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360)

“이, 이자가 리더 사무엘 퍼거슨입니다!”

“개자식.”

“좆까. 이게 누구 때문인데, 병신아.”

로디는 자신의 리더를 질질 끌고 막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더는 쓸모 없어진 동료 게릴라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 속.

특수부대원들에게 포위된 로디가 발악하며 소리쳤다.

“이건 전부 이 병신이 저지른 짓입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 동양인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이, 이자가 서부 사령···!’

푸욱.

막스가 보더 나이프로 로디의 목에 칼을 쑤셔 넣었다. 그러면서 말하길.

“편하게 죽여준 게 내 보상이다.”

로디와 함께 퍼거슨의 몸도 무너져 내린다.

이를 막스가 머리카락을 덥석 잡아챘다.

“지금부터 SFBC의 보복이 어떤 건지. 다른 게릴라 놈들도 알게 될 거야. 네 몸이 그 메시지가 될 테니까.”

< 샤일로 전투(1) >

타앙!

사우스 포크 포크드 데어강 주변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렉싱턴으로 이동하던 이천여 명의 켄터키 제26보병연대는 행군을 멈춘 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일 중대장, 자네가 가서 확인하고 와.”

지휘관 스티븐 가노 버브릿지 대령은 미간을 찌푸리며 지시했다.

백여 명을 이끌고 사라진 중대장이 다시 돌아온 건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연대장님, 마을에 서부 사령관이 있었습니다!”

“총소리는?”

“죽은 특수부대원들을 기리는 의식이라더군요.”

“이곳 근처에 게릴라 놈들이 있다더니 전투를 벌인 모양이군. 그나저나 대군도 물리친 서부 사령관이 고작 게릴라한테 당해? 개가 웃을 일이군.”

버브릿지 대령이 코웃음 쳤다. 

그는 아직 서부 사령관을 만난 적이 없다.

대신 소문만큼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저기, 게릴라들은 전부 몰살당했습니다만.”

“음?”

버브릿지 대령은 곧바로 전 병력을 이끌고 마을로 향했다.

다그닥, 다그닥.

“워어어.”

버브릿지 대령은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춰 세웠다. 주변으로는 참호들이 여기저기 만들어져 있고, 일부는 폭발에 땅이 파인 흔적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

마을 입구에 피라미드처럼 차곡차곡 쌓인 것들. 다름 아닌 게릴라들의 머리였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버브릿지가 시선을 옮기자, 더욱 참혹한 시신이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머리 탑 앞에 다섯 방향으로 분리된 시체.

머리와 팔다리가 사방으로 흩어진 모습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놈은 게릴라들의 리더인 사무엘 퍼거슨 같은데요.”

“테네시에서 민간인들을 처형한다는 놈이군.”

그 죗값으로 처절한 보복을 당해 죽임을 당한 모양이다. 시체에서 서부 사령관의 분노가 절절히 느껴질 정도로.

‘사지가 잘린 게 아니라 숫제 뽑혀 나갔어.’

말을 이용했는지 깊이 파여있는 말발굽들이 당시의 처참한 광경을 연상하게 했다.

마른침을 삼킨 버브릿지 대령은 참혹한 시신들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던킨과 에버튼은 우리의 가족이자 형제였다.” 

버브릿지와 눈이 마주쳤으나 사령관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 비록 곁을 떠났지만, 우리 마음속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편히 있길 기도하며 이젠 둘을 보내주도록 하자.”

대원들은 급조해 만든 관에 둘의 시신을 넣어 땅속 깊이 묻었다. 게릴라들에 의해 몰살당한 마을 사람들 시신 20여 구도 함께 매장했다.

‘설마 두 명만 죽은 건가?’

이를 본 버브릿지가 눈을 껌뻑거렸다.

복장이 특수부대원과 일치하는 시체는 둘밖에 없으니. 처음 예상과 달리 게릴라들이 일방적인 학살을 당한 모양이다. 

‘게릴라 200명을 상대로, 단 두 명?’

막스가 들었다면 싸대기를 후려칠 말이나.

다행히 버브릿지는 속으로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다. 더불어 서부 사령관과 특수부대에 관한 소문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인정했다.

흙 속으로 사라지는 대원에게서 시선을 뗀 막스가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부 사령관.

뭔지 모를 부담과 위압감을 느낀 버브릿지 대령은 망설임 끝에 말에서 내려 인사를 건넸다.

“켄터키 제26보병연대 스티븐 가노 버브릿지 대령입니다.”

동양인의 얼굴이 낯설지만 이를 표정에 드러낼 분위기가 아니다. 눈빛이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서부 사령관 막스 조요. 대령의 이름만 들었지, 만나는 건 처음이군요.”

켄터키는 중립을 천명했지만, 버브릿지는 일찌감치 연방을 위해 병력을 모아 군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후 율리시스가 벨몬트와 콜럼버스 전투에서 승리한 뒤로 켄터키에선 더욱 연방에 가담하려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버브릿지 역시 이를 기회로 연대 규모의 병력을 모아 현재는 율리시스 부대와 합류하기 위해 렉싱턴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지시를 내린 건 눈앞의 서부 사령관이었고.

“어차피 가는 길이 같으니, 여력이 있다면 물건들을 좀 실어주셨으면 합니다.”

막스는 게릴라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가리켰다. 무기들과 각종 생필품이 한 곳에 쌓여 있었다.

버브릿지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막스와 함께 렉싱턴으로 향했다.

며칠 뒤.

테네시의 다른 게릴라들이 마을을 찾았을 때.

그들을 맞이한 건 독수리들에게 뜯긴 시체들이었다.

충격적인 광경은 과장이 더해져 게릴라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이런 말이 더해졌다.

- SFBC를 어설프게 건드리면 좆된다.

물론 공포와 두려움 속에도 피의 보복을 맹세하며 이를 가는 게릴라들도 적지 않았다.

이는 남북전쟁 내내 이어지고, 이후에는 SFBC와 무법자들 간 혈투로 이어졌다.

*

테네시주의 렉싱턴.

이 부근에는 북군 병력 3만이 집결되어 있다.

대부분 테네시와 오하이오주에서 모집된 군인들이었다. 

“서부 사령관님께서 오십니다!”

병사 한 명이 군집을 뚫고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하던 일을 멈춘 군인들이 서부 사령관을 보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백인들 틈을 비집고 튀어나온 동양인.

서부 전선을 승리로 이끌고, 최근엔 게릴라를 박살 냈다는 소문까지 더해져 신비주의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죄다 모이고 지랄이야. 2소대는 총 다 닦았나?”

“지금 닦고 있지 말입니다.”

병사들이 총구에 꼬질대를 쑤셔대며 대답했다.

해산을 명령하려던 지휘관은 고개를 절레 저으며 서부 사령관이 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워낙 몰려든 군인들이 많아 까치발을 들거나, 의자 위에 올라서지 않으면 보기도 힘들었다.

거의 삼 만에 가까운 병사들과 그 틈에 삐죽삐죽 미어캣처럼 고개를 쑥 빼든 모습.

그리고 이들 앞에 서 있는 장군들.

포트 도넬슨 전쟁으로 진급한 율리시스 그랜트 소장과 셔먼 준장, 맥클레넌드 준장, 루 월러스 준장 등이 서부 사령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마중 나올 필요까진 없었지만, 율리시스 장군과 셔먼이 냅다 튀어 나가는 바람에 나머지 장군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저게 다 뭔 일이냐.’

막스와 나란히 말을 타고 가던 버브릿지 대령은 엄청난 부담을 느끼곤 말의 속도를 줄여갔다.

“...... 먼저 가시지요, 사령관님.”

“그럼 나중에 회의에서 보도록 하죠.”

막스는 담담히 앞으로 나아가고, 속도를 줄인 버브릿지는 연대병력의 방향을 비스듬히 틀어 자연스레 군집 속으로 스며들었다.

*

막스는 이례적으로 단상에 올라 연설을 펼쳤다. 비교적 높은 언덕이라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윌슨 크릭 전투를 시작으로. 서부 전선은 단 한 번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고요한 평원에 울려 퍼진 서부 사령관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고막을 두드렸다.

“우리는 벨몬트, 콜럼버스, 포트 헨리와 도넬슨까지 함락하며 전선을 남부 연합의 영토까지 끌어 내렸습니다. 이 모든 승리는 전장에서 여러분들을 직접 지휘한 유능한 지휘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막스는 앞에 선 장군들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동부 전선이 어떻든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 시간 이후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오로지 전진뿐. 발길 닿는 곳이 우리의 보급 창고가 될 것이오, 빼앗은 무기가 증원된 병사들의 무기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작전을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게 일임하는바.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전쟁에 임해주길 바랍니다.”

이렇듯 막스가 연설까지 한 것은 전쟁이 승리했을 경우, 그 공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확실히 해주기 위함이었다.

눈치 빠른 장군들은 사령관과 율리시스 그랜트를 번갈아 힐끔거렸다.

‘사령관이 그랜트 장군을 밀어주는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율리시스 그랜트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사령관이 아닌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연설을 끝낸 막스는 지휘관들을 지휘 막사로 소집했다. 

가는 길에 율리시스가 말을 건넸다.

“대원 둘을 잃었다는 소식은 들었네.”

“여기서까지 유난 떨고 싶진 않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어 나간 병사들을 생각하면 티 낼 일은 아니잖아요.”

“일반 병사들과는 다르지. 수년을 함께 생활했으면 가족이나 마찬가지잖아?”

율리시스는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그나저나, 마지막 멘트는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죠. 이번 전쟁의 지휘권을 장군에게 일임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령관은 내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거 같아.”

“실패하면 그땐 다른 사람 찾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그 전에 내가 잘릴 수도 있겠군요.”

코를 찡그린 율리시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해주게. 진짜로 내게 원하는 게 무언지를.”

막스는 발걸음을 멈춰 율리시스를 바라봤다.

지금이라면 요구해도 될 것 같다.

“북군 총사령관까지 올라가세요. 그렇게 되게끔 도와줄 테니까.”

“.......”

“솔직히 동양인인 내게 무슨 애국심이 있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존 브라운처럼 나를 도와주면 되고요.”

“조력자가 필요하다면, 그런 말을 안 해도 도와줄 거네. 지금까지 받은 게 얼만데.”

“제가 사람은 제대로 봤군요.”

막사로 들어선 막스는 지휘관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곧이어 SFBC 대원이자 율리시스의 참모인 호른 클루이 대령이 주변 정세를 브리핑했다.

“테네시 동쪽으론 현재 돈 카를로스 뷰엘 소장이 테네시의 내슈빌의 점령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남부 연합 서부 사령관 알버트 존스턴은 내슈빌 남쪽 머프리스보로로 밀려난 상태구요.”

테네시 서쪽에 주둔한 북군은 크게 율리시스가 이끄는 6개 사단과 뷰엘 소장이 이끄는 4개 사단으로, 합치면 무려 8만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주목할 건 뷰엘 소장의 병력이 5만인 데 반해, 율리시스 장군의 병력은 3만 5천에 그친다는 점이었다.

이는 북군 총사령관 맥클레런 때문이었다. 

뷰엘 소장은 맥클레런의 친구다. 

불과 몇 개월 전 동부에서 서부 전선으로 파견된 일종의 오른팔이자 막스의 견제를 위한 인물이었다.

막스가 연설까지 하며 전쟁의 중심이 율리시스라고 공표한 건 뷰엘과 맥클레런을 동시에 견제하려는 의도도 담겨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친구라서 그런지 맥클레런처럼 뷰엘의 진군도 더럽게 느리다는 사실이었다.

켄터키에서 테네시로 내려오는 뷰엘의 진군 속도는 거북이처럼 느려터졌다. 서두르라는 재촉에도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남하했다.

덕분에.

“현재 남군이 빠르게 병력을 늘이고 있습니다. 대략 아군의 절반 이상은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동부에선 맥클레런이, 서부에선 뷰엘이 남군의 시간을 벌어다 주고 있었다.

남북전쟁 종식을 지연시키고, 병사들의 희생만 늘어나게 만드는. 헨리 할렉처럼 이 둘도 제거 대상이었다.

클루이의 브리핑이 끝나고, 막스는 장군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난 포트 헨리와 도넬슨 전투의 승리로 우리는 멤피스와 오하이오주를 연결하는 철도를 차단했습니다. 육로를 빼앗았으니 이번에는 테네시강의 물줄기를 장악할 차롑니다.”

막스가 지도 위에 포인트를 찍었다.

“우리가 선점할 곳은 이곳 테네시강 서쪽, 샤일로입니다.”

“거긴 뒤로 강을 등지고 있어서 위치가 좋지 않습니다.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퇴각할 생각이 아니라면, 넓은 분지라 주둔지로는 유리한 지형이지요.”

누가 강을 보자마자 퇴각부터 신경 쓰는가.

막스의 뼈있는 말에 류 월러스 장군의 입이 쏙 들어갔다.

반면 셔먼은 막스의 말에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러날 곳 없는 전투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오로지 승리뿐이니!’

셔먼의 마음에 쏙 들었다.

막스는 주둔지와 몇 가지 사항을 일러준 뒤 지휘에서 한발 물러났다. 나머지는 율리시스 장군을 중심으로 작전이 세워지고 막스는 지켜보기만 할 뿐 끼어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놓은 건 아니다.

그날 밤 막스는 율리시스, 셔먼, 클루이와 머리를 맞대고 몇 번의 보완작업을 거쳤다.

*

1862년 4월 4일.

율리시스 부대가 테네시강 서쪽 하류의 피츠버그 랜딩을 점령. 느려터진 뷰엘을 기다리느니 나날이 불어가는 남군을 공격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피츠버그 랜딩에 이어 분지인 샤일로를 점령한 율리시스는 대규모 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공격을 대비했다. 

그러는 동안 막스는 대원들을 이끌고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서부 사령관을 끝낸다.’

만 단위의 희생이 나오는 전투에서 특수부대를 전선에 투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기적이라 비난받아도 상관없다.

애초에 남북전쟁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생각은 없었으니까.

4월 6일.

캠프에서 떨어진 곳이지만 땅과 하늘을 울리는 거대한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시작됐다.”

막스는 특수부대원을 이끌고 은밀히 이동했다.

수만이 붙은 전투에서 막스가 선택한 건 소수의 게릴라 전술. 최종 목표는 남부 연합의 서부 사령관 알버트 시드니 존스턴이다.

“마주치는 남군은 전부 죽인다. 그리고 놈들의 옷을 챙길 수 있도록.”

침투, 교란. 저격으로 인한 암습.

148명의 특수대는 3개의 중대로 나뉘어 길을 뚫었다.

< 샤일로 전투(2) >

남부 연합은 켄터키와 테네시 전투에서 연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가장 뼈아픈 건 북군에 빼앗긴 내슈빌.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막대한 군수 물자가 보관된 곳이라 남부 연합의 서부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었다.

‘더는 밀릴 수 없다.’

남부 연합의 서부 사령관 알버트 시드니 존스턴은 북군의 진군을 저지하고 빼앗긴 땅을 수복하려 했다.

해서 미시피강 북쪽의 코린스에서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는데, 그 수가 5만 5천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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