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멍청한 새끼. 하긴 그러니까 갱스터 짓이나 하고 있겠지.”
콰직.
상대가 대답 대신 굴드의 뒷목을 잡아 옥죄었다. 고통에 얼굴을 찌푸린 굴드의 귓가에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넌 내 상대가 아니야, 애송이.
“!?”
순간 굴드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너··· 설마, 서부 사령관···.”
“교환이다.”
제이슨 굴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
에일린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남자가 거칠게 굴드의 목덜미를 던지듯 놓았다.
양측 전부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
제이슨 굴드는 저놈이 서부 사령관이라는 말이 입에 맴돌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다.
섣부른 움직임은 자극만 불러올 뿐.
골목에 긴장감만 남긴 채 인질 교환을 끝냈다.
돌아가는 길.
에밀리가 에일린을 꼭 끌어 안았다.
“아무 일 없었지?”
“응. 이상하게 아무도 말을 안 걸더라고.”
“결국 우리와 가까운 갱단이라는 거네.”
“차라리 지금 가서 한 놈이라도 붙잡아 오는 게 낫지 않아?”
척의 물음에 굴드의 목덜미를 잡고 인질 교환했던 남자가 복면을 벗었다.
만약을 대비해 직접 나선 막스였다.
“말했지. 이번 일은 한 놈이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조만간 알게 될 거야.”
“근데 아까 제이슨 굴드한테 귓속말로 뭐라고 한 거야?”
“신호를 보냈지.”
“신호?”
이왕 공격하려면 더 격렬하게 하라는 신호.
막스는 미소를 머금으며 미래의 처제 에일린을 쳐다봤다. 그녀는 씽긋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마 언니인 에밀리가 옆구리라도 찌른 모양이었다.
어찌 됐든.
에일린은 잠깐 마실 갔다 온 사람처럼 편안한 얼굴이었다.
언니인 에밀리와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닮아 있달까. 아니 오히려 피치보다 그늘이 없고 긍정적이었다.
*
다음 날.
예정대로 피치 가는 하퍼스 페리로 이주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일을 저지른 마틴과 척은 가슴을 콩닥거렸지만, 다행히 경찰이 오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아침 일찍 타마니 홀을 찾아간 제이슨 굴드가 트위드와 독대를 청했다.
밤 사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트위드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레드 피치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구만.”
“그쪽은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겁니다. 문제는 그 동양인이죠.”
제이슨 굴드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잤습니다. 그 자식을 없애기 전까진 아마 계속 그럴 겁니다.”
“그래서 계획은?”
“이틀 후, 시청 주변에 노동자들의 시위를 조장하고. 같은 시각 로잔나 피어스를 쑥대밭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말 그대로 전쟁이 벌어지는 거죠.”
시위는 경찰들이 갱단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 트위드는 굴드의 의도를 파악하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갱단들에게도 무기가 필요하겠군.”
“뉴욕시 민병대의 무기고에서 라이플과 리볼버를 분출하게 조치해 주십시오.”
“뭐, 갱단의 폭도들이 빼앗아갔으면 도리가 있겠나. 어쩔 수 없는 거지.”
전 하원이었던 윌리엄 트위드.
뉴욕시장 페르난도 우드.
이들이 현 타마니 홀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여기에 더해 같은 민주당원이자 북군 사령관 맥클라렌까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우드와 트위드야말로 돈과 권력, 힘을 가진 뉴욕의 왕이었다.
한편, 피치 가가 뉴욕을 떠나는 동안 막스는 로잔나 피어스에 틀어박혀 있었다.
“매그, 대니 패럴에게 이번 납치 사건 원흉을 파헤치라고 전해 줘.”
“알았어요. 그나저나, 제이슨 굴드를 건드렸으니 일이 더 커졌네요.”
“커지면 커질수록 좋은 거지.”
막스는 종이에 몇 가지 단어를 끄적거렸다.
타마니 홀과 갱단, 로잔나 피어스.
그리고 SFBC···.
‘..... 너넨 대체 언제 오는 거니?’
막스는 나름 치밀하게 날짜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SFBC가 멤피스에서 출발한 날짜를 따져보면, 얼추 어제쯤 뉴욕에 도착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혹한기를 너무 오랫동안 안 했어.’
정신은 나약해지고, 육체는 편안함을 쫓을 때가 된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막스는 빈 종이에 생각나는 대로 훈련 스케쥴을 써 내려갔다.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며 미소가 번져갔다.
*
메릴랜드의 볼티모어역.
뉴욕에서 하퍼스 페리로 가려면 이곳에서 일리노이행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볼티모어는 워싱턴과 동부 주요 도시를 잇는 역이라 승객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엄마, 저거 도끼 아니에요?”
“...... 어머, 얘가 무슨. 얼른 눈 감아.”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을 채운 무리.
세상에 불만이 많아 보이는 피치 가의 갱단들이 사람들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그들이 알 수 없는 압박과 공포감으로 시간을 보내던 때.
일리노이에서 온 기차가 도착했다.
그 안에선 근 이백여 명의 남자들이 내려섰는데,
“시벌껏. 동부가 멀긴 멀구만.”
“산초, 너 여기 처음이지?”
“넌 꼭 와 본 것처럼 얘기한다, 이 인디언 새끼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같이 군장을 메고 온몸에 무장을 한 자들.
이들이 삽시간에 플랫폼을 침묵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쳐다 보슈?”
“......”
와일드 빌 히콕이 레드 피치를 지나치며 눈을 흘겼다.
< 로잔나 피어스 습격 >
‘최소 수십 명은 죽여 본 눈.’
히콕과 시선을 마주친 레드 피치의 눈빛이 흔들렸다.
상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갱단 생활 30년이면 대충 얼굴만 봐도 각이 나온다.
머릿속에 경고 메시지가 떠다니고, 레드는 가족과 부하들을 위해 히콕의 시선을 슬쩍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상대가 되돌아와선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곤 빤히 자신의 딸 에일린과 부인을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흐음.’
레드 피치의 미간이 좁아질 때.
상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오래 못 봐서 그런가. 이상하게 피치랑 닮았네.”
“음?”
레드 피치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갱스터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이들의 소심한 몸짓과 달리 대범하고 긍정적인 에일린 피치가 히콕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 언니가 에밀리에 파운 피치인데. 알아?”
“그럼!”
“오오. 피치 동생이었어? 이쪽은 어머니?”
히콕 옆에 있던 코디가 소리치자 순식간에 이백 명에 달하는 무장 괴한들이 몰려와 피치 가족을 둘러쌌다.
부담스러운 눈빛들을 마주한 레드 피치는 직감적으로 이들이 사위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막스의 동료들이었군. 나는 에밀리의 아버지라네.”
“헛.”
전혀 안 닮았지만, 히콕의 머릿속엔 ‘뭘 꼴아 보슈’가 떠오르며 재빨리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는.
“일동 차렷!”
대원들이 칼같이 동작을 취한다.
“피치 아버님께 대하여 경례!”
“박살(Destroyed)!”
“!”
‘에밀리,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던 거니.’
피치 가족과 갱단원들은 자신들을 포위한 대원들의 기세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이때.
쿵.
기차에서 무거운 물건들이 하나둘 내려졌다.
대원들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로 육중한 무언가가 실린 수레가 다섯이나 되었다.
다들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을 때, 히콕이 레드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어디 여행이라도 가십니까?”
둘은 기차가 오기 전 뉴욕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조 에리히, 올드 웅거, 에브라임 스노우, 그리고 로잔나 피어스.
전부 파이브 포인츠에 있는 범죄자들의 울타리다. 평소에는 밤에만 시끌벅적했던 곳이 오늘은 대낮부터 사람들의 출입이 이어졌다.
이들은 원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피의 뉴욕(Blood in NY)’에 기록될 ‘로잔나 피어스 습격(Rosanna Peers Raid)’에 참가하려는 갱스터들이었다.
“내일 보워리 보이즈 갱단도 합류한다며?”
“그 새끼들도 며칠 전에 당했잖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고.”
“그러고 보니 파이브 포인츠가 생긴 이래로 처음이네.”
아니, 뉴욕 역사 이래 이렇게 모든 갱단이 한 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갱단들의 분노가 하늘에 닿아 있었다.
“동양인 새끼도 대단하긴 하다. 이것도 아무나 못 하는 거거든.”
“능력이라면 능력이지.”
“그나저나, 로잔나 피어스는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내일 쑥대밭 되는 거지. 기둥도 안 남게 될 거야.”
파이브 포인츠 갱단의 역사와 함께 한 로잔나 피어스. 하지만 동양인을 잘 못 들인 오판으로 내일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벌써 아쉬운지 사람들의 눈가에 스쳐갔다.
“어쨌든, 그 새끼는 내가 죽인다.”
“웃기는 소리. 그놈은 내 차지야.”
“차라리 1달러씩 내기 거는 게 어때? 처음으로 놈의 몸에 구멍 낸 놈이 갖는 걸로.”
“거시기 쏴도 인정해줄 거냐?”
“작아서 맞추기 힘들 텐데. 좋아, 보너스 10달러 가자!”
갱단들은 다 잡은 물고기처럼 웃고 떠들며 막스를 씹어댔다. 일반 갱단원들이 잡담으로 흥분하는 사이, 다른 쪽에선 대규모 회합이 이루어졌다.
타마니 홀에서 은밀하게 자리를 만든 뉴욕시 갱단 임시 공동체.
데드레빗, 치채스터, 보우 브라더스, 데이브레이크 보이즈, 후크 갱, 멀버리 스트리트 보이즈, 플러그 어글리스, 19번가 갱, 팬지 갱, 팻시 콘로이 갱, 아틀랜틱 가즈, 보워리 보이즈, 오코넬 가즈, 아메리칸, 가즈, 엠파이어 가즈 등. 총 20여 개의 군소 갱단 보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자리를 주관한 제이슨 굴드는 보스들을 둘러보며 입을 뗐다.
“내일 오후 무기 분출이 끝나면 공격을 하게 될 겁니다.”
마음 같아선 대포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만큼 제이슨 굴드는 로잔나 피어스 자체를 박살 내고 싶었다.
“일이 끝나면, 무기는 책임지고 회수하셔야 할 겁니다. 아니면 무기고를 약탈한 죄를 뒤집어쓰게 될 테니까.”
“그깟 동양인 하나 처리하는 데 너무 요란 떠는 거 아닌가?”
“로잔나 피어스에 몇 명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까지 죽은 갱단원들만 수십 명인데. 그놈 혼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죠.”
치채스터 갱단 25명을 죽인 것도 분명 조력자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한때 서부 사령관이라는 위치가 제이슨 굴드의 신중함과 조심성을 부추겼다.
“놈만 확실히 제거할 수만 있다면, 부족한 것보다야 과한 게 낫죠.”
“경찰과 민병대는?”
“내일 오후부터 시청 앞에서 시위가 벌어질 겁니다. 뉴욕 항구와 철도, 소방 노조로는 인원이 부족하니,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갱단원들은 빠짐없이 참가해야 합니다.”
공권력을 배제한 그야말로 갱단들을 위한 밤.
보스들의 눈빛이 각양각색으로 번쩍인다.
직접적인 피해를 본 갱단들은 복수를 불태우고, 그렇지 않은 보스들은 사태가 끝난 이후를 계산한다. 누군가에겐 뉴욕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 절호의 기회였다.
갱단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때, 로잔나 피어스 역시 변화가 있었다.
울타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손님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머물고 있던 숙박객들조차 로잔나 피어스에서 나와야 했다.
일부는 불만을 터트리지만, 소소한 보상을 노린 것뿐. 뉴욕에서 가장 위험한 로잔나 피어스에 머무르고 싶은 범죄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3층 막스의 사무실.
입구의 바운서와 기차역으로 SFBC를 마중 간 콜린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래봐야 일곱 명뿐이지만.
막스는 로잔나 피어스에서 일하는 매그의 동료들을 쳐다봤다.
과거 40인의 도둑 갱단으로 환갑을 바라보는 늙은 총잡이들. 피할 생각은커녕 내일 있을 전투에 참여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발목 잡지 않을 테니까, 우린 신경 쓰지 마.”
“여차하면 지하에서 술이나 마시지 뭐.”
“...... 그럼 알아서들 하세요.”
내일 저녁.
메케한 화약 냄새와 총성이 젊음으로 인도할지니. 바텐더와 주방장들은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술과 칼 대신 총을 들 것이다.
막스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곳 방이 몇 개지?”
“1층부터 3층까지 총 15개요.”
“사이가 더 돈독해지겠군.”
매그의 대답에 막스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피치는 한발 더 나아가.
“평소 티격태격하는 대원끼리 붙여놓자. 전우애가 저절로 생겨날 거야.”
“대신 피치 네 아이디어라고 확실히 말해. 미움받고 싶진 않으니까.”
“뭐야 갑자기 착한 보스가 되고 싶은 거야?”
막스와 피치, 매그는 방 배정부터 시작해 내일 있을 전투 포지션을 논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될 무렵.
기차역에 대원들이 도착했다.
“드디어 뉴욕이구나!”
“멀긴 더럽게 멀다. 테네시에서 며칠이 걸린 거야.”
“고작 테네시로 엄살은. 난 콜로라도에서부터 왔다는 거 잊지 마.”
“유 윈!”
조 짐 주니어의 말에 다들 질린 표정을 지었다.
밤이라 그런지 기차 플랫폼은 한가했다.
기차 하나를 전세 내다시피 했으니, 내리는 승객도 SFBC 대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익숙한 얼굴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콜린!”
“우와, 이게 대체 얼마 만이에요!?”
콜린은 대원들을 훑어보며 코를 찡긋했다.
“얼굴 보니 다들 편하게 지냈구먼.”
“어째 보스 말투랑 닮아가네요.”
“시벌, 그거 욕이잖아.”
오랜만의 해후는 웃음을 꽃피우고, 대원들은 낮과 달리 조용히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사람들 눈을 피하긴 힘들었지만, 목적지로 이동할 땐 전술 훈련하듯 뿔뿔이 흩어졌다.
중대에서 소대로, 다시 분대에서 조 단위로 쪼개 이동했다. 일부는 콜린이 미리 마련한 마차에 수레를 연결했다.
하나의 점이 흩어지고 다시 합쳐지는 곳은 로잔나 피어스. 하지만 대원들이 가는 길목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내일의 습격을 위한 전야제. 일부 갱단들이 뉴욕의 밤거리를 후끈 달구고 있었다.
“어이, 니들은 어디 갱단이냐?”
“......”
갱단과 마주친 조 짐 주니어. 막스처럼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그는 대원 둘을 이끌고 있었다.
“야, 내 말 무시하냐? 어디 갱단이냐고 묻잖아 새끼들아.”
덩치 큰 네 명의 갱스터가 휘적휘적 조 짐 주니어에게 다가온다. 잠시 눈알을 굴린 주니어가 대원에게 눈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