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360)

그리고 막스와 피치가 깊숙이 관련된 사건.

그걸 모를 수가 있나.

“근데 그 사건이 왜?”

“드레드 스콧에 소송을 건 샌포드가, 부인의 둘째 사위였거든.”

“헐.”

피치와 콜린, 심지어 막스의 입에서도 탄성이 새어 나왔다.

정확히 따지면 미 전역을 들끓게 만들었던 소송의 제목은 ‘스콧 대 샌포드’의 분쟁.

여기서 조금은 복잡한 관계가 있는데, 드레드 스콧의 주인이 죽자 그의 소유 권한은 부인인 에머슨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 에머슨 대신 그녀의 오빠 존 프랜시스 알렉산더 샌포드가 대신 소송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 오빠가 바로 피치를 스폰해 준 부인의 둘째 사위였다.

매그는 연신 탄성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그렇게 놀라죠?”

“우리 드레드 스콧이랑 같이 지냈었거든.”

“!”

매그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재촉했다.

“마저 얘기나 더 해봐.”

“....... 어. 아무튼, 대법원판결이 났을 때 그 집안 난리도 아니었어.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표적이 됐거든.”

그 여파가 처가에까지 미쳤으니, 남북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그 여파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노예제 폐지론인 척 그 집을 공격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 일에 타마니 홀의 리더 트위드가 엮여 있었다.

“자신이 필요한 땅을 얻으려고 갱스터를 노예 폐지론자로 둔갑시켰거든. 그래서 땅을 팔 때까지 집 앞에서 시위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둘 사이가 안 좋겠네?”

“트위드라면 치를 떨겠지, 아마?”

매그의 말에 막스와 피치의 시선이 부딪혔다.

‘그럼 곧 땅을 팔 수도 있겠네?’

트위드를 박살 내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되었다.

“매그, 오늘 밤. 제이슨 굴드를 몰래 불러와 줄 수 있어? 이 쪽지도 전해주고.”

내용은 간단했다.

[살고 싶으면, 컬럼비아 오일 컴파니 투자자 명단을 갖고 오도록. 너를 파트너로 삼고 싶으니까.]

그날 밤.

제이슨 굴드는 불안에 떨며 로잔나 피어스를 다시 찾아왔다.

회의실로 불려온 그는 등잔불 아래,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약속대로 가져왔어.”

“투자자 지분을 누구누구한테 빼앗았어?”

“...... 거기 표시 해뒀어. 분명히 말하지만, 이 일은 트위드가 혼자 벌인 짓이야. 나도 얼마 전에 알았으니까.”

대답 대신 막스는 리스트를 훑어봤다.

그곳엔 컬럼비아 오일 컴파니의 투자자 리스트가 적혀 있었는데, 막스의 지분도 적혀 있었다.

“막스 인베스트먼트라.”

은근슬쩍 말을 흘렸으나 제이슨 굴드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투자자에 막스가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생각이 복잡한 굴드가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야?”

“트위드는 나랑 안 맞거든.”

“그럼 약속대로 나는···.”

제이슨 굴드가 말을 멈췄다.

‘젠장, 갑자기 왜 저래. 사람 무섭게.’

리스트를 읽던 막스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데.

분노하는 건지, 기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제이슨 굴드가 식은 땀을 흘리던 때.

막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컬럼비아 오일 컴파니의 투자자 명부에서 발견한 뜻밖의 이름.

[1861-9. 앤드류 카네기. 총 1,000주.]

막스는 미래의 철강왕과 같은 곳에 투자하고 있었다.

#204 몰락한 정치인

‘드디어 네 명의 왕좌들이 내 레이다에 잡혔구만.’

철도왕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석유왕 존 D 록펠러.

그리고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이들은 19세기 미국 산업 발전의 근간을 이룬 네 명의 자본가. 동시에 ‘강도 남작(Robber Baron)’으로서 도금시대(Gilded Age)를 이끈 주역들이다.

도금(Gilded)은 말 그대로 금박을 입혀 겉은 번쩍번쩍 화려하게 빛나지만, 이를 벗기면 속은 별 볼 일 없다는 의미.

독과점, 부패, 부의 편중, 노동자 탄압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 이 시대를 관통한다.

그리고 이 용어는 훗날 마크 트웨인의 ‘도금시대, 오늘날 이야기(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앤드류 카네기가 철강에 뛰어들기 전에, 친분을 쌓아 두는 게 좋겠어.’

아직은 철도와 정유소에 투자하는 때. 본격적으로 카네기가 철강에 들어가기 전에 인연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JP 모건을 이용해야겠군.’

냉정하게 바라보면, 막스는 용병이지 사업가가 아니다.

미래에 관한 지식이 없었다면 민간군사기업인 SFBC만으로 그쳤을 터.

자신의 능력을 알기에, 해야 할 것과 할 수 없는 걸 구분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막스는 눈앞의 제이슨 굴드를 쳐다봤다.

사업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야심가.

도금시대를 주름잡는 강도 남작 중 일인.

하지만 지금은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앞날을 불안해하는 사업가.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었지?”

“...... 어.”

“뉴욕에서 새판을 짜는 거야.”

“역시 그게 목적이었어? 네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제이슨 굴드의 눈빛이 한 가지를 더 묻는다.

그럼 트위드와 뭐가 다르냐고.

“나는 남의 돈이나 갈취하고 편법과 부정을 저지르고 싶진 않거든. 내게 필요한 건 정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판을 말하는 거야.”

“글쎄···. 그게 쉽게 될까? 이곳 시장부터 경찰 국장까지 모조리 썩었는데?”

“그래서 너도 같이 썩어가고 싶었냐?”

“......”

제이슨 굴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행동에 반성이나 후회를 한 건 아니었다. 정글에서 살기 위해 그곳 법칙에 따른 것뿐이었으니까.

“약속대로 이번 일에 널 빼주지. 대신 선택해야 할 거야. 새판에서 나와 함께 할지, 아니면 이대로 끝을 볼지.”

“...... 그게 선택이야?!”

“그럼 선택이지.”

담담한 막스의 말이 단호한 협박처럼 들려온다. 미간을 찌푸린 제이슨 굴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정당하게 돈을 벌고 싶어. 네가 그 판을 만들어 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럼 내게 신뢰와 의지를 보여. 적극적으로 도와줄 생각이니까.”

턱을 매만지던 굴드는 결심이 선 듯 말을 내뱉었다.

“이리 철도에는 손을 뗄게. 나는 그게 아니어도 다른 걸 찾으면···.”

“그럴 필요까진 없어. 공정한 경쟁이라면 빠질 이유가 없잖아?”

“글쎄. 밴더빌트와 붙으면 절대 공정해질 순 없을걸? 그래서 미리 빠지려는 거야.”

‘똑같은 강도 남작이라 이거지.’

막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잘됐네. 너와 밴더빌트 양쪽에 투자해야겠어.”

“뭐?”

“어느 쪽도 편들지 않을 거니까, 서로 잘 싸워보라고.”

뉴욕 철도는 물론 대륙횡단 철도 사업을 막스의 입맛대로 끌고 가려면, 밴더빌트를 견제할 경쟁자가 필요하다.

막스가 제이슨 굴드와 손을 잡으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

다음 날.

로잔나 피어스로 경찰이 찾아왔다.

치채스터 갱단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테론 코플랜드였다.

매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 웨스트포인트와 뉴욕주 방위군에서 군사 전술을 공부, 1855년에 경찰로 입대했더군요. 남북 전쟁 발발 직후, 경감으로 승진. 성격은 순해 보여도 정의감 넘치는 경찰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네요. 갱단과의 유착도 없고요.

사무실 문을 연 테론이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직접 가면 시끄러울 것 같아서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어이구, 번거롭긴요.”

‘드디어 서부 사령관과 독대를 하는구나.’

심문실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테론의 몽롱한 시선이 막스의 정수리에서 천천히 아래로 훑어갔다.

“얼굴이 개판인가요?”

“서, 설마요. 그냥 좀 신기해서 그랬습니다. 아, 동양인이라서가 아니라. 서부 사령관을 직접 본 걸 말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까, 궁금한 게 있다고 하셨죠.”

“네?”

동그랗게 눈을 뜬 테론은 이내 생각이 난 듯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막스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그날이 피츠버그 랜딩으로 남군이 몰려오던 때였죠, 아마.”

“오오···.”

“숲의 좁은 길목은 셔먼과 프렌티스 장군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그랜트 장군은 샤일로에 주둔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셔먼, 프렌티스, 그랜트 장군까지!’

테론은 정신없이 막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한 생생함이 전해졌다.

“그때 회의실 밑에 설치해둔 폭탄이 쾅!”

“이야!”

“알버트 존스턴 사망, 군단장 넷. 12명의 별을 날려버렸죠. 어디로?”

막스가 눈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테론이 손뼉을 치며.

“하늘로! 크···”

테론은 내친김에 설치 방법을 물었다.

하지만 막스는 단칼에 거절했다.

“비밀입니다. 그나저나, 군대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보기엔 이래도 웨스트포인트 출신이거든요.”

‘밀덕이었군.’

“근데 막상 군에 입대하려니까, 조금은 두렵더라고요.”

“어떤 게 말입니까?”

“서부로 가서 인디언과 싸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랄까. 창피한 말이지만, 솔직히 동부를 떠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사람은 살던 곳이 익숙한 법이죠.”

막스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조 에리히가 여기에 붙잡혀있는데, 아십니까?”

“예. 이미 소문이 다 퍼졌으니까요.”

“그자를 통해서 자백을 받아냈는데, 이 일을 처리해줄 분이 필요합니다.”

“설마, 그게 접니까?”

막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갱단과 얽히지 않았고. 특히 타마니 홀과 관계되지 않은 경찰이어야 하거든요.”

“분명 전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위쪽은 다르다는 거죠?”

“조직 내부의 문제를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금발을 단정히 빗어넘긴 머리.

덥수룩한 수염에 쳐진 눈꼬리.

테론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막스는 용기를 북돋으려 리볼버를 빼 들었다.

끼이익.

“가, 갑자기 왜 이러세요!”

화들짝 놀란 테론이 의자를 뒤로 물림과 동시에 소리쳤다. 동글동글한 몸에 비해 날렵한 동작이었다.

그런데 막스의 행동을 본 테론의 눈이 점점 커졌다.

리볼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백스핀과 플랫스핀을 보이더니.

철컥.

툭.

막스는 실린더에서 총알 한 발을 빼 이를 내밀었다.

화려함과 신속함에 매료된 테론의 입이 닫힌 건 총알을 보고 나서였다.

“림파이어 방식의 금속 탄피군요!”

남북 전쟁 직후 스미스 앤 웨슨이 보급한 림파이어 총알. 둥근 바닥 전체가 뇌관인 방식으로, 단가가 납탄보다 비싸 아직 보급된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총알을 이리저리 살피는 테론이 문득 고개를 들어 막스를 쳐다봤다.

“갑자기 총알은 왜···.”

“기존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발명된 겁니다. 아니면 주구장창 종이 탄피만 사용하겠죠.”

“음.”

뉴욕 경찰국의 부정부패.

문제점은 알지만 아무도 바꾸려 하지 않음을 막스는 총알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물론 이해는 한다. 모두가 예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테니까.

하지만 뉴욕 경찰국은 그렇게 썩은 조직은 아니었다.

막스는 조 에리히가 작성한 살생부를 건넸다.

“여기 적힌 자들을 전부 구속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기존에 있던 죄들도 엮으면 더 좋구요.”

테론의 미간이 좁아졌다.

리스트에 적힌 인물들은 전부 타마니 홀의 핵심 위원들. 뉴욕 시장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체포였다.

“...... 아마 위에서 뭉개버릴 겁니다.”

“그 위가 어딥니까. 대통령보다 위에요?”

그럴 리가 있나. 테론은 절대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무슨 문젭니까. 뭐, 정 원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나설 수도 있습니다. 전시 상황에 군법으로 해결하면 간단하니까요.”

하지만 그래서는 얻는 게 별로 없다.

갱단이야 누가 죽어 나가든 대중들은 분노하지 않지만, 정치인들은 다르다.

자칫 현 정부에 부담을 줄 수도 있었다.

더욱이.

맥클레란이 전쟁에서 패하면 민심이 요동칠 터. 그 안에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내심을 감춘 막스는 태연하게 테론을 응시하며 물었다.

“제가 할까요, 아니면 테론 경감께서 하겠습니까?”

“...... 제가 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셨는데, 거부하면 안 되죠.”

트위드 같은 거물을 잡아들이면 리스크가 큰 만큼 보상도 따른다. 테론 경감에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인생에 몇 번 없는 기회였다.

‘조금 답답한 성격이긴 해도 이참에 뉴욕 경찰국에 인맥을 만들어두는 것도 좋겠지.’

막스는 구체적인 사안을 얘기하고, 증인 조 에리히의 신변 보호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까, 증인은 우리 대원들이 보호할 겁니다. 갈 때···.”

말하던 중, 회의실 밖으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 오, 이게 누구야!

- 로어! 달튼! 딕슨···!

- 다들 이게 얼마 만이야! 어흑.

백악관에서 경호를 맡았던 대원들이 마침내 합류한 모양이다.

‘증인 보호는 로어지.’

회의실 문을 연 막스가 복도를 향해 외쳤다.

“로어!”

“보, 보스! 어흑.”

감정이 풍부한 네이선 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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