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는 말없이 척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뭐, 뭔데?”
막스는 척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고기가 부드럽고 맛이 기가 막혔던 건 제쳐두고. 구내식당에서 일할 미래의 멋진 그림은 구석에 밀어두고.
짜악.
번개처럼 손을 뻗어 뺨을 후려쳤다.
고개가 반쯤 돌아간 척이 허리 뒤에서 손도끼를 꺼내려 할 때. 막스의 손이 목줄기를 움켜잡고 벽에 밀어붙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 여동생 팔아넘기려고 했다며?”
“!”
척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도끼로 뻗었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솔직히 할 말은 있었다.
그 일이 있는 직후,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고 여동생한테는 한동안 인간 취급도 못 받을 만큼 고통받았으니까.
그런데 수년이 지난 지금.
여동생과 함께 온 근본도 모르는 놈이 그 일을 들춰냈다.
그것도 자기를 때리고 목을 조르면서.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분노, 황당, 수치, 그리고.
“빌리, 그 새끼 지금 어딨어.”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눈물이 맺혔다.
< 도와줄 필요 없어요>
치채스터(Chichesters)는 아일랜드인으로 구성된 파이브 포인츠의 갱단이다.
데드 레빗처럼 보스가 여러 명이고 그중 하나가 빌리 레디. 살인, 강도, 아편과 도박장에도 깊숙이 관련된 인물이었다.
조직원은 대략 백여 명. 저녁 이후 빌리 레디는 모트 스트리트 11번 가 골목 아지트에서 부하들과 술을 마시곤 한다.
그런데.
“거, 거길 혼자 간다고? 이 시간에? 보자마자 널 죽일지도 모른다고!”
“오히려 잘됐네. 어쨌든, 이 일은 피치 가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그것만 기억해 둬.”
“...... 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막스는 대답 대신 눈을 가늘게 떠 척을 응시했다.
“에밀리에겐 말하지 않을 거지?”
그렇게 질문만 던진 채 막스는 등을 돌려 멀어져갔다.
‘말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척은 부어오른 뺨과 아직도 얼얼한 목을 어루만졌다. 폭풍처럼 몰아친 상황을 곱씹어보면 아무것도 못 한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동양인의 정체는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업가는 아닌 것 같은데.’
여동생의 과거 때문에 홀로 갱단 두목을 찾아간다? 그것도 맨손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놈이 분명했다.
게다가. 동양인은 불현듯 어느 상점에 이르러선 문을 닫으려는 여사장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 개 파는 아줌마?’
척이 눈을 껌뻑거렸다.
잠시 후, 막스가 개 한 마리를 사서는 목줄을 채워 유유히 끌고 갔다.
‘대체 뭐 하는 새끼냐고!’
이 상황에 개는 왜 샀을까. 척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휴, 이젠 나도 모르겠다.’
길게 한숨을 내뱉은 척은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
막스는 아무런 준비 없이 빌리 레디에게 쳐들어갈 만큼 흥분하지 않았다.
척이 생각한 것처럼 맨손으로 싸울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넬른 호텔.
입구에 있던 경비가 막스를 제지했다.
“죄송하지만 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앞에 묶어두는 건 괜찮죠?”
“뭐, 그건 상관없지만···.”
“왈! 왈!”
3대 지랄견 중 하나인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이 경비를 향해 짖어댔다.
오는 내내 막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는 못 맡아둡니다.”
“잠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꼭 찾아가셔야 합니다.”
“으르르르. 왈! 왈!”
막스는 개를 힐끔 쳐다본 뒤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덜컥.
방문을 열어 주변을 훑어봤다.
요청대로 청소하지 않은 그대로다.
막스는 침대 밑에 숨겨둔 가방을 끄집어냈다.
그 안에서 리볼버와 보위 나이프, 그밖에 섬광과 연막탄을 꺼냈다.
리볼버의 약실을 채우고 빠르게 장전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퀵로더에도 총알을 채워 넣었다.
모든 무장을 마무리하고 코트를 입었을 땐 제법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시간은 밤 9시.
창가에 선 막스는 하나둘 불빛들이 꺼지며 어둠으로 물드는 도시를 바라봤다.
머릿속으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시뮬레이션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서 있던 끝에.
‘이제 전쟁을 시작해 볼까.’
막스는 호텔 방을 벗어났다.
모자는 썼지만, 스카프는 두르지 않은 채였다.
로비를 나가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마다 막스를 힐끔거렸다. 입구의 경비원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주, 중국인이었어요?”
“조선인입니다만.”
“으르르. 왈! 왈!”
‘그냥 아무나 보면 짖는구나.’
막스가 실소를 흘리는 사이 경비가 개 줄을 건네줬다. 그 틈을 노리기라도 하듯, 도망가려 짖어대고 아등바등 몸부림을 쳤다.
“그럼 잠시 산책 좀 하고 오겠습니다.”
“......”
‘개를 또 데려온다고?’
경비는 멀어져가는 동양인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조선은 또 어디에 있는 나라지?’
뉴욕에 있는 지저분하고 가난한 중국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지 않은가.
호텔 숙박료만 해도 하루에 5달러.
이것저것 동양인과 비교해본 경비원은 자괴감이 들었는지 긴 한숨을 내뱉었다.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는 다섯 개의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
막스는 워스 스트리트를 따라 파이브 포인츠 교차로가 있는 서쪽으로 걸었다.
도시라서 그런가, 밤이지만 사람이 제법 많다.
막스는 걸어가는 곳마다 시선을 집중시켰다.
코커스패니얼과 유유히 산책하는 동양인?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한 광경이었다.
“왈! 왈!”
‘진짜, 더럽게 시끄럽네.’
전생이든 현생이든.
막스는 애완견이라면 질색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번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척과 식당에서 헤어지고, 우연히 애완견샵을 지나칠 즈음. 창문에서 왈왈거리는 코커스패니얼을 본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걸 실행하려 한다.
‘파이브 포인츠를 누비고 다녀 보라고.’
막스가 손에 쥐고 있던 줄을 놓아 버렸다.
남들이 보기엔 실수로 놓친 듯 보였다.
“어머! 어떻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는 사이.
코커스패니얼은 어디론가 미친 듯이 뛰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막스는 세상 다 잃은 주인처럼 개 이름을 부르짖으며 쫓아가고, 사람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이를 지켜봤다.
“빌리! 빌리!”
잠시 후.
개를 찾는 대신, 막스는 파이브 포인츠의 북쪽. 모트 스트리트의 어둡고 음울한 도시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악취가 진동하고 지저분한 길을 따라 걷던 중.
담배 연기에 휩싸인 세 남자와 맞닥트렸다.
시끄럽게 떠들던 목소리가 잦아들고 놈들의 시선이 다가오는 막스를 위아래로 훑어내린다.
어둠에 가려진 얼굴이 드러나자 놈들이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뭐야.”
“동양인 새끼가 여긴 왜 기어들어 왔어?”
놈들이 흐느적거리며 막스를 가로막는다.
그중 덩치 큰 놈이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접근했다.
“뭐 하는 놈이야?”
“미안하지만, 갱단 이름이?”
“그 유명한 치채스터 갱단···. 시발, 내가 왜 대답하고 앉아있냐. 야, 너 돌아이야?”
“그나저나.”
덩치가 주먹을 내 뻗기 전, 막스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혹시, 내 빌리 못 봤냐?”
코앞에서 막스를 마주한 덩치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미친 새끼가 뭔 개소리···!”
퍽!
순간 막스의 왼쪽 손날이 놈의 목을 올려 친다. 곧이어 뒤로 밀려나는 놈의 얼굴을 오른 주먹으로 후려쳤다.
빠각.
머리채를 잡아 벽에 얼굴을 처박은 뒤엔 또 다른 타겟과 거리를 좁혔다.
칼을 들려는 놈의 손목을 잡아채고 칼을 빼앗고. 이를 옆에 있는 놈에게 내 던졌다.
푹.
순식간에 두 명을 제거한 막스는 칼을 빼앗긴 놈의 목을 움켜잡았다.
“빌리 어딨어.”
“.....고, 골목 끄, 끝··· 도박장.”
“역시 개새끼가 거기에 숨어 있었구만.”
막스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놈의 숨통을 마저 끊어 놓았다. 그리고는 유유히 골목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시각. 파이브 포인츠 골목의 피치 가.
집에 돌아온 척은 고민과 갈등 끝에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보자마자 아버지와 형이 칼부터 찾았다.
어찌 됐든, 이 일로 인해 피치 가문의 긴급회의가 이루어졌다.
머리를 맞댄 사람은 아버지와 척, 마틴.
그리고.
“에밀리, 아무래도 그 동양인이 너를 짝사랑했던 모양이구나.”
“완전 미쳤다니까요. 빌리도 그 정도는 아닐걸요? 갑자기 개를 샀다니까요, 개를?!”
“정상이 아니긴 하네.”
피치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확실히 개를 샀다는 말엔 제정신인가 의구심이 들긴 했다.
하지만 막스가 누구인가. 절대 이유 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남자였다.
‘뭔가 있겠지.’
물론 막스의 진가를 모르는 아버지는 혀를 차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동부에서 미친놈을 피했더니 서부에서 미친놈을 만났구나. 가여운 에밀리.”
“...... 도저히 안 되겠네요.”
피치는 아버지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어야 했다.
“사실 막스를 짝사랑하는 건 저예요.”
아버지와 오빠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폭탄급 선언이었다.
“말도 안 돼!”
“동양인을? 그것도 에밀리 네가?”
“호들갑 떨지 마. 오빠들보단 훨씬 멋있는 사람이니까.”
“......”
지은 죄가 있는 오빠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콧대 높고 성격 지랄맞은 여동생이 동양인을 짝사랑한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너, 혹시 무슨 협박···.”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피치가 눈을 흘기자 마틴이 다시금 입을 닫았다.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긴 아버지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선택하는 사람이 누구든 응원할 생각이다. 동양인이든 흑인이든, 네 눈에 멋지다면 그런 거겠지. 다만.”
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용기에 비해 멍청하고 무모한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지금껏 지켜봤지만, 그 남자는 절대 무리한 짓 안 하거든요.”
오빠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콩깍지가 아주 제대로 씌었는지, 여동생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서부에 있더니 완전히 감을 잃었네. 여긴 파이브 포인츠야. 온갖 범죄자들이 은신처로 삼을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라고.”
“지금 그 동양인이 상대하는 게 치채스터야. 살인, 강도가 일상인 갱단이라고.”
“그만.”
아버지가 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사랑한다는 남자가 자신을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저 여유는 대체 무엇일까.
아버지로서 딸의 근거 없는 막연한 믿음을 어찌해야 할까.
만약 그 결과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면?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내가 보기엔 너 혼자만의 짝사랑은 아닌 것 같은데. 서로 마음은 확인한 게냐?”
“....... 그 사람도 저를 좋아하긴 해요.”
“목소리에 자신이 없구나. 좋아하는 것만으로 이런 무모한 짓은 안 할 텐데?”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피치가 말을 이었다.
“동료라면 누가 되도 그럴 사람이라, 솔직히 저도 모르겠네요.”
동료를 소중히 생각한다 이건가.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었군.’
아버지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네 남자를 구하러 가야겠구나.”
“아버지!?”
“지금 가면 치채스터와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동맹이 깨진다구요!”
피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오빠들을 쳐다봤다.
시간이 흘러도 변한 게 없었다.
그에 반해, 아버지의 변화는 의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