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했으니 말이다.
미시시피강과 오하이오강이 갈라지는 카이로.
이곳에 주둔한 서부 건보트 플로틸라(함대)의 지휘관 앤드류 헐 푸트 제독에게 명령이 전달되었다.
‘율리시스 장군과 협력해 포트 헨리를 점령하라’는 내용이었다.
“직접 요청하면 될 걸, 섬너 장관을 통했군요. 동양인이라 미주리주 장군들에게 따돌림당한다더니. 서부 사령관도 꽤 소심한 성격인 모양입니다.”
“소심하다라.”
푸트 제독은 서신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소심한 사람이 이런 작전을 펼친다고? 미시시피강이 아니라 테네시강을 노려 켄터키를 봉쇄하고 테네시주와 함께 남부 연합을 숫제 반으로 쪼갤 생각인 것 같은데?”
이번 작전에 동원된 병력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라 추측에 신빙성을 더했다.
“얼마 전 밀 스프링스 전투 패배로 남군의 분위기가 꽤 어수선해. 서부 사령관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거야. 섬너 장관을 통한 건, 동양인이니 뭐니 이런 잡음으로 시간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서일 거고.”
‘사령관의 지위와 권한보다 실리가 중요하다, 이거지.’
백인이든 동양인이든. 누가 미연방에 필요한 인물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은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은 푸트 장군은 참모들을 불러 다음을 지시했다.
“율리시스 장군의 병력이 8천. 추가로 파두카에 집결될 병력만 1만이 넘는다. 이들을 실을 수송선과 건보트의 화력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해.”
“옛썰!”
건보트는 대포를 실은 배다.
전쟁 발발 직후, 연방의 해군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전장 53m의 건보트를 건조했는데 두께 64mm의 쇠로 만들어진 철갑선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푸크 거북이 혹은 시티급 건보트라 불렀다.
어찌 됐든, 카이로엔 수척의 건보트와 수송선이 있는데, 푸트 장군은 율리시스의 병력을 수송선에 태워 이동시킬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1862년 2월 4일.
수송선에서 내린 율리시는 포트 헨리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병력을 집결시켰다.
해군 푸트 제독은 테네시 강줄기를 가리키며 율리시스에게 말했다.
“포트 헨리는 180피트(55m) 높이의 절벽에 있는 마을입니다. 우리 해군이 건보트로 포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우리는 포트 헨리의 외곽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율리시스 병력을 실었던 수송선은 다시금 테네시강을 거슬러 파두카로 향했다.
나머지 일만의 병력을 싣기 위함이었다.
율리시스는 포트 헨리의 공략에 앞서 병력을 두 개의 부대로 쪼갰다.
“맥클레난드 연대는 요새 동쪽에서 주둔지의 탈출을 막고, 스미스 연대는 아돌프스 하이만이 주둔한 캠프를 공격한다.”
포트 헨리는 내부의 병력 외에도 이 주변을 지키는 캠프가 있었다. 율리시스는 이를 동시에 타격함으로써 탈출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펜타곤 형태로 담장을 높이 세운 포트 헨리.
북군의 건보트가 몰려온다는 소식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병 위치로! 나머지는 적들의 포격에 대비하라!”
잠시 후 테네시강을 따라 헨리 요새 앞에 연방의 깃발이 꽂힌 건보트 일곱 척의 출현.
철갑선에 달린 두 개의 기둥에선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곧이어 포격이 시작되었다.
퍼엉! 퍼엉!
“밀리지 말고 응수하라! 포격하라!”
요새 지휘관이 병사들을 채근하지만, 이내 최악의 소식이 들려왔다.
“동쪽에서도 북군이 몰려옵니다!”
“젠장!”
포트 헨리를 안팎으로 지키고 있는 남군의 병력은 3,200명. 북군의 병력을 비교한 끝에 지휘관은 결국 퇴각을 결정한다.
건보트의 화력도 감당하지 못할 바에, 차라리 20km 떨어진 포트 도넬슨을 사수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요새의 포병은 적들의 건보트를 사격하라! 나머지는 포트 도넬슨으로 이동한다!”
요새에서 빠져나온 보병과 기병대는 곧 외곽 부대와 합류하여 도넬슨으로 후퇴하려 했다.
하지만 이를 알고 미리 대비해둔 율리시스는 육로로 향하는 남군의 퇴로를 차단했다.
남군의 지휘관 틸만은 별수 없이 포트 헨리와 도넬슨 사이에서 갇혀 증기선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는 남부 연합 사령관 알버트 존스턴에게 상황을 업데이트 받고, 다음날에야 포트 헨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북군의 건보트에서 날아오는 포격과 후방을 지키는 율리시스의 부대에 결국 항복을 선택한다.
“...... 남부 깃발 대신 흰 깃발을 걸어라.”
잠시 후.
포트 헨리 요새에 깃발이 바뀌자 건보트의 포격이 멈췄다. 해군 제독 푸트는 이 깃발을 보고 ‘조건 없는 항복만이 살 길’이라는 답을 보냈다.
율리시스가 포트 헨리로 왔을 때, 남군은 이미 항복한 상태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율리시스는 지휘관 틸만을 비롯해 지휘관과 병사 120명을 포로로 잡고 무기와 보급품을 노획했다.
포트 헨리 요새 점령전에서 남군은 15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당했다.
북군은 건보트 한 척이 요새에서 발사한 포탄에 기관실이 관통당했고. 이 폭발로 2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수와 전쟁의 승패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빌어먹을 남부 연합 깃발을 가져와라!”
화가 난 해군 제독 푸트는 선두에 있는 건보트에 연방 깃발 대신 남부 연합의 깃발을 거꾸로 꽂아두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를 휘날리며 카이로로 돌아왔다.
이를 두고 동부의 신문사 시카고 트리뷴은 ‘세계의 전쟁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승리의 신호 중 하나’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세인트루이스의 서부 사령부.
전쟁 결과 소식이 빠르게 전해졌다.
송신 수단은 모스 부호. 적어도 미주리주 동쪽으로는 전신주가 비교적 잘 설치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율리시스 부대와 푸트 해군 제독이 포트 헨리를 점령했습니다!”
“카이로에 있던 병력이 율리시스 부대와 합류할 예정입니다.”
“병력이 집결되는 대로 곧바로 도넬슨으로 진격한다고 합니다!”
막스와 피치는 들어오는 정보들을 정리하느라 사무실 벽면은 거대한 지도와 그 위에 덕지덕지 붙은 종이로 가득했다.
“포트 헨리가 점령당했으니, 남부군은 도넬슨에 병력을 집중시키겠지. 지휘관은 존 플로이드고.”
“제임스 뷰캐넌 시절 전쟁장관?”
“맞아. 몰몬교 전쟁을 무리하게 벌였었지.”
존 플로이드는 무능력한 행정 능력과 여러 스캔들에 연루된 인물. 평생 정치인으로 살아왔던 자가 지금은 남부 연합의 장군으로 포트 도넬슨을 지키고 있었다.
막스가 지휘관을 생각하고 있을 때, 피치는 양측 예상 병력을 쳐다보며 말했다.
“갈수록 전투 규모가 커지니까 특수부대가 나설 틈이 없네. 다들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던데.”
“나는 그럼 오죽하겠어?”
사령부에 처박혀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하지만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다.
율리시스가 잇단 전투를 승리로 이끌 때.
막스는 비로소 사령부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물론 특수부대는 그 전에 출진할 수도 있겠지만.
“그나저나, 포트 헨리는 해군의 활약이 컸는데 도넬슨도 같은 전략이야?”
“적들도 대비책을 마련했을 거야. 포트 헨리는 기습에 가까웠지만, 이번은 다르지.”
남군도 요새를 사수하기 위해 병력을 집결하고 있다. 고작 건보트 몇 대로 점령하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푸트 제독에게 직접 지시를 내려야겠어.”
“섬너 장관을 안 거치고?”
“어. 선택에 맡기는 거지. 지시를 따를지 안 따를지.”
“그러다 지시를 거부하면?”
“그럼 본인 부대만 작살나는 거지.”
막스가 책상에 앉아 서신을 작성할 때.
야전에 있던 병사가 막스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셔먼 장군께서 사령관님께 서신을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포트 도넬슨 전투에 합류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설마, 벌써 보울링 그린을 점령한 건가?’
막스는 율리시스와 셔먼의 합류 지점을 도넬슨보다 더 남쪽인 샤일로로 정해두었다.
이는 남부 연합이 켄터키에 세운 임시 정부의 주도 보울링 그린을 점령하는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포트 헨리의 점령으로 남군은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켄터키의 병력을 포트 도넬슨으로 집결한 것이다. 마치 막스가 텍사스의 빈집을 털 듯, 셔먼 역시 병력에 공백이 생긴 보울링 그린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셔먼 장군의 위치는?”
“....... 이틀이면 도넬슨으로 합류 가능합니다.”
“벌써?!”
‘대체 병사들을 얼마나 쪼았길래!’
셔먼의 미친 행군 속도에 혀를 찬 막스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답신을 썼다.
[율리시스 장군과 작전을 협의해 포트 도넬슨 전투에 합류하십시오.]
*
포트 헨리 요새 앞 테네시강.
푸트 제독은 막스의 지시를 두고 참모들과 회의를 열었다.
“포트 헨리와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건보트를 이끌고 적진을 초토화하는 거죠.”
“혹시 포트 헨리 요새 전투에서 우리 활약이 돋보여서 그런 게 확실합니다.”
전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무리는 작은 일에도 음모론을 제기하며 분개하곤 한다.
푸트 제독은 그들의 습성을 알기에 인상부터 찡그렸다.
‘지난 전투로 다들 자신감이 넘치는군.’
그런데 참모 중 한 명, 대니얼 비 리지리 소령은 사령관의 편지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포트 헨리보다 도넬슨의 병력이 몇 배나 많습니다. 더구나 컴벌랜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 하구에는 열 문 이상의 대포가 있는데 이걸 우리 건보트가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흠. 그래서 사령관의 작전에 동의한다 이 말인가?”
“적의 포격 사거리를 벗어나고, 함대의 장거리 총을 사용하는 건 우리에게도 부담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령관이 제시한 가장 마음에 드는 작전은 요새의 대포를 회피하는 방법.
“야밤에 오버런해서 대포의 사정거리를 벗어나는 거. 전 이거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나는 자네의 말이 마음에 드네.’
푸트 제독은 흡족한 시선으로 리지리 소령을 바라봤다. 다른 참모들의 궁시렁거리는 소리도 들리지만, 마음에 드는 건 리지리의 말뿐이었다.
“뭐, 나도 서부 사령관의 작전에 동의하오. 이번 전투에서 우리의 역할은 적 포병의 시선만 빼앗는 겁니다. 나머진 육군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푸트 제독의 말에 참모들의 튀어나온 입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리지리 소령은 당연한 결정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원 역사에서 리지리는 제네럴 셔먼호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된다. 그는 아직은 건조되지 않은 섀넌도어 함선의 함장이었다.
*
포트 도넬슨으로 향하는 동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2월 13일 밤에는 강풍이 몰아쳐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다. 아침에 천막을 나온 병사들은 8cm까지 쌓인 눈을 볼 수 있었다.
총과 마차는 땅에 얼어붙고, 발에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온기와 따뜻한 요리를 위해 모닥불을 피울 수도 없었다. 적진에 다가온 이상 언제 적들의 포격과 총탄이 날아올지 알 수 없었다.
1862년 2월 13일.
혹한의 날씨를 뚫고 율리시스 그랜트의 부대가 포트 도넬슨을 포위했다.
요새 자체는 크지 않지만, 남부 연합은 마을 전체에 진지를 구축해 북군에 대응했다.
이 전투에는 벨몬트와 콜럼버스에서 퇴각한 지휘관과 병사들이 모조리 집결되어 있었다.
북군 병력 20,531명.
남군 병력 16,171명.
율리시스는 병력을 스미스와 맥클레난드 두 부대로 쪼개어 양쪽을 압박했다.
양측의 대치가 이루어지는 동안 일부 연대는 율리시스의 명령을 무시하고 적들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푸트 제독이 이끄는 건보트는 적의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곳에 정박해 있었다. 이는 적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고, 포병의 신경을 건보트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런 대치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소?”
남군의 지휘관 존 플로이드가 지휘관들에게 물었다. 정치인으로 전쟁 경험이 없는 그는 솔직히 사방에서 포위된 위도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산발적인 교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포위해 말려 죽이려는 속셈일 수도 있고요.”
“그럼 무슨 방법을 취해야지 않습니까?”
“서로 탐색하는 중이니, 취약한 부분이 발견되는 달려들겠지요. 내일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적진을 교란하는 기습도 구상해봅시다.”
존 플로이드는 장교들의 말을 듣기만 할 뿐, 의견을 내진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북군이 대치 상황을 깨고 세 방향에서 진격을 시작했다.
‘우리의 취약점을 발견했단 말인가!?’
하지만 남군의 생각과 달리, 북군이 공격해온 건 단순한 이유였다.
- 포트 도넬슨에 도착하면 제가 적진을 뚫겠습니다.
- 그럼 셔먼 장군이 오는 대로 공격하도록 합시다.
서로 주고받은 편지대로, 율리시스는 셔먼이 합류하는 즉시 진격을 지시했다.
저녁까지 교전이 이어지고, 북군은 조금씩 포위를 좁히며 전진해갔다.
그리고 그날 밤.
푸트 제독이 이끄는 건보트가 야밤을 틈타 오버런을 감행. 적 대포를 포격 없이 뚫고 지나쳤다.
다음 날 아침.
강 하류로 내려온 건보트는 적들의 포격에는 닿지 않고, 자신들의 포는 포트 도넬슨의 좌측 진영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며 무너진 진영을 셔먼 장군이 송곳처럼 뚫고 들어간다.
원 역사에서 건보트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채 남군의 대포에 박살이 나지만, 막스가 있는 세상 속엔 오직 한 대의 건보트만이 파괴되었다.
< 친구에서 적으로 >
율리시스와 푸트 제독이 포트 도넬슨을 공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서부 사령부에 속속들이 전보가 도착했다.
“푸트 제독이 요새 좌측을 포격으로 뚫고, 셔먼 장군이 적 진영을 무너트렸습니다!”
“율리시스 부대가 포트 도넬슨 외곽을 점령했다는 소식입니다!”
“남군의 지휘관 버크너가 휴전을 요청하고 항복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에 율리시스 장군은 무뚝뚝하게 ‘즉각적인 항복을 제외하고는 어떤 조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신했다. 그 결과.
“버크너는 포로로 잡히고 다른 남군의 지휘관들은 증기선과 작은 배를 타고 포트 도넬슨을 탈출했습니다!”
존 플로이드는 지휘권을 다른 장군들에게 넘기고 본인은 두 개의 연대를 이끌고 증기선을 탔다. 그리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북군의 완벽한 승리에 피치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축하해, 막스 사령관.”
“내가 축하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날은 겸손할 필요 없거든?”
“겸손이 아니라, 이번 전쟁의 주인공은 율리시스 장군이야. 이제야 제대로 그림이 만들어진 거라고.”
탈선할 뻔했던 율리시스가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그것도 막스가 닦아놓은 급행열차에.
이번 전투의 승리로 잠재적 경쟁자들, 이를테면 ‘병법 이론의 달인’이라는 미주리주의 헨리 할렉과 이하 장군들을 멀찌감치 떨쳐냈다.
‘능력 없는 지휘관들의 헛발질만 줄여도 남북전쟁은 단축된다.’
다만, 앞으로가 문제다.
포트 도넬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전투. 샤일로야 말로 율리시스의 운명이 걸린 전투였다.
‘아무래도 야전에 서부 사령부 캠프를 세워야겠군.’
*
[포트 헨리와 포트 도넬슨 함락!]
[‘무조건 항복!’의 율리시스 장군]
포트 도넬슨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 사흘째 되던 날.
치이익.
상대의 시가에 불을 붙여준 율리시스는 이내 자신의 입에 문 시가에도 불을 붙였다.
“무조건 항복만 외치며 냉정하게 굴더니, 지금 와서 이러는 이유가 뭔가.”
“그땐 전쟁 중이었고. 지금은 자네의 친구로서 앉아있는 거라네.”
후우.
둘이 뿜어낸 연기가 빠르게 공간을 가득 채운다. 작은 창문 틈으로 빠져나가는 연기를 보며, 포로로 잡힌 사이먼 버크너 장군이 입을 뗐다.
“멕시코 전쟁 때 윈필드 소장과 벌였던 베라크루즈 전투 기억하나?”
“당연히 기억하지. 아마조크 마을에서 수천 명의 멕시코 기병이 달려오는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이번 전투 내내 그날이 생각나더군. 나는 자네와 북군을 멕시코인으로 여겼거든.”
“호오,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군.”
둘은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멕시코 전쟁을 함께 한 전우지만 얄궂게도 지금은 적으로서 만나게 되었으니.
버크너는 남북전쟁 직후 윈필드 스콧과 전쟁장관 섬너로부터 합류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남부 연합을 택했다.
“이번 전투는 우여곡절이 많았네. 갑자기 지휘관들이 바뀌고 병사들이 우왕좌왕했거든. 그래도 나름 잘 싸웠다고 생각하네. 율리시스, 자네가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후방에 지원군이 도착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