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09/360)

나름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숙집은 지금처럼 운영하고, 시가 사업은 내가 도와줄게. 돈은 하는 만큼 가져가게 될 거야. 나는 터치도 안 할 거고.”

아켄의 눈이 커지며 입꼬리는 씰룩거렸다.

그 말대로라면 자신은 투자자를 만난 셈이다.

그것도 서부 사령관이라는 엄청난 배경을 가진 자를.

순간 머릿속에 미래의 그림들이 펼쳐진다.

백인들 틈에서 가난한 중국인이 우뚝선 모습이.

‘당신이 아무리 반대해도. 나는 돈을 벌어서 차이나타운을 만들 거야. 샌프란시스코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더욱이 상대가 그런 기회를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나.

아켄의 눈에 야망이 번뜩였다.

그리고 이를 본 막스는 내심 비웃음을 삼켰다.

‘뭘 생각하든. 뜻대로는 안 될 거야.’

“결혼은 왜 안 해?”

“그게···. 아직은 좀 이른 것 같아서요.”

‘이르긴 개뿔.’

아일랜드 여자는 경제력을, 중국 남자들은 시민권을 얻기 위해 서로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켄은 결혼을 미루고 있을까.

이유는 하나다.

‘군대에 끌려가기 싫어서 그런 거겠지.’

남군이 징병제를 꺼낸 순간, 북군의 남자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이 끌려갈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켄도 마찬가지.

시민권을 딴 순간 징병의 대상이 될 처지였다.

실제로 남북 전쟁 동안 북군에는 2백여 명의 중국인이 군에 입대하게 된다.

모두 동부 사령부 소속으로 결혼으로 시민권을 얻은 케이스였다.

“그러고 보니 시민권도 없는 너한테 무슨 투자냐.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

막스의 말에 아켄의 마음이 흔들렸다.

징병제가 된다고 무조건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눈앞에 보이는 기회가 날아갈까 조바심이 느껴졌다.

‘하자. 리사가 오면, 결혼부터 하는 거야.’

아켄이 결심을 내리고 말하려던 때.

덜컥.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여자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원들이 나간 지 불과 한 시간 만이었다.

“리사!”

“아켄!”

서로 달려들며 눈물을 흘려대고. 문 뒤에서 지켜보던 대원들은 시발 거리며 툴툴거렸다.

“어떻게 됐어?”

막스의 질문에 산초는 눈물의 상봉 장면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가니까 바로 두 손 들던데. 보스와 관계있는 줄 몰랐다면서, 미안하다고 꼭 좀 전해달라던데.”

“그걸로 끝?”

산초가 양쪽 어깨를 으쓱거렸다.

“파이브 포인츠 근처엔 얼씬도 안 하겠대. 그래서 오케이하고 나왔지.”

총과 칼이 필요 없는 인질 구출 작전.

뉴욕에서 날뛴 보람이 있었다.

잠시 후.

리사의 손을 붙잡은 아켄이 비장한 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결혼하겠습니다.”

“...... 켄?”

리사가 이번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아켄을 껴안았다.

이를 본 피치도 더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트리며 천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때 막스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민권을 딴 아켄이 돈맛을 알 때쯤.

훈련소로 끌려올 테고, 그곳에서 혹독한 훈련으로 머릿속 차이나타운을 지운다. 깨끗하게.

아켄에게 시민권을 강요한 이유였다.

메릴랜드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경계.

하퍼스 페리에서는 훈련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설 자재가 실린 배가 도착하면, 인부들이 몰려와 하선을 도왔는데 그중엔 피치가의 두 형제도 있었다.

“마틴 형, 뉴욕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글쎄. 아무쪼록 에밀리에게 아무 일도 없길 바래야지.”

뉴욕시에서 벌어진 일이 여기까지 전해질 리도 없고. 누가 와서 알려주지 않는 이상 아무도 소식을 알지 못했다.

*

막스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뉴욕에 머무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 데이비스로부터 부동산 대리인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마치고.

다음에 해야 할 건, 막스가 없을 때 누구에게 뉴욕을 맡기는가였다.

지금부터 함께 움직이면서 만들어갈 사람이 필요했다.

“솔직히 신뢰할만한 사람은 죄다 로렌스와 콜로라도에 있잖아.”

“그렇긴 하지.”

막스는 팔짱을 낀 채 피치의 말에 대답했다.

그리곤 잠시 생각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매그는 어때?”

피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 역시 내심 매그를 떠올렸지만, 막스의 결정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친구라는 이유도 컸다.

그런데 나서서 매그를 언급한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 난 찬성이야.”

“그럼 매그를 불러와야겠다.”

잠시 후.

막스의 제안을 받은 매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이를 본 피치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너도 고생길 훤하다. 앞으로 막스가 엄청 부려 먹을걸?”

“상관없어. 보상만 제대로 해준다면.”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SFBC 대원들이 매번 구르면서도 보스를 부르짖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준투에 토지를 보유했으며, 월급과 보너스 일부는 막스 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금에 섞여 있었다.

지분율은 막스가 60, 나머지를 대원들이 갖고 있었다.

물론 막스가 미친 듯이 여기저기 투자하는 바람에 심장은 오그라들지만. 아무도 불만을 갖거나 돈을 빼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 인생 뭐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훗날 먼지가 될지, 아니면 상상도 못 할 금액으로 불어날지.

대원들에겐 도박판에서 카드 패를 뒤집는 것처럼 흥분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매그, 앞으로 로잔나 피어스를 중심으로 뉴욕에서 사업을 하게 될 거야. 그러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이겠지.”

막스는 구상해둔 서류를 매그에게 내밀었다.

“울타리는 이제 잊고, 이곳을 능력 있는 사람들로 채우자고. 며칠 뒤에 구인광고를 낼 테니까.”

“...... 알겠어요.”

매그의 목소리에 조금은 힘이 없었다.

힐끔 얼굴을 본 막스는 그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인원 배치는 매그가 알아서 해. 그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도 잊지 말고. 일 층에 레스토랑을 여는 것도 생각해 봐.”

“아···.”

매그가 염려했던 건 바운서와 바텐더, 요리사인 그녀의 가족들이었다.

나이 든 갱스터가 정상적인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막스는 그들까지 신경 써서 말해주고 있었다.

더욱이.

“이 건물을 사버릴까 했는데. 차라리 다달이 월세를 받는 건 어때? 그정도 이익이야 나지 않겠어?”

“그러면 저도 좋죠. 솔직히 팔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럴 것 같았어.”

애증이 섞인 곳이지만, 매그에겐 자신을 길러준 사람들과의 추억이 서린 장소였다.

그것까지 배려해준 막스를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피치만 아니었으면.’

*

로잔나 피어스를 중심으로 시간이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막스의 파트너들이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의 리바이 스트라우스.

펜실베이니아 스미스앤 웨슨의 호레이스 스미스. JP 모건과 제이슨 굴드. 그리고 밴더빌트까지.

뉴욕에서 기반을 닦는 동안, 길거리에 호외를 외치며 신문이 뿌려졌다.

[리치먼드 함락 좌절, 북군 총사령관 버지니아에서 탈출 시도.]

#208 맥클레란의 패배

맥클레란은 페닌슐라 작전에서 패배했다.

몇 번의 전투에서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그는 흩어졌던 병력을 한 지점으로 집결시켰다.

버지니아 동쪽의 제임스강 해리슨 랜딩.

이곳에 모인 북군 지휘관들은 리치먼드의 공세를 재개할지, 아니며 철수시킬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더는 리치먼드 요새 공략은 어렵습니다!”

“로버트 리와 잭슨 장군이 막고 있는데 무슨 수로 뚫는단 말입니까!”

“병력은 우리가 우세합니다. 왜 자꾸 퇴각만 생각하는 거요?!”

“재정비하는 동안 증원군이 도착하면 다시 노려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공격과 퇴각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중심에 선 총사령관 맥클레란이 결국 장내를 정리했다.

“전쟁 장관에게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대통령이 제정신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증원을 하겠지요.”

그런데 정작 섬너 장관에게 보낸 맥클라렌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군대를 구한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과 워싱턴에 있는 누구에게도 감사할 생각 따윈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이 군대를 희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맥클레란은 증원 요청보다는 원망만 늘어놓았다.

그는 되려 리치먼드 공략을 재촉한 워싱턴을 비판했다. 작전 실패 원인은 결국 무리한 공격을 강행했기 때문이라는 해괴한 논리였다.

맥클라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이유는 있다.

페닌슐라 작전은 초반부터 순탄치 않았다.

해상을 통해 버지니아에 상륙했지만, 폭우가 내리고 진흙탕이 된 길은 병사들의 발목을 붙잡고. 지역 주민들은 농장을 불태우고, 가축을 풀어주고, 우물을 돌로 채웠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맥클레란은 꾸역꾸역 리치몬드 동쪽으로 15마일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남부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가 아내와 아이들까지 기차에 태워 탈출을 시킬 정도였으니, 맥클레란의 진군은 그만큼 남군에게 위협적이었다.

첫 전투도 나쁘진 않았다.

남군 사령관 조셉 존스턴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안겨줬으니까.

그런데 이게 오히려 맥클레란에겐 독이 되었다.

조셉 존스턴 사령관의 뒤를 로버트 리가 이어받게 된 것이다.

맥클레란은 남북 전쟁의 명장으로 역사에 남을 로버트 리를 전면에 등장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결국, 야심 차게 계획한 페닌슐라 전투는 북군의 패배로 끝나버렸다.

남군의 로버트 리와 토마스 ‘스톤월’ 잭슨 장군은 맥클레란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상대였다.

더욱이 그 둘은 헤리슨 랜딩에 모인 북군을 추격하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더는 워싱턴의 답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퇴각합시다.”

맥클레란은 미리 퇴로를 준비해뒀는지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해상을 이용했다.

그렇게 배를 통해 돌아가던 때.

맥클레란은 친구이자 참모인 존 포터 장군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적 사령관을 부상입히고, 교체된 로버트 리 장군에게 큰 피해를 안겨줬어. 이거면 자넬 쉽게 경질하진 못할 거야.”

존 포터의 말이 마음에 드는지 맥클레란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패배라고 하기엔 애매하긴 하지.’

북군 11만 중 2만 명 손실.

남군 9만 2천 중 2만 5천 명 손실.

수치만 보면 작전에 실패했을 뿐, 맥클레란은 패한 게 아니다.

더욱이 이번 전투로 남부 연합의 수도 공략이 어렵다는 것. 북군과 남군의 전력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전부 자신 덕분이었다.

맥클레란은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따져봤다.

‘중요한 건 바로 다음에 벌어질 전투다.’

생각 끝에 그는 존 포터에게 말을 건넸다.

“이대로 후퇴하면 다음은 남군이 북으로 밀고 들어올 거야. 게다가 그 시기는 꽤 빠를지도 모르지.”

“오히려 잘됐네. 그런 상황에서 맥클레란, 자네를 대신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몇 명 이름이 떠오르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사람은 현 서부 사령관. 그 이름을 떠올리자 존 포터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지만 맥클레란은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

“율리시스는 사령관이 되고선 아직 한 게 없어. 게다가 테네시에서 동부까지 오는 시간, 와서 병력을 정비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지.”

“...... 그럼 그 동양인은?”

존 포토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서부 전선에서 연전연승을 기록한 동양인은 좌천이 아니라 스스로 물러난 경우다.

만약 대통령이 맥클레란을 경질하고 급히 그자를 내세운다면?

맥클레란은 이번에도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

오히려 코웃음까지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동양인 주제에 서부 사령관이 된 것만도 감지덕지해야지. 그놈은 거기까지가 한계야. 게다가 서부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언제 동부로 불러오겠어?”

“...... 지금 뉴욕에 있다던데.”

“음?”

맥클레란의 고개가 살짝 틀어졌다.

서부에 있어야 할 놈이 왜 뉴욕에 있단 말인가.

*

“설마, 이거였어?”

신문을 읽던 콜린이 대뜸 막스에게 물었다.

개떡 같은 질문이지만, 막스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훈련소도 그렇고, 굳이 뉴욕에서 시간 보내는 거. 이것 때문이지?”

피치도 ‘오호’하는 눈빛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그녀는 뉴욕에서 ‘전 서부 사령관’이라는 직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했다.

임시든 뭐든. 총사령관이라는 자리는 막스를 더 높은 곳까지 올려놓을 게 분명했다.

“진짜 그걸 노린 거야?”

피치가 눈을 말똥말똥 치켜뜨며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반반인데.’

애초의 막스는 남북 전쟁을 방해하는 인물을 제거해 기간을 단축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 때문에 율리시스 그랜트를 빠르게 총사령관으로 앉히는 걸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율리시스가 서부 사령관이 된 이후 이렇다 할 전투를 벌이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

남서부의 군사적 요충지, ‘남부 연합의 지브롤터’라 불리는 천혜의 요새 빅스버그 공략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얼마 전에는 빅스버그로 향하는 습지 주변의 나무를 없앤다고 벌목 작업한다는 편지를 받았었다.

막스야 빅스버그 공략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워싱턴의 의원들과 장군들이 보기엔 뻘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논란이 거셌다.

- 아니, 대체 그랜트 장군은 3개월 동안 뭐를 한 겁니까?

- 어이구, 모르셨습니까? 그동안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늪지에다 흐르는 지류를 만든답시고 운하도 파고, 길을 막고 있는 나무도 베고, 작업이 없는 부대는 우기에 물이 차지 않는 좁은 강둑에 진지까지 구축했다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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