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208/360)

그는 직원들과 함께 토마스의 토지와 관련된 모든 서류를 준비해두고 약속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똑똑.

문을 열고 거무튀튀한 옷을 입은 무장한 괴인들 다섯이 사무실을 들어, 아니 습격했다.

행동은 손님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분명 습격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중심에 선 남자가 동양인이라는 거. 뉴욕시에서 이렇듯 무장한 동양인은 오직 한 명뿐이다.

‘시발, 서부 사령관이잖아!’

율리시스가 알면 섭섭한 말이지만, 뉴욕에선 서부 사령관은 동양인이라는 인식이 강렬하게 박혀 있었다.

업자와 직원들이 식겁한 표정을 지을 때, 막스가 손을 내밀었다.

“토마스 데이비스 씨의 부동산 대리인 막스 조입니다.”

“..... 허, 허버트입니다.”

“서류는요?”

“여, 여기 준비해뒀습니다.”

“빠진 건 없겠죠? 오늘 한 번으로 끝내고 싶은데.”

꿀꺽.

일부러 엿 먹이려 몇 개 빼두긴 했다.

그건 상대를 몰랐을 때 이야기고.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서류를 챙기는 동안 막스는 하릴없이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책상 위에 놓인 신문들에 눈길을 주었다.

[맥클레란 사령관, 리치먼드 공략 초읽기!]

[상식을 깨부순 해상 전술. 과연 남부 연합의 허를 찌를 수 있을까.]

그동안 깨작깨작 국경 부근에서 전투를 벌이던 북군 총사령관이 드디어 움직였다.

중간에 몇 번의 시도는 있었지만, 말라리아 열병의 창궐과 재발이 반복되면서 대규모 진격은 번번이 좌절되어야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잡아먹고서야, 맥클레란은 남부 연합의 수도 공략에 나섰다.

버지니아 남동부에서 벌어진 동부지역 최초의 대규모 공세. 일명 페닌슐라 전투(Peninsula Campaign)였다.

여기에 동원된 병력이 10만.

맥클레란은 육상이 아닌 해상으로의 파격적인 진군을 택했다.

전술은 간단하다.

버지니아 국경에 진을 치고 있는 남군을 우회.

바다와 강을 통해 리치먼드의 수도를 직접 공략한다는 전술이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변한 게 없네.’

맥클레란은 결국 원 역사와 같은 해상 경로를 택했다.

현재 남군의 사령관은 북버지니아 군을 이끄는

조셉 존스턴.

주목할 건 이번 전투에서 그동안 좌천된 로버트 리 장군이 전선에 투입되고, 원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남군의 사령관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북군의 진입 경로와 남군의 대응이 막스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10만에 달하는 병력과 보급품이 버지니아에 상륙. 지금쯤 맥클레란은 차례차례 방어선들을 무너트리며 리치몬드로 접근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신중한 맥클레란은 보다 공격적인 로버트 리를 만나게 될 텐데.

과연 남북 전쟁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리 장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

아마 전술에 휘말려 패배할 가능성이 컸다.

부동산 사무실에 머무른 건 고작해야 십여 분.

서류를 챙긴 뒤엔 밖에 대기하던 대원에게 건네줬다.

“너희들은 로잔나 피어스로 가져가. 난 또 들릴 때가 있으니까.”

막스는 대원 다섯을 이끌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월스트리트의 프리덤 에코.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편집국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일전에 봤던 여직원은 두말없이 막스를 디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오셨습니까, 사장···령님?”

“워싱턴에 전보를 칠 게 있습니다. 따로 할 말도 있고.”

“일단 앉으시죠.”

워싱턴에 보낼 전보는 유색인종 부대(Colored Troopers)의 창설 상황. 유럽 국가의 개틀링 기관총 판매에 관한 의견을 묻기 위함이었다.

후자의 경우 외교 문제가 걸려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전보와는 별개로, 막스는 토마스 데이비스에 관한 일을 언급했다.

“기사를 내고 싶다고요?”

“어려운 일입니까?”

“아, 아닙니다. 지금이라면 문제는 없을 겁니다.”

막스는 눈을 가늘게 떠 디캠을 쳐다봤다.

언론사들을 압박해 토마스의 비판적인 기사를 종용했던 트위드의 구속.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프리덤 에코까지 놈의 눈치를 봤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막스의 표정을 읽은 디캠의 얼굴이 붉어졌다.

“......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목에 칼을 대거든 총을 뽑으세요.”

“.....?”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는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막스는 디캠에게 토마스 데이비스에 관한 기사 방향을 일러주었다.

“이왕이면 다른 신문사들도 같이 내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문제없습니다. 제가 나름 발은 꽤 넓거든요.”

디캠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뉴욕 최고의 신문사 트리뷴의 기자였던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편집장이 된 지금도 다른 신문사들의 기자와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뉴욕 트리뷴 기자 시절 디캠의 바로 옆자리에 프랜시스 홀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선교사와 함께 취재차 일본에 간 프랜시스 홀은 뭐에 꽂혔는지 기자를 때려치웠고, 디캠은 자기가 직접 신문을 발행하겠다며 신문사를 만들었다가 쫄딱 망했다고 했다.

“프리덤 에코를 잘 키워봐요. 보상은 확실하게 해 줄 테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급여 수준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른 지국장보다 10% 정도 많았으니까.

그런데 더 많은 보상을 하겠다니, 의욕이 불끈불끈 솟아났다.

프리덤 에코를 나온 막스의 다음 목적지는 화이자 컴퍼니. 그런데 밖에서 대기하던 대원들이 한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막스와 같은 동양인.

시청 담벼락에서 시가를 팔던 중국인 아켄이었다.

그는 막스를 보자마자 울먹거렸다.

“도와주세요. 서부 사령관님.”

#207 뉴욕에서 기반 닦기

미국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골드러시의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온 중국인들은 해마다 늘어나 현재는 3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는 진작에 저물었다. 동족 간의 경쟁에서도 밀려난 자들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주를 옮겨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미국 최대의 도시인 뉴욕으로 향했다.

가난한 중국인들 할렘가, 파이브 포인츠로 스며들어 선원, 하숙집 주인, 행상인, 시가 제조 같은 일을 했다.

놀라운 건 그중 일부는 아일랜드 여성과 사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

아켄은 자신의 아일랜드 여자친구가 위험에 빠졌다며 막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말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인 건 특수부대 대원들이었다.

“하, 시발. 쟤도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냥 죽을까.”

울먹이던 아켄은 대원들의 말에 뜨끔했지만. 막스를 간절하게 바라보며 사정을 설명했다.

“리사는 낮에 제 하숙집 일을 돕고, 저녁엔 다른 바에서 서빙을 하거든요.”

그런데 어젯밤, 리사는 누군가의 발에 걸려 술잔을 깨고 손님의 옷을 더럽혔다.

깨진 유리에 다쳤다며 소리치고, 옷은 비싼 거라며 여인에게 배상을 요청했다.

그것도 무려 천 달러를.

전형적인 양아치 짓거리였다.

하지만 놈들이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중국인들의 보호비.

아켄의 여자친구를 인질로, 매달 뜯어갈 수 있는 하숙집과 중국인 숫자만큼 보호비를 노린 것이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갱단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갱단에 보호비를 내며 방패막이로 삼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최근 막스가 갱단들을 박살 내면서 기존 질서가 무너졌다.

생태계가 교란된 파이브 포인츠는 그야말로 무주공산의 상태.

로잔나 피어스 습격과 관련 없는 갱단들은 서로 깃발을 꽂으려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아켄에게 닥친 사건 역시 이와 관련이 있었고.

“그래서 내 책임이다?”

“아, 아닙니다.”

아켄을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하필 나한테 온 이유는?”

“같은 동양인이잖아요···.”

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뉴욕에 중국인이 몇 명이지?”

“거의 백 명 정도 돼요.”

“같이 모여 사는 동족이 그렇게 많은데 도와줄 사람이 나뿐이다?”

아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같은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래서 당연하다 이거야?”

눈앞의 중국인을 본 건 오늘로 두 번째.

같은 동양인으로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는 건 뻔뻔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하여간 이 새끼들은 모여있으면 안 돼.’

뉴욕 맨해튼에 차이나타운이 들어서는 건 꿈도 못 꾸게 만들어야겠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기도 했고.

“너 시가 팔지?”

“예.”

“네 말대로. 같은 동양인이면 시가도 공짜냐?”

“......”

“뭔가를 요구하려면 합당한 보상을 제시해야지.”

막스의 말에 입을 다문 아켄.

머릿속으론 보상에 대해 고민했다.

고작 시가나 파는 자신이 서부 사령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생각나는 건 그동안 모은 돈뿐이었다.

“도, 돈을 드릴게요.”

“얼마?”

“백 달러요.”

“여자친구가 그 정도밖에 안 돼?”

“...... 그것도 제 전 재산입니다.”

“웃기고 있네. 너, 중국인들 상대로 하숙집 운영하지?”

하숙집과 싸구려 시가를 팔면서 전 재산이 백 달러? 틀림없는 거짓이었다.

아켄의 얼굴이 벌게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백 달러는 됐고. 차라리 내 밑에서 일하는 건, 어때?”

“예?”

“어차피 네가 운영하는 하숙집 건물과 땅. 조만간 내가 살 거거든.”

‘앞으로 차이나타운이 들어설 땅까지 전부.’

막스의 눈빛을 본 아켄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나마 월세가 저렴한 곳이라 타산이 맞았지, 다른 곳에선 하숙집도 어려웠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함께 있는 중국인들의 거주지도 사라질 판이었다.

‘차라리 보호비를 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이게 생겼으니 말이다.

아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릴 때, 막스가 말을 내뱉었다.

“그럼 동의한 걸로 알고. 위치 알려줘 봐. 도와줄 테니까.”

물론 막스는 아켄의 말만 믿고 움직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일단 로잔나 피어스로 끌고 간 다음.

매그에게 뒷조사를 시키고, 아켄의 말이 사실이었을 때 비로소 움직였다.

“산초와 조 짐 주니어. 둘 중에 누가 갈래.”

“그냥 둘 다 가지 뭐. 심심했는데.”

“저도 콜이요.”

대원들도 심심했는지, 저마다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 아켄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가끔 자신을 쳐다보는 피치와 콜린의 시선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막스는 책상에 앉아 그런 아켄을 바라봤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사람이다.’

뉴욕에 새판을 짰으면, 그에 걸맞는 사람들이 필요한 법. 앞으로 지어질 사업을 맡길 인재가 절실했다.

그런 점에서 아켄의 능력은 눈여겨볼 만했다.

다른 중국인들이 밑바닥에서 쥐꼬리만한 돈을 받을 때, 그는 직접 사업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원 역사에서 아켄은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아버지라 불리는 자였다.

사업에 성공하여 돈을 벌고 중국인이 자신이 사는 모트 스트리트에 거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분명 미래 지식에 아켄은 없었지만, 막스는 정확하게 그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뉴욕에서 제일 하고 싶은 사업이 뭐야?”

뜬금없는 질문에 아켄은 눈을 껌뻑거렸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시가 사업과 하숙집을 크게 하고 싶어요.”

“돈을 번 다음엔?”

“차이나타운을···.”

막스는 아켄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눈은 날카롭게 그를 쏘아봤다.

“이곳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처럼 만들고 싶어?”

“......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많은 중국 사람이 한데 모여 사는 곳.

다른 인종들의 눈치와 핍박을 받지 않아도 되는 곳. 그렇게 만드는 게 아켄의 꿈이었다.

물론 막스는 그렇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중국인 갱단이 많은 건 알지?”

“...... 예.”

“장담하는데, 조만간 여기도 그럴 거야.”

골드러시가 끝나 일자리를 잃은 자들.

그리고 중국 본토에 있는 자들이 자국의 혼란을 피해 뉴욕에 몰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캘리포니아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중국 남자들은 심각한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여자들을 본토에서 납치해오고.

자연스레 아편굴과 매춘, 노예 소녀들을 사고팔 것이다.

불과 몇 년 뒤에 펼쳐질 뉴욕 차이나타운의 모습이었다.

한편으론 이해는 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한 미국에서 동족끼리 모여 의지하는 건 인간의 생존 본능일 테니까.

막스도 전생의 지식이 없었다면,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비판만 하기보단, 자연스레 상황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아까 얘기 마저 하면. 지금 있는 하숙집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을 거야. 더러운 곳일수록 파리가 꼬이는 법이거든.”

할렘가의 더러운 분위기가 음침하고 어두운 자들을 불러 모은다.

파이브 포인츠를 한 번에 바꿀 순 없지만, 순차적으로 바꿔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중국인들을 콜로라도처럼 흩어지게 할 생각이었다.

‘똥은 모이면 그냥 똥통이지.’

다만 똥통에서 벗어나 흩어지면 비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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