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2/360)

콜린의 말에 따르면 사업의 핵심은 프란시스 홀. 그는 일본에 3년간 머물면서 본격적인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번에 뉴욕에 사업체를 차렸다고 했다.

막스는 콜린과 대화를 나눈 끝에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흘러가면 원 역사보다 제네럴 셔먼호 사건이 더 빨리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어쩌면 자신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이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막스는 늘 남북전쟁 이후, 자신에게 벌어질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었으니까.

‘지금부터 준비해둬야겠군.’

모든 기반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는 준비를.

< 백악관에서 >

호텔에서 SFBC 대원들과 회포를 푼 다음 날.

막스는 콜린과 함께 백악관으로 향했다.

철제 울타리가 쳐진 백악관 입구.

콜린에게 인사를 건넨 경호원들의 시선이 막스로 옮겨졌다.

그러자 콜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막스를 쳐다봤다.

“스카프는 이제 벗어야 할 것 같은데?”

백악관 들어가는 데 강도처럼 보일 수야 있나.

막스는 스카프를 벗어 얼굴을 확인시켜줬다.

경호원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호, 혹시··· 서부 사령관이십니까?”

“동부 사령관이 아닌 건 확실하지.”

콜린이 대신 대답하며 막스와 함께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둥글게 만들어진 잔디. 그 가운데엔 미국의 3번째 대통령이자 독립 선언서의 초안자 토마스 제퍼슨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이를 지나쳐 로비로 들어섰다.

“피터, 대통령은?”

“집무실에 계십니다만.”

집사 피터 브라운의 시선이 막스로 향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직원들도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존경과 흠모, 동양인의 편견이 뒤죽박죽 된 눈빛이다.

콜린과 막스는 그들을 지나쳐 집무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오, 이게 누굽니까!”

집무실 앞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막스에게 다가왔다.

대통령 보좌관이자 존 브라운과 하퍼스 페리 습격에 동참했던 존 카기라는 남자였다.

면도도 안 하고, 옷도 지저분하게 입더니 지금은 말끔한 얼굴에 정장까지 입고 있었다.

하퍼스 페리에서 독기 서린 눈으로 총을 들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못 알아보겠는데요?”

“더 멋있어졌죠? 그런데 막스, 아니 서부 사령관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칭찬인 거죠?”

“물론입니다.”

짧은 인사가 오고 가는 중에 집무실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온 인물은 막스를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전쟁장관 에드윈 보스 섬너였다.

“잘 지내셨죠?”

“잘 지내냐는 소리가 나오나?”

존 브라운에게 자신을 전쟁 장관으로 추천한 게 막스. 전쟁이 터진 뒤엔 막스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덕분에 내 주름살이 많이 늘었네. 내일이면 또 생길 테니 지금 봐 두라고.”

웃음을 머금은 섬너가 악수를 청했다.

“아무튼, 마침 잘 왔네. 들어가지.”

섬너를 따라 집무실로 들어간 막스.

들어서자마자 길게 늘어진 커튼 사이로 창밖을 내다보던 존 브라운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왔습니다, 존.”

천천히 몸을 돌린 존 브라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역시 편지로 주고받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느낌부터가 다르다.

찰나의 시간 막스와 벌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서부 사령관.”

*

존 브라운은 보좌관에게 받은 서류를 막스에게 건넸다. 현 국정의 중요한 내용이 담긴 기밀 서류였다.

“읽어보고 자네 의견을 말해 주게.”

페이지별로 주요 쟁점이 되는 사안들이 적혀 있었는데. 막스는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연방의 징병제

- 태평양 철도 법(대륙횡단철도 법)

- 홈스테드 법(자영 농지법)

- 남부 연합의 외교 봉쇄

- 수정헌법 13조(노예 해방)

- 러시아 아메리카(알래스카) 매입

- 일본과 중국의 무역 및 조선의 통상

‘알래스카가 지금 시기였구나.’

크림 전쟁에서 프랑스와 영국에 패배한 러시아는 재정 악화에 시달려 자금이 필요했다. 게다가 영국이 알래스카를 침범하는 경우 러시아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해서 러시아는 영국과 사이가 안 좋은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미국과 러시아는 관계가 좋았다. 남북전쟁 기간에는 우방국이라 불릴 정도였으니까.

“전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캘리포니아 상원 의원과 국무부 차관보가 진행했던 건이었네.”

공교롭게도 상원 의원은 얼마 전 기차에서 봤던 윌리엄 그웬이라는 자였다.

“전쟁 중이라 보류되었는데 얼마 전 국무장관이 다시 꺼내왔더군.”

어차피 미국은 알래스카를 사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 영토 확장에만 초점을 두었지, 머지않아 그 땅에 매장된 엄청난 지하자원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될 테니까.

어찌 됐든, 주요 안건 중 가장 시급한 건 징병제와 대륙횡단 철도법으로 보였다.

막스는 각 항목을 두고 요목조목 짚어가며 대화를 주도했다.

“제 의견을 굳이 말한다면. 징병제의 경우 경계 주의 반발을 줄이려면 예외 항목을 두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경계 주로는 미주리, 켄터키, 테네시, 텍사스가 해당한다. 만약 이곳에서 강제로 징집이 이뤄진다면 일부는 게릴라 혹은 남군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농후했다. 혼란만 초래할 뿐이었다.

그리고 징병제 법안에서 가장 거슬리는 건 징집 조건이었다.

20~45세 백인 남성을 대상으로 복무기간은 3년이다. 문제는 징집에서 제외될 수 있는 항목이었다.

- 300달러를 내거나 대리 복무자를 내세우면 징집에서 제외된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저런 법안이 나왔다면? 당장 화염병 들고 시위할 일이었다.

막스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긴 어디 상식이 통하는 나라인가.’

법안을 만든 자들의 속마음이 훤히 보인다.

부자들이 그들에게 로비하는 모습까지도.

“남부 연합도 비슷한 조건이네. 20명의 노예를 제공하거나, 대리인에게 돈을 지급하면 면제되거든.”

“전쟁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존 브라운과 섬너 장관도 법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들들을 군대로 보낸 이들이 부자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없었다.

‘이 시기의 이 나라가 그런 거겠지.’

그렇다고 실망할 건 없다.

막스는 평등을 주창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앞날이 훤합니다. 돈이 없는 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거고, 곧 폭동으로도 이어지겠죠.”

실제로 원 역사에선 가난한 아일랜드인이 뉴욕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사건도 있었다.

“상식적인 선에서 법안을 바꾼다면. 이걸 이렇게 고치는 건 어떻습니까?”

막스가 수정한 내용을 종이에 끄적거렸다.

[300달러를 지급하는 자에겐 원하는 보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섬너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팔짱을 꼈다.

“교묘하군. 아주 교묘하게 바꿔놨어.”

“뭐, 여전히 불평등하긴 하지만 완전한 면제보단 낫지 않습니까? 정치인과 부자들도 무턱대고 반대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막스는 물을 한잔 마시며 말을 이었다.

“이참에 동부와 서부에 사병 훈련소를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기간은 6주, 훈련은 제가 시키겠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대한민국의 논산 훈련소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훈련이 끝나기 직전, 보직과 배치가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300달러의 운명이 갈라지는 거죠. 뭐, 일부는 훈련소에 자체 충원될 수도 있는 거고···.”

말끝을 흐리며 존 브라운과 섬너를 쳐다봤다.

빤히 쳐다보는 게 속셈을 들킨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거의 동시에 어이없다며 탄성을 내뱉었다.

“부자들의 자식들을 자네가 직접 관리하겠다, 이거지?”

“인맥 관리를 이런 식으로 하다니. 혹시 서부 사령관을 그만두는 것도 이것 때문인가?”

“...... 설마요. 무턱대고 전쟁터에 끌려올 젊은이들을 위해서 생각해낸 겁니다.”

“믿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두세.”

존 브라운과 섬너는 막스의 제안을 두고 짧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 끝에.

“자네의 말대로 수정안을 고쳐보도록 하지.”

“통과 안 될 수도 있네. 반발이 심할 수도 있으니까.”

그깟 반발쯤이야.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다만, 법안이 무리 없이 통과되려면 시점이 중요할 겁니다.”

현재 남부 연합이 징병제를 선포하는 바람에 북부의 젊은이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런 시기에 징병제보다는, 흑인부대를 먼저 창설하는 건 어떻습니까?”

막스의 제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몇몇 정치인들과 장군들이 흑인부대 창설을 요구했었다. 다만, 언론과 국민의 반발이 심해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지금 분위기라면 반대했던 자들이 오히려 반길지도 모르겠군.”

“흑인들이 자신들을 대신해주는 거니까요.”

“그럼 징병제는 언제가 적당할 것 같나?”

막스는 잠시 갈등하는 척했다.

그리곤 말하기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바라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북군 총사령관이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가 아닐까 싶은데요.”

존 브라운과 섬너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맥클레런이 아무리 꼴 보기 싫다 해도 전쟁에서 지길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맥클레런을 생각하면 비관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넨 승산이 없다고 보나?”

“이유가 뭔가?”

‘이유? 그냥 무능하니까 지는 거지.’

물론 돌려서 말할 필요가 있었다.

“스톤월 잭슨 장군이 워낙 뛰어나지 않습니까.”

“아, 망할 스톤월.”

*

섬너는 일이 있어 먼저 나가게 되었다.

“그럼 파티에서 보도록 하지.”

‘파티? 전쟁 중에?’

막스가 존 브라운을 쳐다봤다.

“자네 무훈도 기릴 겸. 자본가들의 전쟁 후원도 받을 겸. 복합적인 의미로 만든 자리네.”

“그렇군요.”

파티엔 북군 총사령관도 참석한다고 했다.

섬너가 나가고 집무실엔 존 브라운과 막스만 남았다.

“자네도 시간 나면 이걸 한 번 읽어보게.”

존 브라운이 건네준 건 콜린이 읽었던 일본 관찰기록 일지. 작성자는 프란시스 홀.

이 이름을 확인한 막스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조선에 관한 내용은 맨 뒤에 있네.”

존 브라운은 마치 해명을 요구하듯 팔짱을 끼며 막스를 쳐다봤다.

그 시선을 무시하며 책을 훑어갔다.

[조선은 과거 고려 멸망 이후 들어선 왕조로 경제·사회·정치·문화 수준이 낙후된 나라다.

염색 기술이 없어 흰옷을 즐겨 입고, 바늘이 없어 옷을 꿰맬 수 없으며 마차와 수레도 없어 머나먼 중국을 봇짐 메고 간다.

왕실과 사대부는 선진 문물을 멀리하고 지식인조차 새로운 걸 거부하는 지극히 폐쇄적인 국가다.

하지만 일본이 그렇듯 통상 조약을 이루어 강제 개항이 이루어진다면, 무역으로 인한 이익을 꾀할 수 있다.

낙후된 정도로 미루어볼 때, 일본보다 파급력이 클 수 있으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만큼 미국의 거점으로 중개 무역도 노려볼 만하다.]

“흠.”

“흠.”

막스는 내용을 보고, 존 브라운은 막스의 표정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프란시스 홀의 분석은 그럴듯하나, 정보의 근원지가 일본인이다 보니 왜곡된 점이 있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니까 조선은 가보지도 않고 쓴 것 같군요. 예를 들면 이겁니다. 남군에 가서 북군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이해가 쏙 되는 구만."

“특히 이 부분. 염색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흰옷을 즐겨 입습니다. 면으로 만든 옷을 그냥 입으면 누리끼리하거든요. 게다가 관직에 따라선 옷 색깔도 다양합니다.”

“엄청나군.”

“...... 아무튼, 그래서 프란시스 홀이란 사람이 원하는 게 조선과의 통상입니까?”

“말 돌리지 말고, 자네 머릿속에 있는 지식의 근원이 어딘지 그것부터 알려주게.”

막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감출 것이 무엇인가.

“두 살 때부터였을 겁니다. 천재라는 걸 깨달은 게.”

“......”

“프랑스에서 온 선교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서양의 기술을 접하고, 다섯 살 즈음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치더군요. 그렇게 백 가지를 알다 보니 천 가지에 능통하게 되고···.”

존 브라운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다시 막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그냥 넘어가세. 그리고 프란시스 홀의 제안은 보류할 생각이었네. 나라가 전쟁으로 난리인데, 조선과의 통상을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습니까?”

“프란시스 홀 뿐만 아니라, 중국에 있는 사업가들 역시 조선을 눈독 들이고 있네.”

상선을 끌고 나라마다 쑤시고 돌아다니는 무역상들. 그들에게 조선은 캐지 않은 금광이나 마찬가지였다.

존 브라운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자네가 조선인이라는 정보도 알고 있더군. 해서 이 과정에서 자네를 이용하려는 자도 있다고 들었네.”

“어떤 식으로 이용한단 말입니까?”

존 브라운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단 배 이름을 제너럴 조, 조선에서 온 전쟁 영웅이라고 썼다더군.”

“미친!”

아무래도 이 미친것들이 몇 년이나 빨리 조선을 찾아갈 것 같다.

< 어서 와, 회사는 처음이지 >

미국은 조선을 강제 개항시키려 강화도를 침공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신미양요.

발단은 미국의 한 사업가가 무장상선 ‘제네럴 셔먼’호를 이끌고 통상을 요구하다 살해된 게 원인이었다.

시기로 따지면 제네럴 셔먼호 사건은 남북전쟁 이후고, 신미양요는 그로부터 5년 뒤에 벌어질 사건이었다.

그런데 아직 남북전쟁이 채 절반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뭔가가 벌어지려 한다.

제네럴 조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몇 년의 시간 차이가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중국과 일본의 변화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개항하지 않으면 식민지가 되는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은 개항을 택했고. 이를 지켜본 조선은 빗장을 걸어 잠그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 미국이 끊임없이 바다에 출몰하며 개항을 압박하고 있는 지금. 철종 임금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안동 김씨에 의해 세도 정치를 이어가고 있으니.

조선은 분명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더구나 여기에 마지막 쐐기를 박을 고종의 즉위와 흥선대원군의 등장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백악관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

막스는 존 브라운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 조선의 개항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 다만 대륙횡단 철도와 같은 선상에서 보면, 자네에게 어떤 식으로든 위협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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