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4화 (204/360)

“설마, 조선?”

“...... 그 옆 일본이다.”

“아 놔.”

막스는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향후 계획까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차피 배에서 실컷 잘 테니, 하루쯤이야.

*

다음날 정오.

대원들의 환송 속, 히콕을 필두로 열 명의 대원들이 일본 여정을 위해 뉴욕 항구로 떠났다.

막스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는 3층 사무실로 들어왔다.

조금은 넓은 방에 불과하던 곳이 지금은 완전한 사무실로 바뀌어 버렸다.

하나뿐이던 책상이 네 개로 늘어나 막스, 피치, 매그, 콜린이 각각 사용했다.

막스는 뉴욕 맨해튼 지도를 보며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리고. 피치는 개틀링 기관총에 관심을 보인 고객들을 정리했다.

콜린은 책상에서 신문을 보고, 매그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종이에 낙서를 끄적거렸다.

굳이 앉아 있는 건, 막스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길 바래서였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난 건가.’

갑자기 쓸모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갱단과의 전쟁이 끝나고 막스는 아무런 정보도 요청도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포지션은 고작 특수부대가 머무는 여관 주인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일을 달라고 조를 수도 없고.’

매그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하릴없이 펜대만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매그, 혹시 부동산 업자 아는 사람 있어?”

“부동산?”

“뭘 하려면 땅이 필요하지 않겠어?”

“...... 그렇긴 하죠. 데리고 올까요?”

“아는 사람 있으면 부탁해.”

할 일이 생긴 매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곧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열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마니 홀에서 찾아왔어요.”

“생각보다 빨리 왔네. 누구누구 왔어?”

“리더인 윌리엄 트위드와 제이슨 굴드요.”

막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회의실로 부탁해, 매그.”

#203 부패한 정치인과의 거래

로잔나 피어스 습격 이후.

뉴욕 갱단들은 와해 수준에 이르렀다.

아지트는 박살 나고, 언제 특수부대가 들이닥칠지 몰라 모이는 것도 힘들었다.

휘몰아치는 태풍을 피해 갱스터들은 칩거하거나 심지어 뉴욕을 탈출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타마니 홀을 궁지로 몰아넣은 건 울타리 운영자 조 에리히. 그가 자신들을 서부 사령관의 암살 배후로 지목한 순간, 서부 사령관이 어디로 튈 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 만큼은 피해야 했다.

로잔나 피어스의 2층 회의실.

문을 열자 타마니 홀의 리더 윌리엄 트위드와 제이슨 굴드의 시선이 쏠린다.

막스는 자리에 앉으며 둘에게 말을 건넸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안 그래도 직접 찾아가려던 참이었는데.”

트위드와 굴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시기에 직접 타마니 홀을 찾아온다는 말이 섬뜩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들려왔다.

“첫인상이 강렬하군. 윌리엄 트위드라네. 타마니 홀의 총위원장을 맡고 있지.”

“제이슨 굴드요. 이전에 나를 본 적 있죠?”

굴드가 눈을 가늘게 떠 막스를 추궁했다.

피치 가문의 딸과 인질 교환하는 때.

- 넌 내 상대가 아니야, 애송이.

귓속말로 들려왔던 시건방진 목소리는 분명 막스와 일치했다. 그런데.

“찾아온 용건부터.”

상대는 허무할 정도로 냉담하게 반응했다.

굴드는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나한테 고작 그런 질문 하려고 찾아왔나?”

“...... 일단 원하는 걸 알아야 협상이라도 할 것 아닙니까.”

“협상?”

막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와 협상할 카드가 있습니까?”

막스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납치된 울타리 운영자 조 에리히가 자필로 작성한 리스트. 그곳엔 막스의 암살을 지시한 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일종의 살생부였다.

굴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오고, 트위드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리더의 위치에 걸맞게 트위드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자네가 평범한 군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네. 뉴욕에 오자마자 철도에 투자했더군. 해서 우리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네.”

트위드는 자신의 정보망을 동원해 막스의 뒷조사를 해두었다.

금광, SFBC, 워싱턴 정치인들과의 관계.

그리고 JP 모건을 통해 뉴욕 철도에 투자한 일까지.

그렇게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은.

‘네놈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였다.

백인 일색인 미국에서 저 위치까지 올라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간교함, 집요함 그리고 잔인함까지.

트위드는 눈앞의 동양인이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마음에 들었다.

적이 아닌 아군으로 보면, 상대가 달라 보이는 법이다.

동양인이 지닌 돈과 힘, 직위와 인맥.

오히려 사업가 제이슨 굴드보다 이용 가치가 높은 인물이었다. 다만 동양인의 한계를 가늠해보면 그 유효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이런 놈일수록 줄 땐 화끈하게 줘야지.’

살생부는 거래를 위한 협박 수단. 놈의 장단에 놀아주면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트위드는 능글맞게 달콤한 제안을 속삭였다.

“타마니 홀이 뉴욕에만 있는 건 아니네. 펜실베이니아와 메릴랜드에도 나름 영향력은 갖고 있지. 철도 사업의 지분을 원하나? 원하는 노선이 있다면 도움을 주겠네.”

“이를테면?”

트위드가 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리 철도. 거기에 관심이 있는 것 같더군.”

“...... 위원장님!?”

굴드가 일그러진 얼굴로 트위드를 쳐다봤다.

이리 철도의 지분을 얻기 위해 트위드는 자신을 돕기로 했었다. 그런데 방금.

둘의 커넥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게.”

트위드의 냉담한 말에 굴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둘의 갈등을 본 막스는 정작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리 철도가 그 정도 가치가 있을까 싶네요.”

“철도는 시작에 불과하네.”

트위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유소 지분은 어떤가?”

‘정유소?’

막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펜실베이니아의 오일 크릭 벨리의 정유소 지분을 헐값에 넘겨줄 수 있네. 투자하지 못한 자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곳이지.”

“회사 이름이 뭡니까?”

“...... 컬럼비아 오일 컴퍼니라네.”

‘뭐야, 내가 투자한 곳이잖아.’

그것도 무려 1년 전, 워싱턴에 있는 윌슨 섀넌과 데이비드 러셀이 알려준 정보였다.

컬럼비아 오일 컴파니는 펜실베이니아주 타투스빌에 세워진 정유소.

막스가 이 회사에 관심을 둔 건 세계 최초로 ‘수직 굴착 시추기’가 개발되어 석유 지층을 발견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막스는 시추기를 발명한 에드윈 드레이크라는 자를 콜로라도로 데려가려 했다.

이를 위해 러셀이 대신 그를 찾아갔는데.

- 앞으로 부자 될 이 몸이 굳이 콜로라도를 갈 이유가 있소? 난 내 사업을 할 거요.

비록 단칼에 거절은 했지만, 드레이크에게도 투자금은 필요했다.

해서 막스는 그를 데려오는 대신 컬럼비아 오일 컴퍼니의 지분을 주당 11달러씩 총 2천 주를 보유할 수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트위드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근 영국으로까지 석유를 수출하고 있는 회사네. 내년에 배당금 일부를 지급하기로 했는데, 꽤 짭짤할 걸세.”

‘그건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나저나.’

막스가 궁금한 건, 이미 투자가 끝나고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회사의 지분을 어떻게 살 수 있는가였다.

새로운 투자자를 모으지 않은 이상 답은 하나.

누군가 자신의 지분을 내놨다는 소리다.

‘배당금이 엄청날 텐데, 그걸 받지도 않고 지분을 판 멍청이가 있다고?’

상대는 온갖 비리와 연결된 타마니 홀의 수장.

컴퓨터 없이 복잡한 서류가 오고 가야 거래가 되는 시대에 강제로 남의 지분을 빼앗은 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일단 의문은 뒤로하고. 막스는 처음 듣는 것처럼 말했다.

“이리 철도와 정유소면 관심은 가는군요.”

“말만 하게. 그걸 시작으로, 자네가 가는 길을 확실하게 밀어주겠네.”

‘네 놈 성격상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거야.’

낚싯바늘에 걸려들었음을 확신하며 트위드가 미소를 짓는다. 이에 화답하듯 막스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생각해보고 말씀드리죠.”

“다른 건 몰라도, 정유소 건은 빨리 결정해야 할 거네. 어렵게 얻은 주식이거든.”

회의가 끝나고, 굴드는 입술을 깨물며 막스를 쳐다봤다. 할 말이 많아 보였으나, 결국 등을 돌려 회의실을 벗어났다.

타마니 홀로 가는 길.

마차에 탄 트위드가 침묵을 깼다.

“이리 철도 건은 미안하게 됐네. 허나 지금 당장은 놈이 휘두르는 칼날을 피하는 게 급선무네.”

“글쎄요. 저는 그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거래를 받아들일지 확실하지도 않고요.”

“쉽게 생각하게.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보면 달려드는 것과 같은 이치니까.”

“그러다 우리까지 먹어 치우면요?”

트위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네. 길어봐야 앞으로 2년이니까. 뭐, 어쩌면 더 짧을 수도 있고.”

트위드의 말은 여러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중 굴드의 머릿속에 스친 건, 2년 뒤에 있을 대선. 트위드는 공화당의 존 브라운이 연임에 실패하고 민주당이 집권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공화당 역시 내부 분열이 심각한 상황이다.

대륙횡단 기차, 홈스테드 법, 인디언 영토 분쟁 등. 대통령은 사사건건 당의 정책과 따로 움직였으니. 이런 불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면 존 브라운의 재집권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도 상대 나름이다.

‘동양인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을까.’

제이슨 굴드는 비관적이었다.

다음 대선이 누가 되든, 그 전에 자신들의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갈 것만 같았다.

오히려 트위드의 확신에 찬 태도가 제이슨 굴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트위드와 굴드가 가고 사무실로 올라간 막스는 매그와 피치, 콜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제안을 받아들일 거야?”

“그럴 리가. 손잡을 놈이 따로 있지.”

피치의 말에 답한 막스는 시선을 콜린에게로 돌렸다.

“조 에리히는 뭐 하고 있어요?”

“감옥에서 잘 처먹고 잘 자고 있지.”

콜린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납치는 했어도 딱히 고문하거나 심하게 굴진 않았다. 그럼에도 조 에리히는 적극적으로 심문에 응했다.

-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 알았다니까, 그러네. 그래서 트위드가 어쨌다고?

- 말도 마십시오. 돈 되는 일에는 죄다 개입되어 있어요. 걸리적거리면 갱단 동원해서 협박하고, 여차하면 죽여서 입막음까지 했습니다.

조 에리히를 통해 알게 된 트위드는 꽤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는 측근들로 구성된 ‘트위드 링’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뉴욕 정치와 사업을 손에 넣으려는 원대한 야망을 세우고 있었다.

만약 막스가 아니었다면, 머지않아 뉴욕의 왕으로 군림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에 반해 제이슨 굴드는 야망있는 사업가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보기엔 밴더빌트나 제이슨 굴드가 도긴개긴이었다.

“그래서 조 에리히는 언제까지 가둬둘 거야?”

“나가면 죽을 텐데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그런가. 내보내 달란 소리는 안 하더라고.”

“여기 있는 동안은 잘 대접해 줘요.”

‘트위드와 타마니 홀을 박살 내기 전에 얻을 건 얻어야지.’

막스는 몇 가지를 떠올린 뒤, 그날 오후 매그가 데려온 부동산 업자를 만났다.

목적은.

“로잔나 피어스 주변 건물들을 사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막스의 질문에 가장 놀란 건 매그였다.

함께 일하겠다는 뜻일까. 그게 아니면 굳이 이주변을 살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매그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부동산 업자는 곤란한 듯 고개를 저었다.

“사기 힘들 겁니다. 주인이 요새 일절 밖을 안 나오고 있거든요.”

“설마 한 명이 이 주변을 다 갖고 있어요?”

“예, 이 블록은 로잔나 피어스 빼고 전부 한 명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흠. 일단 이건 놔두고.”

막스는 턱을 매만지며, 맨해튼의 지도 한 지점을 가리켰다.

“공장부지가 필요한데, 여긴 어떻습니까?”

“거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기는요?”

“....... 뉴욕을 잘 모르시는군요.”

한숨을 내쉰 부동산 업자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이곳의 땅 주인은 크게 세 명으로 보시면 됩니다.”

미국 최초의 백만장자로 알려진 존 제이콥 애스터. 독립전쟁 이후 모피 사업으로 돈을 벌고, 이후 뉴욕 부동산에 투자해 막대한 부를 쌓은 애스터 가문이 그 첫 번째다.

“다음은 알렉산더 터니 스튜어트죠.”

맨해튼 브로드웨이 지어진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을 만든 AT Stewart & Company의 오너. AT 스튜어트는 훗날 역사상 부유한 20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다음은 토마스 데이비스라는 인물인데.”

마찬가지로 부동산 투기꾼인 그는 특히 브로드웨이와 월스트리트의 가능성을 알아본 자였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여러 스캔들에 휘말려 외부 활동을 피한다고 했다.

부동산 업자는 별 도움이 안 되었다. 그가 나가고 난 뒤, 막스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뭐, 굳이 어렵게 땅을 살 필요 있나. 다른 곳을 알아보면 되지.”

막스의 말에 조용히 있던 피치가 매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토마스 데이비스의 부인이 앤 데이비스 맞지?”

“맞아. 너한테만 스폰해 준 부인.”

"그러게, 유독 나만 예뻐해주긴 했지."

피치의 말에 매그가 입을 삐죽거렸다.

피치가 어려웠을 때, 그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해준 부인이 있었는데. 뉴욕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집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우울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집 사정 알아?”

“아마 뉴욕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왜, 그 정도로 큰 일이야?”

“너도 드레드 스콧은 알지?”

“음?”

남북 전쟁의 단초가 노예와 주인의 역사적인 소송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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