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0화 (210/360)

- 허, 그래서요?

- 그래서는 무슨. 부하들 작업시키고 본인은 술이나 마셨다는 거지. 어쨌든, 많은 일을 한 건 팩트아니겠습니까? 허허.

비난과 조롱이 이어지면서 율리시스의 음주에 관한 소문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물론 율리시스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억울한 일이지만, 워싱턴의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율리시스 그랜트가 총사령관에 오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막스는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뭐가 됐든. 맥클레란이 경질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리고 내가 서부 사령관을 그만둘 때 말했잖아. 대규모 전투에는 자신 없다고.”

“설마 맥클레란 보다 못할까. 신문 봤지? 배 위에서 지휘했다잖아.”

콜린이 신문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야전에 있던 맥클레란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장을 지휘했다.

그가 지휘한 곳은 지상이 아닌 제임스 강. 그것도 ‘USS 갈레나’라는 대형 건보트 위였다.

전투는 장군들에게 맡기고 맥클레란은 배 위에서 지휘하고 보고를 받았으니. 당연히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맥클레란의 태도는 몇 차례나 아군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

“장담하는데, 맥클레란이 경질당할 가능성은 100프로야. 그럼 다음은 누구겠어?”

“그야 모르죠. 일단 지켜봅시다.”

막스가 책상에서 편지를 쓰고 있을 때.

매그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로잔나 피어스 공사가 완료됐어요. 내일이면 들어갈 수 있대요.”

막스와 일행들은 공사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 다른 곳에서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장소를 물색하던 중, 귀신같이 밴더빌트가 찾아왔다.

- 내 호텔에서 머물게. 삼백 명쯤은 넉넉하게 있을 수 있을 걸세.

- 대륙횡단철도를 이걸로 퉁 치시려고요? 설마 제가 갈 곳 하나 없을까요.

- 그건 별개의 문제고. 호텔은 내 마음일세.

밴더빌트은 끝끝내 대륙횡단철도에 관해서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자칫 다른 철도 사업자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내몰릴 수 있었으니.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건 막스도 알고 있었다.

‘너무 몰아붙이면 탈이 날 수도 있지.’

밴더빌트의 제안을 야박하게 거절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진 않았다.

그렇게 밴더빌트의 호텔에서 한 달간 머무르고, 마침내 오늘에서야 로잔나 피어스의 리모델링은 끝이 났다.

범죄자들의 울타리, 로잔나 피어스는 역사 속에 사라지고 ‘로잔나’ 건물로 바뀌었다.

1층 채소가게는 사라지고, 대신 지하와 연결된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여관방이었던 2층과 3층은 완전한 사무실로 바뀌고, 막스는 뒤에 있던 건물을 매입하여 직원들의 숙소로 만들었다.

이사가 끝나고 며칠 뒤.

트위드에게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 토마스가 고용한 변호사가 막스를 찾아왔다.

토마스의 땅은 그 소유주인 트위드와 철도 회사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 때문에 트위드가 자신은 모른다며 버티고 있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생겼다.

“맥클레란이 패배한 직후 트위드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토마스의 땅과 다른 사업까지 내걸고 협상하자더군요.”

“협상? 아직도 자기 처지를 모르네요.”

“아무래도 보석금을 마련한 것 같습니다.”

재산을 압수당한 트위드가 보석금 2백만 달러를 어떻게 마련했을까.

막스의 눈이 가늘어지자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아직 트위드의 지지 세력은 남아있습니다. 증거들을 모아, 당신의 만행을 맥클레란에게 고발하면 어떤 조치를 해줄 거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더군요. 여기엔 뉴욕 시장도 포함되어 있고요.”

“재기가 가능하다고 보는 거군요.”

맥클레란이 비록 패배는 했지만, 아직은 북군 총사령관이다.

이들의 관계는 타마니 홀이라는 정치 집단.

민주당과 대륙횡단 철도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밴더빌트가 결정을 미루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막스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렀다.

과연 맥클레란이 총사령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트위드와 조력자들은 쓸데없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당분간 지켜보세요. 이왕이면 트위드의 지지 세력이 누구인지, 리스트도 부탁드립니다.”

변호사와의 만남이 끝나고 며칠 뒤.

매그가 두 개의 편지를 들고 왔다.

하나는 하퍼스 페리 부근의 훈련소 완공 소식, 다른 하나는 전쟁장관 섬너의 서신이었다.

[맥클레란은 오늘부로 경질되었네.

해서 차기 후임으로 대통령이 자네를 언급했는데 한바탕 난리가 났지.

예전에 자넬 서부 사령관으로 임명했을 때와 하나도 바뀐 게 없더군. 솔직히 그자들의 논리는 들어 줄 수 없을 정도로 해괴하고 혐오스럽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씁쓸하긴 하다.

막스는 마저 편지를 읽어갔다.

맥클레란의 후임자로 추천받은 자들의 이름도 적혀 있었는데. 막스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인물들이었다.

다들 원 역사에서 대차게 전쟁을 말아먹은 작자들이었다.

‘이 자들이 할 바엔 내가 하는 게 낫지.’

이후의 내용은 훈련소가 완공되었으니, 한 개 대대와 신병들을 조만간 보내겠다는 말이었다.

‘나도 슬슬 하퍼스 페리로 옮겨야겠군.’

아마 피치 가족과 갱단들이 돌아오면 바통터치를 해야 할 듯싶다.

그렇게 일정을 계획하고 뉴욕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피치가 편지를 달랑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번엔 대통령이야. 우리 보스는 인기도 참 많아요.”

막스가 편지를 뜯을 때, 피치와 콜린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지금 8월이야. 더워 죽겠다고.”

“더 뜨겁게 해줄까?”

피치가 얼른 펴보라며 눈짓으로 재촉했다.

막스는 피식 웃으며 편지를 펼쳤다.

그런데.

[로버트 리 사령관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북상한다는 소식이네.

당연하겠지만, 목표는 이곳 워싱턴이겠지.

해서 자네를 임시 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바.

거절은 거절하겠네.]

#209 북군 총사령관

남부 연합의 수도 리치먼드.

“북군이 패배한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다. 병력을 모아 북으로 진군한다!”

조셉 존스턴 대신 급하게 사령관의 자리에 오른 로버트 리 장군.

페닌슐라 전투에서 몇 번의 실책과 막대한 사상자를 냈음에도, 남군의 사기는 치솟았다.

이에 대담해진 로버트 리는 곧바로 북군으로의 공격을 준비했다

북 버지니아 군을 제임스 롱스트리트와 스톤월 잭슨이 지휘하는 2개 군단으로 재편하고, 무능력한 장군들을 해임.

젭 스튜어트와 같은 능력 있는 장군들을 대거 기용함으로써 대대적인 군제 개편을 단행했다.

“목표는 워싱턴DC! 이 전쟁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다!”

*

막스의 시선이 한 단어에 꽂혀 움직이질 않는다.

[...... 임시 ......]

‘또야.’

서부 사령관도 그렇고, 이놈의 임시는 어쩔 수 없는 건가.

막스가 혀를 차려는 때, 피치와 콜린이 호들갑을 떨었다.

“북.군.총.사.령.관!”

“캬, 진짜 이렇게 되네. 이거 뭐, 급하니까 반대도 없다는 거네?”

자기 목에 들이댈 칼날만 없애 준다면 동양인이든 흑인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반대도 찬성으로 돌릴 만큼 워싱턴은 남군의 진군을 위협적으로 인식했다.

자연스러운 결과지만, 솔직히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막스도 믿기 힘들 정도로.

‘아무튼, 내가 북군 총사령관이라 이거지···.’

내심 바라긴 했지만, 확률은 반반.

아무래도 존 브라운을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이다. 그는 정치적 공세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막스를 밀었다.

‘남자는 직진이지.’ 어디선가 존 브라운의 환청이 들려오는 것도 같다. 아무튼.

링컨이 대통령이었다면, 과연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존 브라운은 역시 신의 한 수였어.’

미국의 경제와 발전이 후퇴할지언정, 막스에게 만큼은 최고의 대통령이었다.

‘그건 그렇고, 부담은 좀 되네.’

지금까진 새로운 무기와 꼼수가 먹혔지만, 앞으론 다르다. 미래의 지식에 의지하기엔 역사가 많이 뒤틀렸다.

로버트 리 장군이 어떤 전략과 전술로 나올지, 단정 짓기 힘들어졌다.

암살이나 개틀링 한두 대로 승패를 결정지을 수 없는 전투. 치열한 수 싸움과 실수 하나에 수만 명의 군인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살얼음판 같은 전쟁터.

특전사와 용병으로서, 소대와 분대 작전만 경험한 자신이 대규모 전쟁을 이끌 수 있을까.

‘일생일대의 도전이구나.’

막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때,

피치가 콜린을 툭 치며 말했다.

“어떻게 막스는 이 상황에서도 반응이 없을까요. 그냥 감정이 없나?”

“그럴 리가, 배고프면 반응하잖아.”

“그러네. 어쨌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막스가 쓴웃음을 짓는 사이 피치는 쪼르르 달려가 복도에다 대고 소리쳤다.

“보스가 북군 총사령관이 됐다아아아아!”

“왓더 뻑, 내가 뭘 들은 거야.”

“요 머더 뻑, 총사령관? 레알? 트루!?”

“쉣! 말도 안 돼!”

다다다다다.

대원들이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미처 들어오지 못한 대원들은 복도에서 뻑뻑거렸다. 진짜냐고. 믿을 수 없다고.

다음 날 저녁.

공포에 떨고 있는 워싱턴과 달리, 뉴욕시 로잔나 피어스에선 파티가 열렸다.

마침 1층에 레스토랑을 만든 건 신의 한 수였다.

“누가 주방에 가서 좀 도와라. 영감님들 쓰러지시겠다.”

“그럼 1분대 주방, 2분대 서빙, 3분대 세팅!”

“나머진 뭐 하는데?”

“우린 북군 총사령관님 수발들어야지!”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막스는 히콕이 빠진 세븐 스트롱을 따로 불렀다.

“훈련소는 산초, 조 짐 주니어가 맡아줘야겠다. 연방에서 한 개 대대를 먼저 보냈을 텐데. 둘은 교관에 적합한 대원 40명을 선발해서 데려가.”

다음은 시선을 콜린에게 향했다.

“콜린은 당분간 대원 50명을 이끌고 여길 지켜줘요. 어렵게 얻은 뉴욕을 빼앗기면 안 되니까.”

“오케이.”

막스의 시선이 이번엔 다른 둘을 향했다.

피치와 줄곧 경찰국에서 증인을 보호하고 있던 로어. 특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로어의 시선이 꽤 부담스러웠다.

“...... 로어는 나와 같이 가자.”

“예에!”

“...... 그리고 피치는 당분간 뉴욕에 있어. 나 대신 여길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피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대신이라는 말은 ‘분신’으로 치환할 수 있으며, 분신이라는 말은 비록 몸은 떨어졌어도 한 몸과 같다는 말.

‘맞아. 그 뜻이지.’

스스로 세뇌를 끝마친 피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알았어.”

뭔가 섬뜩함을 느낀 막스는 서둘러 피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짧은 회의가 끝나고 막스와 대원들은 음식을 함께 나르고 세팅하며 파티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때.

딸랑,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뉴욕 경찰국의 테론 경감이었다.

대원들이 일제히 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자, 테론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져갔다.

“저, 저기. 저는 그냥 가다가 들린 건데요.”

“잘 왔어요, 테론 경감님. 저녁 안 먹었으면 먹고 가요.”

막스의 손님이라는 걸 안 대원들은 이내 하던 일을 하며 관심을 거두었다.

테론은 목을 이리저리 만지며 막스에게 다가왔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

“그냥 오랜만에 조촐한 파티나 할까 해서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문제 있어서 찾아온 건 아니죠?”

“그게.”

테론 경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어렵게 말을 꺼내길.

“뉴욕 시장과 경찰 국장이 서부 사령관님의 불법 행위와 일부 갱단들을 무차별하게 죽였다는 증거를 모으고 있습니다. 트위드의 보석도 추진 중이고요.”

“아, 그 얘긴 들었습니다.”

테론은 태연하게 대답하는 막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장군이라 정치 쪽은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제가 걱정하는 건. 이번 일에 맥클레란 총사령관도 개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막스는 테론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직접 찾아와 말해주시는 걸 보면. 제가 경감님에게 신뢰를 얻은 모양이네요.”

“그야, 일전에도 말했잖아요. 서부 사령관님을 존경한다고. 게다가 덕분에 뉴욕 밤거리도 안전해졌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네요. 참고로 저도 테론 경감님을 존경합니다.”

“예?”

테론이 눈을 껌뻑거리자 막스가 미소를 지었다.

“뉴욕 시민을 위해 애쓰시지 않습니까. 경찰이 많다지만, 다 똑같지는 않죠. 유혹을 뿌리치고 공정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 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부끄럽습니다.”

“그럼 앞으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

테론이 볼을 긁적거릴 때.

또다시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피치가 초대한 토마스 데이비스와 부인, 그리고 딸이자 미망인인 이사벨이었다.

시커먼 남자들을 본 순간 멈췄던 발걸음은 막스와 피치를 보고서야 다시 움직였다.

눈으로 내부를 훑어보던 토마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로잔나 피어스의 1층이 이렇게 넓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레스토랑으로 괜찮아 보이나요?”

“마음에 쏙 드네.”

“저도요.”

토마스의 대답에 부인과 이사벨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북군 총사령관이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하네. 내가 귀한 인물을 못 알아봤어.”

“임시일 뿐입니다.”

“임시는 말장난이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세.”

토마스의 말에 가장 놀란 건 테론 경감이었다.

눈을 비비고 귀를 후벼판 그는 옆에 있는 네이선 로어에게 물었다.

“저기,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뭐요. 뭘 들으셨는데?”

“방금 북군 총사령관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것도 모르고 여길 왔냐며 로어가 피식거렸다.

“제대로 들었습니다. 우리 보스가 이제 북군 총사령관이거든요.”

테론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맥클레란 경질에 관한 여론이 엇갈릴 때, 이미 자리는 정해진 모양이다.

그것도 눈앞의 동양인 서부 사령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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