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화 (199/360)

레드의 입가에 웃음이 흘렀다.

막스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최근 단원들이 공격당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뭐, 심각한 건 아니네. 다만. 오늘 이후로는 더 심각해지겠지.”

지금 같은 상황이면 부하들 몇이 죽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막스가 벌이는 일들이 연일 파이브 포인츠를 뒤흔들고 있으니. 레드의 고민은 고립된 상황이 과연 언제 끝나는가였다.

막스 역시 사건을 벌일수록 피치의 가족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해서 생각해낸 것이.

“이참에 잠시 다른 곳에서 거주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가족과 부하들까지요.”

“여길 벗어나면 뭘 먹고 산단 말인가? 혹 콜로라도에서 금이라도 캐게 해줄 텐가?”

“그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너무 멀죠. 그리고 금광은 온전히 제 소유는 아닙니다.”

막스가 슬쩍 발을 뺐다.

처갓집도 그렇고.

갱단 부하들까지 먹여 살리려 금광까지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신 미리 준비해둔 게 있었다.

“하퍼스 페리는 어떻습니까?”

“매릴랜드와 웨스트 버지니아 사이에 있는 병기창 말인가?”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사병 훈련소가 지어질 겁니다. 공사 인력으로 가면 여기보다 벌이나 나을 겁니다.”

레드가 눈을 껌뻑거렸다.

사병 훈련소라는 말도 생소하거니와 그곳 공사 인부를 막스가 결정한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이미 말은 다 해뒀습니다. 전쟁 장관도 동의했고, 대통령 사인까지 끝났습니다.”

“대, 대통령까지?”

“예. 모든 공사 권한은 저한테 주기로요. 지금이라도 가면 됩니다.”

“......”

어쩌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한 사위를 얻은 모양이다.

“어차피 공사는 길어봐야 두어 달입니다. 문제는 다시 돌아왔을 때인데.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수천 명도 아니고 피치 가의 갱단 조직원이라고 해봐야 70명 내외다.

로렌스에 있는 식품과 의류 공장을 옮기면 고용하고도 남았다.

“그런 사업도 하나?”

“부지런히 일해야 에밀리를 먹여 살리죠.”

“...... 알겠네.”

대화가 끝나고, 일어나려던 레드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말을 건넸다.

“아직 에밀리에겐 말을 안 했네.”

“감사합니다. 프로포즈는 직접 해야죠.”

“거창할 필요 없네. 프로포즈란 그저 에밀리의 눈에 눈물이 쏟아질 만큼 기뻐하게 만들면 되거든.”

“장모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 이만 가보겠네.”

프로포즈 보다 장남 마틴이 먼저 생겼다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결혼식은커녕, 감자 대기근으로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느라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가족을 위한다고 미국으로 넘어왔지만, 정작 가난한 갱단 두목이 되어있으니.

레드는 예비 사위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에서 자기 사람들을 지키는 건 쉽지 않은 일.

레드는 막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출장 간다고 생각해라. 하퍼스 페리면 기차로 고작해야 이틀거리니까.

더욱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데다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말에 부하들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피치 가는 곧 불어닥칠 태풍을 피해 하퍼스 페리로 향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며칠 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덜컥.

“큰일 났어요, 막스!”

헐레벌떡 들어온 매그.

뒤로는 피치가 멍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그녀가 말하길.

“여동생이 납치됐어.”

“!”

변수가 생겨났다.

갱단의 가족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더니, 그 룰이 깨진 모양이다.

“원하는 건 보스일 테고. 누가 벌인 짓이야?”

콜린의 말에 피치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의심 가는 갱단이 어디 한 둘인가.

‘나를 밖으로 꾀어내기 위해 납치를 해?’

분노가 치밀수록 막스의 머릿속은 냉정해져만 간다. 사건을 벌일 때부터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했었다. 해서 피치 가를 하퍼스 페리로 움직이게 한 건데, 너무 늦은 모양이다.

막스의 굳어진 얼굴을 본 피치는 외려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 말을 했으면 아무도 안 따랐을 거야. 이건 네 책임이 아니야. 스스로 조심하지 못한 여동생 탓이지.”

“아니, 일을 벌인 건 나야. 그러니 수습해야지.”

피치는 막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한편으론 믿음도 있었다. 지금까지 막스는 어려운 걸 쉽게 해냈으니까.

‘납치된 인질을 빼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막스의 머리가 몇 가지가 떠올랐다.

그중 하나를 선택. 매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이슨 굴드 위치 좀 당장 파악해 줘.”

“굴드요?”

밴더빌트와 이리 철도의 이권을 두고 경쟁하는 자본가. 막스가 죽길 누구보다 바라는 자.

그리고 타마니 홀의 강력한 실세.

“그자를 납치한다.”

“!”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했을 뿐.

< 납치엔 납치로 >

뉴욕 시청 남동쪽으로 불과 150m 떨어진 곳.

중앙에 아치형이 드리워진 5층 건물이 타마니 홀 본부다.

이곳에서 최근 파이브 포인츠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핵심 인물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전 하원 의원이자 현재 타마니 홀의 리더인 윌리엄 트위드가 입을 열었다.

“정리해보면. 갱단들이 합심해서 동양인을 공격하겠다, 그러니 뉴욕시와 경찰, 민병대는 눈을 감아달라. 이거군요.”

“그렇습니다. 총잡이들까지 실패한 마당에, 갱단들이 직접 나서겠다는데 우리로선 손해 볼 게 전혀 없죠.”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트위드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봤다.

“오늘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갱단 하나가 동양인과 관련 있는 레드의 딸을 납치했다더군요.”

회의장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인질로 놈을 유인해 제거하겠다, 이겁니까?”

“데드 레빗의 갱단 보스 딸을 납치하다니, 나중에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야 우리가 알 바는 아니죠. 갱단끼리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찜찜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트위드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데드 레빗의 레드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자들이다.

하지만 트위드의 말마따나 갱단들이 나서서 일을 키우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제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다들 동양인의 진짜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밴더빌트와 모종의 밀약이 있던 게 아니겠습니까. 뉴욕주 철도와 이리 철도의 지분 문제가 아마 가장 큰 이유겠죠.”

트위드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이중 가장 젊은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이슨 굴드.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막스와 같은 1836년생의 남자.

제이슨 굴드는 회계사와 측량사 일로 돈을 벌고, 한때는 호수에서 만들어진 얼음을 직접 철도를 깔아 여름철 뉴욕으로 공급하는 사업으로 큰돈을 만진 인물이었다.

몇 년 전부턴 소형 철도의 주식을 투기적 목적으로 사들여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 타마니 홀의 실세로 자리매김한 자였다.

“다들 밴더빌트만 주목하시는데, 그 동양인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과 엮여 있습니다. 이를테면 존 브라운 대통령이 제안한 억지스러운 대륙횡단 기차 법안이 그 예죠.”

제이슨 굴드는 그동안의 뒷조사를 토대로 설명을 이어갔다.

“몇 개월 전, 밴더빌트가 워싱턴에 직접 찾아가 자신이 보유한 가장 큰 증기선을 기부했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자는 분명 대륙횡단 철도에 대해 투자가들의 목소리를 전한다고 했는데, 그날은 아무런 답도 듣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존 브라운은 인디언을 염두한 철도 법안을 제안해 사람들을 당황 시키기까지 했다. 이는 밴더빌트가 대통령과 무슨 거래를 한 게 아닌지 의심만 부추겼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낀 게 바로 서부 사령관.

“해서 동양인은 동부 쪽 대륙횡단 철도까지 넘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정도로 야망이 큰 놈이라는 거죠.”

“그럼 이번 납치 사건으로 놈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보나?”

트위드의 말에 굴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간 조사해본 바로 동양인은 생각보다 더 잔인하고 냉정한 인물이었다.

“놈이 서부 사령관 자리를 거저 얻은 건 아니죠. 그깟 인질에 말려들진 않을 겁니다.”

“흠. 자넨 좀 회의적이라 이거군.”

“분명 레드의 딸이 죽든 말든 개의치 않아 할 겁니다. 우린 확실히 놈을 제거할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그게 곧 존 브라운 대통령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일 테니까.’

회의가 끝나고 트위드는 굴드를 따로 불러냈다.

“이번 일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성공하면 타마니 홀은 물론 뉴욕을 벗어나 이름을 알리게 될 걸세.”

“감사합니다.”

“대통령한테 이상한 게 붙어서 온갖 훼방을 놓으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아니겠나.”

감히 뉴욕의 일에 개입한 건방진 동양인.

그런 자를 끼고돌아 서부 사령관까지 앉힌 대통령에겐 일종의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날카롭게 눈을 빛낸 트위드가 굴드의 눈을 응시했다.

“많은 자본가가 동양인의 죽음을 원하고 있네. 돈이 얼마가 들든, 확실한 방법을 찾게.”

“맡겨주십시오.”

‘어차피 인질로 될 놈이 아니야.’

동양인을 제거하려면 결국 갱단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을 터. 방법을 궁리하며 제이슨 굴드는 타마니 홀 건물을 빠져나왔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저녁.

선약이 있는 굴드가 마차를 잡아 세웠다.

목적지는 뉴욕 경찰국장과 시의원들이 모이는 행사장.

“처치 스트리트 6번가로.”

마차는 시청을 끼고 브로드웨이 스트리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워스 스트리트를 끼고 좌회전을 했을 때.

갑자기 마차가 멈춰 섰다.

‘뭐지?’

제이슨 굴드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검은 천을 뒤집어쓴 열댓 명이 마차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너한테 볼 일이 있거든.”

복면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제이슨 굴드의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 척. 너 이 새끼, 척 피치 맞지?”

“도끼에 대가리 찍히고 싶지 않으면, 잔말 말고 따라와.”

척은 마차에서 굴드를 끌어내 마찬가지로 복면을 씌웠다.

그리고는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 다른 마차에 태워 장소를 이동했다. 굴드는 자신의 옆에서 도끼를 들고 있는 척에게 물었다.

“젠장,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몰라서 물어? 만약 에일린 몸에 손 하나 까딱했다간, 팔다리 하나씩 잘라낼 줄 알아.”

“아니, 시발. 여동생 납치당한 거랑 내가 무슨 상관인데?”

“진짜 상관없어?”

복면 속 검은 눈동자를 피해, 굴드는 눈알을 굴려 도끼를 힐끔 쳐다봤다.

침을 꿀꺽 삼키곤 목소리를 높였다.

“맹세컨대, 난 전혀 모르는 이야기야!”

“그렇다 이거지?”

“그렇다니까!”

“알았다.”

“...... 뭐야, 시발. 장난해? 내가 누군지 몰라? 알면서도 이런 거면 니들이 무사할 것 같냐고, 새끼들아!”

발악하는 굴드의 목에 차가운 금속이 느껴졌다. 도끼날이 살갗이 파고들 즈음.

무식하고 음산한 척의 목소리가 고막을 후벼팠다.

“네 입처럼. 어디 네 놈의 몸값이 그 정도인지 확인해 보자고.”

“서, 설마 여동생과 나를 교환하려는 거냐?”

“이건 상상도 못 했지?”

제이슨 굴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척의 말마따나 충격적인 방법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납치할 줄이야.

‘납치를 납치로 대응하다니. 이건 그 동양인 새끼가 계획한 거다!’

갱단 나부랭이들이 이런 머리를 썼을 리가 없다. 서부 사령관이 계획한 게 분명했다.

생각할수록 소름 끼치는 건.

타마니 홀의 리더는 감당하기 어렵고, 그나마 만만한 자신을 택했다는 거.

‘교활한 놈. 네 놈을 철저히 부숴주마.’

굴드는 복면 속에서 이를 바득 갈았다.

그 소리를 들은 척은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었지만, 에밀리의 말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 다른 사람도 아닌 에일린을 구하는 거야. 막스가 개입하면 일만 복잡해지니까, 오빠들이 해. 어려운 거 아니잖아?

- ...... 그렇긴 하지.

- 그럼 당장 가서 제이슨 굴드 데려와. 대신 이상한 짓은 하지 말고. 오빠들도 나중에 뒷감당하기 힘들잖아?

멀쩡한 사업가를 납치하면 그만큼 리스크가 따르는 법. 척과 마틴이야 뉴욕에서 도망가면 그만이지만, 막스는 다르다.

지금까지 교활한 여우처럼 막스는 피해나갈 구멍들을 만들며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여동생 때문에 일이 어긋난다?

이는 피치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해서 조금은 냉정하지만 오빠들에게 일을 강요했다. 물론 아버지의 동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굴드를 데려와라.

- 알겠습니다, 아버지!

*

와터 스트리트의 크림프 하우스 살롱.

키트 번즈의 부하가 경악할 만한 소식을 들고 왔다.

“내가 지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 다시 말할까요? 제이슨 굴드가 납치되서 에일린 피치와 교환을···!”

짝.

키트 번즈의 큼지막한 손바닥이 부하의 뺨을 후려쳤다.

“내가 진짜 못 들었겠냐! 그러니까 왜 갑자기 제이슨 굴드를 납치했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개새끼야!’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른 부하는 얼굴을 문지르며 눈치를 살피고. 키트 번즈는 씩씩거리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시발, 레드 그 새끼가 이런 수를 썼다 이거지. 그냥 딸년을 죽여?’

그러다 제이슨 굴드가 죽으면?

타마니 홀에서 책임을 물어 자기를 제거하려 들 게 빤하지 않은가?

나이는 어려도 제이슨 굴드는 타마니 홀의 실세다. 그가 계획한 사업과 투기 자본이 곧 핵심 인사들의 자금줄이었다.

레드의 둘째 딸과 교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젠장!”

다혈질인 키트 번즈는 테이블 걷어차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인근 어딘가에 감금된 에일린을 찾아갔다.

그날 밤 자정.

워스 스트리트의 뒷골목.

신분을 노출 시키지 않으려 양측 전부 검은 천을 뒤집어썼다. 키트 번즈는 같은 보스인 레드에게 발각될까 숫제 나오지도 않았다.

대략 30미터.

마침내 인질 교환이 이루어졌다.

제이슨 굴드는 자신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가는 남자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네놈은 보스를 잘못 만난 거야. 곧 피치 가가 어떻게 되는 지 똑똑히 보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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