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이 잡아먹을 듯 막스를 노려봤다.
어차피 나이도 비슷하겠다, 말투부터 거칠어졌다.
“너, 방금 우리 회사가 사기꾼이라고 말한 거지? 모욕적인 발언에 분명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막스는 문제없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소리엔 비아냥을 실어 말했다.
“내가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너, 프레몬트 소장에게 홀스 카빈을 개당 22달러에 납품하기로 했지?”
“그게 뭐가 어때서?”
홀스 카빈(Hall’s Carbines)은 1819년에 생산된 모델로, 플린트락 머스킷 라이플이다.
남북 전쟁 발발 당시 군 무기고에 있던 홀스 카빈 5천 정을 무기상이 구매했는데, 그 자금을 댄 게 모건의 회사였다.
점잖은 비즈니스는 사라지고, 분위기는 시장통에서 장사꾼과 고객이 싸우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때 홀스 카빈을 군으로부터 개당 3.5달러에 구매를 했던데. 내가 다 조사했거든.”
“.......”
“말이 없네. 아무튼, 그렇게 군에서 사들인 홀스 카빈을 서부 사령관이었던 프레몬트에겐 무려 22달러에 납품 계약했어. 이게 사기지. 안 그래?”
“뭘, 모르는구만. 우리가 홀스 카빈을 개조한 비용을 따져야지. 혹시 네가 그것 때문에 우리를 사기꾼으로 취급했다면···.”
막스가 또다시 손을 들어 모건의 말을 끊었다.
“내가 무기에 대해 좀 아는데. 그 개조 비용이 개당 0.75센트야. 그렇게 쳐도 한 정당 4.25달러란 소리지. 여기에다가.”
막스가 모건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프레몬트 소장에게 리베이트를 붙여서, 총 5배의 가격이 부풀려졌어. 근데 이걸 나한테 받으라고?”
‘.... 젠장. 뭔데 이렇게 잘 알아.’
매입가는 어떻게 알았으며, 개조 비용은 또 어떻게 알아낸 걸까.
모건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막스가 정곡을 찌른 탓에 대답하기도 어려웠다.
모건은 덩치만큼 큰 손을 쥐락펴락하며 흥분을 참고 있었다.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게 어때? 본전은 뽑고도 남았을 텐데.”
“만족?”
모건이 긴 탄식을 내뱉었다.
막스의 말마따나 본전을 넘어 이익을 보긴 했다. 작년 존 프레몬트가 서부 사령관이었을 때 홀스 카빈 2천 5백 정을 팔아치워 많은 이익을 남겼으니까.
하지만 그것 만으론 부족하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인 만큼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성공적인 투자란, 모름지기 이익을 남기고 재고를 남기지 않는 것. 모건은 나머지 2천 5백 정까지 처분해 성공을 맛보고 싶었다.
문제는 마땅한 판매처가 없다는 거.
처분하려면 군대밖에 없는데, 북군 총사령관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자기애가 강한 맥클레란은 정작 뇌물에 관심이 없었다. 해서 비빌 곳은 서부 사령부뿐이었다.
‘여기서 싸워봐야 얻는 게 없지.’
생각을 고쳐먹은 모건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쯤에서 협상하는 건 어때? 18달러에 납품하는 걸로.”
“말했잖아. 홀스 카빈은 이제 구닥다리고. 정 팔려면 남부 연합을 추천할게.”
“장난해?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럼 이건 어때.”
“헛소리할 거면 아예 하질 마.”
모건이 토라진 듯 고개를 돌렸다. 190cm에 달하는 덩치와 전혀 안 어울리게.
막스는 담담하게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 올렸다.
“오, 오 달러? 미쳤어?”
“지금 북군에 보급되는 라이플은 전부 최신식이야. 엔필드, 헨리, 스프링필드 라이플들이 줄줄이 대기 중인데 구닥다리 홀스 카빈을 누가 사겠냐고.”
“그렇다고 오 달러가 말이 되냐? 운송비용도 안 나온다고!”
막스는 말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손가락 한 개를 더 폈다.
“운송비용으로 1달러 추가해줬다. 이 이상은 안 돼.”
“하.”
한숨을 쉬면서도 모건의 머릿속은 복잡한 계산식이 떠다녔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재고를 털고 작은 이익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할 것인가.
고민 끝에 모건은 이쯤에서 무기 투자사업을 끝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계약서 쓰자.”
“콜. 다만, 이 건은 군대와는 상관없는 거야.”
“그건 또 뭔 소리야?”
모건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개인적으로 쓸데가 있어. 대신 자금은 내가 직접 낼 거야. 고작해야 2만 달러도 안 되잖아?”
“흠.”
서부 사령관이 콜로라도 금광과 관련되었다는 건 공공연하게 퍼진 사실. 그에게 2만 달러가 대수겠는가.
“뭐가 됐든. 대금만 제때 받으면 상관없어.”
“걱정하지 마. 앞으로도 너와 사업을 계속하고 싶으니까.”
“음?”
모건이 의아한 표정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그리곤 묘한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정글과도 같은 세상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한 욕망과 탐욕.
‘나와 같은 부류라 이건가.’
피부색은 달라도 동질감이 느껴진달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흥미를 느꼈다.
회의실을 나서는 막스는 모건과 나란히 걸어가며 생각했다.
철도, 금융, 석유, 철강.
JP 모건은 앞으로 돈 되는 일엔 전부 끼어들어 사업체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둘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터.
그렇다고 아군과 적군의 포지션을 정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었다.
파티장으로 돌아온 막스는 북군 총사령관 맥클레란을 볼 수 있었다.
주인공은 항상 늦는다는 철학. 어디선가 꼴도 보기 싫은 훈장 시상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음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나름 북군 총사령관이라는 직위 때문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그런데 하필 시선이 마주쳤다.
맥클레란이 사람들을 달고 막스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부통령과 전쟁 장관은 깡그리 무시하며.
“메달이 보기보다 안 어울리는군. 아무튼 축하는 하네.”
인사하기도 귀찮다. 막스는 가슴에 달린 메달을 위아래로 흔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눈가를 파르르 떤 맥클레란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뭐라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네요.”
막스가 또다시 자리를 이탈했다. 그 모습을 본 맥클레란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미소를 머금으며 대화를 주도해갔다.
맥클레란이라는 거대한 똥을 피한 막스는 프란시스 홀과 조셉 헤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눕시다.”
‘또?’
밝게 대화를 나누던 둘은 막스를 보자마자 금방 시무룩해졌다.
둘은 막스에게 끌려가듯 회의실로 향했다.
막스는 이미 둘에게서 일본에 관한 상당한 정보를 얻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몇 가지 계획을 세운 게 있었는데, JP 모건의 등장으로 좀 더 행동을 앞당길 수 있었다.
막스는 자리에 앉자마자 프란시스 홀을 쳐다봤다. 그는 뉴욕에서 무역회사를 만든 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차와 실크를 거래하려 했다.
“프란시스, 이왕 하는 사업 크게 한 번 해봅시다. 품목 추가할 생각 없어요?”
“어떤 거 말입니까?”
“무기요.”
“!”
프란시스 홀의 눈이 커졌다. 조셉 헤코는 뭔가 짐작을 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노··· 마사카, 막부를 무너트리려는 겁니까?”
“이해가 빠르네, 헤코. 사쓰마번과 조슈번에 무기를 대는 무기 상인이 있다고 했지?”
“하이, 또마스 브레이끄 그로바라는 스코뜨란드 상인데스.”
“그래, 그 이름.”
일본에서는 막부를 무너트려 천황의 권력을 회복하려는 운동이 일고 있었다.
그 세력은 사쓰마번(규슈)과 조슈번(야마구치현)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조셉 헤코와 프란시스 홀은 이 일에 관해 중요한 두 가지 정보를 제공했다.
무기 상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라는 스코틀랜드인의 개입.
그리고 그가 돕는 인물, 사카모토 료마에 관한 정보였다.
수백 년을 지속해온 막부정치를 붕괴시키고 메이지유신 시대를 연 시대의 풍운아.
알고 보면 사카모토 료마의 뒤에는 무기상의 역할이 상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막스는 무기 상인과 료마의 관계를 비집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2천 5백 정의 라이플을 줄 테니까, 사카모토 료마와 거래를 터봐요.”
“그렇게나 많이요?”
“스, 스고이!”
조셉 헤코는 나름 계산이 끝난 듯 의욕적인 얼굴이었다. 무기 거래로 인해 일본 내, 자신의 위치를 상상하는 듯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프란시스에게 큰 기회가 될 겁니다. 이번 일에 대원 몇 명이 따라갈 건데, 정해지는 대로 말해줄게요.”
뉴욕 트리뷴의 기자였던 프란시스 홀.
그의 입장에서 서부 사령관과 손잡는다면 손해 볼 게 전혀 없었다.
일본에서의 사업을 확장하는데 무기까지 거래할 수 있다면 날개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됐고, 일본에나 집중하자.’
프란시스 홀은 기억 저편으로 조선 통상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막스의 이번 일은 결국 조선을 향한 첫 단계에 불과했다.
*
파티를 끝내고 돌아온 호텔.
피치와 잠시 짬을 낸 콜린도 함께였다.
“그래서 일본에 무기를 거래하겠다고?”
막스의 이야기를 들은 피치와 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범한 사람이 무기를 거래하기엔 좀 위험한 거 아냐?”
“반란군과 정부군 양측에서 줄다리기해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거야.”
막스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미국인 사업가가 일본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 나라에서 그냥 두고만 보진 않을 거잖아?”
막스가 바라는 건 미국이 일본에 개입하는 것.
프란시스 홀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가면, 막스는 자연스레 일본에 교두보를 만든 셈이 되고. 반대로 문제가 생기면, 미국을 등에 업고 일본에 개입하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
어느 쪽도 손해가 아니었다.
< 볼 일만 보고 가자 >
“콜린,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란 인물 좀 알아봐 줘요. 힘들면 대통령에게 요청하고.”
“뭐, 그 정도는 내 선에서 할 수 있지.”
백악관에 머무는 동안 콜린의 인맥도 나름 두터워졌다. 참모들과는 가끔 술도 마시고 포커 게임도 즐기기까지 했다니까.
“그런데 너 밴더빌트 못 만났지?”
“누구?”
피치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거물 이름이 튀어나왔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몰라? 그 사람 엄청 부자라던데.”
모를 수가 있나. 이 시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업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힐 정도인데.
“그 사람이 왜?”
“파티장에서 너를 찾았었거든. 결국 못 만났나 보네.”
밴더빌트는 증기선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사업가의 본능인지 그는 남북전쟁 이전부터 해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철도 산업에 뛰어들어 엄청난 자본력으로 철도 노선을 사들이며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설마 대륙횡단 기차 때문인가?”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것 때문에 백악관에 몇 번 찾아왔거든. 근데 또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어.”
밴더빌트가 몇 차례 백악관을 드나드는 바람에 콜린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증기선을 기부했고, 막스와 같이 훈장을 받은 해군들의 뉴올리언스 원정 역시 밴더빌트의 자금이 들어갔다고 했다.
“이게 전부 막내아들 때문이야. 곧 웨스트포인트서 졸업하거든. 아마도 믿을 수 없는 맥클레란보다 서부 사령관 밑에 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은데.”
“그런 이유라면, 안 만나길 잘했네요.”
어차피 서부 사령관은 오늘부로 끝이다.
훈장 수여가 끝난 직후, 존 브라운은 율리시스를 서부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것 때문인지 피치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원래대로 특수부대 대장인 거네. 좀 아쉽다. 솔직히 총사령관까지 할 줄 알았는데.”
“그게 가능하겠냐.”
존 브라운이 대통령이니까 그나마 서부 사령관까지 될 수 있었다. 그 이상은 조지 워싱턴이 무덤에서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맞다. 근데 아까 해군 장교가 너한테 뭘 준 거야?”
파티가 끝날 즈음. 훈장을 받은 USS 하트포드 함장 데이비드 패러거트가 막스를 찾아왔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선물했는데.
막스가 품속에서 패러거트가 준 것을 꺼내 활짝 펴 보였다.
“해군들이 착용하는 스카프네?”
“봐봐라, 여기 이름도 새겨졌지.”
짙은 남색 스카프 모서리 끝엔 작게 ‘막스 조를 위하여’라 새겨 있었다.
해군이 이렇게까지 막스에게 선물할 이유가 뭘까. 피치가 고개를 꺄웃거렸다.
“지난번 뉴올리언스 함락 작전에 내 역할이 좀 있었지.”
“무슨 역할?”
“해군에서 처음 그 작전을 계획했을 때, 맥클라렌이 반대를 했었거든. 무모하다고.”
화가 난 데이비드 패러거트 함장은 포트 헨리와 도넬슨에서도 함께 작전을 수행한 서부 사령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해서 막스는 직접 존 브라운에게 편지를 써 해군의 작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여기에 더해 확실한 승리를 위해 육해전 연합 작전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존 브라운은 반강제로 맥클레란으로부터 한 개 사단을 빼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뉴올리언스 전투는 해군과 육군의 공조로 얻어낸 승리였다.
막스는 편지와 몇 가지 의견을 낸 게 전부였으나, 패러거트는 고마움을 잊지 않고 선물과 함께 다음의 말을 남겼다.
- 함께 배를 탈 기회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 모시도록 하죠.
- 서부 사령관이 아니어도 유효합니까?
- 물론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이전처럼 해군 함선들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게 된다.
일부는 외교관들과 사업가들을 호위하며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나들 터. 미래를 위해서라도 해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늦은 밤. 피치가 호텔 방을 빠져나갔다.
옥상 문을 열자 그곳에는 한 여인이 피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 잘 지냈냐?”
“그럭저럭. 넌 어때?”
케이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일이 제대로 안 풀린다는 뜻이었다.
“워싱턴에 첩자들이 수두룩해. 그동안 몇 명을 잡아냈긴 했는데, 머리를 아직 못 잡았네.”
“너, 얼마 전 서부 사령관이 습격당한 일은 알고 있지?”
“어. 그거 입 싼 맥클라렌 때문이야. 멍청하게 남부 스파이 로즈 오닐 그린하우에게 서부 사령관이 파티에 참석한다고 떠벌렸거든.”
“하, 진짜 미친놈이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케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멍청한 거라고 했다.
“맞다. 서부 사령관은 그만뒀다며?”
“앞으로 율리시스 그랜트가 사령관이야.”
“그럼 넌 이제 어디로 가?”
“일단은 뉴욕에 한 번 들리려고.”
피치의 말에 케이트가 눈을 크게 떴다.
“너, 혹시 그거야?”
“뭐가 그거야.”
케이트가 눈을 가늘게 떠 피치를 쳐다봤다.
“평생 혼자 살겠다고 하지 않았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죽겠다며.”
“뭔, 개소리야.”
부정한 피치는 문득 케이트의 브로치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