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360)

그런데 젊은 사업가만큼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뻔뻔함과 넉살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프란시스 홀입니다. 일단 사과부터 해야겠네요. 귀찮은 일을 피하려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목적지가 어딥니까?”

프란시스 홀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같은 곳이 아닐까 싶은데요.”

‘내가 백악관에 간다는 걸 알고 있었군.’

존 브라운이 막스를 초청한 이유 중 하나는 이들과 관련이 있는 듯싶다.

그래서인지 프란시스 홀은 막스에게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렇다고 객실에서 주고받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럼, 거기서 봅시다.”

“알겠습니다.”

막스는 대충 인사만 건네고 등을 돌렸다.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쾅 소리와 함께 여러 명의 남자가 객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핑커톤 요원들이었다.

전쟁통에도 핑커톤은 기차 호송 임무를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각 주의 민병대는 전쟁에 동원대고 공권력에 공백이 생겨버린 때. 핑커톤은 제대로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번거롭겠지만 시체 처리 좀 부탁할게요.”

앨런 핑커톤과 막스의 관계는 파트너로서 여전히 유효한 상태. 굳이 서부 사령관을 내세우지 않아도 막스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했다.

요원들이 시체들을 기차 꼬리 칸으로 옮기는 동안. 소란을 피웠던 청년들은 일본인에게 했던 것처럼 막스를 찾아오진 않았다. 

오히려 있는 듯 없는 듯 입을 다문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차는 어느덧 클락스버그의 다음 역인 그라프턴에 도착했다.

- 갈아탈 거지?

- 응.

암살자들이 나타난 이상 기차 노선을 바꿔야 한다. 기차가 막 출발하려 할 때, 기습적으로 기차에서 내렸다. 

프란시스 홀과 일행들은 당황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일본인 조셉 헤코는 서둘러 막스처럼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막스가 코웃음을 쳤다.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네.”

“그러게. 미끼가 되었다는 걸 눈치챘나 봐.”

막스와 피치는 두 번에 걸쳐 기차를 갈아타고, 최종에는 피츠버그에서 볼티모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

워싱턴 DC, 펜실베니아 애비뉴의 윌라드 호텔.

막스와 피치는 체크인을 위해 프런트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피치는 기차 여정 내내 막스의 귀에 바짝 대고 말했는데, 워싱턴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키 차이가 제법 있음에도 굳이 까치발까지 세우며 속삭였다.

- 워싱턴까지 오는 데 무슨 20일이 넘게 걸리냐. 어서 빨리 씻고 싶다.

- 귀 간지러워 죽겠네. 입김 좀 그만 불어!

- 왜에, 싫어?

- 비밀 얘기도 아닌데 왜 그러냐, 진짜.

막스가 귀찮은 듯 말하자 피치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팔짱을 낀 채 볼에 잔뜩 바람을 불어 넣었다.

드디어 막스 차례. 

프론트의 여직원이 물었다.

“다음 고객님. 방은 어떻게 드릴까요?”

“방 두 개짜리 VIP···”

“노노, 무조건 하나짜리! 오늘 아주 죽여주겠어!”

뒤에 줄을 선 손님들이 키득거리고 막스는 황급히 피치의 귀에 대고 말했다.

- 미쳤냐?

“아우, 귀 간지러워. 비밀 얘기도 아닌데, 왜?”

둘이 옥신각신하는 걸 지켜본 여직원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죄송하지만, 남은 객실은 전부 방 두 개짜리 뿐입니다.”

“쳇.”

피치의 반응이 즐거운 듯 여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숙박부를 내밀었다.

“쓰세요.”

막스의 이름을 그대로 쓰긴 곤란하다. 

간단히 ‘E. P. 피치와 조’라고 썼다.

막스와 피치는 벨보이의 안내를 따라 호텔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검은색 쇠가 엮인 문이 걷히자 그 안에 들어간 피치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와! 나 엘리베이터는 처음 타 봐.”

‘촌스럽긴.’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초창기 엘리베이터.

내부를 훑던 막스의 시선이 회사 이름에 고정되었다.

미래에도 존재하는 오티스(Otis).

앞으로 고층빌딩이 넘쳐나고 엘리베이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터. 

오티스 지분과 주식도 노려볼 만했다.

방에 들어선 피치는 짐을 대충 내팽개치고는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막스는 창문을 통해 미국의 중심 워싱턴 도시를 바라봤다. 

도로와 나무들이 바둑판처럼 배열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백악관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는 불과 500m밖에 되지 않았다.

잠시 백악관을 응시하던 막스가 몸을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한쪽에 세워둔 라이플을 손에 들었다. 

직업적 본능이랄까.

천을 제거한 다음 스코프를 장착. 백악관을 조준했다.

각도 상 호텔에서 보이는 건 백악관의 우측 측면. 커다란 나뭇가지의 잎사귀가 걸리적거리지만, 마음만 먹으면 창문에 서 있는 자를 맞추는 것도 가능했다.

‘만약 저격한다면 겨울이 좋겠군.’

물론 막스가 한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 암살을 시도한다면 그 가능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같은 시각, 백악관.

창문에서 시거를 태우던 콜린이 저 멀리 빛에 반사되는 물체를 목격했다.

‘시벌, 저건!’

황급히 재떨이에 시거를 비벼끈 콜린이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로어! 로어 어딨어!”

어디에 있던 건지 네이선 로어가 집무실로 달려왔다. 콜린은 침을 튀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저격이 의심된다! 당장 윌러드 호텔에 가서 알아보고 와. 5층 맨 왼쪽이야!”

“오케이!”

네이선 로어는 SFBC 대원 다섯을 이끌고 윌러드 호텔로 향했다. 

너무 훈련이 잘 되어 있어도 문제였다.

*

피치가 욕실에서 나온 건 장장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촉촉한 머리는 수건으로 감싸고 하늘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피치가 살랑거리며 막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야릇한 눈으로 쳐다봤다.

“......”

“쫄긴. 누가 잡아먹냐?”

“왠지 그럴 것 같아.”

피치는 또다시 입을 귀에 가져다 대며 입김을 후 불었다.

“어서 씻고 와. 오늘은 우리 둘만의 시간이니까아아.”

“..... 어, 알았어.”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

막스가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그러다 다시 몸을 훽 돌려 가방에서 여분으로 챙긴 옷을 꺼냈다.

그런데 이때.

똑똑.

“?”

막스와 피치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똑똑.

“룸서비스입니다.”

서비스 업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추심에나 어울리는 걸쭉한 목소리.

미간을 찌푸린 피치가 속삭이며 물었다.

- 뭐 시켰어?

- 아니. 넌 일단 옷부터 입어.

잠시 망설이던 피치는 짜증 나는 얼굴을 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수상한데 이거.’

막스가 문밖을 향해 말했다.

“룸서비스 시킨 적 없습니다만.”

“VIP룸에만 특별히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그럼 그냥 밖에 놔두고 가시죠.”

“비대면은 곤란합니다, 손님.”

‘...... 미친.’

역시 수상하다.

막스는 발걸음을 죽이며 리볼버 세 자루와 탄띠를 챙겼다. 그리고는 서둘러 무장을 끝마쳤다.

“손님! 어서 문을 열어주셔야 제가 다음 일을 하죠?! 이러다 맛있는 음식이 전부 식겠어요!”

걸쭉한 목소리가 이제는 협박처럼 들려왔다.

막스는 기척을 숨기며 이번에는 가방에서 연막과 섬광, 수류탄까지 챙겼다.

“손님? 자꾸 이러시면 강제로 여는 수밖에 없습니다.”

“룸서비스 때문에 강제로 문을 딴다고?”

“...... 그게 제 임무니까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온갖 무장을 끝낸 피치는 방 입구에서 적이 진입하길 기다렸다.

끼긱, 끼긱.

문 따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빼꼼히 문이 열렸다. 동시에 팅, 소리와 함께 뭔가를 내던졌다.

‘서, 섬광탄?’

“야야야. 나야 나!”

터지기 직전 문이 열리고 놈들이 쳐들어왔다.

그것도 방패를 앞세우고.

“야이, 미친 새끼들아! 니들 보스라고으윽!”

펑. 찌이잉.

‘이게 눈뽕이구나.’

던질 줄만 알았지. 막스는 난생처음 섬광을 직접 경험했다.

*

“전부 기상.”

“기상!”

만나자마자 SFBC는 대가리부터 박았다.

막스는 대원들을 한명 한명 응시했다.

그리고.

“어흑.”

막스와 눈이 마주친 네이선 로어는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눈물을 흘렸다. 반가움의 눈물인지 막스에게 맞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솜씨들을 보니까 평소에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구나. 그동안 고생했다.”

막스는 대원들과 일일이 포옹을 하며 힘차게 등을 두드렸다. 다들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나저나, 피치는 섬광을 잘도 피했네.”

“내가 설마 그딴 거에 당하겠냐?”

피치는 막스를 힐끔거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의 치욕이 박제되는 걸 막고자 막스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언젠가 한 번은 경험해보고 싶었다.”

“예예.”

물론 씨알도 안 먹혔다.

일 년 만에 만난 터라 할 이야기가 많았다.

한참을 두런두런 앉아 대화를 나누던 때.

똑똑.

“룸서비스입니다.”

걸쭉하다 못해 시가에 쩐 목소리.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향했다.

네이선 로어가 웃으며 소리쳤다.

“문 열렸어요, 콜린!”

덜컥.

문이 열리고 리볼버를 든 콜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도 소식이 없길래 직접 왔더니.”

막스와 피치를 본 콜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서부 사령관이 있었네.”

*

“그래서 오늘은 밤새 술을 퍼마시겠다 이거지?”

피치의 말에 대원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가 왔다는 소리에 대통령은 그 즉시 SFBC 대원에게 2박 3일의 휴가를 내줬다. 

“경호는?”

“군인들이 있잖아. 가끔 교대도 하고 그러거든.”

“그렇구나.”

피치는 아쉬운 눈빛으로 술잔을 들이켰다.

한편, 막스와 콜린은 방에서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악관에 있다 보니 알겠더군. 동양인 사령관을 노리는 건 남부와 북부의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말야.”

남부의 경우 단순히 전쟁 때문에 서부 사령관을 죽이려 하지만, 북부는 좀 더 복잡했다. 막스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덩달아 북부의 적들이 사방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북부 총사령관 맥클레런을 지지하는 세력.

백인우월주의자. 대륙횡단 열차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 철도 사업가들.

어디 그뿐인가. 콜로라도 금광은 물론 동양인이 가진 사업체를 빼앗으려는 자들도 생겨났다.

“아무튼, 처음엔 첩자들이 남부 연합을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더라고.”

“내가 특수부대로 시작한 것도 굳이 나서서 적을 만들기 싫어서였어요.”

“그런데 대통령이 덜컥 서부 사령관으로 임명했지. 요즘엔 그 결정을 후회하더라고.”

전쟁은 승리하고 있지만 정작 막스가 위태로워졌으니. 존 브라운이 자책할만했다.

“대통령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군요. 내가 언제 목적 없이 움직이는 거 봤습니까? 성격상 거절할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수락하지 않았겠죠.”

율리시스 그랜트를 서부 사령관으로 만들었으니 그 목적은 달성했다. 그 때문에 미련 없이 서부 사령관을 내던질 수 있던 거고.

“그나저나, 일본인은 뭐예요? 기차에서 오다가 봤거든요.”

“그래? 그 친구들은 이틀 전에 도착했던데?”

“일이 있어서 경로를 수정했습니다. 아무튼 사업가랑 정치인이 함께 있던데, 목적이 뭐랍니까?”

콜린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얼마 전에 알게 된 건데. 조선을 일본처럼 개항하고 싶다고 말했대.”

‘역시 그거였군.’

조선만 놓고 보면 막스와는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거절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면 조선은 적들의 좋은 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일본인의 역할은요?”

“그냥 길잡이 정도. 일은 프란시스 홀이라는 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보니까 정치인도 있던데.”

“아, 그웬이라는 자는 이미 상원의원에서 물러난 자야. 캘리포니아에서 남부 연합 옹호하다가 정치 인생 종 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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