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가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의 부랑자.
그 모습을 확인한 마크 신번의 긴장이 풀어졌다.
목을 좌우로 까딱거리던 때, 흑인이 짧은 소리를 내뱉었다.
위스키병이 수레에 떨어진 것이다.
떼구르르.
병은 공교롭게도 골목쪽으로 굴러 들어왔다.
흑인이 다리를 질질 끌며 이를 주우려 마크 신번에게 다가왔다.
‘짜증 나는 새끼.’
골목이 어두워 흑인은 자신의 존재도 모를 것이다.
입꼬리를 올린 마크 신번이 쓰윽 칼을 꺼내 들었다. 길 거리에서 죽은 흑인 부랑자를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미리 감각을 닦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마크 신번은 발을 뻗어 병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흑인은 별 의심 없이 다리를 끌며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병을 주우려 허리를 숙였다.
‘지금이다···!’
마크 신번이 칼을 찌르려 할 때, 흑인이 몸을 튕기듯 일으켜 손을 두어 차례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마크 신번의 손목에 화끈거림이 전해졌다.
신음이 터져 나올 즈음엔 흑인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뒤이어 칼 끝이 가슴에 깊숙이 찔러 들어왔다.
그렇게 첫번째 총잡이는 칼로 목숨을 잃었다.
시체를 골목에 눕힌 흑인은 위스키병을 주워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간다.
‘다음 목표로 가볼까.’
잠시 후, 수레를 끄는 소리가 길가에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같은 시각. 로잔나 피어스의 지하 바에선 포커 게임이 한창이다.
플로리다에서 강간과 강도, 살인을 저지르고 뉴욕에 숨어든 총잡이 딩키와 다비 형제.
타마니 홀에게 착수금 50달러를 받고 로잔나 피어스에 왔지만, 이상한 도박꾼에 휘말려 그 돈마저 잃게 됐다.
탁!
테이블을 내려친 딩키가 상대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개새끼, 세 번 연속 트리플이 말이 돼!?”
“그러니까 평소에 기도를 잘해야지. 도박도 성실한 믿음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애송이들아.”
“형, 이 자식 손에 카드 몇 장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테이블에 손 올려 새끼야!”
콜린은 시가 연기를 두 형제에게 내 뿜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좆까. 꼬우면 총을 뽑던지.”
두 형제는 오히려 잘됐다며 주변을 둘러봤다.
매춘부와 손님이 대략 열 명. 그들은 대결을 부추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 쪽으로 이동했다. 암묵적으로 살인을 방관하겠다는 뜻이었다.
형 딩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콜린을 쳐다봤다.
“넌 뒈졌어, 새끼야.”
“룰은?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콜린의 말에 두 형제의 입에서 음흉한 웃음이 흘렀다.
“둘을 상대로 자신감만큼은 인정해주마.”
두 형제가 제시한 룰은 각자 리볼버를 테이블에 올려둔 채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한 마디로 먼저 잡고 쏘면 끝이었다.
“새끼들, 속사로는 자신 없는 모양이네.”
“병신. 네놈 수준에 맞춰준 것뿐이다.”
“그럼 해 보자고.”
콜린이 먼저 리볼버 두 자루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그 총이 1860년 형 콜트 아미와 닮았으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게다가 손잡이와 실린더에 각인된 문양이 화려했다.
형제의 눈빛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꼴에 총은 겁나 좋은 거 쓰네.”
“가보로 물려줄 정도는 되지. 물론 너희들은 곧 뒈질테니까 만져볼 수 없겠지만.”
“주둥이에 총알을 박아주마.”
형제들이 각자 총 한 자루씩을 올려두었다.
콜트 특허가 만료된 후 제작된 1859년식 맨해튼 네이비였다.
카드 위에 놓인 네 자루의 리볼버.
삼각형을 이루며 그 중심인 테이블과의 거리는 불과 1m.
형제들이 손가락을 쥐락펴락하고, 콜린의 입엔 여전히 시가가 물려 있었다.
셋의 시선이 엉키고, 어느 순간.
콜린이 먼저 손을 뻗었다.
그런데 놈들이 비겁하게 반칙을 사용했다.
한두 번이 아닌 듯, 동생 다비가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총과 카드가 바닥에 떨어지고.
동생 다비가 총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다.
동시에 형 딩키가 칼을 뽑아 콜린에게 달려들었다. 합이 제대로였다.
가슴을 찔러오는 칼날. 몸을 슬쩍 비틀어 피한 콜린은 딩키의 손목을 덥썩 잡아서는.
푸욱.
그대로 놈의 목에 쑤셔 넣었다.
마치 스스로 찌른 듯한 모습이었다.
바닥의 총을 잡은 다비의 동공이 팽창할 때.
철컥.
차가운 리볼버 총구가 이마 정 가운데를 눌러왔다.
“비겁하지만 작전은 훌륭했다.”
타앙!
다비의 머리가 젖혀지며 바닥에 쓰러진다.
옆엔 목에 칼이 꽂힌 형 딩키가 함께였다.
“내가 총이 좀 많거든.”
막스의 영향 탓에 SFBC 대원들이라면 절대 리볼버 두 개로 무장을 끝내는 짓은 하지 않는다. 경쟁하듯 누가 얼마나 더 많은 무기를 가졌는지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콜린이 시가 연기와 총구의 연기를 불어 날렸다.
바텐더 옆에 있던 손님들은 하나둘 들고 있던 총을 집어넣었다.
콜린이 승부에서 졌다면, 반칙한 형제들을 응징하기 위해 뽑은 총이었다.
*
콜린이 형제를 제거한 때, 막스 역시 둘을 제거하고 마지막 타겟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치에 도착했지만 총잡이 대니 패럴이 보이질 않았다.
수레를 끄는 한편 막스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그리고 어느 순간.
‘!?’
반대쪽에서 비슷한 차림의 한 남자가 수레를 끌며 다가왔다.
< 너는 누구냐 >
어두운 골목에서 거지처럼 웅크리고 있던 대니 패럴. 눈으로는 로잔나 피어스를 응시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까부터 거리를 배회하는 자신과 같은 차림의 부랑자.
언제부턴가 후각을 자극하는 피 냄새.
그리고 방금 로잔나 피어스에서 들려온 총성.
크진 않지만 분명 그곳 지하에서 새어 나온 총소리가 분명했다.
‘총소리는 한 발. 형제가 성공했나.’
그 반대라면 두 발이 들려왔을 것이다.
의뢰 종결로 가닥을 잡은 대니 패럴은 철수를 준비했다. 경쟁에서 패배한 이상 착수금 10달러가 그의 몫이었다.
변장까지 하며 골목에 죽치고 있던 시간을 생각하면 적은 액수다.
하지만 대니 패럴은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속사수 올드 플래허티에게 총 뽑을 시간도 주지 않은 인간을 무슨 수로 죽이냐.’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약한 게 아니라 상대가 강해서다.
게다가 애초에 대니 패럴이 노린 건 착수금 10달러였다.
형제는 둘이라 용감하고 무식했던 거고.
대니 패럴은 미련하게 서부 사령관과 정면으로 맞닥트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백인과 흑인의 혼혈. 도망 노예로서 온갖 역경을 딛고 살아온 생존 본능이었다.
‘이런 거 보면 돈 벌기 참 쉬워.’
대니 패럴이 키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로잔나 피어스를 응시했다.
술집 앞에 있는 바운서는 의자에 몸을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주변에 있을 다른 총잡이들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누구도 술집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뭔가 찜찜하지만, 대니 패럴은 천천히 잡동사니가 실린 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다른 총잡이들은 철수했으려나.’
골목을 빠져나오자 기분 나쁜 피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왔다. 저 멀리엔 자신과 같은 부랑자가 손수레를 밀며 다가오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을씨년스런 거리와 바퀴 굴러가는 소리.
스카프를 두르고 헤진 모자를 눌러 쓴 모습.
그 사이로 비친 흰 눈자위만 보일 뿐, 은은하게 비춘 달빛으론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상할 건 없다. 파이브 포인츠의 부랑자들의 흔한 모습이었으니까.
상대와는 대략 10m.
자신은 왼쪽, 저쪽 부랑자는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거리를 좁혀왔다. 그런데.
피 냄새가 갈수록 진해진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 순간.
대니 패럴의 몸이 경직되어 발걸음을 멈췄다.
상대도 멈춰 서서는 자신을 응시했다.
자신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상대의 희번덕거리는 눈빛.
‘시발, 저게 부랑자의 눈빛이라고?’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눈빛에 찔려 죽을 것 같은데? 더욱이 피 냄새와 주변의 적막함은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총잡이 둘을 해치운 놈을 무슨 수로 이길까.
수레를 잡은 대니 패럴의 손에 땀이 맺히고, 머릿속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 넌 누구냐?”
대니 패럴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릴 때. 낮은 목소리가 고막을 후벼팠다.
“막스 조.”
“!”
상대가 움직인다.
드르륵. 척, 척.
‘시발. 시발!’
서부 사령관이 왜 여기서 이 지랄을 하고 있단 말인가.
대니 패럴의 동공이 미친 듯 요동쳤다.
머릿속엔 여러 경우의 수가 떠다녔다.
총을 뽑을까, 도망갈까. 그것도 아니면···.
이런 때일수록 결단은 신속하게.
대니 패럴은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어 항복을 외쳤다.
“서, 서뤤더!!”
‘뭐야 저 자식은?’
총을 뽑으려던 막스의 눈빛이 크게 출렁였다.
뉴욕 뒷골목에서 칼 서렌을 들을 줄이야.
빠각.
막스는 대니 패럴을 후려쳐 기절시켰다.
그리곤 바운서 찰리에게 끌고 갔다.
모든 걸 지켜본 그는 흥미로운 얼굴로 대니 패럴을 쳐다봤다.
“누가 서부 사령관 아니랄까 봐. 포로를 잡아 왔구먼.”
“여기 감옥은 없겠죠?”
“왜 없겠어. 여긴 로잔나 피어스야.”
잠시 후. 야채 가게 안에서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나 대니 패럴을 끌고 사라졌다.
막스가 숙소로 복귀했을 때, 문소리에 놀란 피치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마가 뻘건 걸 봐서는 엎드려 자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나 안 잤다.”
“누가 뭐래.”
무장을 해제하던 막스는 소파에서 잠든 콜린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때 방문이 열리며 매그가 들어왔다.
“대니 패럴은 어쩔 생각이에요?”
“정보 좀 알아봐 줘. 뭐하던 놈인지, 과거를 캘 수 있는 데까지 캐줘.”
변장, 상황 파악, 눈치가 빠른 놈이다.
개차반이면 제거하고 쓸만하면 다른 쪽으로 고용할 생각이었다.
매그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을 벗어나기 전, 그녀는 잠자고 있는 콜린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꿩 대신 닭이랄까.
오늘 콜린이 총잡이 형제를 제거한 모습은 막스에게서 받은 충격만큼이나 강렬했다.
- 에밀리, 넌 좋겠다. 괴물 같은 두 남자와 같이 있어서.
- 두 남자? 나중에 특수부대원들 보면 깜짝 놀라겠네.
- 뭐야, 더 있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이건 인생에 몇 안 되는 기회.
매그는 막스가 자신에게 베팅해주길 열망했다.
그러기 위해선 능력을 총동원해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불과 며칠 사이 베팅의 입장이 180도 뒤바뀐 것이다.
*
다섯 총잡이의 몰살.
충격적인 소식이 파이브 포인츠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과연 타마니 홀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다음 행동을 주목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타마니 홀보다 막스가 먼저 움직였다.
“콜린, 오늘 밤 보워리 보이즈 갱단의 아지트 하나를 박살 낼 건데. 같이 갈 거죠?”
“수비보단 역시 공격이지. 본격적으로 판을 키워보자고.”
콜린은 언제나처럼 막스의 의견을 따랐다.
어차피 목적은 하나.
뉴욕 갱단의 와해다.
이를 위해 막스는 적대세력끼리 싸우게끔 유도하는 이간질을 계획했다.
원래 박혀있던 돌과 굴러 들어온 돌.
잉글랜드계의 원주민과 아일랜드 이주민 갱단들의 충돌.
아일랜드계 갱단 치채스터가 시작이었다면, 이번엔 적대세력인 잉글랜드계 보워리 보이즈가 그 타겟이었다.
“이번에도 해피가 필요한 건 아니지?”
피치는 구석에서 조용히 누워있는 코커스패니얼을 가리켰다.
현재는 빌리에서 해피로 개명한 상태였다.
“이번엔 은밀하게 해야 하니까. 개는 해피는 필요 없어.”
그날 밤.
매그가 준 정보를 토대로 막스와 콜린은 보워리 보이즈의 아지트 하나를 습격.
인신매매가 주 종목인 7명의 갱스터를 제거했다.
이날은 특별히 총 대신 칼과 도끼를 사용했다.
그리고 바닥엔 피로 ‘Fuck bowery baby!’라는 글자를 남겼는데.
보이즈를 베이비로 비꼬아 남긴 말이었다.
파이브 포인츠의 북쪽 보워리 스트리트.
그곳의 한 건물에 보워리 보이즈 갱단 핵심들이 소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