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360)

‘아닌가 보네. 하긴 아직 이른 시기긴 하지.’

전신주가 발명되고 모스 부호로 전보를 주고받은 역사는 고작해야 20년. 도시에 전신주가 깔린 건 고작해야 5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였다. 감청 방법은커녕 용어조차 나올 때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방법은 엄청 쉬울 텐데.’

전화도 도청하는 판에 간단한 모스 부호 정도는 일도 아닐 터. 전신 기술자가 아니어도 단순히 이어진 전신주와 통신장치 사이를 감청하는 건 쉬워 보였다.

아이디어는 일단 접어두고.

막스가 매그에게 물었다.

“정보 제공자는 누구지?”

“뉴욕에 있는 전산원과 정보원들이요.”

“대가는?”

“내용에 따라 지급해요. 많게는 1달러, 적게는 몇 센트죠. 물론 안 주는 경우가 더 많아요.”

매그는 이 정보를 가공해 필요한 사람에게 팔아넘긴다. 하지만 무작위적인 정보에서 추려낸 것들과 고객의 니즈가 맞아떨어지기란 쉽지 않았다.

누구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매그는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막스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고객이 정보를 요청하는 순간 그 의도가 발각되는 게 이 사업의 맹점이지.’

정보란 양날의 검과 같다.

중요한 정보를 요청할수록 고객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제공자도 보안을 이유로 언제든 제거될 수 있는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그 때문에 신뢰가 없는 사이에선 정보를 사고팔기란 힘든 일이었다.

‘해결 방법이 있다면····.’

SFBC가 흡수해 정보를 직접 활용하는 게 최상의 그림이다.

워싱턴과 뉴욕에 있는 프리덤 에코로 양지에서, 로잔나 피어스로 음지의 정보를 얻는다?

‘이러면 메리트가 있지.’

하지만 막스는 매그의 능력도, 진심도 알지 못한다. 당장은 그녀와 함께 일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능력을 테스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당분간 이곳에 있는 동안은 고객이니까, 정보는 건당 난이도 별로 계산하자고.”

매그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녀가 원한 대답은 막스와 손잡고 뉴욕에서 사업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내가 이 남자를 너무 몰랐나.’

핑커톤의 정보를 마음대로 가져다 쓸 정도의 스케일. 자신의 알량한 정보로 사업을 제안하기엔 상대는 이미 많은 걸 갖고 있었다.

피치는 티 테이블에 앉아 커피만 홀짝였다.

친구의 사정이 안타깝지만 자기가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막스에게 부담도 어떤 의견을 주고 싶지 않았다. 다만.

“당분간 여기가 임시 사무실인 거지? 나도 매일 출근해야겠다.”

매그와 함께 있는 꼴은 막아야 한다.

남녀가 붙어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무려 7년 넘도록 자신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 꽤 충격적이었다.

*

막스는 숙소 겸 사무실로 쓰기 위해 여관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방을 옮겼다.

무엇보다 책상이 있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앉자마자 막스는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콜로라도의 라이언 홀드, 로렌스의 홀리데이와 제임스 헨리 레인, 텍사스의 월러스와 테네시의 율리시스 등.

보낼 곳이 천지였다.

한참을 종이에 끄적거리던 막스는 문득 고개를 들어 피치를 쳐다봤다.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가 뭐라 안 해?”

“뭐라 했지. 요즘 때 밖에 싸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그것 말고는?”

“너한테 협박받았다고 하던데.”

“협박?”

피치가 신문을 내려놓으며 막스를 쳐다봤다.

“그렇게 갱단하고 싶으면 뉴욕을 통째로 주겠다고. 어디 한번 잘해보라고 했다며?”

“......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어. 갑자기 그래서 정신 나간 줄 알았대.”

“앞뒤 맥락을 다 잘라버렸네.”

“뭔 맥락?”

막스가 팔짱을 끼며 입을 삐죽거렸다.

“아무튼,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어. 그게 다야.”

피치가 무슨 일이 있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의 반응을 봐선 진짜인 것 같았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

혹은 뉴욕 접수하다 사위가 죽을 것 같아서?

머리를 굴려 보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로잔나 피어스에 머문 지 사흘째 되는 날.

매그가 정보를 들고 나타났다.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요?”

“좋은 것부터?”

“오케이. 그럼 이것부터 전해 줄게요.”

매그가 넘겨준 서류는 이리 철도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리 철도는 현재 파산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그 때문에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뛰어들었는데, 밴더빌트, 대니얼 드루, 제임스 피스크, 제이슨 굴드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매그가 가져온 정보에는 현재, 대니얼 드루와 밴더빌트가 손을 잡고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다는 정보였다.

현재 모건과 막스는 밴더빌트 쪽에 투자하려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막스가 알고 싶은 건 막강한 경쟁자인 제이슨 굴드였다.

타마니 홀을 움직이는 암적인 존재들.

그중 하나인 제이슨 굴드는 원 역사에선 강도 남작으로 유명한 사업가로 기록된다.

또한 순진한 율리시스 그랜트를 스캔들에 휘말리게 한 인물이기도 하고.

미국 최대 최고의 도시 뉴욕.

이곳을 장악한 부패 세력을 제거하고, 그들을 대신해 새판을 짠다.

그러기 위해 막스는 그 부패 세력들을 드러나도록 도발하고 있었다. 치채스터의 빌리를 죽인 건 그 시작에 불과했다.

어찌 됐든. 서류를 다 읽은 막스는 의아한 얼굴로 매그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이라더니, 어디서 좋아해야 해?”

“이리 철도는 별 탈 없이 진행 중이다. 이게 좋은 소식이죠.”

“그럼 안 좋은 소식은?”

막스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피치도 고개를 돌려 매그를 쳐다봤다. 그녀는 피치와 막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뗐다.

“타마니 홀에서 총잡이 다섯을 고용했대요.”

“와우.”

피치의 탄성에 맞춰. 소파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내가 나설 때군.”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물고 있는.

대통령 경호에서 벗어난 콜린이었다.

< 다섯 총잡이 >

파이브 포인츠 와터 스트리트의 ‘크림프 하우스’ 살롱.

이곳 2층 건물에서 데드 레빗 보스들의 회합이 이루어졌다.

살롱의 주인인 키트 번즈.

권투선수이자 도박꾼인 존 모리시.

마찬가지로 한때 권투선수였던 레드 피치가 데드 레빗의 세 보스다.

“요즘 부쩍 자주 모이는구만.”

“그게 누구 때문인 것 같아?”

칼로 손톱을 다듬던 키트 번즈가 레드를 노려본다.

“네 딸이 데려온 놈 때문에 우리 상황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야.”

“그냥 평범한 가이드라고 했을 텐데.”

“그 말은 개새끼들도 안 믿어. 지금 그 놈이랑 로잔나 피어스에 처박혀 있는 걸 누가 모를 줄 알아? 이런 시기에 개념 없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통제가 잘 안 되나 봐?”

키트 번즈의 비아냥에 레드도 비아냥으로 응수했다.

“통제가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딸이거든. 누누이 얘기하지만, 넌 그 부정적인 생각부터 고쳐라.”

둘이 티격태격하는 때 존 모리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는 한때 뉴욕의 유명한 권투선수 양키 설리번을 이긴 헤비급 챔피언. 현재는 타마니 홀의 주요 멤버중 일인으로 정치와 사업에 관심이 많은 자였다.

존 모리시가 레드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회의는 내가 요청했으니까, 용건부터 말하지. 타마니 홀에서 놈을 제거하기 위해 총잡이 다섯을 고용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캥기는 게 많은 자일수록 상황을 고깝게 보는 법.

타마니 홀이 딱 그 짝이었다.

그들은 막스와 한 인물의 연관성을 의심했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그는 뉴욕 철도 주식들을 사들이고 있었고. 최근엔 네덜란드 갱단에 자금을 댄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 밴더빌트가 돈과 힘까지 쥐고 우리를 흔들 생각이다.

타마니 홀에선 지난 사건을 통해 밴더빌트, 서부 사령관, 네덜란드 갱단의 유착을 의심하고 있었다.

레드가 존 모리시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금이라도 놈과 밴더빌트의 관계를 알아내. 그게 우리를 위한 길이니까.”

“어째 명령처럼 들리는데. 아니면 협박인가?”

“오랜 친구로서 하는 충고 정도로 생각해.”

‘충고라.’

레드가 존 모리시의 눈빛을 응시했다.

친구가 아닌 타마니 홀의 일원으로서 탐욕과 권력자의 오만함이 깃든 눈빛이다.

“당분간 쥐 죽은 듯 있는 게 좋을 거야. 다들 너와 동양인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으니까.”

“레드, 네 딸이 서부에서 왔다며? 이참에 자리 내놓고 서부로 가는 건 어때?”

키트 번즈는 칼로 자른 사과를 오물거리며 이죽거렸다.

“다른 할 말 없으면 이만하지.”

레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롱을 빠져나갔다.

이주자들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갱단은 이미 기능을 상실하고 타락한 집단과 결탁해 권력을 휘둘렀다. 그리고 지금은.

그 힘이 같은 보스인 레드까지 겁박하려 들고 있었다.

‘고인물은 썩게 마련이지.’

막스의 말마따나, 뉴욕은 새판을 짤 필요가 있었다.

레드가 나간 직후.

키트 번즈가 존 모리시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참에 레드를 다른 놈으로 대체하는 건 어때?”

“피치 가를 축출하자고?”

키트 번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이 기회야. 솔직히 레드가 한 일이라곤, 갱단의 발목만 잡은 것밖에 더 있어?”

시대가 격변하고 전쟁 때문에 갱단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데드 레빗의 문제는 기존 인원이 전쟁터로 나간 대신 새로운 자들을 영입하지 못한 데에 있었다.

키트 번즈는 그 원인을 레드 탓으로 돌렸다.

“직업이 있어야 하고, 이유 없는 범죄는 용납하지 않는다? 시발, 이게 무슨 갱단이야. 애들 보기 쪽팔릴 정도라고.”

“그래도 레드 덕분에 그동안 극단적인 전쟁은 피했잖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건 그 자식이 그냥 겁이 많아서 그런 거야.”

푹.

키트 번즈가 손톱을 다듬던 칼로 테이블을 내려찍었다.

그리곤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말야. 레드 가족 하나를 인질로 잡는 건 어때? 그걸로 놈을 꾀어내는 거지.”

“갱단끼리 가족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이곳 룰을 잊었어?”

“총잡이들은 갱단이 아니잖아.”

키트를 빤히 쳐다보던 존 모리시의 입가에 웃음이 흘렀다.

“역시 사악한 놈이야, 넌. 그건 일단 히든카드로 남겨두자고.”

회담 장소 크림프 하우스 살롱 앞.

두 아들 마틴과 척이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둘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알런이 당했습니다.”

“치채스터 놈들과 시비 끝에 칼로 배를 찔렸어요.”

“...... 일단 가보자꾸나.”

알런은 레디가 아끼는 부하 중 하나.

그는 두 아들과 병원을 찾아갔다.

밤에 몸을 사리는 대신, 낮에는 마주치는 갱단끼리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빌리를 잃은 치채스터가 거리를 휘젓고 다니고. 덩달아 적대세력인 보워리 보이즈도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었다.

*

짙은 어둠이 깔린 로잔나 피어스.

총잡이들이 고용되었다 한들,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상 마주칠 걱정은 없었다.

막스는 책상에서 편지를 쓰고, 피치는 그 옆에서 신문을 읽었다.

소파에 드러누운 콜린은 코까지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이때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피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꼭 로렌스 보안관 사무실 같네.”

“그러게. 바뀐 건 나이뿐인가.”

“나이···.”

피치가 읽던 신문을 구겼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막스는 책상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여 편지를 썼다.

똑똑.

문을 열고 매그가 들어왔다. 막스 일행이 안에 틀어박히는 동안 그녀는 밖의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기쁘게도 총잡이들의 위치가 파악됐어요. 세 명은 이 근방에서 이곳을 감시하고 있답니다.”

“나머지는?”

“둘은 지금 바에 있어요.”

“그으래?”

소파에서 콜린이 벌떡 일어났다. 대뜸 리볼버를 챙겨선 막스를 쳐다봤다.

“뭐해? 안 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막스는 대답 대신 매그를 쳐다봤다.

“세 명의 위치와 인상착의는?”

“대충은 파악해뒀어요.”

“흠. 그럼 이렇게 합시다.”

한 시간 뒤.

막스의 방문이 열리며, 매그와 거지꼴의 흑인 남자가 계단을 내려왔다.

- 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 통로는 외부인에겐 처음 알려주는 거예요. 근데, 대체 뭘 바른 거예요? 진짜 흑인 같아.

막스가 매그를 따라 로잔나 피어스 밖으로 사라질 즈음. 무장한 콜린은 방을 빠져나와 지하의 바로 향했다.

그리고 피치는.

막스의 책상에 앉아 감자를 까먹었다.

*

시카고에서 다섯 명을 살해하고 뉴욕으로 도망 온 총잡이. 타마니 홀에 고용된 마크 신번은 골목에서 로잔나 피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이곳에서 피운 시가만 열 개가 넘어간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올드 플래허티가 총도 못 뽑았을 정도면 정면 승부로는 답이 없다. 방법은 암습 뿐.

그러기 위해선 끈기 있게 기회를 노려야 한다.

그림자조차 드리워지지 않는 골목.

그 안에서 마크 신번은 로잔나 피어스 건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드르르륵.

척, 척.

느릿느릿 발자국 소리와 수레바퀴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잠시 후.

오른쪽 다리를 저는 흑인이 잡동사니를 실은 나무 수레를 천천히 밀고 가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