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360)

어느 날 갑자기 남군과 북군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첩자를 구분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만, 고급 정보에 닿을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기에 케이트는 사교계를 주목하며 직접 잠입을 시도한 것이었다.

윈필드 스콧은 퇴임식이 끝나기 전, 존 브라운과 독대했다. 이 막간을 이용해 콜린은 옥상에서 에밀리에 런치로 위장한 케이트 와네를 만났다.

“아까 그 여자 이름이 로즈 오닐 그린하우에요.”

“남군의 첩자?”

“확증은 없지만 유력해요. 예전부터 민주당 쪽과 친분이 두터웠고, 제1 불런 전투에서 맥컬록 장군에게도 접근했다는 걸 알아냈거든요.”

콜린은 시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래서 언제 잡아들일 생각입니까?”

“좀 더 두고 볼 생각이에요. 로즈 부인 윗선도 밝혀내야 하니까요. 그리고 요즘 분위기가 이상해요.”

콜린이 연기를 내뱉은 뒤 케이트를 쳐다봤다.

“어떤데요?”

“제 촉이 맞다면, 남군의 첩보망이 온통 서부 사령관에게 쏠려 있어요.”

“보스에게?”

케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존 브라운 대통령, 링컨 부통령과의 관계. 그 외 사업에 관해서도 들추고 있는 것 같거든요.”

“흠. 특허도 그중 하나겠군.”

“맞아요. 특허청이나 행정 기관이 북군에 몰려있으니까, 남부 연합은 그동안 모를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몇 번의 전투를 거치고, 상황이 바뀐 것 같아요.”

“뭐, 그까짓 거 백날 알아본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수?”

모르는 소리 말라며 케이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콜린을 쳐다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사업이든 뭐든. 정보를 모으는 목적은 하나에요. 막스 사령관을 제거하려는 거죠.”

후우우.

콜린이 길게 시거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는 피식하며 말했다.

“제거하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벌써 수십 번이나 죽고도 남았겠지. 동양인이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걸 보면 모릅니까?”

“......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에요. 신이 아닌 이상, 작정하고 덤벼들면 누가 알겠어요. 더군다나 지금 사령부가 있는 곳이 미주리주라는 걸 잊지 마세요.”

“흠.”

그날 밤 콜린은 막스에게 편지를 썼다.

남부 연합에서 본격적으로 정보를 파헤치기 시작했으며, 암살의 위험까지 있다는 내용이었다.

*

12월을 앞둔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

밤이 되자 서부 사령부와 멀지 않은 로터스 농장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남부 연합의 지시로 막스를 제거하기 위해 모인 게릴라 집단. 낮 동안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밤마다 작전 회의를 이어갔다.

“프레몬트였으면 연말이라 여기저기 행사란 행사는 다 참여했을 텐데. 빌어먹을 동양인 새끼는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그런가. 기지에 처박혀서 꿈쩍도 안 하네.”

“냄새나는 동양인을 누가 만나 주겠냐.”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회의에 집중해.”

리더의 말에 다들 입을 닫는다.

콴트릴의 뒤를 이어 미주리주 게릴라를 이끄는 블러드 빌 앤더슨, 그는 눈을 가늘게 떠 말을 이었다.

“며칠간 관측한 결과, 사령부를 지키는 병력은 백 명이 채 되지 않는다. SFBC 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야.”

콜로라도, 텍사스, 그리고 벨몬트 전투에 참여한 히콕과 대원들은 아직 복귀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사령부에 있던 병력 일부가 밖으로 나왔다고 했지?”

“어. 세인트루이스 요새 쪽으로 이동했어.”

앤더슨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프레몬트가 임대한 사령부 맨션은 계약이 올해까지다. 그것 때문에 병력을 미리 이동시켜 놓은 게 틀림없어.”

“그럼 동양인도 곧 거기서 나오겠네?”

“나오길 기다리면 안 되지.”

병력의 공백이 생긴 지금.

기지도 아닌 고급 맨션에 처박혀 있는 지금이 적기였다.

“내일 밤. 동양인을 제거한다.”

< 과거의 그림자 >

세인트루이스는 남북전쟁에서 북군과 남군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닌 전략적 요충지다.

분열된 미주리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미시시피강 상류의 가장 중요한 경제 중심지.

세인트루이스는 서부 및 미시시피를 횡단하는 군인들의 주요 출발점이자 보급 창고였다.

서부 사령부.

프레몬트가 임대한 고급 맨션의 계약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막스는 새로운 서부 사령부의 기지를 앤하이저부시 브루워리 근처의 연방 무기고 인근을 선택했다.

에밀리에 파운 피치 대령은 최근 벌어진 벨몬트 전투를 이야기하며 율리시스에게 찬사를 보냈다.

“대장간에서 봤던 사람이랑 완전 딴판이네. 네가 걱정했던 기관총은 쓰지도 않고 과감하게 적진을 뚫은 거잖아.”

“대신 피해도 상당했지.”

막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벨몬트 전투에서 남군은 천 2백, 북군은 8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과는 좋았으나, 병사를 갈아 넣는 율리시스의 전투 방식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어디까지나 현대전에 익숙한 막스의 기준일 뿐. 사람이 무기인 이 시대에 적합한 전술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SFBC가 일반 병사들처럼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면 그중 몇이나 살아남을까.’

떨어지는 포탄, 빗발치는 총알 앞에 훈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신앙과 운이 대원들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막스가 특수부대를 자처한 건 이런 무식한 백병전을 피하고 소수로 효과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였으니. 아직 대원들이 죽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난 소규모 부대에 적합하고, 율리시스는 대규모 전투에 최적화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맨션 주인이 위험한 장치들은 언제 없애줄 거냐는데?”

“......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제정신이야? 맨션에 설치한 부비트랩만 30개가 넘잖아. 발 잘못 디디면 죽게 생겼는데 그걸 누가 좋아하겠냐고.”

“입구로만 오면 안전한데 뭐가 문제야. 다른 곳으로 들어오는 놈들이 이상한 거지.”

사령부를 지키는 SFBC 대원이라곤 달랑 10명. 정규군에서 차출한 병사들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절반은 새로운 기지로 이동한 상태였다.

해서 막스는 혹한기 훈련을 대신할 겸 SFBC 대원들에게 다양한 부비트랩 설치를 알려줬다.

그런데 맨션 주인이 기겁하며 제거해달라고 했으니, 떠나기 전엔 없애야 할 듯싶다.

“쳇. 그럼 가는 날 제거하지 뭐. 그 사이에 누가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하긴. 요새 우리 사령관님을 증오하는 자들이 늘긴 했지. 하는 족족 패배했으니, 얼마나 얄밉겠어.”

“더구나 내가 동양인이라 더하겠지?”

피치가 꽁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흘긴다.

“그냥 한 소린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

“난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야. 사실 서부 사령관은 내 계획에 없었거든.”

율리시스의 엉킨 실타래를 풀고자 수락한 것뿐이었다.

“남군이야 나를 죽이고 싶겠지. 그런데 북군은 어떨까? 전쟁이 끝났을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만약 개틀링 기관총을 내가 만들었다고 하면, 나를 화형 시켰을지도 몰라.”

“풉.”

“웃을 일 아니거든? 마녀사냥이 다른 게 아니야. 그렇게 몰고 가면 끝이라고.”

“넌 생각이 너어무 많아.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누가 너를 해치겠냐고.”

“난 혼자가 아니잖아.”

인생 어차피 혼자 사는 거.

목숨이야 아깝겠냐마는, 전생에는 용병으로서 대원이 신경 쓰이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지켜야 할 게 많을수록 생각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사람들이 너를 신으로 떠받들진 않겠지만. 고마워할 거야. 그러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 마. 더구나, 대통령까지 네 편이잖아.”

“그 임기도 앞으로 3년 남았다.”

그 뒤엔 또다시 재선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존 브라운이 공화당과 북부 민주당과의 관계가 썩 좋진 않다는 거.

극단적인 노예 해방 운동가 존 브라운은 생각보다 적이 많았다.

원 역사에서 링컨은 연방주의를 주장하며 이에 필요한 수단으로 노예 해방을 택했다.

반면 존 브라운은 노예 해방을 위해 연방주의를 고수했다. 결과는 같아도 밑에 깔린 사상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었다.

더구나 링컨이 유연하게 백인들의 입맛을 맞춰 정책을 펼쳤다면, 존 브라운은 막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링컨이 발의한 홈스테드 법.

네바다 준주의 땅에 깃발만 꽂으면 땅을 주는 법안으로 백인 이주민들을 위해 인디언의 영토를 빼앗는 악법이나 마찬가지였다.

공화당은 이를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존 브라운은 이를 거절하고 있다.

막스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존 브라운은 무분별한 백인들의 서부 확장을 억제하고 대륙횡단철도를 위해 무력이 아닌 대화로써 그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하게 만들면 되지. 지금까지 그랬듯이 넌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누가 너를 공격하면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이 얼마나 든든한가.

피치가 신뢰의 눈빛을 듬뿍 담아 막스를 쳐다본다. 그런데 이때.

콰앙!

피치의 눈이 부릅떠질 때, 막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측 3번 담벼락. 목함지뢰가 터졌네?”

“헐.”

자리에서 일어난 막스가 뒤에 있는 캐비넷으로 향한다. 피치 역시 그 옆 캐비넷을 열어 온몸을 총기로 무장했다.

타앙!

“좌측 2번 담장 위. 이번엔 라이플 방아쇠 줄을 건드렸네.”

- 쩌어억. 끄아악!

“담장을 넘었구만. 죽창에 찔린 소리야.”

“...... 중계 그만하시고 얼른 무장부터 하세요, 사령관님.”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SFBC 대원이 들어왔다.

“저, 적들이 습격한 것 같습니다!”

“같아요가 아니라, 습격한 거야. 전부 불 끄라고 해. 다음은 알지?”

“넵!”

대원이 나가자 피치는 막스를 보며 말했다.

“방금까진 걱정만 하더니만.”

“대놓고 쳐들어오는 놈들이야 환영이지.”

“그럼. 부끄럽지만 소등하겠습니다, 사령관님.”

“......”

후우.

피치는 야릇한 표정으로 바람을 불어 등잔불을 하나둘 꺼나갔다.

사무실은 이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고.

벽에 붙어 오감을 극대화한 막스에게 피치가 다가와 몸을 밀착한다. 그리곤 속삭였다.

-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 왜 이래, 피치 대령.

- 절대 떨어지지 말라며. 이럴 땐 네 옆에 찰싹 붙어 있어야 안전하지.

- ...... 그래도 총 뽑을 공간은 줘야지?

- 요만큼?

밀착한 둘의 속삭임. 하지만 증오로 가득 찬 적들의 고함이 맨션에 울려 퍼지며 분위기를 깼다.

“개자식들! 모조리 죽여주마!”

“겁쟁이 양키 새끼들. 쥐새끼처럼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거냐!”

“어서 나오란 말이다!”

밖의 소리에 피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저렇게 습격해도 되는 거야?

- 되겠니?

보통 밤에 이루어지는 습격은 은밀하거나 적의 허를 찌르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깔린 부비트랩이 적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는지. 돈이라도 받으러 온 듯, 소란을 떨고 있었다.

한편, 적들이 보기에 서부 사령부도 정상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폭발과 총성이 울렸으면 밖으로 나와 교전을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런데.

‘입구를 지키던 새끼들까지 사라졌어. 대체 어떻게 돼먹은 놈들이야.’

맨션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블러드 빌 앤더슨. 상식 밖의 일이 그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옆에 있던 부하들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욕설을 쏟아냈다.

“왓 다 뻑! 궁금해서라도 나와봐야 하는 거 아냐? 누가 왔는지 안 궁금하냐고!”

“불을 질러라!”

맨션은 3층짜리 건물 세 개와 창고, 마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기름을 부으려는 순간 옥상에서 총구들이 튀어나오더니 불꽃이 튀었다.

타앙! 타앙!

“옥상이다! 그냥 일 층으로 진입해!”

끌고 온 게릴라들이 이백.

하지만 앤더슨은 직접 들어가는 대신 부하들에게 지시만 내렸다.

‘어차피 남부 연합에서 긁어모은 어중이떠중이들. 우리까지 희생할 필요는 없지.’

앤더슨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레이더스 50인까지 투입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조금의 피해라도 줘야 변명할 구실이라도 생길 터.

“목적은 3층에 있는 서부 사령관이다! 누구든 놈의 목을 따면 대통령 포상은 물론 대령으로 진급할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빌어먹을 동양인 새끼의 목을 쳐라!”

부비트랩으로 이미 상당수 피해를 봤다.

분노가 공포와 두려움을 뒤덮은 게릴라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악에 받친 포효를 터트리며 무기를 앞세워 일 층으로 진입했다.

“삼 층까지 곧장 올라간다!”

건물로 들어선 병력이 우르르 계단으로 몰려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삼 층까지 오는 데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

“저기 복도 끝이 사령관 사무실이다!”

선두에선 병사가 총칼을 앞세워 진격한다.

그런데 이때.

삐걱.

문이 슬쩍 열리더니, 그 틈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복도에 떨어진 물건은 통통거리며 바닥을 구르고. 선두에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이를 멍하니 따라간다.

그리고.

펑! 지이잉.

폭음과 섬광이 청각과 시각을 앗아간다.

처음 겪은 두려움과 공포로 비명을 지를 때, 또 하나가 문 사이로 던져졌다.

눈과 귀가 먼 병사들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콰앙!

거대한 압력이 자신의 몸을 휩쓸고서야 무언가 터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쿨럭.”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의 시야와 청각이 돌아올 즈음. 복도에서 두 명이 총을 난사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고개를 돌리자 옥상에 있던 자들과 일 층에 숨어 있던 놈들까지 포위하며 총을 쏘고 있다.

‘...... 몰살인가.’

쓰러진 채 눈알을 굴리던 차.

누군가 자신의 이마에 총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진입한 놈들은 다 처리했습니다, 사령관님.”

“다들 원래 자리로 돌아가.”

“옛썰!”

유혈이 낭자한 계단과 복도. 이를 놔둔 채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

덜컥.

사령관 사무실이 닫히고 막스와 피치는 소파에 앉아 숨을 골랐다. 막스는 리볼버에 총알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무기가 제각각인 걸 보면 아무래도 미주리주에서 활동하는 게릴라 같아.”

“여길 지키는 병력이 없다는 걸 알고 습격한 모양이네.”

“아무래도.”

분열과 갈등의 온상. 콴트릴은 죽었으나, 남군을 지지하는 게릴라들이 활동하게 될 미주리주라 가능한 일들이었다.

서부 사령관 암살이라는 막장 짓을 벌여도, 남부 연합에선 게릴라들의 일탈로 몰아가면 그만이었으니.

'더러운 짓에 써먹을 소모품으로선 그만이긴 하지.'

피치가 물었다.

“또 공격할까?”

“글쎄.”

밖이 조용하다.

적들이 외치는 고함과 총성도 들리지 않았다.

철컥. 철컥.

리볼버를 장전한 막스와 피치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깊은 새벽, 맨션에 흐르는 정적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피치가 자신의 뺨을 철썩 후려치자, 막스가 흠칫했다.

“...... 너랑 있어서 그래.”

잠을 쫓아내려 피치는 눈을 부릅뜨고 막스를 쳐다봤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