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5화 (195/360)

“당신이 찝쩍거리면 대환영인데.”

“잔망떨지 말고, 용건만 간단히.”

“쳇. 아무튼, 내 정보를 믿건 안 믿건 당신 마음대로 해요.”

막스는 매그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정보를 그냥 주진 않았을 거고. 거래를 원하나?”

“얘기가 잘 통하네요. 앞으로 뭔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전 당신한테 베팅하려고요. 더는 버틸 상황이 아니거든요.”

로잔나 피어스는 입구에 있던 바운서처럼, 늙은 갱단원들에 의해 근근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갱단을 조직하기엔 주변의 경쟁자들이 너무 막강했다.

매그는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말을 이었다.

“우린 타마니 홀 같은 정치인들의 끈도 없어요. 그냥 이용만 당하는 소모품이죠.”

“신세 한탄 들어줄 시간 없는데.”

“그러니까, 결론은.”

매그가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했다.

“뉴욕에서 하는 일을 도울 테니까, 우리의 뒷배가 되어 줘요. 정보라면 목숨 걸고라도 얻어 줄게요. 사업이든, 갱단이든.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전부요.”

‘내가 누군가의 뒷배가 된다고?’

막스는 내심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어, 여지를 남기기로 했다.

“그만한 가치가 확인되면 그때 생각해 보지.”

“당신을 노리는 총잡이를 알려줬잖아요? 그 정도로는 성에 안 차나 보네.”

막스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신뢰가 없다고 봐야지.”

“신뢰라. 내가 서두르긴 했네요. 일단 내 말은 전했으니까 들어가 봐요.”

문으로 다가간 매그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드르륵. 끼이익.

철문이 열리자 작게나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숙소가 필요하면 바텐더에게 말해요. 참고로 우리 애들하고 노닥거려도 에밀리의 귀엔 안 들어갈 거에요.”

“다행이네.”

“오호, 그런 타입이었구나? 여차하면 내가 옆에 있을까요? 어우, 눈빛 봐. 그럼 좋은 시간 보내요.”

덜컥.

문이 닫히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후엔 좁은 복도를 따라 걸었는데, 술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미로처럼 복잡한 통로의 네비게이터 역할을 했다.

잠시 후.

끼익, 끼익.

막스가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갔다.

그리곤 빠르게 장내를 훑어갔다.

‘바텐더 빼고 스물둘, 매춘부가 셋.’

그중 한 매춘부와 시선이 마주쳤다.

“왓더 뻑!”

여인이 토해낸 경악이 순식간에 술집 안에 번져갔다. 음소거가 된 듯 고요함이 찾아오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더러는 흑인들도 보였지만, 그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동양인의 존재.

어제 사건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들은 저마다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막스는 천천히 장내를 둘러본 끝에.

매그가 말한 얼굴에 칼자국인 난 남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건 간단하다.

올드 플래허티. 그자와 시선이 마주친 막스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룻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적막을 깨고, 거리가 가까울수록 플래허티의 눈빛이 흔들렸다.

‘타겟이··· 제 발로 찾아왔어?’

미친 새끼가 분명하다. 동양인이 그것도 범죄자가 득실거리는 로잔나 피어스로 왔다는 건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여기 앉아도 되지?”

“......”

대답 따윈 필요 없다. 막스는 플래허티와 마주 보며 앉았다. 검은 천으로 싸인 긴 물건과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자 묵직한 쇳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일련의 행동들은 여유롭다 못해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지켜보는 플래허티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여긴 네놈이 올 곳이 아닐 텐데.”

“미안하지만, 나도 쫓기는 몸이라서. 어떤 새끼가 나를 노린다는 데 불안해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 그래서?”

“그래서는. 당연히 먼저 죽여야지.”

플래허티가 코웃음을 쳤다.

“여긴 전쟁터랑은 달라, 애송이.”

“뭐가 다른지 보여줘 봐.”

서로 합의하는 순간 살인은 인정된다.

로잔나 피어스의 룰을 곱씹던 플래허티는 막스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소문으론 괴물이 따로 없지만, 막상 눈앞에 마주하고 보니 별것 아니었다.

어쩌면 의뢰인의 말마따나 배후에 어떤 갱단이 도왔음이 분명하다.

‘그냥 동양인 주제에 자신감 넘친 애송이군.’

반면 자신은 뉴욕에서 가장 험한 파이브 포인츠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범죄자. 프리랜서 총잡이로서, 뉴욕의 손꼽히는 속사수로 명성을 쌓았지 않은가.

그런데 타겟을 놔두고 도망친다? 앞으로 뉴욕에선 발도 못 붙이게 될 것이다.

“내가 죽인 놈들이 열여섯. 오늘 하나를 늘려주마.”

플래허티의 말로 결투는 성립되었다.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생긴 사람들은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수 없게 뒤에 있다간 총알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플래허티와 막스가 앉은 채 의자를 천천히 뒤로 밀었다.

거리는 불과 5m.

서로의 엉킨 시선 속.

플래허티가 먼저 홀스터로 손을 뻗는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타앙!

총성과 함께 플래허티의 머리가 앉아있는 채 뒤로 젖혀졌다.

똑. 똑.

이마에서 흐른 피가 머리카락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홀스터로 쏠렸다. 속사수 플래허티가.

‘총을 못 뽑았어!?’

휘리릭.

막스가 리볼버 방아쇠울을 손가락에 걸어 백스핀과 플랫스핀을 잇달아 펼치며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서부의 총잡이가 동부를 제압한 순간이었다.

< 로잔나 피어스 >

뉴욕의 이름난 총잡이가 운명을 달리한 날.

아침 일찍 로잔나 피어스로 한 여인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말에 깜짝 놀라서 뛰쳐나온 에밀리에 파운 피치였다.

막스가 간 곳에 다른 여자도 아닌 로잔나 피어스의 주인 매그가 있기 때문이었다.

‘요망한 계집!’

*

“오랜만이구나, 에밀리. 돌아왔다는 소리는 들었다.”

“예전이나 변함없네요, 찰리 아저씨.”

어깨를 으쓱한 찰리는 시가를 바닥에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매그 보러 온 거냐, 아니면 문제 많은 남자친구를 만나러 온 게냐.”

“둘 다요. 근데 남자친구는 아니네요.”

“그래? 그 정도면 쓸만하던데.”

무뚝뚝한 찰리가 칭찬을?

피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밤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찰리가 굳게 닫힌 식료품점의 문을 열자, 피치가 그 안으로 사라졌다.

어두운 가게 안.

구석에서 웅크리고 자는 매그가 눈에 들어왔다. 키만 컸을 뿐,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 위치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넌지시 매그를 쳐다보던 피치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일어나, 매에그.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에밀리 공주가 왔으니까.

“훔냐. 훔냐. 미친년 아직도 헛소리하네. 내가 제일 예쁜데. 훔냐, 훔냐.”

“이년 깼네, 깼어. 얼른 안 일어나?”

매그가 천천히 눈을 떠서는 피치를 올려봤다.

“너 진짜 개념 없다. 나한테 이 시간은 꿈나라에서 한창 꿀 빨 때라고.”

“알 게 뭐야. 그 남자는 어딨어?”

“누구? 구체적으로 말 해줘야 알지.”

매그가 몸을 일으키며 너스레를 떤다.

피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잔망스러운 짓 하지 말고, 빨리 말해라.”

“짜증 나게 둘이 말투도 똑같네.”

“어머, 그 사람도 그랬니?”

피치가 키득거리자 매그의 입에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 방에서 자고 있어. 워워, 총은 왜 꺼내는데. 네 남자를 그렇게 못 믿어?”

“너를 못 믿어.”

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성격 참 지랄맞아. 그냥 객실 방 하나 내줬거든?”

“그건 그렇고. 타마니 홀에서 고용한 총잡이는?”

“뒈졌지. 몰래 지켜봤는데, 손이 안 보이더라. 같은 사람 맞아?”

“뭘, 그 정도 갖고. 총만 잘 쏘는 줄 아냐?”

“뭐야?? 설마 그것도 잘해?”

“어휴, 미친년.”

얼굴이 벌게진 피치가 매그를 흘겨봤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나이가 몇 갠데.”

‘부끄러운 게 아니라 화가 난 건데!’

입맛을 다시던 피치는 이내 정색하며 매그를 쳐다봤다.

“또 무슨 말 했어?”

“네 복잡한 남자관계?”

“나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말 돌리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잠시 고민하던 매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도와달라고 했어. 대신 나는 필요한 정보와 은신처를 주기로 하고.”

“여기 장난 아니게 위험할 텐데. 괜찮겠어?”

타마니 홀에서 고용된 총잡이가 로잔나 피어스에서 죽었으면, 그 책임은 막스와 이곳 주인에게 있다. 놈들이 갱단을 동원해 공격할 경우, 과연 이 건물이 남아날까.

“각오한 거야. 난 네 남자한테 베팅했거든. 이렇게 안 하면 서부 사령관이나 되시는 분이 나를 거들떠나 보겠어?”

“끝말이 참 거슬리네. 그나저나.”

피치가 매그를 노려봤다.

“도움의 범위가 어디까진데?”

“...... 나와 가족들이 잘 먹고 잘사는 거.”

피치는 말없이 매그의 눈을 응시했다.

한때 파이브 포인츠에서 가장 불운한 소녀라 불렸던 매그. 그녀의 눈빛에는 부모님의 거지 같은 유산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열망이 가득했다.

로잔나 피어스는, 적어도 매그에겐 악몽과도 같은 곳이었다.

갱단의 일원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돈을 제대로 벌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살해되고. 리더인 아버지는 다른 살인사건과 엮여 교수형을 당했다.

다섯 살에 불과했던 매그를 키운 건 끝까지 남아있던 ‘40인의 도둑 갱단’ 세 명의 갱스터.

현재 로잔나 피어스에서 일하는 늙은 총잡이들이 매그의 유일한 가족들이었다.

피치의 얼굴을 살피던 매그가 피식거렸다.

“그렇게 내가 불쌍하면 그 남자한테 말 좀 잘해주던지.”

“내가 말한다고 될 게 아니야.”

“그런 사이까진 아니라는 거네. 그럼 나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야?”

피치는 매그를 노려보며 정색했다.

“네가 아직 그 사람을 모르는구나. 동양인의 몸으로 어떻게 서부 사령관까지 올라갔는지, 잘 생각해 봐.”

단지 총을 잘 쏴서? 전략 전술에 능해서?

로렌스 보안관 시절부터 보아온 막스는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했다.

더 복잡한 인물이었다.

“그 남자를 이용할 생각이었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해. 친구로서 충고하는데, 잘못하면 오히려 네 모든 걸 부숴버릴 수도 있어.”

“...... 난 진심이야. 그동안 내가 구축한 정보망이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전신주, 즉 모스 부호를 이용한 통신망의 가능성을 알아본 매그는 뉴욕에 전신망이 깔릴 때부터 전보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었다.

“글쎄, 네 정보가 뉴욕에만 머무르면 별로 메리트가 없을걸? 참고로 그 남자는 핑커톤의 정보도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어.”

“피, 핑커톤을?”

미 전역에 지부를 늘리고 있는 현존 최강의 사설 탐정집단. 첩보와 스파이, 적 교란 등.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전쟁터에서도 그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물론 핑커톤과 매그와 비교할 건 아니었다.

정보를 다루고 접근하는 방식에 매그와 핑커톤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피치의 말마따나 매그와 핑커톤은 그 규모 면에선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손톱은 왜 물어뜯냐?”

“왠지 자신이 없어졌어.”

“자신이 있었다는 게 더 놀라운데?”

허공을 응시하던 매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침상에서 내려와 책상에 있는 파일철을 챙겼다.

“따라 와.”

“옷 그러고 가게? 그게 비장의 무기냐?”

“아. 쏘뤼.”

“요망한 계집!”

잠옷 위에 대충 코트를 걸친 매그가 앞장서고 피치가 뒤를 따라갔다.

로잔나 피어스는 범죄자들을 위해 숙박 서비스도 하고 있다. 건물 2, 3층의 객실 중 막스의 방은 3층 복도 중간이었다.

문을 두드리기 전, 매그가 속삭였다.

“서부 사령관 정도면 우리 애들이 환장했을 텐데. 안에 여자가 있으면 어쩔 거야? ”

“솔직히 말해서. 난 좀 기쁠 것 같아.”

‘이렇게라도 고자 아닌 걸 알았으니까.’

말 못 할 고민거리가 해소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기쁨이 가신 뒤엔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고.

사정을 모르는 매그는 미친년이라 중얼거리며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매그에요.”

- 목소리에 콧바람은 왜 넣어? 꼬리치냐?

- 나 원래 이래.

둘이 대화하는 사이 방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피치를 확인이라도 했는지, 막스의 얼굴은 담담했다.

방 안을 힐끔 쳐다봤지만, 간밤에 혼자 있었던 게 분명했다. 기쁨 반 씁쓸함 반, 피치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

막스는 매그가 건네준 파일철을 훑어봤다.

안에는 뉴욕시청, 뉴욕시 경찰국, 타마니 홀과 같은 정치 집단. 뉴욕 타임즈와 뉴욕 트리뷴 같은 신문사. 그리고 갱단까지 잡다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정보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다.

두서없이 정리된 정보는 양만 많지 알맹이는 빠져 있었으니까.

해석이나 분석 없이 날것 그대로의 정보.

무슨 말을 하는지 내용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시큰둥한 막스의 표정을 살핀 매그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중요한 건 정보를 얻은 시점이죠. 전부 어제 날짜거든요.”

이런 정보를 매일 같이 얻는다?

막스는 매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 혹시 전보 감청해?”

“감청? 그게 뭐예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