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는 주당 7달러. 대신 숙식은 공짜로 제공되기 때문에 노예들에겐 꽤 큰 금액이었다.
군인을 택한 흑인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오늘부터 잘해보자고.”
막스는 캠프 철수를 지시하고, 율리시스 부대의 뒤를 따라갔다.
히콕은 선두에서 대원들과 함께 전체 행군을 이끌고. 끝에는 군인이 되고자 하는 30명의 흑인이 SFBC 군가를 배우며 따라오고 있었다.
“이런 병신들을 봤나. 가사 한 줄을 못 외우네. 전체 쪼그려 앉아!”
“옙!”
“지금부터 오리 하면, 꿱꿱한다. 알겠나?”
“예?”
“예? 이 새끼들이 정신 못 차리지. 너희는 주인 없는 달걀을 깨고 나온 자유로운 병아리다. 일체 목소리와 행동을 억압하지 말란 말이다. 오.리!”
“꿱! 꿱!”
“오.리!”
막스와 피치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어 따라가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쪼그려 걷는 것도 힘들어서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흑인들을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막스가 속성 훈련법을 떠올릴 때, 피치가 물었다.
“흑인 부대가 진짜 가능하긴 한 거야? 캔자스에서 있는 흑인들도 훈련만 거의 일 년째 하는 것 같은데.”
남북 전쟁 발발 후 남부 연합과 경계주에 있던 흑인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졌다.
일부는 이제 막 자유주가 된 캔자스로 넘어왔는데. 막스는 로렌스에 있던 기지에 흑인들을 훈련 시킬 SFBC 대원을 남겨두었다.
최근까지 보고받은 바로 숫자는 대략 300명.
이들은 훈련과 공장에서 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공장은 제임스 부인과 홀리데이 부인이 운영하는 의류와 케첩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군대를 자원병으로 채우기엔 한계가 있어. 슬슬 흑인들에게 눈을 돌릴 때가 올 거야.”
“반대가 심한데도?”
“글쎄. 그 반대도 이번 전쟁으로 바뀌게 될걸? 남부에서 꺼내들 카드가 꽤 강력할 거거든.”
“카드?”
피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로선 전쟁 승리와 흑인 병사들의 상관관계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추측하고 막스의 말이 맞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 갑작스러운 초대장 >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켄터키에 이어 테네시 피츠버그 랜딩 점령!]
[남군 사령관 알버트 시드니 존스턴과 군단장 다섯 명 사망! 사인은 폭발로 추정.]
[오직 진격만이 있을 뿐! 그랜트 장군! 파죽지세로 남군을 공격하다!]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미시시피주 진입 초읽기!]
원 역사에선 피츠버그 랜딩과 샤일로 지역에서 남군과 북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그러나 막스는 전쟁터를 코린스에서 피츠버그 랜등으로 향하는 협곡으로 제한했다.
그리고 본인은 직접 남부 연합의 서부 사령관과 핵심 지휘관들을 제거했다.
졸지에 수뇌부를 잃은 남군은 셔먼 장군의 진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뒤이은 율리시스와 뷰엘의 합류로 적들을 코린스까지 밀어붙였다.
코린스는 두 개의 철도 노선이 만나는 교차점으로 전략적 요충지.
- 인근 마을을 점령하고 코린트 전체를 포위한다!
마을 주변에 참호를 파 율리시스는 코린트 요새를 고립시키고. 남부는 공성전으로 대응했다.
이 기간 북군은 조지 토마스 소장, 존 포프 소장의 부대가 합류하여 총 12만의 병력이 집결하고, 남군은 6만 5천을 긁어모아 공성전을 벌였다.
그렇게 보름에 걸친 전투와 대치 끝에.
[전쟁의 신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마침내 미시시피주 코린스를 점령하다!]
남군은 장비, 무기, 보급품을 챙기지 못하고 후퇴했다. 협곡에서 시간을 지체하거나 공격을 미뤘다면 얻기 힘든 승리였다.
‘피츠버그 랜딩 전투’ 직후 ‘코린스 전투’까지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진격은 남부 연합의 지략가조차 탄성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리고 전투의 결과. 북군은 사망자 2,254명, 부상과 실종자가 8,523명으로 집계되었다.
남군의 경우, 죽은 존스턴 사령관의 뒤를 이은 피에르 보르가드 장군이 보고하길 사망자가 5,723명, 부상자, 포로와 실종자가 1만 4천이었다.
북군의 대승이었다.
북부의 언론은 앞다투어 ‘피츠버그 랜딩 전투’와 ‘코린스 전투’ 기사를 쏟아냈다.
동시에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대대적으로 띄우기 시작했다.
동양인을 백인인 율리시스 그랜트로 지우고 싶은 의도였다.
언론이 막스를 배제한 데에는 남부 연합의 이간질도 한몫했다.
‘동양인에게 지시받는 멍청한 북부인’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연일 쏟아냈으니. 백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이유 없이 동양인이 미워하게끔 여론을 선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막스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율리시스 그랜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명실공히 연방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하는 맥클레런에겐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친구 돈 카를로스 뷰엘의 느려터진 진군 속도 역시 도마 위에 올라, 아직 첫 전투도 벌이지 않은 맥클레런에겐 엄청난 부담과 압박이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율리시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걸.
본인도 자각하고 있었다.
미시시피주 북쪽.
코린스 마을에 차려진 북군의 캠프.
여러 종류의 신문 헤드라인을 훑어보던 막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대략 세인트루이스에서 벌어진 서부 사령부 암살 시도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동양인이라는 워딩을 부각하고 백인들에게 적대감을 심어주는 논조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율리시스 그랜트가 반사이익을 보긴 했지만, 막스의 신경을 긁어대는 건 그 외의 것들이었다.
[연방의 발전을 가로막는 존 브라운 대통령! 과연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
[대륙횡단 철도, 홈스테드 법의 표류. 그 뒤엔 동양인 서부 사령관이 있다!]
언론은 존 브라운과 막스를 엮어 부정적인 기사를 실었다. 그들은 정치인과 똘똘 뭉쳐 존 브라운을 공격했다.
서부 전선이 연전연승했기에 망정이지, 막스가 패했다면 진작에 여론 재판에 끌려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발을 뺄 때가 됐구나.’
막스는 존 브라운에게 편지를 썼다.
서부 사령관을 율리시스에게 넘긴다는 내용. 그런데 반 정도 써갈 즈음 막사로 피치가 뛰쳐 들어왔다.
“들었어 그 얘기? 남부 연합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이 징병을 발표했대!”
‘드디어 카드를 꺼냈구만.’
이번 전쟁으로 병력의 한계에 봉착한 남부 연합은 강제 징집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남부의 성인 남성 18~35세가 징집대상이었다.
“너 이거 예상한 거지? 흑인 부대도 이것과 상관있는 거지?”
“대충은. 북군과 병력 차이를 줄이려면 이 방법밖에 더 있겠어?”
“그럼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냐?”
“글쎄. 결국 하긴 하겠지만 반발이 장난 아닐 거야.”
현재 연방은 자원병으로 모자라는 병력을 채우기 위해 주별로 병사 수를 할당했다.
몇몇 주는 민병대를 강제 징집해 숫자를 채웠는데 이는 주지사의 권한이었다.
그런데 만약 연방 차원에서 징병제가 이루어진다면?
주지사의 권한이 축소되고 강력한 중앙집권이 이루어질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거셀 테고. 여기에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권리 침해’를 들먹이며 반발할 게 뻔했다.
피치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논란이 심해질 때, 흑인 부대를 창설하면 확실히 반대가 줄어들겠구나.”
“아무래도 그렇겠지. 자기들이 끌려가기 싫으면 반대는 무슨, 쌍수 들고 환영해야지.”
막스는 다시금 편지 쓰는 데 집중했다.
슬쩍 옆에 다가와 내용을 본 피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서부 사령관을 그만두는구나.”
“전부터 얘기했잖아. 대규모 전투에서 내가 할 일은 많지 않다고. 조금은 전쟁에서 떨어져 있을 생각이야.”
피치는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집어넣은 채 막스를 쳐다봤다.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되나 고민하는 게 분명하다.
“우리 사이에 못 할 말이 뭐 있어. 해봐.”
“피융.”
피치는 손가락으로 볼에 바람을 뺀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죽어라 했는데, 아무도 인정 안 해주면 좀 그렇지 않아?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뭔가 그럴듯한 보상은 있어야지.”
“난 죽어라 한 적 없는데.”
“...... 너한테는 쉬웠겠지만, 대원들은 안 그렇잖아.”
그렇다고 대원들이 자신들의 공을 내세우는 건 아니고. 최소한 보스만큼은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보스가 다 했는데, 대접들이 왜 이래!
- 썅, 이러면 열심히 싸울 필요가 없다고.
- 차라리 콜로라도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신문에선 연일 율리시스 그랜트 얘기만 나오고 막스는 존 브라운과 엮여 공격받는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편지에서 시선을 뗀 막스가 피치를 쳐다봤다.
“다들 불만이 많은 모양이네.”
“뭐, 일단 내가 제일 그래. 사령관이 적진에 침투해서 적 사령관 모가지를 땄는데 기사 한 줄 안 나오는 게 말이나 돼?”
“말 안되지. 그래서 더 그만두려는 거야.”
지금도 이런데 전쟁이 끝나면 오죽할까.
백인 틈에 삐죽 튀어나온 동양인.
막스가 가진 무력 집단과 자본, 언론사는 누군가에겐 위협이 될 것이고 심지어 제거하려 들지도 모른다.
“건드리면 가만있을 거 아니잖아. 우리가 먼저 제거하면 되지.”
“그러기엔 견제 세력들이 너무 많아. 힘도 부족하고. 안타깝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피치.”
존 브라운 대통령만으론 부족하다.
나라의 요직을 막스의 사람으로 채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나저나, 갑자기 피치가 조용하다.
편지를 마저 쓰려던 막스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피치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전쟁 끝나도 계속 이렇게 사는 거야?”
“응?”
피치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댄다.
전쟁에 염증이라도 느낀 걸까.
피치답지 않았다.
“...... 왜? 이런 생활이 마음에 안 들어?”
“그걸 말이라고 해?”
“설마 아직도 핑커톤을···.”
“그게 아니잖아, 바보야.”
오늘따라 피치의 기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러는 걸까 고민하던 때.
피치가 마침내 분노를 터트렸다.
“진짜, 씨! 그럼 난 시집 언제 가는 건데!?”
“!”
언제 전쟁 끝나면 결혼한다고 말했던가?
막스의 눈동자가 흔들릴 때 피치가 더욱 다가와 몰아쳤다.
“양심도 없냐? 나도 내년이면 스물아홉이라고! 애 다섯은 낳았겠다!”
“뭐야, 그럼 나 지금 스물일곱인 거야?”
“지금 상황에서 네 나이 보고 놀라는 거야? 너 사이코야?”
피치가 코끝이 부딪힐 정도로 다가왔다.
막스의 머리가 마구 돌아갈 때.
바짝 얼굴을 가까이한 피치가 갑자기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 보니까 짜증 나게 동안이네. 처음 봤을 때랑 하나도 안 변했어.”
“...... 너가 사이코구만. 뜬금없이.”
“다들 너보고 벰파이어라고 하길래 비웃었는데. 오늘따라 유독 그러네.”
피치는 부러움과 질투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원래 조선인이 좀 동안이거든.”
“조선은 완전히 축복받은 땅이구만. 혹시, 죽어야 가는 그런 헤븐이냐?”
막스가 웃자 피치의 미간이 좁아졌다.
“웃음이 나와? 그래서 동안이라 나이 따위 상관없다 이거야? 나는 갈수록 늙어 가는데?”
피치는 자신의 눈가를 가리켰다.
보기엔 주름 하나 없이 팽팽했다.
막스의 눈동자가 피치의 얼굴을 훑어갈 때.
천막 안으로 터커가 들어왔다.
“보스! 워싱턴에서 편···지는 나중에 줄까요?”
터커가 말끝을 흐렸다.
냅다 책상에서 떨어진 피치는 천장을 보고 있었고 막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손을 내밀었다.
“편지 줘봐.”
던지듯 편지를 내려놓은 터커는 서둘러 나가려 했다. 막스는 고개를 저어 입 모양으로 ‘그냥 여기에 있어, 새끼야.’라고 하지만. 터커는 매몰차게 막사 밖으로 사라졌다.
막스가 테이블을 치자, 피치가 코웃음을 쳤다.
그나저나.
편지의 발신인은 존 브라운 대통령이다.
봉투를 찢자, 피치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초반 몇 줄은 이번 전쟁을 치하하는 말이었다.
오로지 서부 사령관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잔뜩 꿀 바른 칭찬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칭찬받은 양.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피치가 풋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따라 감정 기복이 극단적이었다.
그나저나, 편지 내용이 예상 밖이었다.
[서부 사령관을 이런 식으로 그만두게 되면 누가 자네의 공을 알아주겠나.
해서 자네를 백악관에 초대하고 싶네.
서부 전선의 연전연승을 치하하고 자네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거든.
물론 숨겨진 의미가 더 많다는 걸 자네도 알 거라 믿네. 편지로는 힘든 내용이라,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고 싶거든.
날짜는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네. 백악관의 문은 자네에겐 언제나 열려있을 테니까.]
서부 사령관을 율리시스에게 넘겨줄 거라는 건 존 브라운도 알고 있었다. 몇 번 운을 띄웠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전쟁 중에 초대장이라니.”
“이거 대통령이 보낸 거, 맞아? 혹시 누가 암살이라도 계획한 거면 어떻게 해?”
글씨체를 보면 존 브라운이 틀림없다.
게다가 서부 사령관임에도 워싱턴에 가지 않은 건 막스가 유일했다. 장군들의 경우 워싱턴을 찾아가는 경우가 빈번했다.
초대장이 뜬금없지는 않았다.
게다가 편지 중간에 있는 문구.
[자네보다 몇 년 앞서 시민권을 받은 동양인이 있네. 일본에서 온 조셉 헤코라는 자인데, 이번에 백악관을 방문하기로 했네.]
‘여기서 갑자기 일본인이 튀어나와?’
막스는 책상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 조선 때문일까?
지금은 조선과 미국의 접점이 없는 시기다.
제네럴 셔먼호는 적어도 남북전쟁 이후의 일.
하지만 막스의 등장으로 그 시기가 바뀌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었다.
‘조선으로 얼버무리는 것도 이제 끝이구나.’
그동안 심어준 조선의 위대함이 간악한 일본인의 혓바닥에 낱낱이 까발려질 테니.
‘남조선이라고 할까.’
어찌 됐든.
존 브라운과 편지로 모든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부적절했다.
공로를 치하한다는 백악관 초대는 겉 포장에 불과하다. 속내는 여러 복잡한 현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내년에 있을 재선.
대륙횡단 철도와 홈스테드 법.
남부 연합의 징병제와 흑인 부대의 창설 등.
할 이야기가 산적했다.
‘가자, 백악관으로.’
결심을 내린 막스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율리시스 좀 만나고 올게.”
“예, 동안 사령관.”
막스는 삐딱해진 피치를 남겨둔 채 율리시스를 찾아갔다.
“워싱턴을?”
“대통령이 초대했으니 가야죠. 그리고 조만간 임명장이 날아올 겁니다.”
이미 언질을 주었기 때문에 율리시스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책임감의 무게를 느꼈는지 조금은 안색이 경직되어 있었다.
“직책 따위 무슨 상관이 있겠어. 일전에도 말했지만, 언제든 자네 의견을 최우선을 생각하겠네. 지금처럼 자네를 대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