼.”
“어머, 이 사람이. 말투가 그게 뭐예요?”
“원래 이런데, 뭘. 됐고 대화상대 잘못 골랐으니 다른 사람 알아보쇼.”
눈가를 심하게 떤 로즈는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에밀리에 런치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여자한테 인기 없는 이유가 있었네요.”
“남이사. 그나저나 들통나기 전에, 얼른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알았어요. 대신 한 시간 뒤, 옥상에서 봐요.”
에밀리에 런치는 워싱턴의 첩자를 가려내기 위해 신분을 위장한 핑커톤 요원.
케이트 와네였다.
최근 대령이 된 에밀리에 파운 피치에게 대한 경쟁과 집착 때문인지 이름조차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제1차 불런 전투 패배 직후, 앨런 핑커톤은 그녀에게 다음을 지시했다.
- 첩자들이 워싱턴의 정보를 남군에게 넘기고 있어. 케이트 양이 이 임무에 적격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