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8/360)

쾅!

“치채스터다! 이 개새끼들이 우릴 물로 봤어!”

보스 모세 파이어보이가 책상을 내려치며 분개했다. 한때 엔진 넘버 9에 속한 자원 소방수로 가는 곳마다 모세처럼 불길이 갈라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놈들이 서부 사령관한테 당한 걸 우리한테 화살을 돌린 겁니다. 그 정도로 같잖게 본 거죠.”

“그동안 평화가 너무 길었습니다!”

물론 싸움은 하루도 멈추질 않았지만, 전쟁이라 할 만큼 큰 건은 3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충돌로 데드 레빗과 보워리 보이즈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다른 갱단이 난립하는 틈을 만들어 주었다.

두 갱단은 이를 깨닫고 될수록 유혈 사태를 피해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여기서 어물쩡 넘어가면 우리의 입지만 좁아질 겁니다.”

“설사 누군가의 이간질이라 해도 보복은 해야 합니다.”

갱단들이 많고, 관계가 복잡해서 제3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보복 대상을 치채스터로 규정했다.

핵심 간부들의 눈은 이미 투쟁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보스 모세 파이어보이는 그들의 눈빛에 응답했다.

“오늘 치채스터 아지트 하나를 작살 낸다.”

밤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보워리 보이즈 30명을 모았다. 그렇게 갱스터가 모여 치채스터가 운영하는 아편굴에 쳐들어가 다섯 명을 죽였다.

그런 뒤 피의 문장을 남겼는데.

‘Fucking cheesester!’로 치채스터를 치즈나 처먹는 새끼들로 비꼬았다.

두 갱단 간의 감정이 극에 달할 때.

막스는 로잔나 피어슨 지하 감옥에서 ‘칼 서렌’을 외친 대니 패럴과 마주했다.

밤에 봤을 땐 몰랐지만, 갓 20대가 된 준수한 외모의 백인 청년이었다.

“그날 부랑자 행세는 왜 했어?”

‘넌 왜 했는데, 새끼야.’

대비 패럴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삼키며 다른 말은 내뱉었다.

“..... 그게 제 전매특허거든요.”

“전매특허는 개뿔. 그래서 지금까지 뭐 뭐 변장해봤어?”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듯, 서부 사령관도 변장에 관심이 있어 보인다.

하긴 그랬으니까 자기도 했겠지.

‘총은 몰라도 변장은 내가 너보단 위다 이거야.’

대니 패럴은 목을 좌우로 한 번 까딱거리며 말을 이었다.

“노인, 광부, 보안관, 경찰, 소방수. 플러스! 여자로도 변장했습니다.”

“호, 여자까지?”

“말도 마세요. 제가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 몇 번은 고백까지 받았다니까요.”

“남자한테?”

“시발, 그럼 여자한테 받았겠습니까? 답답하···.”

퍽.

막스가 머리를 후려쳤다.

“서렌 친 새끼가 상황 파악을 못 하네.”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변장 얘기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그만.”

쿵, 쿵.

대니 패럴은 자해하듯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막스는 팔짱을 끼며 대니 패럴을 쳐다봤다.

매그가 조사한 내용과 비교해서 그의 성격을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너. 혼혈이지?”

대니 패럴이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냥 봐서는 모를 텐데.’

아무래도 뒷조사를 한 모양이다.

실제로 자신의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는 흑인 노예였으니까.

“너에 관해 말해봐.”

막스의 눈빛을 본 대니 패럴이 고민에 휩싸였다.

자신은 도망 노예다.

뉴욕은 자유주지만 남부로 끌려가는 순간 노예로 전락한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지 않고, 되려 인간적인 질문을 던진 서부 사령관이 그런 짓을 할까.

결심을 한 대니 패럴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로 했다.

주인 아버지가 노예 어머니를 임신시키고, 하얀 피부를 갖고 태어났지만 백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예가 된 것.

아버지의 본부인과 이복형제들에게 학대당한 우울한 유년 시절의 기억들.

쓸데없이 자세했지만 대니 패럴의 말재주 때문인지 막스는 몰입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과거를 듣던 중, 막스의 귀를 쫑긋하는 말이 이어졌다.

“아버지가 인정을 안 해줘서, 어머니와 함께 아칸소 켄트 농장으로 팔려 갔죠. 그러다 열세 살쯤. 탈출할 기회가 생겼어요.”

지하철도의 도움으로 아칸소에서 미주리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때는 한창 보더 러피안과 제이호커스가 전쟁을 치를 때였다.

“보더 러피안과 노예 사냥꾼한테 쫓기다 죽을 뻔했거든요. 근데 로렌스 보안관이 살려줬어요.”

“..... 얼굴을 직접 봤어?”

“아뇨. 그렇게 들었어요.”

“누구한테?”

“미주리주 캔자스 시티의 지하철도 역 차장이요.”

“술집 바운서?”

대니 패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려 할 때, 갑자기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려봐.”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처럼 대니 패럴 앞에 그 인물이 나타났다.

대니 패럴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7년 전 자신과 어머니를 일리노이주로 탈출시켜준 지하철도 역 차장.

그는 변함없이 시가를 문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알아볼까···.’

지하철도 역 차장에겐 여러 도망 노예 중 하나일 테니까.

그런데.

“케이시 밀런 패럴의 꼬맹이 아들이 이렇게 컸구나.”

대니 패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내 탁자에 이마를 댄 채 흐느꼈다.

이를 본 막스가 팔짱을 끼며 넌지시 말했다.

“나는 그때 그 로렌스 보안관이다.”

순간 고개를 든 대니 패럴이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 어흑!”

< 룰이 깨졌다. >

대니 패럴의 어머니는 4년 전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여러 주를 떠돌아다니다, 오하이오 캔턴에서 일이 있었습니다. 저를 못살게 구는 카운티 시장의 아들을··· 죽였거든요.”

그렇게 연방 보안관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다, 파이브 포인츠까지 흘러들어온 게 1년 전의 일이었다.

콜린이 턱을 매만지며 말을 건넸다.

“그래도 네 나이에 타마니 홀에서 고용할 정도면 실력은 제법 있었구나.”

“뉴욕에 오자마자 바버 팻시라는 유명한 총잡이랑 붙었어요. 그땐 누군지도 몰랐는데, 아무튼 이거 덕분에 이겼죠.”

대니 패럴이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얇은 두께의 철판으로 항상 옷 안에 갑옷처럼 두른다고 했다.

대니 패럴은 확실히 다른 총잡이들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그날의 대화가 끝나고.

대니 패럴은 로잔나 피어스에 고용됐다.

다만 고용주는 매그가 아닌 막스였다.

“여기가 아니라 밖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게 네 임무야.”

“타마니 홀에서 저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요.”

“그러니까 잘 둘러대야지. 자신 없어?”

“아뇨. 있습니다!”

“입사 테스트라고 생각해.”

‘입사···. 능력과 신뢰를 보이라는 말이네.’

사흘간 행방불명된 총잡이. 다시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그를 찾는 건 타마니 홀일 것이다.

상황은 부담스럽지만, 목숨을 빚진 로렌스 보안관과 지하철도 역 차장과 함께라면 모험을 걸 만했다.

대니 패럴이 로잔나 피어스를 벗어나고, 막스와 콜린은 새로운 표적을 설정했다.

파이브 포인츠에서 북쪽으로 3.3km 떨어진 매디슨 애비뉴.

허니문 갱단이 대상이었다.

“갱단 맞아? 이름이 너무 달콤한데?”

콜린의 말에 매그가 크게 고개를 저었다.

“이름하고 정 반대에요. 아마 맨해튼 일대에서 제일 잔인한 갱단일걸요? 배셔 패트롤로 유명하거든요.”

배셔 패트롤(Basher Patrol)은 지나가는 행인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말이다.

경찰들이 들고 다니는 몽둥이 같은 걸로 머리를 후려치는 잔인한 공격방식이었다.

“거긴 파이브 포인츠랑은 구역이 달라요. 설마 착각한 건 아니죠?”

“어차피 그 구역도 뉴욕 맨해튼이잖아.”

“...... 역시 스케일이 남다르네요.”

뉴욕주는 너무 넓고, 최소한 맨해튼 섬은 먹어야지 않겠는가.

허니문 갱단만이 아니다.

내친김에 막스는 가는 길에 마주치는 모든 갱단을 무차별 공격하기로 했다.

*

늦은 밤. 로잔나 피어스의 비밀 통로에서 두 인영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온통 검은 복장에 스카프와 모자를 눌러써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곧 허니문 갱단이 있는 북쪽으로 이동했다.

경로는 어둡고 음습한 골목. 그래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갱스터와 마주쳤다.

“이 새끼들이 요즘 때가 어느 땐데 밤에 싸돌아다녀?”

“둘 다 이리 튀어와.”

도끼와 칼을 든 남자들이 다섯.

막스와 콜린은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느 갱단?”

콜린의 말에 남자들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플러그 어글리스 갱단이다, 새끼야.”

막스의 머릿속에 갱단의 이력이 떠다닌다.

데드 레빗의 동맹 중 하나.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에서도 같은 이름의 조직이 존재한다. 일종의 프랜차이즈 갱단으로 선거철 때 폭력과 폭동으로 대중을 교란 선동하는데 특화된 놈들이었다.

그리고 선거가 없는 요즘 시기엔 데드 레빗의 키트 번스와 손잡고 뉴욕 맨해튼에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해서 막스의 결론은.

푸슉.

한 놈의 목을 찌르고.

곧바로 옆에 있던 자에게 접근. 가슴에 칼끝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미처 휘두르지 못한 도끼를 빼앗아 다른 한 놈을 향해 던졌다.

쩌억.

이마에 도끼날이 박히고 그대로 몸이 뒤로 넘어갔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을 땐, 콜린도 마지막 한 명의 가슴에서 칼을 뽑고 있었다.

막스가 셋, 콜린이 둘을 처리하는 데는 고작해야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칼날에 묻은 피를 닦아낸 둘은 터벅터벅 골목을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뉴욕 밤거리의 하이에나. 이날 밤, 막스와 콜린은 동부의 무법자였다.

매디슨 애비뉴 29번가 스트리트 골목.

막스와 콜린은 허니문 갱단이 있는 곳까지 오는 동안 총 22명의 갱스터를 제거했다.

그리고 지금.

쪽수가 많은 허니문 갱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둘의 리볼버를 빼 들었다.

타앙!

타앙!

“왜 우릴 공격하는데, 개새···.”

푸슉.

총과 칼을 동원한 싸움.

막스와 콜린의 일방적 학살로 끝을 맺었다.

총소리를 듣고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둘은 몇 블록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뭘 했다고 벌써 잠이 쏟아지냐.”

“그냥 담배를 끊어요.”

“노노. 그건 내 유일한 낙이라고.”

“잠자는 건?”

“물론 그것도 낙이지. 가면 하루 종일 잘 테니까 절대 깨우지 말라고.”

막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죠. 먹고 또 자요.”

“뭐, 봐서.”

*

간밤에 다섯 개의 갱단 47명이 피살됐다.

이 사건으로 파이브 포인츠, 아니 맨해튼 전체가 들썩거렸다.

로잔나 피어스.

정오에야 일어난 콜린은 기지개를 켠 뒤, 시가부터 입에 물었다.

“피치는?”

“매그랑 같이 있을걸요.”

막스는 책상에서 편지를 쓰며 대답했다.

콜린은 소파에 앉아 매그가 가져온 호외를 훑어봤다.

“이렇게 쑤셔놨으면, 갱단도 우리가 했다는 걸 알겠지?”

“대가리가 있으면 눈치챘겠죠.”

“그럼 언제쯤 쳐들어올 것 같아?”

“글쎄요. 아마 놈들도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밤사이 벌어진 초유의 사태.

갱단들은 결국 첫 사건의 용의자 막스를 범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미 그들의 증오와 분노는 쌓일대로 쌓였을 터. 어쩌면 서로의 싸움을 중단하고 힘을 합칠지도 모른다.

문제는 상대가 북군의 장군이라는 거.

노골적으로 공격하기엔 그 위치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총잡이들을 통한 암살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해서 갱단들은 건물을 박살 내서라도 막스를 제거하려 들것이다.

문제는 그만한 일을 벌이려면 반드시 경찰과 민병대 같은 공권력의 개입을 막아야 했다.

“아마 타마니 홀과 뉴욕시장에게 암묵적 동의를 얻어내겠죠.”

어차피 현 뉴욕시장이 타마니 홀 출신인데다 그들 역시 막스가 죽길 바라고 있었다.

게다가 막스는 타마니 홀에게 더 큰 자극을 주기 위해 밴더빌트와 모건을 통해 뉴욕 철도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추가로 그들이 노리는 이리 철도 지분 투자에도 손을 댔다는 걸 알고 있을 터. 타마니 홀은 갱단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합심해서 공격하는 순간.

비로소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

공격당한 막스가 특수부대를 동원할 명분.

썩은 물을 제거하고 새로운 물로 채우는 건 그 한 번이면 충분하다.

막스와 콜린이 대화를 나누던 때.

피치가 방문을 열었다.

옆엔 아버지 레드도 함께였다.

막스와 레드는 방을 옮겨 대화를 나눴다.

“나를 보자고 했다 들었네.”

“제가 돌아다닐 상황이 아니라서요.”

“그렇지. 밤엔 내가 잘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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