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360)

“사령관님, 헨리 할렉의 부대가 캐슈빌에서 와슈번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칸소 경계로 더 가까이 다가갔군.”

“남군의 병력이 수시로 국경을 넘어서 주변 마을을 약탈한다고 하더군요.”

‘그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미주리주 국경은 물론, 게릴라들의 활동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헨리 할렉은 총공세를 하기 전 사전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는 이번은 다르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커티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얼 반 돈이 헨리 할렉을 도발하는 게 분명합니다. 진군 속도를 좀 더 높여야겠군요.”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이동하죠.”

막스가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지만, 내심은 커티스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순수한 의미로 커티스가 헨리 할렉을 걱정했다면, 막스는 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막스가 야전으로 나온 건 그만큼 이번 전투가 중요해서였다.

승패에 따라 미주리주는 물론 텍사스까지 영향을 받고. 나아가서는 테네시에 있는 율리시스 부대에도 부담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승리를 위해서라면 아군의 실수도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것도 전술이다.’

중요한 건 속내를 들켜서는 곤란하다는 거.

대중은 이미 실전보다 군사 이론으로 빠삭한 헨리 할렉을 ‘병법의 달인’이라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동양인 사령관이 그를 이용했다?

지금도 다수의 언론과 정치가들은 막스의 흠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데, 승리를 안겨준다 한들 대중들은 이내 막스를 비난할 것이 빤하지 않은가.

“하여간 더럽게 복잡하다니까.”

“응? 뭐가?”

막스의 혼잣말을 귀신같이 듣고는 피치가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는 귀를 가져다 대었다.

“말해 봐. 뭐가 더럽게 복잡한데?”

“뭐, 전쟁하는데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그게 싫으면 단순하게 하면 되지.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 사령관님은 생각이 너무 많다니까.”

그러면서 피치는 잔뜩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본능에 충실해요, 막스 사령관.”

“...... 예, 피치 대령님.”

막스는 피식 웃으며 대원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며칠 뒤.

막스와 커티스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러니 생각이 복잡해지지.'

헨리 할렉이 있던 미주리주 와슈번 캠프에 도착하던 때 코디가 새로운 소식을 가져왔다.

“헨리 할렉과 시겔 장군이 적들의 집결지인 아칸소의 피 릿지 부근까지 접근했습니다!”

양측의 거리는 5km. 언제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리였다.

“어서 우리도 합류해야지 않겠습니까.”

커티스의 말에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남군의 병력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무턱대고 갔다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죠.”

“그럼 진군을 빨리 한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하루라도 빨리왔으면 모를까, 지금은 다른 방법을 취해야지요.”

물론 하루 일찍 와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막스는 지도를 펼친 뒤 다음을 지시했다.

“헨리 할렉이 퇴각한다면 목적지는 이곳 캠프뿐입니다. 길도 하나고.”

막스는 헨리 할렉과 와슈번 캠프 중간의 협곡을 가리켰다.

“추격하는 적들을 여기서 매복했다가 일망타진하는 게 제 작전입니다. 그러기 위해 여기부터 여기까지. 정면과 좌우 날개에 참호와 진지를 구축할 겁니다.”

“...... 과연 적들이 추격하겠습니까?”

“남부 연합이 공격하는 대신 진지까지 구축하고 도발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북군의 병력을 최소 절반 이상은 없애겠다는 의도. 그러기 위해 퇴각하는 적을 제거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또 있을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죠. 놈들이 도발해서 유인했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무서운 자로군.’

사무엘 커티스 장군은 아군을 미끼로 삼으려는 막스의 작전을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진 않았다.

명령을 거부한 자들을 돕다 지리멸렬하느니,

막스의 전략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스프링필드의 리옹 장군까지 가세한다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겠어.’

커티스고 인정에 얽매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막스의 작전에 수긍한 커티스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와슈번에서 8km 떨어진 펠트 협곡.

4천의 병사들이 동원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길과 양쪽 언덕에 땅을 파고 참호를 만들었다.

그렇게 엎어진 U자 형태의 진지를 구축한 뒤 매복에 들어갔다. 특수부대의 저격수는 더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막스는 히콕과 부대를 반으로 쪼개어 매복했다.

해가 산턱에 걸릴 즈음.

정찰병 코디와 대원들이 다급하게 말을 몰아 협곡으로 들어섰다.

“헨리 할렉 부대가 퇴각했습니다! 곧 이쪽으로 몰려 올 겁니다!”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병사들의 고막을 두드렸다.

코디는 재빨리 언덕으로 올라가 막스에게 자세한 상황을 보고했다.

헨리 할렉과 시겔 장군 역시 적들의 꿍꿍이를 의심했는지 무턱대고 적들과 교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군의 연대 규모가 갑자기 시겔의 부대를 급습. 후방에 있던 헨리 할렉이 지원하면서 교전이 벌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남군의 병력이 밀리듯 후퇴하고, 시겔이 이를 추격한다며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남군의 개틀링 기관총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콜로라도 전술과 똑같이 참호를 파고 대기했더라고요.”

‘역시.’

막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코디에게 물었다.

“그래서 헨리 할렉은 만났어?”

“예. 그대로 말을 전했습니다.”

“반응은?”

“바로 퇴각 명령을 내리던데요.”

다급한 헨리 할렉에게 코디는 짧게 내용을 전달했다. 협곡에 커티스 부대와 사령관이 있으니 퇴각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곳곳에 참호를 파두었으니 잘 피해서 도망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럴 땐 내 말을 잘 듣는구나.”

“제 말이요. 그리고 헨리 할렉 장군 보니까, 완전 여우가 따로 없던데요.”

“왜?”

“시겔 장군을 충동질하고 본인은 뒤로 빠져있는 모습이었거든요. 처음 전투가 벌어졌을 때도 후방을 맡았고, 항상 앞에는 시겔 장군의 부대가 있었어요.”

코디가 정확히 봤다.

원 역사에서 헨리 할렉은 서부 사령관에 이어 북군 총사령관까지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행정가로서 능력은 출중하나, 야전사령관으로서나 전략가로서는 기대 이하라는 게 주된 평가였다.

그의 전공 대부분은 그랜트와 셔먼, 커티스 장군이 탁월하게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이지 본인의 능력은 아니라는 게 정설이었다.

“마침 저기 오는구나.”

두드드드드드.

협곡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자욱한 먼지와 함께 그 선두에 서 있는 헨리 할렉의 얼굴이 스코프에 들어왔다.

막스는 문득 전생에서 읽은 책 중, 누군가 헨리 할렉을 ‘냉정하고 계산적인 올빼미’라 묘사한 문구가 떠올랐다.

새삼 헨리 할렉의 눈썹과 눈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올빼미를 닮았군.’

헨리 할렉과 기병들이 선두를, 보병들이 뒤를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꼬리를 많이도 달고 왔네.”

석양을 등지고 몰려오는 수많은 적.

남부 연합의 깃발을 휘날리며 쇄도하는 기세는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막스의 눈엔 그저 불나방처럼 보였다.

“최대한 적들을 깊숙이 유인한다!”

< 경쟁자 제거 >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헨리 할렉은 의도치 않게 협곡 깊숙이 적을 끌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의 눈빛은 이내 당황스러움과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설마 정보가 잘못된 건가.’

협곡이 너무 휑하다.

있어야 할 사령관과 커티스 장군의 병력도 보이질 않는다.

뒤로는 추격하는 남군이 시겔 장군의 병사를 짓밟고 있었다.

걸려서 넘어지거나, 더는 뛸 힘이 없는 아군의 병사들은 길이 아닌 산으로 흩어지며 탈영을 시도했다. 헨리 할렉의 방황하는 눈동자는 이내 하늘을 향하고 입으론 장탄식을 내뱉었다.

‘망할 동양인 새끼.’

헨리 할렉도 나름의 작전은 있었다.

무턱대고 교전을 벌이기보단 적들을 캠프에서 꼬여낼 생각이었다.

해서 정찰병을 통해 사령관과 커티스의 부대 위치를 파악하고. 마침내 와슈번까지 왔을 때, 적극적으로 상대를 유인하기로 했다.

커티스와 스프링필드에서 온 리옹 장군의 병력이 합류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문제는 시겔 장군이었다.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가 졸지에 적들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헨리 할렉이 목격한 건 선두의 병력을 잃고 후퇴하는 시겔 장군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이번 작전은 내 탓이 아니다.’

와슈번에 왔으면서 빨리 합류하지 않은 사령관과 일을 그르친 시겔이 문제였다.

그렇게 다급한 와중에도 헨리 할렉은 책임으로부터 탈출을 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멀리 있는 땅속에서 양 끝으로 연방의 깃발 두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동시에 아군의 푸른 군복을 입은 병사 둘이 머리를 들더니 이내 깃발을 휘날렸다.

“여길 비켜 지나가십시오!”

두 병사의 깃발 간격이 참호의 좌우 폭이라는 건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전방의 깃발 좌우로 비켜 이동한다! 지휘관들은 신속히 병사들에게 전달하라!”

헨리 할렉이 우측으로 이동하자, 뒤이은 병력도 참호를 앞에 두고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앞선 병사들을 따라 했다.

그렇게 종이가 칼로 베어지듯 병사들이 갈라지니 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의도치 않게 헨리 할렉과 시겔 장군은 적들을 협곡 깊숙이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참호 후방에 있던 야포가 전진하며 포성을 울렸다.

펑! 펑!

이를 신호로 좌우 능선의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던 커티스의 병사들이 일제히 총구를 내밀어 불을 뿜어댔다.

타아앙! 타아앙!

북군을 추격하던 남군은 애초에 진영 자체가 무너져 있었다. 여기에 더해 갑자기 들려오는 포성과 총격은 남군을 혼돈에 빠트렸다.

‘설마 이런 준비를 했을 줄이야.’

참호 뒤쪽으로 무사히 탈출한 헨리 할렉과 시겔은 멍하니 전장을 쳐다보며 입을 닫았다.

커티스 장군이 능선에서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시겔은 반 토막 난 자신의 부대를 보며 넋이 나갔고, 헨리 할렉은 상황을 곱씹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이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둘의 고막을 두드렸다.

“두 분은 언제까지 구경만 하실 생각입니까.”

“......”

헨리 할렉과 프란츠 시겔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정체 모를 거무튀튀한 옷 대신 푸른색 군복.

어깨에 별 두 개가 박힌 견장을 찬 사내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 

담담하지만 서부 사령관의 눈빛엔 분명 경멸이 담겨 있었다.

“당장 부대를 수습해서 커티스 장군을 도우세요. 그게 조금이라도 책임을 줄이는 방법이 될 겁니다.”

“책임?”

헨리 할렉이 이를 갈며 반문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여기서 참호 팔 시간이었으면 진작에 우리와 합류했을 텐데!?”

펑! 타아앙!

포격과 총성이 뒤섞여 헨리 할렉의 외침이 더욱 공격적으로 들려왔다.

막스는 입술을 꿈틀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대신 한 걸음 더 다가가 헨리 할렉을 내려다봤다. 

키 차이가 머리 반 정도 커서 다행이었다.

“내 명령에 항명하면 어떻게 되는지 시험해보고 싶나, 헨리 할렉 준장?”

“뭐? 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즉결 처형이지.”

막스의 스산한 눈빛에 헨리 할렉이 뒷걸음질 쳤다. 지은 죄가 있는 시겔은 식겁하며 시선을 외면했다.

“구경만 할 거면, 지금부터 지휘권을 박탈한다. 전투의 결과에 따라 둘의 운명이 바뀔 테니 그리 알도록.”

지휘권 박탈! 

결국 강등 혹은 좌천시킨다는 말이었다.

막스의 으름장에 둘의 안색이 돌변했다.

“...... 그러지 말고. 일단 이 전투가 끝나면 그때 이야기합시다.”

시겔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는 재빨리 부대원들과 합류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헨리 할렉 역시 한숨을 내뱉고는 휘하의 지휘관들에게 발걸음을 돌렸다.

사실 둘만 멍하니 있었을 뿐, 지휘관들은 이미 부대원들의 재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병법의 달인? 말로는 누가 못하냐.’

막스는 헨리 할렉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이내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리옹 장군은 대체 뭐 하는 거지.’

스프링필드가 그리 멀지 않을 텐데 올 생각을 안 한다.

남군을 포위했다고는 하나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다.

북군에 둘러싸인 남군의 지휘관들은 병력의 우위를 확신하며 병사들을 다그쳤다.

실제로 남군의 병력은 1만 8천.

북군은 1만 2천의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빗발치는 총알에 동료들이 쓰러져도 남군은 좀비처럼 꾸역꾸역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 포성과 총성 사이를 비집고 잔뜩 물먹은 총성이 울려 퍼졌다.

뚜쿵. 

뚜쿵.

남군의 지휘관 판별이 끝난 특수부대의 저격수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 중엔 피치도 있었다.

푸슉. 

푸슉.

말에 탄 남군의 장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두 번째 혼란이 찾아왔다.

“저격수다! 장교들은 말에서 내려서 지휘하라!” 

“우리 포병들은 자빠져 자고 있나! 적진을 향해 포를 쏘지 않고 뭣들 하는 거야!”

“개틀링 기관총은 언제 도착하나!”

추격을 위해 전력 질주하던 부대와 속도를 맞추기엔 개틀링 기관총의 무게가 상당했다.

170파운드(77.2kg)의 무게에 수레까지 더해져 이를 끌고 오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설사 도착해도 문제였다. 이미 아군과 적군이 뒤엉켜 백병전에 돌입했고, 나머지는 참호 속에 처박혀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남부 연합이 새로 창단한 미시시피강 횡단 지구. 사령관 얼 반 돈은 급작스러운 매복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지휘관들과 마찬가지로 병력의 우위를 믿고 있었다. 적어도 스프링필드의 리옹 군대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적 후방에서 새로운 군대가 합류했습니다!”

“나다니엘 리옹의 병력입니다!”

“스프링필드를 비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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