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치밀지만, 상대는 타마니 홀의 실세.
테론은 입맛을 다시며 발걸음을 로잔나 피어스로 옮겼다.
무리에는 경찰뿐 아니라 뉴욕시 관계자들과 타마니 홀의 의원들도 뒤섞여 있었는데. 갈등하던 제이슨 굴드도 그들의 옆에 따라붙으며 로잔나 피어스로 향했다.
노동조합의 시위가 벌어진 시청과 타마니 홀은 파이브 포인츠와는 불과 500m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애초에 경찰들은 시위 진압을 구실로 갱단들의 폭동을 눈감아주려 했으나. 난데없이 들려온 기관총 소리가 그들의 눈을 강제로 뜨게 만들었다.
게다가 뉴욕 시장과 타마니 홀의 핵심 인물들이 경찰 진압을 독촉했으니.
노동자들의 시위 진압을 담당했던 다니엘 컨버 경감은 곧바로 시위를 해산시키고 진압 대상을 로잔나 피어스로 바꿔야 했다.
옥상으로 올라온 매그가 다급하게 막스를 찾았다.
“경찰이 오고 있어요. 그 수가 굉장하대요.”
“그래봤자지. 얼마나 되는데?”
“최소 5백 명!?”
“......”
생각할 것도 없이, 막스가 옥상에서 소리쳤다.
“전원 복귀!”
흩어졌던 대원들이 로잔나 피어스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건물로 들어선 뒤엔 빠르게 분대 단위로 인원 점검이 이루어졌다.
사망 0, 부상자 0.
“오케이. 일단 여기서 대기하자고.”
콜린의 지시가 떨어질 즈음.
로잔나 피어스 앞 교차로에 경찰들이 도착했다.
“맙소사···.”
유혈이 낭자한 끔찍한 광경.
테론 경위가 입을 쩍 벌려 말을 잇지 못했다.
갱단들을 죽여버리고 싶다던 경찰들도 질겁하게 만들 공포스러운 풍경이었다.
일부는 고개를 돌리고, 비위 약한 자들은 구역질하며 벽을 붙잡았다.
책임자인 컨버 경감은 경악한 눈으로 옥상을 올려다봤다. 두 대의 개틀링 기관총을 본 순간 오싹한 기분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리고 이때.
“왔으면 용건을 말해야죠.”
아수라장을 만든 것치곤 너무나 당당한.
동양인의 목소리가 고막을 후벼팠다.
*
“여긴 뉴욕입니다! 전쟁터가 아니란 말이오!”
교차로에 있는 사람들이 옥상을 향해 소리쳤다. 연방의 장군을 향한 규탄이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할 짓이 따로 있지!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아무리 연방의 고위 장교라도 이건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개틀링 기관총부터 당장 치우세요!”
성토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타마니 홀 위원들.
정작 나서야 할 경찰들은 섣불리 개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뉴욕시 소속의 경찰과 연방 소속 군인의 충돌.
게다가 지금은 전시 상황인데다 상대는 전 서부 사령관이다.
경찰로선 지금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 뉴욕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타마니 홀 의원들은 무서울 게 없었다. 오히려 동양인을 제거하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건 군의 직위를 이용한 반란이자 폭동입니다! 컨버 경감은 뭐합니까! 당장 저자를 잡아들이지 않고!”
- 얼마 전까지 뉴욕시의 보안관이었던 ‘어니스트’ 존 켈리에요. 갱단들과 유착관계가 심한 인물이에요.
매그가 옆에서 알려주면 막스는 그들의 신상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윽고 듣고만 있던 막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여전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나를 죽이려 한 자들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세인트루이스와 켄터키의 암살 시도였죠.”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상관인가!”
“저자의 말을 언제까지 듣고 있을 거요, 컨버 경감!”
“문제는 그자들이 남부 연합의 첩자이자 암살자들이었다는 겁니다!”
막스가 목소리를 높여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타마니 홀의 의원들을 쏘아봤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남군의 서부 사령관과 군단장을 제거한 연방의 장군입니다. 그리고 이곳 뉴욕에서 총잡이들에게 두 번의 습격을 받았죠. 전시 상황에 누가 이런 짓을 벌이겠습니까?”
“......”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불안감을 느낀 제이슨 굴드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고로, 나를 죽이려 한 자들은 남부 연합의 첩자들. 저기 널려있는 시체들은 그들이 보낸 암살자들입니다.”
“!”
순식간에 갱스터가 남군의 암살자로 둔갑했다.
더욱이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말은.
“연방의 최고이자 최대의 도시에서 내란 선동, 분열, 적군의 장군 암살을 획책하는 무리를 처단해야지 않겠습니까? 해서, 오늘 공격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자들은 전부 찾아내 죄를 물을 겁니다.”
막스는 책임자 컨버 경감을 응시했다.
어차피 대통령, 부통령, 전쟁 장관에게까지 이미 보고한 일이다. 거칠 게 없었다.
“나를 체포하려거든 합당한 이유와 권한을 가진 자를 데려오세요. 그게 아니면.”
순간 로잔나 피어스의 문이 열리고, 대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난 멈추지 않을 겁니다.”
막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원들이 분대 단위로 흩어졌다.
그들은 집요하게 갱스터를 추적할 것이다.
전쟁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경찰들은 보고도 제지하지 못하고.
여차하면 남군의 첩자로 몰리게 될 타마니 홀 의원들은 사색이 된 채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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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1827년 뉴욕 맨해튼 의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 중심의 로잔나 피어스( Rosanna Peers) 식료품점. 그림 조지 캐틀린( George Catlin)
#201 로잔나 피어스 습격(3)
갱단들의 로잔나 피어스 습격이 무위로 돌아간 날. 경찰들은 시체를 처리하고, 주변을 정리한 일이 전부였다.
타마니 홀의 의원들은 대책을 고심하며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작금의 전시 상황이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거 일이 꼬여도 한참 꼬여버렸군요.”
“돌아가서 트위드 회장과 의논을 해봅시다.”
“그 전에, 기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야지 않겠습니까.”
제이슨 굴드가 주변에 몰려든 기자들을 가리켰다.
뉴욕 타임즈, 트리뷴, 헤랄드, 더 선, 더 위클리 선, 더 알비옹 등등. 기자들이 특종을 위해 사진과 스케치, 인터뷰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마터면 가장 중요한 걸 놓칠 뻔했군.”
주요 선거 개입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던 타마니 홀이라 여론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번 사건을 남부 연합의 첩자 탓으로 몰아가면 그만큼 타마니 홀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타마니 홀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요청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제이슨 굴드는 미리 생각해둔 듯, 기사 내용까지 거론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끔찍한 폭력 사태를 규탄하고, 전쟁터에 있어야 할 장군이 뉴욕 도심에서 자신의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요.”
“나쁘지 않군. 그 정도 선이면 기사 내용으로 적당하겠어.”
“그럼 기자들을 한 자리로 모아 우리 입장을 전하도록 하죠.”
제이슨 굴드와 의원들이 기자들을 찾아가려 할 때였다. 로잔나 피어스 옥상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지하 바에서 기자님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가질 예정인데. 관심 있는 분들은 들어 오시기 바랍니다!”
“으헛! 설마 막스 장군님이 직접 인터뷰에 응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와!”
서부 전선에서 연승을 거두고도 인터뷰는커녕 사진 한 장 허락하지 않았던 자가 갑자기?
그것도 전쟁터가 아닌 뉴욕에서?
‘이건 특종이다!’
기자들이 환호하며 로잔나 피어스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계획이 일그러지자 타마니 홀 의원들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전력 질주하는 기자들의 뒷모습.
허탈한 표정을 짓는 타마니 홀 의원들.
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던 제이슨 굴드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업가로서.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위험한 놈이야.’
인생 최대의 난적과 맞닥트린 기분이랄까.
사업에선 경쟁에서 밀려봐야 돈만 날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동양인과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어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
로잔나 피어스의 지하 술집에서 기자들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막스는 바에, 기자들은 테이블에 앉아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기자들은 오늘 사건보다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실제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국적이 중국이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미국은 어떤 계기로 오게 된 겁니까?”
주로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이었고, 막스는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대답을 거부했다.
결국 기자들은 오늘 사건에 대해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 트리뷴 존 폴리 기잡니다. 작전 때문에 뉴욕에 왔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일일이 말해드릴 순 없지만, 연방의 무기 공급과 수송, 군인들의 훈련 등. 복합적인 임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겁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여러모로 물자가 부족해졌으니까요.”
이번엔 ‘더 선’ 기자 차례.
비교적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갱단이 남부 연합의 지시를 받고 공격했다는 건 솔직히 믿기 힘듭니다. 최근 벌어진 사건을 보면, 타마니 홀과 장군님의 사이에 뭔가 일이 있던 게 아닐까 싶거든요.”
“글쎄요. 타마니 홀과 나는 만난 적도 없습니다만. 거기가 뭐 하는 곳인지도 잘 모르고요.”
“...... 뉴욕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집단인데, 설마 모르셨습니까?”
질문을 한 기자가 동료들의 눈치를 살폈다.
마찬가지로 다른 기자들 역시 입은 근질거리는 데 말하기 곤란한 표정이었다.
프리덤 에코의 디캠 지국장이 말하길.
타마니 홀에 반대되는 기사를 썼다간, 갱단들이 신문사에 쳐들어와 깽판을 놓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기자들은 그걸 두려워하는 듯했다.
막스가 그들을 스윽 훑어보며 입을 뗐다.
“비록 군인이긴 하나, 전 언론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벌어진 전쟁의 원인을 따져보면, 특히 신문의 역할이 크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노예제를 대하는 언론의 선동, 조작, 날조.
여기에 동화되고 세뇌된 민중의 지지.
“해서 저는 언론에 압력을 가하는 짓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듣기로는 타마니 홀에서 그런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
기자들이 입술을 달싹거리지만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이는 둘 중 하나다.
용기 있는 저널리스트가 없거나, 타마니 홀의 횡포가 그만큼 심했거나.
막스는 그들을 향해 넌지시 말을 던졌다.
“오늘부로 여러분들의 신문사를 쳐들어가는 갱단은 없을 겁니다. 스스로 재갈을 물리지 말고 마음껏 기사를 쓰세요. 내일 자 신문에 제 비판이 도배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막스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왜곡된 기사는 쓰지 마십시오. 그건 기자가 아니라 기레기나 하는 짓입니다.”
“기레기요?”
“...... 조선에선 그렇게 말합니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기레기.
훗날 영미권에서 고유명사처럼 쓰일 기레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아무튼, 전 남부 첩자를 색출해야 하니 인터뷰는 이만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른 소식이 있으면 언제든 오늘과 같은 자리를 만들도록 하죠.”
막스는 타마니 홀에 대한 기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왜곡된 기사가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과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막스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던 시각.
특수부대원들은 분대 단위로 뉴욕 거리를 들쑤시고 다녔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돌아다닌 건 아니다.
로잔나 피어스에서 탈출한 갱스터들의 1차 집결지. 매그에게서 건네받은 정보를 토대로 아지트를 급습했다.
- 히콕, 넌 가서 한 놈을 잡아 와야 할 것 같은데.
- 누구?
- 피치 여동생을 납치했던 놈.
- 헐. 어떤 새낀지 간덩이가 부었구만.
막스에게 이 정보를 알려준 건 매그가 아니다.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한 것이었다.
와터 스트리트의 크림프 하우스 살롱.
히콕과 코디가 분대원을 이끌고 데드 레빗 보스 키트 번즈를 찾아갔다.
푸욱.
입구를 지키던 바운서의 목을 찌른 히콕이 이내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난 갱스터의 숫자가 열둘.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스캔한 히콕이 미친 속도의 패스트 드로우를 시전.
패닝으로 여섯 번의 방아쇠를 당기는 동안, 코디와 분대원 셋도 가세하여 갱스터들을 쓸어갔다.
탕! 탕!
끼이익. 쿵.
테이블과 의자가 밀리며 놈들이 하나둘 고꾸라졌다. 히콕과 대원들이 꿈틀거리는 이들의 숨통을 마저 끊어 놓을 때.
술집 구석에 있던 문의 문고리가 움직였다.
“같은 편이다! 지금 나갈 테니까, 쏘지 마!”
흥미로운 표정을 지은 히콕은 팔짱을 낀 채 문을 쳐다봤다.
덜컥.
문고리가 완전히 젖혀지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는 자의 목덜미를 잡은 채 끌고 나왔다.
“이야···.”
남자는 탄성을 내뱉으며 시체들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이내 히콕을 응시했다.
“대니 패럴이다. 이놈은 데드 레빗 보스, 키트 번즈.”
“오호.”
히콕과 대원들이 몰려들었다.
키트 번즈는 총에 맞았는지 배를 움켜잡은 손에서 피가 꾸역꾸역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새끼가 피치 여동생을 납치한 거야?”
허리를 숙여 키트 번즈를 노려본 히콕.
이내 칼을 꺼내 천천히 칼끝을 가슴에 찔러 넣었다.
“우리가 복수는 확실하거든.”
“끄으윽.”
히콕은 죽어가는 키트 번즈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더욱 깊숙이 칼을 밀어 넣었다.
‘...... 뭐지 이 새끼들은.’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정도의 위화감이랄까.
대니 패럴이 침을 꿀꺽 삼키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냥 살던 대로 살까.’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도, 굳이 위험한 집단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대니 패럴의 눈동자가 흔들리던 때, 일을 마친 히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니 패럴의 눈을 응시하며.
“너, 보스 암살하려던 총잡이라며? 총 좀 쏘냐?”
“...... 아니, 좆나 못 쏴.”
대니 패럴이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