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공짜는 없구만.’
섬너가 자리를 비켜주자 존 브라운은 속으로 탄식했다.
“대륙횡단철도는 언제 진행하실 예정입니까?”
“진행이야 하고 있지요. 아직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러 철도 회사에서 건의가 있었던 거로 아는데, 전쟁 물자 보급을 위해서도 철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다만.”
존 브라운은 인상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원주민과의 협의도 중요합니다. 철도가 지나가는 땅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없지 않습니까?”
“...... 충분한 보상을 준다 해도 거절하는 마당에 방법이 있습니까? 미개한 인디언들의 조건을 어떻게 다 들어주겠습니까.”
“이건 기본적으로 신뢰의 문제지요.”
이전 정부는 원주민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게다가 말이 보상이지, 철도 사업자들이 내건 조건들은 원주민의 땅을 거저먹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는 오로지 자신들을 향했고, 원주민의 권리 따윈 철저히 무시했다.
막스는 이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대륙횡단철도 사업의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큰 틀은 원주민과의 공존을 기본으로 하는 방법이었다.
“큰 그림은 완성되었으니, 이를 잘 만들어가면 되는 일입니다. 첫 삽을 뜰 때가 되면 다들 만족스러울 겁니다.”
‘만족이라.’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고집불통 대통령이라더니 소문이 사실이지 않은가.
짜증이 치밀지만 한 가지 확신은 들었다.
‘연임은 힘들겠군.’
존 브라운은 그나마 있던 정치기반도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그 원인은 공화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두 개의 안건.
백인들에게 공짜로 땅을 지급하는 ‘홈스테드 법’과 ‘대륙횡단철도’ 때문이었다.
원주민들에 대한 지나친 이해심.
대통령이 정작 이 나라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정치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전쟁 때문에 드러내지 않을 뿐.
존 브라운이 공화당의 후보가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서부 전선의 승리만 없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
비웃음을 감추려는 밴더빌트의 어색한 얼굴.
이를 보며 존 브라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모를까 봐.’
정치적 수세에 몰린 상황과 앞으로 예상되는 일들은 막스에게 수시로 전해 듣고 있었다.
노예 해방에만 몰두했던 존 브라운이 대통령이 되면서 깨달은 건, 이 나라가 심하게 뒤틀려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남은 재임 기간은 2년.
뭔가를 하기엔 짧은 시간이다.
과연 정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 어렵고도 험난한 길입니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죠. 방법이 있다면.
최소 수십 년은 이 나라의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
왕정국가도 아닌데 말이나 되는 소린가.
당시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면 존 브라운은 언제든 목숨까지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전쟁터를 수습하는 동안.
약속대로 헨리 할렉은 여단장의 직위를 내려놓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 전쟁부에서 자네를 지켜보도록 하지.
- 먼 길 조심히 가십시오. 가끔 편지 보내면 답장도 하시고.
- ....... 생각해보겠네.
전쟁부 장관의 수락 편지에서 막스가 자신의 실수를 덮었다는 걸 알아서일까.
떠날 때는 예상과 달리 한결 가벼운 모습이었다. 욕망에서 벗어나 득도한 고승처럼 보이기까지 했으니.
헨리 할렉이 떠나고, 막스는 새로운 지휘관을 내세우기까지 그의 부대를 커티스 부대와 통합하기로 했다. 내친김에 미주리주 이하 남서부 전 지역을 맡겼다.
“사무엘 커티스 장군. 남서부 부대를 부탁드립니다.”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는군요. 그나저나, 사령관님의 다음 목적지는 어딥니까?”
막스는 동쪽을 가리켰다.
“렉싱턴이요.”
율리시스 부대가 진군하는 곳.
그곳에 합류해 서부 전선의 역대급 전투가 펼쳐질 지옥의 전장, 샤일로가 목적지였다.
막스와 특수부대는 미주리주와 아칸소주 경계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복장은 이전의 검은색으로 돌아갔다.
- 복장을 또 바꿔?
- 정식 군복은 전쟁터에서만 입을 거야, 피치.
- 왜? 난 어깨 견장이 마음에 들던데.
- 전쟁터에선 아군 총에 뒈지기 싫어서 그런 거고. 이동할 땐 다르지. 알잖아?
남군 깃발 들어, 북군 깃발 들어.
상황에 따라 박쥐처럼 변하는 것 또한 전술.
개소리 같아도 뭔가 그럴듯하지 않은가.
피치와 대원들은 묵묵히 복장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던 차.
총성이 들려왔다.
막스와 대원들은 말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봤다.
“저기에 마을이 있나?”
“테오도시아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
“옛썰!”
정찰조 열 명이 사라지고, 30분 후쯤 되돌아와 소식을 알렸다.
“탈영한 남군들이 마을을 약탈하고 있더군요.”
“인원은?”
“일곱 명이었습니다.”
“오케이. 그럼 가···.”
“전부 제거했습니다!”
“......”
정찰하라고 보냈더니 알아서 처리한 모양이다.
노파심에 막스가 말했다.
“만만하다고 방심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당연히 알지 말입니다!”
“병신 짓 하길래 그냥 처리 했습니다!”
그게 뭔지는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강간, 민간인 처형, 절도 등.
“그럼 가던 길 다시 가볼까.”
다시금 대평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달린 끝에 특수부대는 미시시피강을 건너 테네시주로 넘어왔다.
타앙!
타앙!
사우스 포크 포크드 데어 강을 따라가던 중,
총소리가 들려왔다.
단발성이 아닌 수십 발의 총성이었다.
“갔다 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와. 무리한 짓 하지 말고.”
“옛썰!”
어디 하루 이틀인가. 힘차게 대답한 정찰대는 이내 총소리가 나오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막스와 대원은 말들에게 풀을 먹이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얼마 후.
말 먼지를 일으키며 돌아오는 정찰대의 말 숫자가 맞지 않는다.
두 필의 말이 보이질 않았다.
‘설마···.’
쉬고 있던 대원들이 분분히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정찰대를 응시한다.
눈빛이 흔들거렸다.
망원경을 꺼내려던 막스는 멈칫하며 다시 집어넣었다.
불길함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육안으로 정찰대를 확인한 대원들의 눈빛에 점차 분노가 일기 시작한다.
정찰대원 터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동부 버지니아 출신의 윌리엄 던킨과 찰스 에버튼.
콜로라도 골드러시의 열풍에 몸을 실은 두 명의 청년. 그러나 로렌스에서 만난 막스를 흠모해 운명이 뒤바뀐.
SFBC 대원들의 죽음은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왔다.
Special Forces Beyond Color!
58-000138
Willam Dunkin
(June 02, 1841)
Special Forces Beyond Color!
58-000121
Charles Everton
(August 22, 1839)
막스는 터커에게 건네받은 군번줄을 움켜쥐며 말에 올라탔다.
“안내해.”
피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히콕은 이를 바득 깨물었다.
“던킨과 에버튼을 만나러 가자.”
대평원에 먼지를 남기며 SFBC 대원들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 잘못 건드렸나 >
테네시주의 서부는 대평원과 남쪽 걸프 해안 평원과 맞닿아 있다.
동쪽 애팔래치아산맥을 제외하면 끝없이 펼쳐진 평지와 낮은 언덕이 전부였다.
사우스 포크 포크드 데어강에서 7km 떨어진 헌터스 빌.
‘Special Forces Beyond Color. 북군의 특수부대로군!’
시체들의 목에 걸린 군번줄을 확인한 리더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거 대어가 걸렸구만.”
현재 테네시주는 포트 도넬슨 패배와 북군의 진군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이에 남부 게릴라들은 렉싱턴 주변으로 모여드는 북군을 제거하기 위해 가는 길목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예상치도 못한 북군의 특수부대원이 걸려들었다.
‘설마 그놈도 있으려나.’
리더의 머리카락이 쭈뼛거리고 심장까지 찌릿해졌다.
북부는 물론 남부까지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
서부 사령관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게릴라 리더는 오래전부터 서부 사령관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 시작은 미주리주 게릴라 리더의 죽음.
치밀하고 냉혹한, 그리고 전투에도 능했던 윌리엄 콴트릴이 죽었다는 소릴 듣고 한동안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동양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거슬러 제이호커스 활동할 때부터 시작해. 콜로라도 방어와 텍사스 점령,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에서 앤더슨의 암살 시도까지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 끝에 내린 결론은.
‘전술의 천재이자 창조자!’
동양이든 뭐든 상관없이 정보가 더해질수록 리더는 서부 사령관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감이 생기고부턴, 존경과 경외심을 넘어 죽이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사무엘 ‘챔프’ 퍼거슨.
원 역사에서 백 명 이상의 북군 병사와 민간인을 살해하고, 포로를 잔인하게 학살한 악명높은 게릴라 리더.
그리고 지금은 막스의 전술까지 더해진 테네시주 최악이자 위험한 게릴라였다.
“이 새끼들 이거, 무기가 죄다 처음 보는 것들이네.”
시체를 뒤적거린 부하들이 무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부분 남군과 북군에서도 보기 힘든 무기들이었다.
리볼버 실린더는 양쪽으로 뻥 뚫려있어 장전 방식은 기존의 방법과 달라 보였다.
심지어 칼 등엔 톱날이 나 있어 보위 나이프랑도 달라 보였다.
“이 라이플은 또 어떻게 장전하는 거래.”
단발이 아닌 다섯 발을 동시에 장전할 수 있는 레버액션 방식. 저격수용은 아니나, 알프레도가 개조한 라이플이었다.
게릴라들이 무기를 보며 신기해할 때.
리더 퍼거슨은 엄지와 검지에 사이에 있는 총알을 살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놈들이 왜 잘 싸웠는지 이제야 알겠군.’
총알 밑면이 둥글고 납작한 림파이어와는 다른 생소한 방식. 퍼거슨은 리볼버와 총알을 살피며 그 원리를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특수부대 놈들만 사용하는 무기라니.’
지금까지 죽인 북군 놈들에게선 노획하지 못했으니 나름 타당한 추측이었다.
퍼거슨은 전리품인 라이플과 리볼버를 챙기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이라면 내가 이길 수 있다.’
무기보다 중요한 건 전략과 전술.
잘 훈련된 부하들과 자신의 머리라면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우선 시체를 매달아 놈들을 도발해야겠군.’
적을 흥분시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설사 말려들지 않아도 분명 심적 타격은 줄 수 있을 것이다.
퍼거슨은 누군가에게 빼앗은 야전 장교의 칼을 꺼내 시체를 난도질했다.
끔찍한 광경이지만 부하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놈들이 잘 볼 수 있게 매달아.”
고목 나무의 굵은 나뭇가지에 피를 뚝뚝 흘리는 두 구의 시체가 매달렸다.
“우리가 맞이하는 놈들은 앞으로도 만나기 힘든 적이다. 그만큼, 이번 일만 끝내면 남부에서 우리의 위치도 달라질 것이다.”
“누가 오든 다 죽여버리면 되는 거지!”
“아주 가죽을 벗겨주자고.”
흥분한 부하들이 분분히 총을 들며 외친다.
게릴라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각자 포지션으로!”
마을을 습격하기 전.
퍼거슨은 마을 사람들을 붙잡아 모아두고, 부하들은 주변에 참호를 파두었다.
이 또한 서부 사령관의 콜로라도 방어전에서 터득한 전술이었다.
그런 다음 게릴라들은 빈집과 마을 주변에 파 놓은 참호 속으로 몸을 숨기고. 총을 일정 간격으로 쏴대며 마을 사람을 처형했다.
북군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방법은 같았다.
열댓 명의 게릴라가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시선을 끌고, 나머진 숫자를 짐작할 수 없도록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때 멀리서 말을 탄 정찰병이 달려왔다.
“놈들이 몰려옵니다!”
“거리와 숫자는?”
“10분 거리에, 대략 백 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백 명이라. 그 이상일 수도 있겠군.’
퍼거슨이 이끄는 게릴라가 이 백.
상대의 수가 엇비슷해도 상관없다.
참호까지 파 방어하는 판에 그깟 병력 차이는 무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