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193/360)

전직 서부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이끌고 남군이 아닌 뉴욕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인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잡초 같은 갱단은 없앤다고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네. 오히려 더 강하게 싹을 틔울걸세.”

“대신 짓밟으면 다시 자라나는 데 시간이 걸리겠죠.”

“그사이 뉴욕의 왕이 되겠다, 이건가?”

“미국 최고, 최대 도시 아닙니까? 욕심이 안 나면 거짓말이죠.”

물론 왕이 될 생각은 없다. 뉴욕을 기반으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터. 서부 사령관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미친 동양인의 허풍에 그쳤을 것이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뭔가?”

“철도 사업투자죠.”

어느 정도 예상은 한 모양이다. 밴더빌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노선이 몇 개 있네. 자네를 끼워주도록 하지.”

“그건 관심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대륙횡단철도 사업입니다.”

밴더빌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륙횡단철도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대통령과 자네가 합심해 만든 이상야릇한 철도에 끼어들 생각은 없네.”

“그냥 부자로 기록되는 것보단 의미 있는 일이 될 겁니다.”

막스가 기억하는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후대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도금시대의 강도 남작 중 한 명.

불공정 거래로 막대한 재산을 불린 탐욕스러운 자본가.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으나, 그 재산은 록펠러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아무리 자손들이 기부를 많이 한들, 돈으로 때우는 건 오래가지 못한다.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일.

밴더빌트의 경우 철도로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철도왕을 끌어들이면 지금껏 버티던 사업가들도 마지못해 따라올 것이다.

홀리데이와 밴더빌트가 동-서 라인의 중심축이 된다면, 막스가 원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거부하면 어쩔 생각인가.”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겠죠. 여차하면 뉴욕은 내가 독식하면 되는 거고. 대륙횡단이야 더 늘어지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밴더빌트가 막스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면 자네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네.”

타마니 홀에 막혀 나오지도 못하는 주제에 꿈이 상당하지 않은가.

대답을 미룰 구실로도 적당했다.

“언제 풀려날지 모르겠지만, 나오거든 밥 한 끼는 대접하지.”

밴더빌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릴 때.

마치 자동문처럼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앞에는 큰 키의 남자가 모자를 든 채 서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부통령이었다.

밴더빌트도 놀라고, 심지어 막스의 눈도 동그랗게 커졌다.

“뉴욕에 마침 볼일이 있었네. 그나저나 오랜만입니다, 밴더빌트.”

“워싱턴에서만 보다가, 느낌이 새롭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링컨이 이내 막스를 쳐다봤다.

“조 장군, 석방이네.”

링컨의 뒤로 뉴욕 경찰청장과 국장, 부국장까지 나란히 병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콜린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막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거 비웃음인데.’

*

경찰국에서 나온 밴더빌트에게 몇몇 인물들이 접근했다. 타마니 홀의 정치인들이었다.

“만나서 무슨 대화했습니까?”

“뭐, 아들 자대 배치 얘기했는데. 이젠 서부 사령관도 아니라 도움이 안 되더군.”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요?”

밴드빌트는 입구에서 왈왈거리는 코커스패니얼을 보며 말했다.

“개 때문에 그랬다더군.”

막스 말마따나, 단순하고 황당할수록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모양이다.

정치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밴더빌트는 피곤하다며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가 떠나자 정치인들이 소근거렸다.

“끝까지 말 안 하는 게 더 수상합니다.”

“부통령이 직접 찾아올 정도면, 역시 보통 놈은 아닙니다.”

“일단 건드려 봅시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럼 로잔나 피어스를 이용해야겠군요.”

파이브 포인츠 앤소니 스트리트 남쪽의 로잔나 살롱. 그 실체는 지하세계의 범죄자와 온갖 정보가 떠도는 곳이다.

그날 밤. 로잔느 살롱에서 프리랜서 총잡이 올드 플래허티가 타마니 홀에 고용되었다.

< 주십시오 >

막스가 심문실에서 빠져나오던 때.

뉴욕 경찰청장과 국장은 막스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군의 고위급 장교를 경찰국에서 잡아둔 건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그들은 링컨 부통령과 몇 마디 대화만 나눈 채 사라졌다.

1층으로 내려가자, 테론 경감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뭐, 조만간 만나겠지.’

막스 일행이 입구를 나서자 순경이 개 한 마리를 끌고 왔다. 그런데 막스를 본 순간 공포에 질린 듯 개가 반대 방향으로 날뛰며 짖어댔다. 끌려오지 않으려 발광을 했다.

“와아아알! 와아왈!”

“얘,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순경이 당황하는 사이, 막스가 줄을 건네받고는 소리쳤다.

“빌리. 조용!”

“......”

거짓말처럼 개가 짖지 않았다.

간밤에 막스가 벌인 짓을 지켜본 뒤로 태도가 급변했다. 줄을 잡아당기자 모든 걸 포기한 듯 순순히 끌려왔다.

“역시 주인은 다르네요. 보는 사람마다 짖어대더니, 이제야 얌전하네.”

순경의 말에 막스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링컨과 콜린, 막스는 뉴욕 시청으로 향했다.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던 링컨은 개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이름이 빌리라고 했나?”

“재수 없게 죽은 놈 이름을 쓰면 되겠습니까. 이제 개명해야죠.”

“하여간 자네 속을 알 수가 없구먼. 그나저나, 밴더빌트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대륙횡단 기차 사업을 같이하자고 꼬셨습니다.”

링컨이 눈을 반짝였다.

“넘어오던가?”

“글쎄요. 대답을 피하던데요.”

“흠. 바로 거절하지 않은 걸 보면 자네가 달콤한 제안을 한 모양이군.”

“타마니 홀과 갱단을 없애겠다고 했거든요.”

링컨이 입을 쩍 벌리고 콜린은 시가를 문 채 낄낄거렸다.

뉴욕 경찰국과 시청은 고작해야 300m.

링컨 부통령은 뉴욕 시장을 만나기 위해 겸사겸사 뉴욕을 방문했다.

“유색인종 부대의 창설 때문이라네.”

남북전쟁 발발 직후, 뉴욕주는 워싱턴을 보호하기 위해 주 방위군을 파견했다.

게다가 육군 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 역시 이곳에 위치한다.

미연방을 통틀어 인적, 물적 자원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곳인 만큼. 유색인종 부대와 신병 훈련소를 준비하는 연방으로선 뉴욕주의 협조가 필요했다.

“징병제 때문인지 흑인 부대 창설에 반대하던 의원들이 갑자기 찬성을 던지더군. 자신들이 끌려가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 거지”

“이번 신병 훈련소도 그거랑 맞물린 거군요.”

“맞네. 마침 이곳에 뉴욕 주지사도 와 있거든.”

흑인 부대의 창설은 나름 의미가 컸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존 브라운은 유색인종으로 범위를 넓혔다.

정확한 명칭은 미국 유색 부대인 USCT(United States Colored Troops)였다.

링컨이 시장을 만나는 동안 막스는 콜린과 함께 시청 주변을 거닐었다.

“핑커톤에서 대통령 경호를 맡는다고요?”

“이번 사건을 보고 받고 존이 바로 나를 불렀어. 뉴욕 갱단들 틈에서 보스 혼자 버틸 수 있겠냐고.”

“진짜 그 이유가 다예요?”

콜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동안 말이 많았었잖아. 이번 기회에 결심한 거지.”

주요 쟁점이 되는 법안들을 보류시키고 인디언과의 영토 분쟁에서 대통령은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백인 중심의 미국을 꿈꾸는 이들에게 존 브라운은 눈엣가시의 존재. 의회와 자본가들은 막스와의 관계를 물고 늘어지며 집요하게 공격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내가 따라다녔으니까, 이제는 바꿀 때도 된 거지.”

“콜린을 보면 사람들은 나와 존 브라운의 관계를 계속 떠올리겠군요.”

콜린이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나머지 대원들도 인수인계를 끝내면 곧 이리로 올 거야.”

“그렇지 않아도 뉴욕에 지부 하나 만들 생각이었는데. 서둘러야겠네요.”

“이왕이면 경치 좋은 대에 얻자. 바다도 보이고 얼마나 좋아.”

“우리가 있을 곳은 콜로라도에요. 뭐, 그래도 이왕이면 경치 좋은 곳이 좋긴 하겠네요.”

둘은 시청 공원 담장을 따라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피든 안 피든 콜린은 습관처럼 시가를 물고 있었다. 그런 애연가의 발을 멈춰 세운 건 작은 시가 가판대였다.

“마지막 하나 남았었는데, 잘됐네.”

콜린은 나무 판에 가지런히 진열된 시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얼마야?”

“싼쎈트.”

“뭐라는 거야. 얼마라고?”

상인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그는 막스와 마찬가지로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눈을 유심히 쳐다본 막스가 물었다.

“중국인이야?”

“예스, 예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던 때, 콜린이 시거에 불을 붙였다.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이더니 갑자기 기침을 내뱉었다.

“아니, 시발! 뭐로 만들었는데 맛이 이따구야?”

콜린이 시가를 부러트려 잎을 살폈다.

“너 담뱃잎에 뭘 섞은 거야? 이거 잔디 풀 말린 거지?”

“노노노! 조지아주, 최상품이에요.”

“거기 지금 남부 연합이잖아 새끼야. 어떻게 거기서 가져오냐고!”

콜린은 시가에 진심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며 중국인을 몰아쳤다.

막스는 웃으며 콜린을 제지했다.

“3센트짜리 시가에 뭔 맛을 기대해요.”

“아니야, 이 새끼 이거. 나를 암살하려 한 게 분명해. 아니고선 이딴 걸 팔 수가 없지!”

“암살이 말이 돼요. 근데 너 이름이 뭐야?”

중국인은 순순히 대답했다.

이름은 아켄.

4년 전 중국 광저우에서 캘리포니아가 아닌 뉴욕으로 온 막스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였다.

“집은?”

“파이브 포인츠 보워리 동쪽이요.”

“거기 중국인들 몇 명 살아?”

“삼십 명.”

아켄이 사는 곳은 훗날 맨하탄의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는 곳이다. 흥미를 느낀 막스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얼마 전에 파이브 포인츠에 살던 중국인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알아?”

“......”

“친구였냐?”

아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광저우에서 넘어왔다고 했다.

“서부 사령관 사칭했다던데, 그것 때문에 죽은 거야?”

“노노, 그냥 갱단하고 문제가 있었어요.”

“어느 갱단?”

아켄이 입을 꾹 닫았다. 대신 스카프 위로 보이는 막스의 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중국인이야?”

“그건 아니고. 다음에 또 보자.”

막스는 대충 인사를 건네고 가판대를 벗어났다. 콜린은 연신 뒤를 쳐다보며 욕을 해댔다.

“양심도 없는 새끼. 서부에서 저딴 시가 팔았으면 대가리에 총 맞고 뒈졌을 거야.”

“메이드인 차이나를 모르는구만. 아무튼, 링컨 부통령은 언제 워싱턴으로 돌아가요?”

“내일. 나는 역까지만 경호하고, 다음은 뉴욕 핑커톤 지부에서 나올 거야.”

콜린의 뉴욕 합류로 막스는 계획을 수정했다.

큰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 혼자 하려던 것 일부를 콜린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 개 좀 맡아줘요.”

“...... 나보고 대신 죽으라는 소리지?”

“세상에 코커스패니얼이 얘 하납니까.”

*

호텔로 돌아온 막스는 문을 여는 대신 위에 붙여놓은 실을 살펴봤다. 벽과 문에 이어진 실은 누군가 문을 열면 쉽게 끊어져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었다.

‘누가 왔다 갔다.’

혹은 지금도 있을지도 모른다.

막스는 조심스레 문가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여인의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뭐야, 피치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막스는 놀려줄 셈으로 천천히 열쇠를 꽂은 다음 문고리를 잡아당겨. 단숨에 열어젖혔다.

“짜잔!”

“어맛!”

알몸의 피치가 번개처럼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

어질어질해진 막스는 벽을 짚으며 물었다.

“...... 다 벗고 뭐 한 거야?”

“샤워했지! 넌, 노크도 안 하냐!”

“내 방인데 왜 노크를 해.”

“아무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나간다?”

“...... 마, 맘대로.”

잠시 후.

피치는 옷을 입은 채로 나타났다.

잔뜩 기대했던 막스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응큼하긴.”

“...... 근데 여긴 왜 들어왔어? 은신처 때문이면 종이로 알려주지.”

“무기는 직접 돌려줘야 할 것 아냐.”

거실 바닥에는 리볼버와 보위 나이프, 탄약과 연막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피치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물었다.

“어제 섬광탄만 썼어?”

“어. 마침 다 모여 있더라고.”

“네가 벌인 일 때문에, 지금 파이브 포인츠 분위기가 장난 아냐. 나 여기 오기 직전, 보워리 보이즈 갱단 한 명이 살해됐거든.”

범인이 누구든. 갱단들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다. 사소한 시비에도 칼과 총을 드는 분위기라고 했다.

리볼버를 들고 소파에 앉은 막스는 총알을 한 발 한발 집어넣으며 말했다.

“집에다가는 말했어?”

“그럼. 다 알고 있지.”

“반응은?”

“난리도 아니었어. 서부 사령관을 보스로 부르면, 나는 도대체 뭐냐고.”

“그래서?”

피치가 막스를 그윽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너를 좋아해서 졸졸 쫓아다닌 거라고 했어.”

“...... 에이, 그건 아니지.”

“그럼?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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