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총도 같이 쏠 텐데?”
“좋다. 같이하면 뭐든 좋아.”
피치의 등 뒤에서 고삐를 잡은 막스.
달빛 아래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철로를 따라 말을 달렸다.
녹스빌 역에서 조금은 떨어진 지점.
막스와 피치는 말을 묶어두고 높은 지형을 찾아 이동했다.
“여기가 좋겠어.”
“라이플 안 가져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역사와의 거리는 대략 400m.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둘은 날이 밝길 기다렸다.
“근데 뉴욕은 왜 물어봤어?”
“그냥.”
“그러니까 그냥 왜?”
“말 그대로 그냥이라고.”
“짜증 난다, 진짜.”
“먼저 자. 난 주변 경계할 테니까.”
피치는 토라진 듯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신경이 무딘 건지, 노숙이 익숙해진 건지.’
막스는 피치를 넌지시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
“뭐야 벌써 해가 뜬 거야? 왜 안 깨웠어?”
“푹 자라고. 이상하게 체력이 남아돌더라고.”
막스는 스코프를 보며 대답했다.
해가 뜬 직후, 게릴라들의 움직임이 하나둘 포착되었다. 주변까지 샅샅이 스코프로 훑어본바.
“지금 바로 시작하자.”
“응.”
소음기를 장착하고 나란히 엎드린 상태에서 적들을 조준한다.
대상은 무차별적.
스코프에 적이 들어온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뚜쿵.
뚜쿵.
언덕 주변으로 물먹은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소리가 날 때마다 누군가는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네 명을 제거.
밖에 있던 게릴라들이 미친듯이 역사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일부는 방향을 감지했는지, 창문 밖으로 언덕을 응시했다.
뚜쿵.
창문이 깨지고 밖을 내다보던 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더는 아무도 창문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건물에 가두는 것 까지는 성공.”
“기차가 올 때도 나올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기차에서 산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우며 둘은 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첩자들이 너무 많다 >
동료 다섯이 죽어 나가는 동안.
게릴라들은 적들을 보지 못했다.
어디에 몇 명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역사 안에 있자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젠장,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정 답답하면 니가 나가보던가. 저격수도 별로 없어 보이더만.”
“그걸 말이라고 하냐, 병신아. 아까 못 봤어? 정확히 헤드샷 날리는 거?”
리더는 티격태격하는 부하들을 한심한 듯 쳐다봤다.
“멍청한 놈들. 대가리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
“.....(시작됐다, 잘난 척).”
“저격수는 지금 우릴 꼬시고 있는 거야, 새끼들아. 거기에 말려들어 돌격했다간 매복하는 놈들한테 죽는 거라고.”
“매, 매복?”
“생각해라 휴먼. 저격수만 덩그러니 있는 게 말이 되는지를. 놈들의 수는 우리와 비슷하다. 쪽수가 많았다면 진작에 역으로 쳐들어왔겠지.”
부하들은 역시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코웃음 친 리더는 시선을 돌려 기차 시간표를 응시했다.
“놈들은 지금 지원군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고 있는 거다. 이걸 벗어나려면 방법은 하나. 인질을 이용하는 수밖에.”
곧 기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올 거고.
그때 놈들을 인질로 잡는다. 만약 북군들이 역으로 접근하면 인질을 하나씩 죽이면 그만이다.
“오오, 그러면 도망칠 수 있겠구나!”
“도망? 미쳤냐?”
리더는 방금 말한 대원을 노려봤다.
“우리는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죽은 놈들을 위해서라도 얻는 건 있어야지, 안 그래?”
“그, 그렇지.”
“내가 언제 먹잇감을 놓친 적 있어?”
“없지.”
‘불쌍한 놈들. 나를 만난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마.’
리더의 입에서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올 때였다.
뚜쿵.
뚜쿵.
“어떤 새끼가 밖으로 나갔어?!”
리더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부하들이 눈알을 굴려 인원을 확인하지만 모두 그대로였다.
이때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밖을 주시하던 부하가 소리쳤다.
“사람들이 막 도망가는데?”
“뭐?”
“승객들이 역으로 오려다가 되돌아가고 있다고!”
리더는 재빨리 기어가 밖을 쳐다봤다.
자신의 의도를 간파한 듯. 저격수들은 몰려오는 승객들을 위협해 돌려보내고 있었다.
‘저 새끼들이 진짜!’
일이 뭔가 꼬이고 있다.
애초에 계획은 기차가 도착하는 즉시 위에 올라타 객실을 점령, 인질을 볼모로 작전을 펼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계획이 심각하게 틀어졌다.
‘시발, 도망간 역무원 한 놈이 초를 쳤구나.’
기차가 늦게 도착한 것도, 밖에 있는 저격수들도 전부 그놈 때문일 것이다.
리더가 현명했다면, 철수를 지시했거나 다른 작전을 구상했겠지만.
이곳 게릴라 리더는 아쉽게도 그럴만한 깜이 아니었다. 오히려 막스의 심리전에 말려들고 있었다.
‘역무원들을 괜히 죽였어.’
차라리 놈들을 인질로 붙잡아두어야 했다.
리더가 이를 바득 갈던 때.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건 또 뭔 소리야?”
게릴라들이 귀를 쫑긋 세워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역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밤새 안 오던 기차가 하필 지금?’
칙칙. 칙칙.
연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역사로 진입한다.
게릴라 리더는 연기처럼 날아가는 멘탈을 다잡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고작 이런 걸로 흔들려서야.’
습격할까, 아니면 상황을 지켜볼까.
밖으로 튀어 나가는 순간 저격수가 노릴 것이고, 기차 안에는 북부의 군인들도 있을 것이다. 몰라야 습격이지, 이미 알고 있는 이상 대비는 해두지 않았을까.
리더가 갈팡질팡 결론을 내리지 못할 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속도를 줄인 기차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역을 지나쳤다.
‘!?’
기관사와 승객들이 자신들을 빤히 보고 있음에도 게릴라들은 멍하니 지켜만 봤다.
기차는 달려가면 충분히 올라탈 수는 있을 정도로 느렸다. 하지만 밖에 있는 저격수들과 기차 안에 있을 북군 생각에 게릴라들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더욱 당황한 일은.
역에서 벗어나자마자 기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완전히 멈춰 서버린 것이었다. 거리는 대략 2백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저 새끼들이 우리를 가지고 노나!”
“왜 저기에 세운 거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만난 듯 게릴라들이 눈을 찡그렸다.
리더는 기차 뒤꽁무니를 보며 갈등과 번뇌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도망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포기하기엔 너무 많은 게 걸려 있었다.
녹스빌 역을 중심으로 대략 6시 방향의 언덕.
스코프가 역 근처 보수작업을 위해 철로 옆에 쌓아둔 목재를 향했다.
그곳에는 기차에서 뛰어내린 군인들이 납작 엎드려 있었는데. 위치상 기차와 역 중간이고, 게릴라들은 볼 수 없는 각도였다.
‘특수부대였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텐데.’
소대장 그웬도 그렇고. 전투 경험이 없는 병사들이 게릴라들과 제대로 교전하면 희생은 불가피하다. 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얄팍한 수라도 써야 했다.
스코프를 보던 막스가 피치에게 말을 건넸다.
“게릴라들이 어느 방향으로 튀어나올지 내기할까?”
“좋아. 너부터 말해.”
막스가 피치를 힐끔 쳐다봤다.
“난 마구간 쪽.”
“...... 나도 마구간.”
“뭐야. 서로 달라야 내기가 되지.”
“답은 하난데 그럼 일부러 틀려?”
게릴라들의 다음 행동은 도망 혹은 불나방처럼 기차로 향하는 것. 그게 뭐가 됐든 가장 중요한 건 이동 수단부터 확보하는 일이다.
마구간과 역은 불과 20m밖에 떨어지지 않아 충분히 노릴 만했다.
“다음부턴 피치 너부터 말해.”
“싫거든?”
뻔뻔한 피치는 태연하게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얼마 후.
둘의 예상대로 게릴라들이 역사에서 튀어나와 마구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스포크가 놈들을 따라가고 둘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뚜쿵.
뚜쿵.
소리가 날 때마다 하나둘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딴에는 지그재그로 질주하다 총에 맞는 놈도 있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은 마구간으로 사라지고. 이내 말 허리를 박차며 마구간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랴앗! 모두 기차를 공격한다!”
게릴라들이 미친 듯 기차를 향해 질주한다.
달리는 말 위의 표적을 맞히기란 꽤 까다로운 일. 두 발을 빗맞힌 피치는 숫제 말들의 몸통을 겨눴다.
뚜쿵.
총알이 박힌 말이 곤두박질치고, 씹은 걸 뱉어내듯 기수는 땅바닥을 구른다.
식겁한 게릴라들은 자신에게 총탄이 날아오지 않길 기도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더 큰 장애물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철로 옆에 쌓아둔 목재에서 머리들이 솟아나더니 북군 병사 십 수명이 자신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타앙!
타앙!
저격으로 전력의 반을 날린 게릴라들은 별다른 저항도 못 한 채 쓰러졌다.
애초에 마구간에서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도망을 택했어야 했다. 그러나 게릴라들은 무모하게도 기차 습격을 택했다.
무식하고도 무서운 집착과 광기였다.
소대장 그웬이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게릴라 대원을 다그쳤다.
“왜 기차역을 습격했지?”
게릴라는 피 섞인 침을 뱉으며 욕으로 화답했다. 화가 난 그웬이 뺨을 후려쳐도 제대로 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할 테니까, 놔둬.”
그사이 언덕에서 내려온 피치가 말에서 내려 그웬에게 다가왔다.
‘사령관이 직접 심문하다니!’
사관생도의 티를 못 벗은 그웬.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눈을 크게 떴다.
예상대로 사령관의 행동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웬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팽창했다.
사령관은 다짜고짜 게릴라의 총상부터 손가락으로 헤집었다. 비명과 저주를 퍼붓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령관은 목소리의 높낮이 없이 그웬에게 말을 건넸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놈은?”
“..... 네, 네 명 정도 있습니다!”
“네 명이라.”
막스가 리볼버를 꺼냈다. 이를 본 게릴라가 기겁하며 입을 열었다.
“나, 남부 연합군에서 정보를 줬어!”
“내용은?”
막스는 게릴라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를 내밀었다. 살기 위해 눈치가 빨라진 놈은 목소리를 줄이며 말을 쏟아냈다.
“서부 사령관이 워싱턴으로 온다고. 제거하면 1만 달러와 장교로 등용해준다고 했어.”
“그리고 또?”
“...... 얼마 전. 퍼거슨을 죽인 것도 이유야. 사령관의 목을 따면 게릴라의 지도자가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
흩어진 게릴라 전체를 한 명이 지도하는 건 말이 안 되고. 일종의 명예였다.
순순히 말을 내뱉은 놈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막스가 서부 사령관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다른 역은?”
“우리가 가장 빨랐을 거야. 다른 게릴라들은 애팔래치아산맥 깊숙이 있거든.”
자신들이 소식을 가장 빨리 접했고 역과도 가까이 있었다. 리더가 무리한 공격을 강행한 건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네 놈들의 리더는?”
게릴라가 눈동자를 굴려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이마엔 구멍이 뚫려있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는 시체. 무식하게 작전을 강행해 부하들을 몰살시킨 게릴라의 리더였다.
막스는 몸을 일으키며 그웬을 쳐다봤다.
“소대장은 마저 뒷수습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게릴라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사령관님?”
"알아서 해."
‘사령관?!’
게릴라가 부들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막스를 바라보는 눈빛이 요동쳤다.
분노와 충격 뒤에 밀려오는 허탈감.
놈은 모든 걸 체념한 듯 이내 고개를 숙였다.
막스는 피치와 함께 역으로 향했다.
그곳엔 도망친 역무원이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전보를 보내는 곳이 어디지?”
이 시기엔 철로를 따라 전신주가 연결되어 있었다. 역마다 전보실이 있고, 전신 자격증을 취득한 자가 상주하여 소식을 주고받았다.
좁은 공간의 책상엔 서류들이 잔뜩이고, 위엔 통신장치(telegraph)가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엔 알파벳에 따른 점자가 찍혀 있었는데 일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모스 부호였다.
나무판 위에 길쭉한 쇠막대기가 눕혀있고 한쪽 끝을 두 개의 핀이 막대와 판을 이어진 모습.
막스는 자리에 앉아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그리고는 허공에 떠 있는 쇠막대기의 한쪽을 누르며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막스는 집중하느라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