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360)

막스가 손짓하자 눈물을 훔치며 쪼르르 팔 벌려 뛰어왔다.

‘워싱턴에서 본 지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설마 칼을 숨긴 건 아니겠지.

막스는 입맛을 다시며 195cm에 110kg의 거구, 로어를 마지 못 해 안아줬다.

포옹하며 등까지 두드리자.

“보스, 어흑.”

“임무다, 로어. 증인을 좀 보호해야겠어.”

“...... 씨박흑.”

“어. 야, 힘 안 풀어? 악! 헬창 새끼 뒈진다!”

결국 몇 대 맞고서야 팔을 풀었다.

“넌 당분간 운동 금지야. 아우, 뼈아파.”

로어는 웃음을 흘리며 테론을 응시했다.

“저쪽이 증인이에요?”

“겨, 경찰입니다!”

테론이 질겁하며 소리쳤다.

거구의 로어는 대원 넷을 차출해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증인 조 에리히를 보호하며 뉴욕 경찰국으로 향했다.

*

다음 날.

뉴욕 경찰국이 타마니 홀을 덮쳤다.

남부 연합 첩자에 관한 대통령의 공개 요청 서한. 뉴욕 시장이 진작에 이걸 받은 이상 사건을 뭉개는 건 불가능했다.

테론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수뇌부의 결정은 신속했다.

“윌리엄 트위드. 당신을 살인 교사, 공갈, 협박, 뇌물, 횡령, 배임, 그리고 남부 첩자 의혹으로 체포합니다!”

“무, 무슨 소리!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미 증거와 증인까지 확보해뒀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법원에서.”

얼굴이 벌게진 트위드는 수갑에 채워진 채 마차로 끌려갔다. 그 뒤로 타마니 홀 핵심 위원 8명이 줄을 이었다.

‘동양인 새끼가 감히 나를 속이다니!’

트위드는 이를 바득 갈며 분노를 터트렸다.

원 역사에서 트위드는 뉴욕의 보스라 불릴 만큼 강력한 권력을 쥔 인물이다.

하지만 온갖 스캔들에 휘말려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막스가 그 시기를 무려 15년이나 앞당겨버렸다.

한편 트위드가 경찰서에 송치되었을 때, 막스와 피치는 부동산 재벌을 찾아갔다.

파이브 포인츠의 북쪽 1.5km 떨어진 곳.

붉은색 고급 벽돌로 지어진 3층 주택이 토마스 데이비스의 집이었다.

피치가 그녀를 후원해준 노부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막스는 토마스 데이비스와 독대했다.

동양인, 혹은 갱단 학살자를 바라보는 눈빛은 경계심이 가득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뭔가?”

“필요한 땅이 있는데, 소유주가 토마스 당신이더군요.”

“땅 이야기라면 괜한 헛걸음을 했구만.”

토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에서 축객령이 떨어지기 전에 막스가 선수를 쳤다.

“거래 조건이라도 들어보시죠.”

“조건이면 돈밖에 더 있겠나?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자네가 나보다 돈이 많아 보이진 않거든. 서부 사령관이 아니었다면 사실 만나주지도 않았을 거네.”

그동안 시달린 일이 많아서 그런지.

희끗희끗한 머리의 토마스는 뭔가가 잔뜩 꼬여있는 듯했다.

‘꼬였으면 풀어야지.’

막스가 넌지시 물었다.

“트위드에게서 빼앗긴 땅을 돌려주는 조건은 어떻습니까?”

“......”

토마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내친김에 말을 보태 쐐기를 박았다.

“오늘 트위드가 경찰서에 잡혀갔습니다. 죄목은 연방 장군 살인 교사, 남부 연합 첩자 의혹. 그 밖에 여러 가지가 더해져 당분간은 나오지 못할 겁니다.”

막스를 응시하던 토마스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까 트위드가 곧 감옥에 간다 이건가?”

“그러려고 붙잡았겠죠.”

타마니 홀의 수장이자 포악한 탐욕자 트위드는 날마다 권력을 층층이 쌓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잡혀간다고?

토마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한때 서부 사령관이자 최근 뉴욕을 전쟁터로 만든 연방의 장군이다.

“망할 놈이··· 상대를 잘못 만났구먼.”

토마스 데이비스는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기침이 나올 때까지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하인이 가져온 물을 마시고서 간신히 진정시킨 토마스는 정색하며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만약 트위드가 확실히 감옥에서 썩게 된다면, 자네가 원하는 땅을 팔겠네.”

“그럼, 거래 성립이군요.”

한동안 막스를 물끄러미 쳐다본 토마스가 묻길.

“식사는 했나?”

“아니요.”

“잘 됐군. 일단 거실로 가지.”

집무실에서 나오자, 노부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남편을 쳐다본다.

안에서 들려온 웃음도 그렇고,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표정이 너무 달라 보였다.

게다가 하인에겐 충격적인 말까지 했다.

“손님들과 식사를 할 거네.”

“주, 준비하겠습니다.”

하인조차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최근 몇 년간 보지 못한 모습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남편에게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드레드 스콧 판결 이후 비난의 대상이 된 이후. 저렇듯 즐거운 표정은 처음이었다.

부인이 피치에게 뭔가를 말하려 할 때.

즐거움을 깨는 불청객이 나타났다.

“밖에 밴더빌트 씨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가 갑자기?”

몇 년 동안 왕래했던 적이 있었던가.

토마스 데이비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막스는 팔짱을 끼며 현관문 너머를 응시했다.

‘나를 만나러 온 건가.’

트위드가 경찰에 끌려가자마자 귀신같이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왔으니 말이다.

#205 뉴욕의 부동산 재벌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현관 밖에는 밴더빌트가 경호원 한 명을 대동한 채 서 있었다.

“오랜만에 자네 얼굴도 볼 겸 들렸네.”

“미안하지만, 다음에 오게. 지금은 손님이 있거든.”

“아, 전 서부 사령관이라면 나도 알고 있네.”

토마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갑자기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내게 볼 일이 있는 게 아니었군.”

“겸사겸사네. 그나저나 언제까지 여기에 세워둘 셈인가?”

미국 최고의 갑부 밴더빌트를 문전박대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는 부동산 재벌과는 급이 다른 인물이었다.

토마스는 마지못해 밴더빌트를 안으로 들였다.

하인이 쪼르르 달려와 코트와 모자를 받고, 밴더빌트는 자연스레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에는 왕래가 잦았는지 꽤 익숙한 모습이었다.

앤 부인과 인사를 나눈 밴더빌트는 피치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이때, 막스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남 미행하는 거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닙니다.”

“우연이네, 우연. 미행은 무슨.”

밴더빌트는 움찔하며 막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했다.

단기간에 뉴욕 갱단과 타마니 홀을 박살 낸 자. 그 치밀함과 냉정함은 경탄을 넘어 소름이 끼칠 정도였으니까.

밴더빌트는 여기에 찾아온 이유를 숨긴 채 토마스와 잡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셋은 자연스레 토마스 데이비스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밴더빌트는 막스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오늘 타마니 홀에 벌어진 일을 언급했다.

“솔직히 트위드까지 체포될 줄은 몰랐네. 여기저기 끈이 많은 인물이었으니까.”

“상대를 잘못 만난 게지.”

토마스의 부드러운 시선이 막스를 향한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나.

눈앞의 동양인이 트위드 체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땅 때문에 왔습니다.”

“땅?”

밴더빌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토마스를 쳐다봤다.

“그래서 거래는 잘 됐나?”

“오늘 같은 날 안 될 이유가 없지.”

“그거 잘된 일이로군. 말이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네만. 트위드에게 빼앗긴 땅은 되찾아야지 않겠나?”

“당연히 그래야겠지.”

“그럼 유능한 변호사를 붙여주겠네.”

토마스는 밴더빌트의 의도를 알곤 쓴웃음을 지었다. 트위드가 체포되자마자 노골적으로 땅을 욕심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트위드는 빼앗은 땅에 기차 노선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는 맨해튼 중심을 관통하는 길을 따라 만들어질 이익이 확실한 노선이었다.

트위드의 구속으로 기차 노선의 미래는 불투명해졌지만, 밴더빌트는 자신이 이어받아 사업을 진행하려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토마스 데이비스가 가진 땅이 필요했는데, 상대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땅을 되찾아도 자네에게 팔진 않을 거야. 굳이 없어도 되는 철도로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싶진 않거든.”

“그렇게 섣불리 단정 짓지 말게. 이 친구도 연관되어 있으니까. 앞으로 나와 함께 철도 사업을 같이할 파트너거든.”

밴더빌트가 은근슬쩍 막스를 끼워 넣었다.

“어떤가? 이 사업은 트위드가 거의 다 만들어놔서 우리는 마무리만 하면 되네.”

‘이 양반 숟가락 얹는 거 꽤 좋아하네.’

뉴욕은 자신이 청소해줘, 사업은 트위드가 다 만들어 놔.

과연 밴더빌트는 강도 남작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다.

막스는 대답 대신 토마스를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가 원하는 땅 이상은 욕심내지 말게.”

“옳으신 말씀입니다. 초면에 제가 그런 부탁을 하는 건 상당한 실례죠. 전 그 사업에 관심 없습니다.”

막스의 시선이 밴더빌트에게로 향했다.

‘상황이 재미있게 됐어.’

트위드가 잡혀가면서 꿰차고 있던 자리에 공백이 생겨버렸다.

써드 애비뉴 철도 회사 이사.

이리 철도의 세 번째 지주.

10번째 국립은행 이사.

뉴욕 인쇄 회사 이사.

메트로폴리탄 호텔 소유주.

철광석 및 가스회사의 주요 주주.

할렘 가스 라이트 회사 이사.

브루클린 브릿지 컴퍼니의 이사.

가디언 저축 은행의 회장.

뉴욕 카운티 감독원.

그리고 타마니 홀의 수장.

수많은 직책 중 첫 번째, 써드 애비뉴 철도 회사가 토마스 데이비스의 토지를 소유했다.

그리고 이 회사엔 트위드 말고도 밴더빌트와 제이슨 굴드 역시 몸담고 있었다.

막스는 묘한 표정으로 밴더빌트를 쳐다봤다.

“그런데 트위드의 사업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너무 확신하시는 것 같은데요.”

“...... 그렇지 않아도 묻고 싶었네. 왜 체포 명단에 제이슨 굴드가 빠져있는 건가?”

“전 경찰이 아닙니다. 질문 상대가 잘 못 된 것 같은데요.”

“후. 트위드의 사업은 전부 제이슨 굴드가 기획하고 행동했네. 둘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일세.”

트위드가 사라진 현재, 밴더빌트는 마지막 장애물까지 제거하길 바라고 있었다.

궁극적인 목적은 뉴욕의 왕좌에 오르는 것.

그 때문에 제이슨 굴드를 놔준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누가 위인지 아직 애매한 모양이네.’

물론 막스가 위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래는 더더욱 아니었다.

“제이슨 굴드든 누구든. 지금은 자잘한 철도 사업 말고, 내가 원하는 걸 답해야지 않을까요.”

밴더빌트가 미간을 찡그렸다.

뉴욕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이기면 돕기로 했으니, 막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건 대륙횡단 기차 사업.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내가 너무 급했던 모양이군.’

제이슨 굴드의 신변처리. 토마스 데이비스의 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고 왔으나, 아무래도 계산을 잘못한 모양이다.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야.’

대충 상대의 성향 파악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판단 착오였다.

눈앞의 동양인은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밴더빌트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대륙횡단 기차는 조금 시간을 주게.”

“정 힘들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피해 끼치고 싶진 않으니까요.”

“일단 다음 주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미안하지만, 막스. 자리 좀 비켜주겠나. 토마스와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일세.”

막스는 둘만 남겨둔 채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거실에는 못 보던 중년 여인이 있었는데, 토마스의 둘째 딸이었다.

막스를 멍하니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사벨 샌포드에요.”

“막스 조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사벨은 드레드 스콧과 소송을 벌인 존 프란시스 알렉산터 샌포드의 부인이었다.

“콜로라도에서 드레드 스콧의 가족을 돌봐줬다고 들었어요.”

막스가 피치를 힐끔 쳐다보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드레드 스콧의 장례식과 딸의 결혼식까지 전부 지켜봤죠.”

“그 정도로 생각하셨다면, 저희 집안이 미웠겠네요.”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어느 부분에서 미워해야 하는 겁니까?”

이사벨은 미망인이다.

1857년, 남편은 드레드 스콧의 대법원판결 직후 비난에 시달려 정신병을 앓았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입원, 퇴원하자마자 몇 개월 후 뉴욕 맨해튼 집에서 사망했다.

이사벨의 죄는 하필 노예 드레드 스콧과 소송을 벌인 부인의 오빠, 존 샌포드를 남편으로 둔 죄밖에 없었다.

같은 선상에서 토마스 데이비스가 비난받은 것 역시 마녀사냥에 가까운 처사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배후엔 트위드가 있었으니.

심사가 꼬인 토마스가 흔쾌히 땅을 파는 데는 억울함과 증오, 분노가 일정부분 해소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드레드 스콧 대 샌포드의 대법원판결은 노예제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지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사벨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고맙네요. 저 역시 드레드 가족이 잘 지낸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소송 당사자들의 나란한 죽음.

일 년 차를 두고 샌포드는 정신병으로, 드레드 스콧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이사벨의 마음은 한시도 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훌훌 털고 떠나도 되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파리로 갈 생각이었거든요.”

“드레드의 가족도 콜로라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맘 편히, 파리에서 파리도 열고 즐겁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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