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4화 (184/360)

하지만 계획이 실행되기 전, 갑자기 남군이 진영을 이동하면서 전략이 꼬이더니.

진군하려던 곳에는 수많은 대포가 포진되어 작전을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대포가 가짜라는 게 밝혀진다. 남군의 총사령관이 통나무를 검게 칠해 대포로 위장한 것이었다.

원 역사에선 이 사건으로 맥클레란이 총사령관에서 경질되고 동부 사령관(포토맥 사령관)의 직책만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수개월의 공석 끝에 총사령관이 임명되는데. 막스가 협박해 섬너 장관의 행정 참모로 보내버린 헨리 할렉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 역사의 이야기고.

막스의 개입으로 비틀어진 지금.

맥클레란은 여전히 총사령관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군에게 철저히 농락당해 진군을 멈췄어야 할 맥클레란이지만 서부 전선의 연전연승으로 조급해진 그는 진군을 강행했다.

그 결과 적들의 함정을 간파하게 되는데, 우연히 얻어걸린 일이었다.

- 북군 총사령관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신문에 난 헤드라인 탓인지, 워싱턴 사람들은 리치먼드 공략을 앞둔 맥클레란을 응원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게 못마땅한지 윌슨 섀넌이 코웃음을 쳤다.

“솔직히 맥클레란이 한 게 뭐가 있어. 그냥 서부 전선이 연전연승하니까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변한 거야. 이번에도 승리할 거라 굳게 믿고 있는 거지.”

“맞아요. 올 초만 해도 워싱턴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잖아요. 그걸 누가 바꿨는데요.”

섀넌의 말에 러셀이 동조했다.

북부의 분위기가 반전된 건 정확히 막스가 서부 사령관이 된 이후부터였으니.

“텍사스에 이어 테네시, 켄터키까지 밀고 들어갔으면 말 다 했지. 남군에 스톤월 잭슨 장군이 있다면 우리에겐 서부 사령관이 있다고!”

“에이, 잭슨 장군은 비교도 안 되죠. 보스를 전쟁의 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막스는 둘을 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 둘이 지금, 월급 인상해달라고 이러는 거죠?”

섀넌과 러셀은 껄껄 웃으면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회의실에 전략적인 웃음이 퍼져나갈 때.

밖에 나갔던 직원이 뛰쳐 들어오며 소리쳤다.

“북군 총사령관이 올라온다!”

“우리 사무실로?!”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웅장해짐이 느껴지지 않는가.

서부 사령관에 이어 북군 총사령관이라니.

‘프리덤 에코가 이 정도였어!?’

직원들은 가슴 벅찬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주시했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덜컥.

북군의 장교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섰다.

이대팔 가르마를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조지 브린튼 맥클레란이었다.

“여기에 서부 사령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맥클레란의 시선이 사무실을 훑어간다.

직원들이 대답을 머뭇거릴 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나를 찾으셨나?”

북군 총사령관과 서부 총사령관의 만남.

뭔가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사무실 온도가 급격히 냉랭해져 갔다.

*

막스를 빤히 쳐다보며 맥클레란이 입을 뗐다.

“시카고에서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지?”

“아마도?”

막스와 맥클레란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핑커톤 빌딩 로비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앨런 핑커톤은 막스와의 미팅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화가 난 맥클레란은 그대로 핑커톤을 박차고 나가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서부 사령관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고는 줄곧 이를 갈아 왔었다.

첫 만남도 좋지 않은데다 자존감까지 높은 맥클레란이다. 동양인 서부 사령관이란 남군의 총사령관보다 더 짓밟고 싶은 대상이었다.

맥클레란이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강렬한 시선으로 막스를 쏘아본다.

그런데 이때 맥클레란 뒤에서 피치가 삐죽 튀어나왔다.

“사람 좀 지나갑시다.”

“오, 쏘뤼. 레이디.”

맥클레란이 신사다운 고귀한 몸짓으로 길을 터주었다. 피치는 종이봉투를 가슴에 품고 빵을 오물거리며 막스에게 다가와 옆에 섰다.

그 모습을 본 맥클레란의 눈빛에 아쉬움이 스쳤다. 여자를 밝혀서는 아니다.

아름다운 백인 여인이 동양인과 함께 서 있는 자체가 싫어서였다.

“맥클레란 소장. 나를 찾아왔으면 용건을 말해야지. 안 그래?”

막스의 도발적인 말투에 맥클레란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명색이 총사령관인데 부하 얼굴이라도 익혀두려고.”

“부하라. 계급장도 같은데 부하는 무슨. 다른 장군들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하나?”

“너만 예외야. 동양인한테까지 존중하고 싶진 않거든.”

뒷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쳐 보든가.

맥클레란의 일차원적인 유치한 도발에 막스는 오히려 웃음을 참고 있었다.

‘자아도취가 심한 건 알았는데, 심각하네.’

기자들이 있다고 더 기고만장한 건가.

막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시비 걸 시간에 차라리 남군을 공격해. 아니면 내가 리치몬드에 가 있을까? 그럼 움직일 것 같은데.”

“......”

맥클레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는 윌슨 섀넌을 쳐다보며 말했다.

“회의실을 좀 쓰고 싶은데.”

맥클레란은 대통령도 자기 밑으로 생각하는 자다. 고로 위아래가 없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윌슨 섀넌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러셀에게 회의실을 내주라고 했다.

*

자리를 옮겨 막스와 맥클레란의 독대가 이루어졌다.

밖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직원들은 대화 내용이 미치도록 궁금했다. 하지만 윌슨 섀넌이 일이나 하라며 손을 휘이 저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일은 기사에 내지 마. 기억에서 지워.”

“헐, 이런 특종을요? 북군 총사령관과 서부 사령관의 충돌! 이렇게 기막힌 헤드라인 보셨습니까?”

“프리덤 에코 기자, 변사체로 발견. 난 이 헤드라인이 더 끌리는데?”

기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오늘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누가 왔던가요? 혹시 보신 분?”

직원들이 키득거리며 다시금 일에 집중했다.

피치는 식당에서 담아온 음식을 막스에게 주고 한쪽에서 오늘 인쇄된 따끈따끈한 신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회의실 안.

음식을 내밀자 맥클레란이 미친놈이냐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막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빵을 입에 넣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배가 든든해야지. 그래야 전투도 하는 거고. 아, 아직 안 싸워봐서 모르나?”

“이죽거리지 마라.”

“열받으면 치던가.”

“이 자식이 진짜.”

사령관들도 똑같은 사람들이다. 아니, 대화를 들어보면 오히려 유치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진짜 이유가 뭐야?”

맥클레란은 팔짱을 끼우며 막스를 쳐다봤다.

“대륙횡단 기차. 대통령이 그 법안을 미룬 게 너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더군.”

“아, 기차 회사 부사장이었지 참.”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길래, 존 브라운이 네 말을 듣는 거지? 꼭두각시처럼 말야.”

“동양인이 백인을, 그것도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부린다는 건 과대망상이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대화에 갑갑함을 느꼈는지 맥클레란이 목을 압박하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까이하며 으르렁거렸다.

“대륙횡단 기차 사업에 얽힌 사람만 자그마치 2백 명이야. 그자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글쎄. 남의 생각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는데.”

동부에서 서부까지 이어지는 대륙횡단 열차에 두 개의 컨소시엄이 뛰어들었다.

센트럴 퍼시픽 철도(CPRR)와 유니온 퍼시픽 철도(UP)가 그것이었다.

전자의 경우 캘리포니아 사업가 네 명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문제는 후자인 유니온 퍼시픽 철도 이사진이다.

무려 163명의 정치인과 사업가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원 역사에서 링컨은 태평양 철도법이라는 제목으로 법안을 통과한다. 하지만 존 브라운은 지금껏 부정적인 태도만 보이고 있었다.

‘이 인간은 전쟁은 뒷전이고 철도만 생각했나.’

막스는 태연스럽게 맥클레란을 보며 말했다.

“나를 탓할 게 아니라, 법안이 통과되도록 대통령을 설득해야지. 이미 조건은 알고 있잖아.”

국가는 3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고, 철도 건설에 들어가는 제반 사항을 회사에 제공한다. 그리고 만기에 회사는 이자와 함께 채권 금액을 상환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회사에서 제시한 계획과 일치한다.

문제는 몇 가지 추가된 조건이었다.

인디언 영토로 지정된 곳은 합당한 매입 대금을 지급하거나, 이익을 공유해야 할 것.

이를테면, 인디언 영토의 기차역 부근의 토지를 정착민에게 판매하면 이익을 인디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으로 추산하면 당초 예상보다 10% 이상 초과하는 예산이 필요하다.

인디언 땅을 날로 먹으려던 철도 회사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예산의 증액을 떠나, 철도 회사가 반발하는 건 더 큰 이익을 얻을 기회를 잃기 때문이었다.

정부에서 인디언을 내쫓고 그 토지를 헐값에 매입. 정착민에게 비싸게 팔아서 얻는 수익이 줄어든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피자 8조각 중 단 한 조각도 내주기 싫은 식탐이요 탐욕이었다.

그리고 원 역사에서 링컨은 그들의 탐욕을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눈감아준다.

미국 땅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규모 사업에서 인디언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오히려 그들의 보호구역을 강제로 조정하고, 쫓아내고, 전쟁과 학살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대륙횡단 철도는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수많은 시체 위에 쌓인 성과였다.

이걸 그대로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그건 그때의 역사.’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한다.

막스와 존 브라운은 회사가 가져갈 이익을 인디언에게 일부를 돌려주려 했다.

그 때문에 철도 회사에서 이 조건을 받아들일 때까지 버티고 있었다.

“존 브라운이 무슨 생각으로 파티를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내일 너를 본 자들은 꽤 깊은 고민을 하게 될 거야.”

‘어쩌면 너를 제거하려 들지도 모르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시건방진 동양인.

그 모습을 확인한 것으로 오늘 목적은 달성했다. 맥클레란은 스산한 눈빛을 던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파티에서 보자고.”

맥클레란이 회의실을 나가려 할 때,

막스가 그의 등 뒤에 대고 말을 내뱉었다.

“어떤 이유가 됐든. 나를 건드리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야.”

순간 맥클레란의 머릿속엔 사지가 찢겨 나갔다는 테네시 게릴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듣기만 해도 연상되는 오싹한 상상에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하지만 그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다.

북군 총사령관은 비릿한 조소를 남기며 회의실을 나갔다.

‘홀리데이가 준비되는 대로 일을 진행해야겠군.’

두 개의 철도 컨소시엄 회사 중 하나를 잡아먹을 생각이다. 그게 어렵다면 새로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치고 나오던가.

막스가 대륙횡단 철도 법안을 두고 버티기에 들어간 건, 홀리데이의 등장과도 맞물려 있었다.

지금쯤 홀리데이는 기존의 애치슨, 토피카 및 산타페철도(AT&SF)를 확장해, 서부 전역을 대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을 터.

토피카 시장으로서 바쁜 와중에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여간 그 양반도 은근히 감투 좋아한다니까.’

로렌스에서 벌어진 와카루사 전쟁 당시,

고작 며칠 동안 대령이라는 직함을 받은 걸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홀리데이.

하지만 막스가 소장으로 진급한 이후 대령이란 칭호는 일절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

다음날 윌라드 호텔.

정장과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 한 쌍이 마차에 올라탔다.

“진짜 옷이 날개다, 날개야. 사람이 어쩜 이렇게 달라 보이냐.”

“그냥 원판이 좋은 거야. 모르겠냐?”

“전혀 모르겠는데. 그럼 난 어때?”

몸매가 드러난 검은색 드레스.

평소에도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 정점을 찍은 날이다.

피치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그나저나, 대령 직위 박탈 안 당하려면 방명록에 이름 바꿔야지 않아?”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뭐가 좋을까.”

콜린의 생각과 달리, 피치는 대령이라는 직위를 빼앗길 생각이 없었다. 이름을 바꿔서라도 유지하려 했다.

막스와 피치가 이름을 두고 토론을 벌일 때.

마차 한 대가 따라붙어 나란히 가게 되었다.

창문으로 피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미소와 함께 모자를 살짝 들어 인사를 건넸다.

피치가 이에 미소로 화답하며 속삭였다.

- 넌, 누구냐.

- 속으로 생각하면 될 걸, 대체 왜 속삭이는 거야?

- 내 맘이지. 넌 왜 속삭이는데?

- .....

둘이 속삭이는 동안 남자가 탄 마차는 줄곧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워싱턴에서 열린 파티 >

파티 장소는 워싱턴 북쪽에 있는 호텔.

막스와 피치가 도착할 즈음, 입구에는 마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사람들이 내리지 않고 기다린 이유는 땅이 질퍽하고 흙먼지가 심해서였다.

파티에 참석하기도 전 비싼 옷과 신발이 더럽혀져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레드카펫 대신 깔린 시멘트에 이르러서야 마차 문이 열렸다.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들은 남자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내려서고, 이내 입구를 향해 멋진 발걸음을 옮겼다.

미래의 차가 마차로 바뀌었을 뿐. 그 모습은 유명인들이 참석하는 파티와 비슷했다.

막스와 나란히 가던 마차에서도 남자가 내려섰다.

생각보다 커다란 키와 넓은 어깨, 날카로운 눈매에 나이는 막스 또래였다.

남자와 일행들은 경호원에게 초대장을 보이고, 이내 컨벤션 홀 안으로 사라졌다.

다음은 막스와 피치 차례.

마차에서 내려 시멘트 바닥을 밟고 입구의 경호원들에게 다가갔다.

SFBC 대원들이었다.

막스의 정장 입은 모습도 놀랍지만. 화장한 피치와 드레스를 본 그들은 믿을 수 없다며 눈을 껌뻑거렸다.

“...... 실례지만 누구신지?”

“닥치시구요.”

초대장을 설렁설렁 확인한 뒤엔 출입 기록을 위해 이름을 적으려 했다.

“보스는 막스 조고 피치는 에밀···.”

“노노노. 그거 아냐. 오늘은 웨딩 피치.”

“...... 장난해?”

“보스가 지어준 거야. 그 의미가 뭐겠어?”

“그냥 놀린 거 같은데.”

“뒈질래?”

오늘의 초대는 서부 사령관의 커플로서 참여한 것이지 참모의 자격은 아니다.

대령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이름 따윈 뭐가 되든 상관없었다.

피치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대원이 막스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기, 보··· 아니 서부 사령관님. 죄송하지만 스카프는 벗어야 할 것 같은데요.”

“아 참. 당연히 벗어야지.”

“혹시, 무기는 없죠? 그냥 규정상 물어본···!”

대원의 시선을 피한 막스가 허리 뒤에 숨겨둔 보위 나이프를 슬쩍 꺼내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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