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6/360)

#216 힘을 실어줘야겠군

막스가 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건 불과 일주일 전.

총사령관으로서의 데뷔무대는 완벽했다.

단 한 번이지만 남군의 공격을 무산시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연방의 국민은 북군 총사령관을 연호하며 신뢰를 보였다. 언제 인종의 벽이 다시 세워질지 모르나, 적어도 지금은 그 벽이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DC, 백악관.

의회를 찾아갔던 존 포프가 존 브라운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행동이 워낙 신속해 막스가 보낸 편지는 아직 대통령에게 전달도 되기 전이었다.

억울함을 성토하는 존 포프.

전쟁장관 섬너는 팔짱을 낀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대통령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존 포프 눈빛에 희망의 불씨가 번져갈 때.

대통령이 그 불씨를 꺼트렸다.

“그래서. 교전하지 않고 그냥 퇴각한 이유가 뭔가?”

“...... 말씀드렸다시피, 총사령관은 제게 정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다른 군단장은 없었나?”

이번엔 섬너 장관이 물었다.

존 포프는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자넬 변호하지 않은 모양이군.”

“...... 총사령관 앞이라 다들 눈치만 봤겠죠.”

존 포프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대통령과 장관의 눈빛에서 싸늘함이 느껴졌다.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북군 총사령관이 동양인이라 마음에 안 들던가?”

대통령의 말에 존 포프의 눈이 커졌다. 뜨끔해진 그는 오히려 기분 나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중요한 작전 지휘를 자네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게다가 장군의 말이 맞는다 쳐도, 적군을 눈앞에 두고 사령관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미 군단장으로서 실격이네.”

대통령과 섬너 장관이 쌍으로 존 포프를 힐난한다. 얼굴이 벌게진 포프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긴 미국입니다! 두 분은 대체 누구 편을 드는 겁니까?”

“말 잘했네. 여긴 미국이지, 게다가 전쟁 중이고.”

대통령은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에 힘을 주었다.

“피부색 따위는 중요치 않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병사들을 아끼면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군인이거든.”

결국 존 포프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그나마 위안은 섬너 장관의 마지막 말이었다.

- 내일 조사관을 파견하겠네. 총사령관의 처분이 부당했는지는 따져보면 밝혀지겠지.

원 역사에서 존 포프는 제2차 불런 전투를 지휘한 총사령관이었다. 하지만 스톤월 잭슨의 함정에 빠져 전쟁에서 대패한다.

이때 패배의 원인을 제5군단장 탓으로 돌리는데, 그가 바로 존 포터 장군이었다.

존 포터의 죄목은 명령 불복종.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둘은 전투 중에도 마찰을 일으키며, 결국 포프는 포터를 군법회의에 넘겨 재판을 받게 한다.

존 포터는 친구인 맥클레란과 민주당의 힘을 끌어왔지만, 결국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그리고 존 포프는 자신의 패배를 부하 책임으로 돌렸다는 비난을 받게 되고, 남북 전쟁에서 퇴출. 그해 인디언과 전쟁을 벌인다.

막스가 아니었어도 존 포프의 말로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한편, 존 포프가 나간 직후 백악관으로 막스의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에는 미주알고주알 당시 상황이 쓰여 있었다. 웃음을 터트린 존 브라운은 이를 섬너에게 건네줬다.

“아무래도 우리 총사령관이 군을 휘어잡기 위해 존 포프를 선택한 모양입니다.”

“안 그래도 둘 사이를 걱정했는데, 빠르게 쳐냈군요.”

북군 총사령관으로 유력했던 존 포프.

섬너는 그가 막스와 갈등을 일으킬 거라는 걸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스는 너무도 쉽게 갈등 요소를 제거했다.

“다음 차례는 존 포터겠군요.”

“이런 생각은 좀 위험하긴 한데. 솔직히 기대는 됩니다.”

막스가 존 포터를 어떻게 쳐낼지를 말이다.

미소를 머금던 존 브라운은 모종의 결심을 한 듯, 섬너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캠프를 찾아가야겠습니다.”

“직접 말입니까?”

존 브라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우리 총사령관에게 힘을 실어 줘야죠.”

*

북버지니아 매나사스의 동부 사령부.

막스는 초창기에 작성해둔 노트 하나를 책상 위에 펼쳤다.

캔자스 로렌스에 있는 동안 전생의 기억을 적어 두었는데, 그중엔 남북 전쟁에서 이름을 남긴 장군들을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쓴 것도 있었다.

윈필드 핸콕, 조지 미드, 존 레이놀즈, 다니엘 시클스, 조지 사익스, 존 세드윅···.

‘그때 안 적어뒀으면 큰일 날뻔했네.’

막스가 기억하는 장군들은 어느 특정 시점에 몰려 있었다.

남북 전쟁 중 가장 유명한 전투인 게티스버그.

책과 영화로도 봤기에 당시 이름을 떨친 장군들이 대부분이었다.

‘영화와 책에 의존하는 건 문제가 있지.’

능력이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건 핸콕처럼 직접 대면해보는 방법이었다.

‘내일부터 틈틈이 장교들을 만나봐야겠어.’

전쟁은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부풀어졌다.

특수부대원들을 동원해봐야 남군 일개 대대나 감당할 수 있을까.

기댈 수 있는 건, 막스의 전략과 전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지휘관들을 찾아내는 것.

적재적소에 그들을 배치해 전쟁을 수행하는 게 최선책이었다.

막스가 군인 명부를 훑어보던 때, 지휘소 천막이 젖혀졌다.

“총사령관님, 태디우스 대령께서 오셨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열기구는 정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람들에게 가치를 증명한 태디우스는 밝은 얼굴로 천막에 들어섰다.

상투적인 말이 오고 가고, 태디우스는 품속을 뒤적거려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열기구의 도면이 그려졌는데, 사람이 탈 수 있는 사각형 바구니 대신 배 모양이 매달려 있었다.

“인상적이군요.”

“내가 대서양을 횡단할 때 타려고 만든 비행선입니다. 이게 제대로 성공했다면 아마 세상이 달라졌을 겁니다.”

막스는 희망과 열정, 야망이 번들거리는 태디우스의 눈을 응시했다.

“그래서 저한테 이걸 보여준 이유가 있을까요?”

“리처드 개틀링을 후원한다고 들었습니다. 혹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말끝을 흐렸지만, ‘투자 좀 해달라’는 입 모양을 벙긋거렸다.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빈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곤 펜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태디우스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내밀어 그림을 쳐다봤다. 그리고 점차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시발, 내가 발로 그려도 저것보단 낫겠는데?’

“...... 그게 뭡니까?”

“비행선입니다.”

“어딜 봐서요?”

정확히 말하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선보인 비행선. 막스는 무려 50년을 앞당겨 세상에 선을 보였다.

“...... 내가 그림을 못 그린 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생긴 겁니다.”

막스는 그 원리를 설명했다. 그제야 이해한 듯 태디우스의 눈동자가 세차게 요동쳤다.

“그러니까, 여기에 수소를 채우고 아래쪽은 증기 터빈으로 날개를 회전시킨다 이거군요!”

사실 수소는 위험하다. 정전기가 발생하면 그대로 폭발해 버리니까.

해서 독일의 과학자는 수소 대신 헬륨을 사용해 안전성을 확보했지만, 문제는 아직 헬륨이 발견되기 전이라는 거. 이 세상에 헬륨의 존재를 아는 건 막스뿐이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비행선은 기류에 영향을 받고, 기낭에 구멍이 생기면 그대로 추락이다.

결국,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비행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잘만 이용하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처럼 남북 전쟁에서도 써먹을 수 있었다.

사람 대신 뇌관을 설치한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기 용도라면 해볼 만했다.

이미 석탄이나 석유를 이용해 터빈을 만드는 기술은 만들어졌다. 날씨만 받쳐준다면 프로펠러를 만들어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크기는 대략 사람 열 명 정도. 밑에 두 개의 프로펠러를 달고, 바구니엔 폭탄을 싣는 겁니다.”

“헐.”

무기 용도였어?

태디우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걸 본 막스는 리처드 개틀링의 철학을 들먹였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기관총을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의 숫자를 줄인다는 거였죠.”

“...... 틀렸네요?”

“아직 모르는 얘기죠. 강력한 무기는 적들의 도발을 억지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기관총은 전쟁이 끝나도 기관총이지만, 비행선은 다르죠.”

마지막 말이 솔깃했는지, 태디우스의 눈이 희망과 야망으로 번들거렸다. 속마음을 쉽게 읽을 수 있는 타입이었다.

“그러니까 저보고 이걸 만들어보라, 이거죠?”

“조만간 뉴욕에 공장이 세워질 겁니다. 거기서 프로펠러와 비행선 몸체도 만들 수 있겠죠.”

장비들이 갖춰져 있다면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열기구는 약속대로 한 개 대대를 투입해 운용할 겁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태디우스 대령은 이걸 한 번 만들어봐요. 자금은 신무기 개발 명목으로 제가 받아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참고로 결정적인 순간에 날릴 전략적인 폭격기가 필요할 뿐,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약점이 많아 대응법도 쉽다.

날아오면 총을 쏴서 터트리면 되니까.

막스가 노리는 건 별것 없다.

개틀링이나 참호처럼 처음 신무기를 접한 적들을 혼란하게 만들고 그 틈을 파고드는 것.

공성전 혹은 밀집 대형을 부수는 데 효과적이고, 심리전에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근데 총사령관님.”

“말씀하세요, 태디우스 대령.”

“대체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내신 겁니까?”

“그야 조선···.”

에선 사람도 비행선 타고 날아다닌다,라고 말하려 급히 바꾸었다.

“...... 고향에서 친구가 생각해낸 아이디업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대단하네요. 동그란 풍선만 생각했지, 이런 형태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상세한 도면은 추후 상의하기로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

다음 날. 막스는 장군들을 불러 인터뷰를 진행했다. 콕 집어서 하기엔 오해의 소지가 있어 사단장급을 순차적으로 면담했다.

그런데 총사령관의 행동이 누군가에겐 불안감을 안겨줬다.

제5군단장 존 포터.

그는 하루아침에 좌천된 존 포프를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더욱이 며칠 전 총사령관과 면담한 핸콕이 제3군단장이 될 거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답답해진 존 포터는 평소 친분이 있는 군단장들을 찾아가 대책을 논의했다.

“돌아가는 모양새로 봐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면담하는 목적도 그거겠지요.”

존 포터가 슬쩍 위기감을 조성했다.

“허, 이러다 눈먼 장님이 휘두른 칼날에 우리까지 다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습니까?”

‘나만 불안한 거냐?’

존 포터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여기 오기 직전에 뉴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던데, 아십니까?”

“도심에서 기관총으로 갱단 쓸어버린 거요? 그거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튼 그것도 그렇고, 여기저기 따로 사업하는 것도 적지 않다는데. 딱 사이즈가 존 프레몬트 장군 같지 않습니까?”

세인트 루이스에서 측근들과 온갖 비리와 연류된 전 서부 사령관 존 프레몬트.

존 포터는 그와 막스를 연결 지어 부패한 장군으로 몰아가려 했다.

조금은 먹혔는지, 군단장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잘하면 이자들과 연대할 수 있겠는데.’

총사령관이 자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를 때.

존 포터는 득달같이 그를 물어뜯을 동료가 필요했다. 그 작업을 해나갈 때.

갑자기 캠프가 소란스러워졌다.

대화가 중단되고 저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천막 밖으로 나갔을 땐, 누군가의 외침이 캠프를 뒤흔들었다.

“대통령이 오셨다!”

“!”

존 포터가 눈을 부릅뜰 때, 다른 군단장들은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존 브라운 대통령이 야전을 찾은 건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