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2화 (192/360)

같은 시각.

피치가의 집에 또다시 긴급회의가 열렸다.

현장을 보고 돌아간 아버지는 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갱단들의 반응이 워낙 다양해서.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이 안 가더구나.”

“다들 오해들이 장난 아니던데. 솔직히 누가 혼자 그 짓을 벌였다고 생각하겠어?”

“근데, 그 동양···. 아니 서부 사령관은 왜 자수한 거야? 너는 봤을 거 아냐.”

사건 당시. 총성이 들리자마자, 피치는 집을 뛰쳐나갔다. 하지만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 모든 상황은 끝이 난 뒤였다.

경찰들이 몰려오고 막스는 보이지도 않았다.

괜한 의심을 살까 싶어 피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둠 속에서 막스가 튀어나왔다.

- 뭐야, 내가 올 줄 알았었어?

- 반반?

막스는 웃으며 무기들을 내밀었다.

- 이것들 좀 가져가 줘.

- ...... 넌 어디로 가게?

- 개 찾고 자수하러 갈 거야.

- 개는 진짜 뜬금없다. 못 찾으면?

- 그럼 마는 거지, 뭐. 그나저나, 나 빼내려면 프리덤 에코의 지부장한테 알려야 할 거야. 다시 나와서 더 아수라장으로 만들어야 하거든.

오늘 현장 분위기를 봐선 가능해 보였다.

여기서 몇 번 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막스는 교묘하게 피치가를 애매한 위치로 만들었다.

피치와 동양인의 관계.

현재 상황으로는 다른 갱단들의 반응이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과 같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 오빠들은 눈치를 살피며 의도치 않게 몸을 사려야 했다.

*

테론과 조사관이 복귀할 즈음.

뉴욕시 경찰국을 중심으로 거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치채스터 갱단과 연결된 뉴욕시의 정치인들과 사업가들. 그리고 막스와 연결된 자들이 속속들이 뉴욕 경찰국으로 향했다.

과연 누구의 힘이 더 큰지, 현재로선 알 수 없었다.

< 타마니 홀 >

뉴욕 경찰국 회의실.

경찰국으로 복귀한 테론과 조사관, 탐문조사를 벌인 형사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했다.

“우선 용의자가 개를 산 건 사실입니다. 애견샵 주인이 두 살 된 코커스패니얼을 팔았다고 진술했습니다.”

“호텔 경비도 자신이 직접 개를 데리고 있었답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엔 용의자가 산책시킨다며 개를 끌고 갔고요.”

“동양인이 호텔에서 머물면서 개까지 산책시키는 건 흔한 광경은 아니지. 목격자는?”

조사관의 말에 한 형사가 대답했다.

“다섯 명을 만나봤는데 진술이 일치했습니다. 용의자가 파이브 포인츠 교차로에서 개 줄을 놓쳤다더군요. 개 이름이 ‘빌리’라는 것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빌리···. 빌리를 찾다가 빌리를 죽였다 이건가.”

조사관의 말에 아무도 웃음을 흘리지 않았다.

어색한 적막함이 흘렀다.

어찌 됐든.

개를 놓친 다음에 벌어진 일은 현장 조사를 마친 테론과 조사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사관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건을 정리했다.

“개를 찾으러 간 용의자가 골목에 들어서고. 마주친 치채스터 갱단원마다 시비를 걸었다. 백인에게도 위험한 골목인데 동양인은 오죽했겠어? 아주 자연스럽게 일이 시작된 거지.”

결국 모든 상황은 용의자의 진술과 일치한다. 시비를 건 갱단을 죽인 건 결국 정당방위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사관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NYPD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되지. 유독 잔인하게 빌리 레디가 살해당한 점. 산책하는 놈치곤 쓸데없이 탄약을 많이 들고 있던 점. 이 모든 게 가리키는 건 하나.”

조사관의 눈빛이 반짝였다.

“용의자는 사건의 본질을 숨기기 위해 개를 알리바이로 쓴 게 확실하다!”

“오오.”

NYPD 조사관다운 엄청난 추리력.

형사들의 탄성에 조사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범인은 혼자가 아니라, 집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갱단일 가능성은 99.99999%!”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을까.

“그것이 알고 싶나?”

형사들이 갈구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조사관은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그건, 이제부터 저 위에 있는 놈을 족쳐서 알아볼 것이다. 저놈은 어차피 이 일을 감추기 위한 꼭두각시니까.”

조사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의실을 벗어나는 그의 뒤를 테론이 쫓아갔다.

‘드디어 직접 대화를 나누는구나!’

조사관의 추리가 맞든 틀리든, 테론의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이번 사건도 그렇고, 여러모로 서부 사령관과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티모시 조사관!”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부국장이 소리친다.

고개를 돌린 테론은 몇몇 요주의 인물을 볼 수 있었는데, 뉴욕에서 나름 이름있는 자들이었다.

그중 전혀 정직하지 않은 ‘어니스트’ 존 켈리가 티모시 조사관을 찾았다. 그는 작년까지 뉴욕시 보안관으로 있던 자였다.

“티모시, 나와 잠시 이야기 좀 나누지.”

“그러시죠.”

조사관은 존 켈리를 그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홀로 남은 테론은 입맛을 다시며 주변 인물들을 쓱 훑어봤다.

‘죄다 타마니 홀 정치인들이구먼.’

타마니 홀(Tammany Hall)은 1786년에 설립된 도시 빈곤층과 이민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지역 소사이어티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이후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타마니 홀은 뉴욕시의 주류 정치기구로 급부상했다.

주목할 점은 현재 타마니 홀을 장악한 건 아일랜드 이주민들. 그들은 데드 레빗, 치채스터와 같은 아일랜드 조직을 이용해 자신들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사건 하루 만에 찾아온 걸 보면 뭔가 있긴 한 데.’

그게 뭘까.

죽은 빌리 레디? 아니면 서부 사령관?

무엇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이제 올라가지.”

조사관이 테론의 어깨를 두드렸다.

둘이 계단을 올라가려 할 때, 한 남자가 경찰국 안으로 들어섰다.

뉴욕, 아니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였다.

‘저자가 여긴 왜 온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던 테론은 이내 조사관과 함께 심문실로 향했다.

*

심문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조사관과 동양인의 심문이 시작됐다.

진술과 현장 조사를 토대로 추궁하지만, 조사관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냉철하던 그의 얼굴에도 슬슬 짜증과 분노가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어느 갱단에서 이번 사건을 꾸몄지?”

“마지막으로 대답한다. 잘못 짚었어.”

조사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 내 신경 건드려서 좋을 거 없을 텐데.”

“미투.”

용의자가 조사관을 농락한다.

미친 새끼가 확실했다.

“...... 내가 어떻게 보고하느냐에 따라 네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단 말이다. 이 멍청한 동양인 새끼야!”

“내 이름은 막스 조다.”

조사관이 주먹을 꽉 쥐며 부들거렸다.

초인적인 인내력도 마침내 한계인 듯,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른 분노가 폭발했다.

쾅!

조사관이 탁자를 내리치더니, 벌떡 일어나 막스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휘이잉.

크게 궤적을 그리는 주먹을 막스는 가볍게 고개를 젖혀 피했다.

“!?”

더욱 화가 치민 조사관이 다시금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막스가 두 손을 치켜든다. 그리곤 수갑으로 상대의 손목을 휘감아 책상으로 내리꽂았다.

쾅.

동시에 소매를 잡아 무너진 조사관의 상체를 끌어당겼다.

꽈악. 막스가 수갑 찬 손으로 목을 움켜잡고는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조사관을 노려봤다.

“나 혼자 처리했다고 했지.”

“......커걱.”

숨이 막힌 조사관의 얼굴이 터질 듯 붉게 타오른다. 손을 허우적거리다 다급히 홀스터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더욱 거센 힘이 목을 옥죄였다.

“누가 더 빨리 죽는지 내기할까?”

철컥.

“그, 그 손 놓으십시오.”

테론이 막스에게 총을 겨눴다.

어찌 됐든 자신은 경찰이고, 여긴 경찰국이다.

보고만 있을 순 없는 일이었다.

막스의 눈빛이 싸늘히 가라앉고, 심문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그런데 이때.

끼이익.

철문이 열렸다.

나타난 인물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여기 있다더니 진짜였군, 서부 사령관.”

“지금은 그냥 제너럴 조죠.”

막스가 손에 힘을 풀자. 숨을 헉헉거리던 조사관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반응이 느린 건지 테론은 총을 든 채였다.

부국장과 경찰들이 뛰쳐 들어와 그를 덮쳤다.

“오, 오햅니다, 오해!”

“오해는 뭐가 오해야. 여기서 총은 왜 겨누고 있는데, 이 꼴통 새끼야!”

“아씨!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이 새끼, 이젠 나까지 쏘겠는데?”

소란이 이는 동안 조사관은 막스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머릿속은 심문실에 오기 직전. ‘어니스트’ 존 켈리와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 워싱턴에 확인해본 결과. 서부 사령관이 뉴욕에 왔다더군.

- 용의자 말이 사실이라는 겁니까?

- 중요한 건 그게 아니네, 티모시 조사관. 그자가 왜 빌리 레디를 노렸는지. 목적을 반드시 알아내게.

비록 심문에는 실패했으나, 밴더빌트의 등장으로 확실해졌다.

뉴욕 할렘가를 중심으로 한 철도 사업.

그 이권과 관련되어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

신분 확인이 됐음에도 막스는 여전히 심문실 안에 갇혀 있었다.

서부 사령관을 떠나, 전시 상황에 투스타를 가둬놓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나라가 아주 개판이구만.’

그나마 수갑은 풀려 식사도 할 수 있었다.

막스는 빵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정확히 18시간을 굶었습니다.”

“...... 많이 먹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밴더빌트는 담담한 얼굴로 막스를 쳐다봤다.

워싱턴에선 훈장 받는 모습만 봤을 뿐,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프리덤 에코 편집장과는 무슨 사이인가? 갑자기 나를 찾아와서 놀랐네.”

“혹시, 윌슨 섀넌을 아십니까?”

“캔자스 전 주지사 말인가?”

“맞습니다. 그분과 친분이 있는데, 지금 프리덤 에코 부사장이거든요.”

“그건 몰랐던 사실이구만.”

밴더빌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서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뭔가?”

“오히려 제가 물어볼 말인데요. 그날 워싱턴에서 저를 찾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자넬 만날 이유가 없어졌네.”

‘콜린 말대로 그날은 아들 때문이었구만.’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졸업을 앞둔 밴더빌트의 막내아들. 하지만 서부 사령관 자리를 내준 막스에겐 더는 볼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찾아왔다는 건?

이번 사건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었다.

막스의 예상대로 밴더빌트가 질문을 던졌다.

“개 때문에 갱단을 없앴다고 들었네만. 솔직히 내 눈엔 꽤 한심해 보이네. 총이 있어서 쏴본 아이들과 다를 게 뭔가?”

“제가 아직 20대라서요.”

밴더빌트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서부 사령관을 너무 높이 평가한 모양이군. 신분이 밝혀져도 이러고 있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어야지 싶은데?”

“음?”

막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밴드빌트가 한숨을 내뱉었다.

‘저런 인간이 어떻게 별 두 개까지 달았을까.’

“갱단끼리 싸움이라면야 그러려니 하겠지. 문제는 이 일을 벌인 게 바로 자네이기 때문이라네. 서부 사령관이 개 때문에 갱단을 죽였다? 그걸 누가 믿겠나.”

“안 믿으면요?”

“...... 분명 무슨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미 타마니 홀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네. 자넬 억류하는 것도 그들의 힘이고.”

타마니 홀은 아일랜드 갱단과 공생관계를 이루며 세력을 부풀려가는 정치 집단.

밴더빌트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온 순간 막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당신도 타마니 홀과 관련 있습니까?”

“뉴욕에서 사업하려면 피할 수 없네.”

“후원금을 내시겠군요.”

말이 좋아 후원금이지 뇌물에 가까울 것이다.

밴더빌트는 네덜란드인. 그런데 아일랜드 주축의 정치 집단에게 후원금을 대는 이유는 빤하다.

뉴욕의 철도 사업 주식들을 사들이는 밴더빌트 입장에선 좋든 싫든, 타마니 홀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야 했다.

“후원금은 푼돈이네. 그들의 재산을 다 합쳐도 돈은 내가 더 많거든.”

“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타마니 홀은 갱단들을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게 가장 골칫거리긴 하네.”

1844년 뉴욕 브룩클린 폭동.

1849년 뉴욕 애스터 플레이스 폭동.

1857년 뉴욕 경찰 폭동.

같은 해 뉴욕 데드 레빗 갱단이 일으킨 폭동.

전부 뉴욕이고 아일랜드인과 관련된 소요 사태다. 또한 타마니 홀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지킬 것도 많은 법.

그런 밴더빌트에게 두려운 게 있다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갱단들일 것이다.

막스가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제가 벌인 짓 때문에, 잘하면 타마니 홀과 갱단이 저를 죽이려 들겠군요.”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이군.”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막스가 밴더빌트의 눈을 응시했다.

“이 전쟁에서 내가 이기면 저를 돕는 거로.”

이 상황을 일부러 만든 듯한 자신감.

기가 막힌 일이지만 한편으론 밴더빌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원래 사건이 황당할수록 사람들은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마련이죠. 아무튼, 뭔가 기대하는 게 있어서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이 정도는 아니었네.”

“그럼 기대 이상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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