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360)

‘대단한 사람이다. 설마 그 자리까지 올라갈 줄이야. 이렇게 되면···.’

상상이 간다.

트위드의 재기를 돕는답시고 설쳐대던 뉴욕의 좀 벌레들이 절망하는 모습이.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지 않은가.

웃음을 참느라 몸까지 떨려왔다.

‘쌤통이다 새끼들아.’

“왜 갑자기 웃고 그래요, 무섭게.”

“아, 아닙니다. 크큭.”

마음을 진정시킨 테론은 다시 한번 경외 어린 시선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북군 총사령관이 된 그가 다음엔 어떤 전략과 전술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피치는 토마스 가족을 미리 세팅된 자리로 안내했다.

그런데 일 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또다시 손님이 들어왔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였다.

“미행하는 거 별로 좋은 행동 아니라니까요.”

“우연이네, 우연. 근데 파티라도 하나? 오호, 인테리어가 꽤 세련됐군.”

밴더빌트는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오며 주변을 훑어봤다. 그리고는 익숙한 듯 토마스 가족과 합류했다.

밴더빌트가 찾아온 이유는 빤하다.

가장 좋아하는 막내아들이자 웨스트 포인트 사관생도인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의 미래를 부탁, 아니 청탁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은 조촐한 파티를 기획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손님들이 방문하며 규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종이 울릴 때마다 손님이 들어서는데.

뉴욕에 머물고 있던,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스미스 앤 웨슨의 호레이스 스미스.

떠오르는 금융계의 신성, JP 모건.

그리고 밴더빌트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 제이슨 굴드까지 귀신같이 알고 모여들었다.

“북군 총사령관이 된 걸 축하하네.”

“막스, 네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인 줄 몰랐어. 앞으로 더 잘해보자.”

손을 꽉 잡은 JP 모건이 뜨거운 눈으로 막스를 응시했다.

대통령은 아직 북군 총사령관의 이름을 공표하지 않았다.

‘거절을 거절한다’라고 했으나 막스의 대답까지 무시할 사람은 아니었다.

따라서 오늘 전보로 의사를 전달했으니,

시간상 공표는 내일 이루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모건과 제이슨 굴드, 밴더빌트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워싱턴까지 정보망을 뻗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정보가 빨라야 할 사람이 안 보여.’

사람을 다시 뽑아야 하나 싶을 때.

마지막 손님으로 프리덤 에코의 편집장 모리스 디캠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축하드립니다! 북군 총사령관님!”

*

갑작스럽게 마련된 파티지만 제법 음식과 술도 넉넉하게 준비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막스는 술이 채워진 잔을 든 채 입을 뗐다.

“아직 임명된 게 아니라 그것과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은 뉴욕의 생활을 마무리 짓는 의미에서 마련한 자리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막스는 사업가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군 총사령관이 된 막스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지만,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한편 피치 옆에 앉은 매그가 술을 입에 털어 넣고는 입을 뗐다.

“솔직히 지금도 안 믿겨.”

“서부 사령관은 믿기냐?”

“그거랑은 다르지. 아무튼, 동양인으로 어떻게 총사령관까지 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임시라도 말야.”

“일단 대통령하고 친하면 돼.”

“헐, 대통령하고도 친해?

매그는 새삼 막스 주변 인물들을 보며 혀를 찼다.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람이야.’

인맥이 무슨 양파도 아니고, 까면 깔수록 예상치도 못한 인물들과 맞닿아 있었다.

“근데 넌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지금까지 항상 붙어 다녔다며. 뉴욕까지 와서 뭔가 있나 싶었는데, 너만 남겨뒀잖아.”

피치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노노. 저런 남자라면 불안하지 않나 싶어서 그렇지.”

“불안은 무슨. 어차피 고···· 아니다.”

매그가 입을 가리며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진정을 시킨 뒤 매그가 다시 물었다.

“근데 가족들이 집 새로 바뀐 거 모르지?”

“엉. 알 리가 없지.”

“그래도 몇십 년을 살던 곳인데. 네 마음대로 집을 옮기는 건 그렇지 않아?”

“추억보단 안전이 우선이야. 막스가 하도 쑤셔놔서 어쩔 수 없다고.”

으슥한 골목 대신 막스는 로잔나 피어스의 뒤로 집을 옮길 것을 제안했다.

콜린과 대원들이 당분간 머물기 때문에 이곳이야말로 뉴욕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으니 말이다.

*

[속보! 맥클레란의 뒤를 이어 임시 북군 총사령관으로 막스 조 장군 임명!]

대통령이 공표하자마자 관련 소식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 동양인을 북군 총사령관에?

충격적인 소식이지만, 생각보다 민심은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막스 조 장군이 이전 서부 사령관으로 익숙한데다, 서부 전선을 연전연승으로 이끈 인물이라 논란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일단 어디 한번 해봐라, 이런 거겠지.’

대신 실패에 따른 비난은 맥클레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할 것이다.

백인 중심 사회에 동양인이 추락하는 데에 무슨 날개가 있겠는가.

실패는 곧 수직 낙하가 될 것이다.

존 브라운의 임명은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를 위태로운 날개를 붙여준 셈이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을 알기에 막스는 기꺼이 이 자리를 수락했다.

‘추락하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되지.’

성공만 했으면, 한 번쯤 미끄러질 때도 있는 거다.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마음의 부담만큼은 덜어내고자 했다.

로잔나 건물의 사무실.

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이상, 워싱턴으로 가야 했다.

그전에 막스는 피치에게 해야 할 일들을 서류로 전해주고, 몇 가지 당부를 건넸다.

마침 사무실은 둘 뿐이었다.

“절대 혼자 다니지 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응응. 그리고 또?”

“가족들 오거든 사이좋게 지내, 오빠들하고 싸우지 말고.”

“또?”

“나 보고 싶어도 꾹 참고.”

“못 참으면?”

피치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물었다.

“...... 편지 써.”

“그러고 보니까, 우리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한 번도 없네?”

“그래서 전쟁터에 낭만 찾으러 가는 거야.”

피치가 풉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바싹 다가와 막스의 코트 옷깃을 만지작거린다.

이번엔 자신이 당부할 차례였다.

“맨 앞에서 싸우지 마.”

“어.”

“저격수는 항상 조심하고.”

“어.”

“그리고.”

피치가 기습적으로 입을 가져다 대었다.

막스는 당황했지만, 피치가 눈을 감자 자신도 눈을 감아 본능에 맡겨 버렸다.

입술이 닿은 둘은 이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었다.

마침내 입을 뗀 피치가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쉬운걸.”

“그러게. 분위기고 나발이고. 그냥 하니까 방해꾼들도 없네.”

“또 하자!”

덜컥.

둘이 황급히 떨어지고 사무실에 들어온 산초와 조 짐 주니어의 눈이 급격히 가늘어졌다.

피치가 소매로 입술을 훔치고, 막스는 당당하게 둘의 어깨를 두드렸다.

“준비됐으면 가자.”

뉴욕 맨해튼의 기차역.

워싱턴으로 향하는 무리, 하퍼스 페리 훈련소로 향하는 무리. 그리고 이들을 배웅하려 모여든 무리로 기차역이 시끌벅적하다.

“곧 볼티모어에서 기차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위험하니 플랫폼에서 떨어지세요!”

역무원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기차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익숙한 인물들이 내려섰는데, 하퍼스 페리에서 훈련소 건설을 끝내고 돌아온 피치가였다.

선두에 있는 중년의 거구.

피치의 아버지 레드는 막스와 피치, 그리고 주변에 늘어선 대원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마중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하하하!”

“......”

뒤이어 오빠들과 가족들이 내리고 이들은 충격적인 소식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북.군.총.사.령.관!?!”

막스를 쳐다보던 레드의 눈이 딸 에밀리에게로 향했다.

‘이럴 거면 약혼식이라도 할 걸 그랬나.’

아니면 무슨 약속이라도 받던가.

레드가 입맛을 다실 때, 볼티모어로 향하는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이번엔 반대로 피치 가의 사람들에게 배웅받는 상황이 되었다.

레드는 기를 모으듯 숨을 들이마신 뒤.

기차에 오르는 막스를 향해 소리쳤다.

“잘 갔다 오게! 에밀리는 걱정하지 말고!!”

“!?”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플랫폼에 울려퍼졌다.

기겁한 피치의 얼굴이 붉어지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는 손가락 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잘 부탁드립니다! (장인 어르신.)”

‘음?’

뭐라는 거지?

피치가 눈을 부릅뜨고 입 모양을 해독하는 사이. 레드와 막스는 서로 엄지를 추켜세우며 짙은 미소를 보였다.

같은 시각 워싱턴의 포토맥 사령부.

새로운 북군 총사령관을 기다리며 고위 장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막스를 기다리는 별들만 30개가 넘어갔다.

#210 포토맥 군대

미 동부의 핵심 전력은 포토맥 군대.

창설된 지는 불과 1년, 최초 불런(Bull Run) 전투에서 북군이 패배한 직후 워싱턴을 방어하기 위해 생겨난 군대였다.

이름의 유래는 강의 위치적 중요성 때문에 지어졌다.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주 사이를 흐르는 포토맥강은 그 자체가 남부 연합과 연방의 경계선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강이 펜실베이니아주까지 이어져 있어, 과거 존 브라운이 하퍼스 페리를 습격할 당시 탈출로가 된 적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워싱턴 DC에 도착한 막스.

존 브라운 대통령은 맥클레란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두 개의 직책을 안겨줬다.

북군 총사령관과 포토맥 군대 사령관.

지휘권은 서부 사령관에게까지 미칠 수 있었다.

국회의 의원들과 내각 관료들이 모인 자리.

임명장은 받은 막스는 짧게나마 자신의 포부와 방향에 대해 말을 해야 했다.

- 연방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밋밋하지만, 어차피 그러라고 만든 자리 아닌가.

몇몇 의원들은 의욕이 없어 보인다며 투덜거렸지만, 막스는 한 귀로 흘려버렸다.

지나친 자신감, 희망찬 포부는 그때만 빛을 발할 뿐. 언제 부메랑이 되어 막스를 공격할지 누가 알겠는가.

백악관 집무실.

존 브라운과 섬너, 막스는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셨다. 임명식에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가 끝나고 막스가 물었다.

“유색 부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이 적기일 텐데요.”

맥클레란이 패한 지금, 남군이 북진하는 지금이 모든 반대 여론을 잠재울 기회.

존 브라운과 섬너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며칠 내로 공표할 걸세. 그리고 자네 의견대로 징병제에 대한 방식과 기간도 못 박아둘 참이고.”

“시기는요?”

“내년 3월일세.”

징병법의 정식 명칭은 등록법(The Enrollment Act). 20세에서 45세 사이의 모든 남성이 신원을 등록하고, 이 등록자를 기준으로 징집대상자를 가리는 법안이다.

초기의 300달러로 징집을 면제해주는 법안은 주특기 선택이 가능하다는 교묘한 말로 바뀌었다. 막스가 꼼수를 쓰긴 했지만, 여전히 공정하고 평등한 방식은 아니었다.

그저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이랄까.

‘내년 3월이면, 8개월 남은 건가.’

너무 길다.

법안 공표, 징병할 대상자 소집, 훈련이 끝나고 실전에 배치하려면 족히 1년은 잡아먹을 터.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더 많은 병력으로 남군을 압도할 필요가 있었다.

“기간을 단축할 순 없습니까?”

“그것도 많이 줄인 거네.”

“장비와 보급이 허락되는 만큼 속도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전쟁을 빨리 끝내는 방법일 테니까요.”

“노력은 해보겠네.”

존 브라운의 대답이 끝나자, 섬너는 화제를 돌려 현 동부 군사 조직 개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원래 포토맥 군대가 동부 전역을 커버했는데, 얼마 전 새롭게 부대를 만들었네.”

맥클레란이 리치먼드 공략을 위해 해상으로 진격을 했기 때문에, 워싱턴을 수비하는 군대가 필요했다.

해서 버지니아 군대가 새로 조직되었다.

“지금 존 포프가 그곳 사령관을 맡고 있네. 맥클레란의 후임으로 유력했던 자였지.”

“그자가 거부했습니까?”

섬너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과 내가 거부했네. 여기 있다 보니 기준이 생기더군. 누군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인물일수록 걸러내야 한다는 걸 말일 세.”

막스를 주구장창 밀고 있는 섬너나 대통령도 도긴개긴 아닌가.

이를 의식했는지 존 브라운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우린 자네의 능력만 보고 뽑은 거야. 아무튼, 중요한 건 버지니아 군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네.”

“부대가 두 개로 나뉘면 명령체계가 꼬이지 않을까요. 더욱이 북군 총사령관으로 물망에 올랐던 자라면, 제 명령에 따를지도 의문입니다.”

존 브라운과 섬너 역시 같은 고민이었다.

누가 되든 존 포프는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동양인이라면?

앞으로 존 포프가 어떻게 나올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생각을 끝낸 막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군대는 하나로 합치고, 포토맥 군단을 4개에서 7개로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자네 의지대로 밀고 나가게. 사실 이참에 지휘부도 물갈이했으면 싶은데, 그것까지는 힘들겠지?”

존 브라운의 말에 막스는 대답 대신 턱을 매만졌다.

현재 군단장 중엔 맥클레란과 가까운 자들도 있다. 일부는 동양인에 대한 반감도 있을 거고.

막스가 군대를 장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들을 내치고 핵심을 측근들로 채우는 것이다. 문제는 그럴 만큼 인맥이 넓지 못하다는 거.

하지만 실망할 일은 아니다.

미꾸라지를 솎아내고 분위기를 막스의 중심으로 끌고 갈 기회.

‘그건 굵직한 전투 한 번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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