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테네시강 서쪽의 피츠버그 랜딩에 도착할 즈음.
남군의 존스턴 사령관은 지휘관을 불러 다음을 지시했다.
“이번 전투에 서부 전선의 명운이 걸렸다! 율리시스 장군이 뷰엘 장군과 합류하기 전 공격한다!”
존스턴이 공격을 서두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피츠버그 랜딩 아래로는 물길이 낮아 배들이 이동할 수 없어 그곳이 곧 수송로의 시작점이라는 것.
북군이 샤일로의 지형에 진지를 구축하면 공격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반드시 그 전에 공격이 이루어져야 했다.
“당장 4개의 군단을 조직해 율리시스 부대를 공격한다!”
존스턴은 직접 4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피츠버그 랜딩을 향해 북진했다.
하지만 남군의 주둔지인 코린스는 늪지로 된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피츠버그 랜딩까지는 꼬박 이틀거리. 늪과 협곡이 즐비하고, 울창한 숲 지대를 관통하는 낡은 도로가 유일한 길이었다.
이는 병사들의 사기와 체력을 갉아먹는 행군으로 이어졌다.
율리시스 부대가 점령한 피츠버그 랜딩.
“우린 뷰엘 장군이 오기까지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셔먼 장군과 프렌티스 장군은 5사단과 6사단을 이끌고 적들이 오는 길을 막아주세요. 대신 절대 무리해선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율리시스는 적들의 발목을 잡고 한편으론 샤일로에 진지를 구축하려 했다.
그 역할은 1사단 맥클레넌드가 맡고 나머진 피츠버그 랜딩을 사수했다.
셔먼과 프렌티스 장군은 병력을 이끌고 코린스에서 올라오는 남군을 막기 위해 숲에서 진지를 구축했다. 일부는 중대 단위의 매복도 이루어졌다.
이틀 후인 1862년 4월 6일.
후방의 포성이 울리며 숲에서 남군과 북군의 교전이 이루어졌다.
*
펑! 펑!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묵직한 포성에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막스와 피치는 46명의 중대를 이끌고 포성과는 거리가 떨어진 숲을 가로질렀다.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세를 숙여 이동하던 중.
막스가 오른손을 든다.
대원들은 일제히 행동을 멈추고 나무와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신발 밑창에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들리며 회색 군복을 입은 병사 열댓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을 어슬렁거리는 병사들은 혹시 모를 매복을 신경 쓰며 신중히 움직였다.
‘정찰병인가.’
막스와 피치는 숨을 죽이며 풀 사이로 놈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관건은 후미의 지원병이 있는가였다.
또 다른 병력이 있는지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습격은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니.
포성이 들리는 곳이라면 전부 전쟁터라 할 수 있었다.
정찰병과의 거리는 불과 30m.
막스와 대원들이 라이플에 손을 가져다 댈 때였다.
정찰병들의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또 다른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렬로 행군하는 그들의 얼굴엔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이쯤에서 매복하는 게 좋겠다. 1, 2중대는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위치를 잡도록.”
매복이야 어떻든, 긴 행군이 끝났다는 사실이 더 기쁜 모양이다. 남군의 병사들은 대충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부터 했다.
‘이놈들도 매복이 목적이었군.’
늪지대와 협곡을 뚫고 온 남군의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다. 그 때문에 장교들도 그렇고 당장은 매복과 휴식의 어정쩡한 자세에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장교부터 보내자.’
혼란을 일으키려면 역시 일 순위는 지휘관이다. 정확한 조준과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선 리볼버보단 라이플이 적당해 보였다.
풀잎 사이로 슬며시 총구가 나오고, 가늠자가 방해받지 않도록 각도를 틀었다. 바로 옆에선 피치의 총구 역시 풀잎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막스의 시야에 들어온 지휘관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멍청한 율리시스도 이젠 끝이로군. 뷰엘과 합류를 해야지, 뭐가 급해서 혼자 피츠버그 랜딩을 점령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야.”
“둘 사이가 안 좋거나, 아니면 망할 서부 사령관 새끼가 지시를 거지같이 내렸겠죠.”
“하여간 북군놈들은 자존심도 없나. 만약 동양인 새끼가 나한테 명령을 내리면, 총으로 대가리를···”
타앙!
푸슉.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던 지휘관.
막스의 라이플을 떠난 탄환이 정확히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기, 기습이다! 모두 엎드려!”
찰나의 시간 차이를 두고 피치와 대원들도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대원들이 사격하는 동안 막스는 포복으로 거리를 좁혔다. 그런 다음, 수류탄의 핀을 뽑아 놈들이 있던 곳을 향해 내던졌다.
텅, 텅.
콰아앙!
엎드려 있던 병사들의 몸이 파편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혼비백산한 적들이 몸을 일으키자, 대원들의 총구에 다시금 불이 뿜어졌다.
타앙!
타앙!
“뒤로 후퇴하라!”
매복하러 왔다 매복에 당한 남군은 황급히 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막스와 대원들은 라이플 대신 리볼버를 든 채 신음하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그중엔 놀랍게도 남부 연합에 동조한 흑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죽어가는 눈빛에는 분노와 증오가 맺혀 있었다.
“이 새낀 아군과 적도 구분 못 하나.”
대원 하나가 마저 흑인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막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시를 내렸다.
“시간이 없다. 시신부터 끌고 간다.”
시체는 대략 이십여 구. 2인 1조가 되어 이를 짊어지고 전장을 이탈했다.
“헉, 헉 시체 들고 뛰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것도 아군이 아닌 적들 시체를!”
“말할 시간에 달려, 인마.”
막스는 뒤를 돌아보며 대원들을 채근했다.
그렇게 1km를 벗어나 적당한 장소에 시신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이제 옷 벗기고, 시신은 은폐할 수 있도록. 워워, 피치는 손대지 말고 구덩이 파죠.”
“옛썰.”
대원들은 피 묻은 옷을 벗기고 일부는 구덩이를 팠다. 시체를 매장하고 그 위를 낙엽으로 뒤덮었다.
옷을 배낭에 집어넣은 막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시 이동한다.”
대원들은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군장과 어깨에 멘 라이플, 각종 탄약과 보조 무기로 그 무게가 상당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얼마 가지 못하고 주저앉을 만한 무게였다.
막스는 힐끔 눈동자를 굴려 피치를 쳐다봤다.
조금은 지친 얼굴이었다.
“안 힘들어?”
“힘들면 뭐. 대신 들어 주려고?”
“...... 아니.”
“앞으로 물어보면 뒤진다.”
지친 얼굴 대신 피치의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막스는 스카프를 더욱 끌어 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
샤일로 전투 첫날.
원 역사대로라면 율리시스 그랜트의 부대는 막대한 희생을 치른다.
남부 연합의 서부 사령관 존스턴의 기습으로 율리시스의 전위대가 궤멸당하고. 대신 이날의 전투에서 서부 사령관 존스턴은 전쟁 중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막스가 개입한 역사는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존스턴은 멀쩡했고 율리시스 부대 역시 남군의 진격을 막아내며 잘 버티고 있었다.
셔먼과 프렌티스 장군은 참호를 파 적들과 교전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이를 위해 참호를 200야드(180m) 간격으로 파두어 밀리면 필사적으로 싸우는 대신 전선을 뒤로 물리는 작전을 펼쳤다.
그렇게 남군이 첫날 진격한 거리는 1km에 못 미쳤다.
해가 지고 어둑해진 밤.
북군과 남군의 포성은 멈추고 다음 날을 위한 휴식에 들어갔다.
울창한 숲의 나뭇가지를 뚫고 은은한 달빛이 주변을 비추고.
낮에 전쟁터 주변을 쑤시고 돌아다닌 막스와 특수부대원들은 숲에서 몸을 숨긴 채 매복 겸 휴식을 취했다.
낮과 다른 점은 특수부대가 전부 모여 또다시 두 개로 나눴다는 거.
막스는 작전에 당첨된 다섯 명만 대동한 채 풀숲에 숨어있고 나머진 다른 방향에서 진을 치고 매복 중이었다.
막스가 있는 곳.
불침번 두 명이 주변을 경계하고 막스와 대원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보스, 차라리 개틀링 기관총을 더 많이 가져왔으면 좀 낫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요, 남군보단 우리게 더 낫잖아요.”
현재 율리시스의 부대에 있는 개틀링 기관총은 두 개뿐이다. 나머진 콜로라도와 텍사스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막스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남들이 몰랐을 때나 위력적이지. 지금은 우리가 썼던 방식으로는 승부를 짓기 어려울걸.”
막스의 말마따나 남군은 공격하면서도 만약을 위해 참호를 파두어 적들의 추격을 대비했다.
또한 성능은 부족하지만 개틀링 기관총도 보유하고 있었고, 저격수를 양성해 북군의 장교들을 노리기까지 했다.
“포병들이 한 방향으로 쏴대면 개틀링 기관총도 무력화시킬 수 있고. 저격수도 표적이 대비하면 맞추기도 쉽지 않지.”
남군의 서부 사령관 존스턴도 마찬가지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신선하고 획기적인 방식으로 재미를 보던 것도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
나폴레옹의 전술은 낡은 병법으로 치부되고. 남북전쟁은 빠르게 현대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으니. 전부 막스의 영향이었다.
“보스, 또 새로운 건 없습니까? 조선에서 쓰던 전술만 수천 가지라면서요.”
“...... 그래서 그중에 하날 하려고 하잖아.”
“뭐, 남군 복장으로 잠입하는 거요?”
막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원들이 탄식과 감탄을 동시에 내뱉었다.
- 조선 사람들 깡이 어마어마하구만.
- 그건 깡이 아니라 용기지. 조선인들이 용감한 거라고.
그리고 이제는 그런 용감한 짓을 자신들이 하려고 한다.
막스와 대원들은 전부 남군으로 옷을 갈아입고 적진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막스는 위장크림을 발라 완벽한 흑인으로 분해있었다.
“누가 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때가 온 건가!’
불침번을 서던 대원의 경고에 다들 자세를 틀고 무기부터 손에 쥐었다.
잠시 후.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이번에도 열댓 명의 남군이 앞서고 뒤에는 수십 명의 병력이 따라붙어 이동하고 있었다.
막스는 대원들과 함께 뒤로 빠지며 적들과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병사들이 지나갈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방향에 있던 특수부대 일부가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고요한 밤에 퍼지는 총성. 전쟁터라면 누구나 들었을 만큼 소리는 멀리 퍼져나갔다.
“북군 새끼들이다!”
“피하지 말고 응사해!”
타앙!
푸슉.
병사들이 쓰러지고 더러는 나무에 총탄이 박히며 파편을 만들어냈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이지만, 남군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교전을 벌였다.
“소리를 들었으니 아군이 곧 올 것이다! 물러나지 말고 사격해!”
우렁찬 남군의 지휘관 목소리는 막스와 대원들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때 선제공격을 가했던 특수부대는 조금은 밀리는 척 뒤로 후퇴했다. 이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남군은 더욱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십여 분의 교전이 벌어지는 동안 남군의 대대급 병력이 후미에서 달려왔다.
북군 역시 총소리에 신속히 지원군을 파견하고 이내 중간 지점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우리 역할은 여기까지.’
양측을 붙여놓은 히콕과 피치는 특수부대를 뒤로 퇴각시켰다. 위치가 중간 지점이라 양측의 부대는 계속해서 지원군을 투입했다.
한밤에 벌어진 전투는 이곳이 유일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30여 분의 교전이 벌어지고, 북군이 먼저 병력을 후퇴시켰다. 그렇다고 추격하자니 남군 입장에선 매복과 기습이 신경 쓰였다.
“다들 캠프로 돌아간다!”
거의 천명에 가까운 남군의 병력이 발길을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 무리에는 막스와 특수부대 대원 넷이 스며들어 남군의 캠프로 향했다.
< 샤일로 전투(3) >
병사들 틈에 섞여 캠프에 도착한 막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아주 개판이구만.’
협곡의 좁은 길에 세워진 캠프는 숲까지 넓게 뻗쳐 복잡하고 어수선하기만 했다.
4만의 대군이 머물기에 협곡은 좁고 답답해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 침투한 막스와 대원들에겐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무분별하게 세워진 천막과 타 중대와 뒤섞이는 바람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야밤에 임무를 수행한 병사들은 아침까지 푹 잘 수 있도록!”
“2중대는 곧바로 숙소에 들어간다. 일어나는 대로 교전이 일어났던 곳을 다시 수색할 테니 그리 알아.”
해산한 병사들이 하나둘 천막 안으로 사라진다.
막스와 대원들은 은근슬쩍 대열에 벗어나 캠프를 어슬렁거렸다.
- 왜 날 따라다녀, 새끼들아.
막스는 졸졸 따라다니는 대원들을 돌아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 그럼 이 밤에 어디 갑니까.
- 그냥 아무 천막에나 쳐들어가서 자.
- ...... 그러다 아침에 영영 눈을 못 뜰 것 같은데요.
막스는 한심한 얼굴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 내가 강제로 눈 감겨줄까?
- ...... 괜찮지 말입니다.
- 당장 흩어진다, 실시.
- 실시!
대원 넷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막스는 피식하며 시선을 주변 병사들로 향했다.
야심한 밤에 돌아다니는 자들은 경계병들. 그들의 행동을 살핀 막스는 똑같이 라이플을 들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존스턴을 찾으려면 천상 아침이 되어야겠군.’
넓게 퍼진 캠프, 더구나 밤중이라 남군 사령관의 막사를 찾기는 불가능했다.
막스가 천막들 사이를 지나칠 때, 누군가 앞을 막아섰다.
“이것 봐라. 노예 새끼가 야밤에 막 돌아다니네?”
위장크림을 잔뜩 바른 막스는 흰 눈자위를 껌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중대장님께서 두 시간 경계근무를 서라고 하셨습니다.”
“너 같은 노예한테?”
의심스러운 시선이 막스의 위아래를 훑어갔다.
“아까 북군과 교전하느라 다들 잠을 못 잤거든요. 그래서 제가 먼저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호, 매복하던 북군 새끼들하고 교전한 게 너희 중대였나?”
“예, 저희 2중대였습니다.”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계병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