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특수부대의 방어전?
라파예트 베이커는 앨런 핑커톤과 함께 연방의 첩보를 담당하는 핵심 인물.
동시에 거짓 정보를 제공한 죄인이다.
막스는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앨런이 신문을 내밀었다.
더 인콰이어(The Enquirer)라는 남부 연합에서 발행되는 신문으로 날짜는 일주일 전이었다.
“선동과 날조가 판치고는 있지만, 리치먼드에서 나름 균형 잡힌 기사를 쓰는 곳이야. 여기에 라파예트의 기사가 났더라고.”
막스는 빠르게 기사를 훑어내렸다.
내용은 길지 않았다. 리치먼드시의 행정 직원이 살해되었는데, 용의자를 잡고 보니 연방 스파이 라파예트 베이커라는 기사였다.
“거짓 정보를 제공했던 부하 목을 치고 남군에 붙잡혔다, 이거네요.”
라파예트가 남군에 잡힌 건 이로써 두 번째다.
첫 번째는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쳐도, 이번엔 영락없이 교수형 감이었다.
‘표면상으론 그렇겠지.’
막스는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라파예트는 정보의 힘을 알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욕망도 강한 자다.
그런데 그동안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지휘관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고의든 실수든, 부하에게 농락을 당했든.
라파예트의 신뢰는 무너졌고 그를 몰아세운 건 막스, 북군 총사령관이다.
붙잡혔다간 고문 내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군의 포로가 되었다?’
막스는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최악을 가정하면, 라파예트가 일부러 붙잡혔을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부하 목을 친 것도 거짓은 아닐까?
이미 라파예트는 남부 연합과 거래를 했을지도 모른다.
“라파예트는 조만간 조직될 국립 탐정 경찰국의 초대 국장으로 내정된 자 아닙니까? 머릿속에 고급 정보가 많다는 건 남부 연합도 알고 있을 겁니다.”
앨런 역시 막스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남부로 넘어간 이상 더는 라파예트에게 신경 쓸 이유는 없으나, 후처리는 나름 골칫거리였다.
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연방에 있는 라파예트의 부하들을 쳐내야겠군.”
“누군지 파악이 ”
“추적해야지. 워낙 비밀스럽게 행동한 자라 쉽진 않을 거야.”
막스는 한숨을 내쉬는 앨런에게 물었다.
“앞으로 국립 탐정 경찰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 계획대로라면 이번 달에 조직이 창설되어야 했는데···.”
앨런 핑커톤이 말끝을 흐린다.
첩보 및 정보 활동을 위한 미연방 조직.
그런데 그 초대 국장이 될 라파예트가 문제를 일으켰다.
문제는 앨런 핑커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 잘못된 정보를 취급한 만큼 앨런도 의회에서 공격받는 처지였다.
“몇몇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경험이 없어. 정보를 어떻게 다루고 취급해야 할지 개념조차 없더라고.”
그냥 인맥을 이용한 낙하산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측근을 내세울 입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앨런이 막스를 찾아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이참에 SFBC에서 초대 국장을 내세우는 건 어때?”
“우리 쪽에서요?”
“왜 그래.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으면서.”
“..... 솔직히 살짝 생각은 해봤습니다만.”
막스의 대답에 앨런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제안한 정부 조직이 SFBC에게 넘어가게 생겼으니. 여간 쓰린 게 아니다.
하지만 능력 없는 낙하산보다는 낫지 않은가.
더욱이 막스라면 자신이 왜 여길 찾아왔는지, 무엇을 바라는지도 알 것이다.
앨런이 말없이 막스의 눈을 응시한다.
노골적인 말 대신 눈빛으로 갈구했다.
정보 조직에서 핑커톤이 배제되는 건 막아달라는.
어서 그 뜻을 캐치하라며 눈을 치켜떴다.
막스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으니까, 그만 좀 쳐다봐요.”
막스는 진지한 얼굴로 돌아가 말을 이었다.
“SFBC에서 사람을 내세우겠습니다. 나 역시 얼치기들이 정보를 취급하는 건 반대니까요. 그리고 만약 자리에 앉게 되면.”
“되면?”
“핑커톤 직원을 고용해야죠. 이게 공조 아니겠습니까.”
“역시. 든든한 파트너구먼!”
앨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북군 총사령관을 향한 국민의 관심이 뜨겁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내세운 인물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앨런 핑커톤과 미팅이 끝난 직후.
막스는 제이미 터커를 불렀다.
전투 센스는 꽝이지만 말 타는 능력이 탁월한 SFBC 대원. 캔자스에서 주지사 호레이쇼 리더를 함께 경호한 이후, 주로 연락병과 정찰병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국립 탐정 경찰국 자리에 어울렸다.
그런데 오라는 터커는 안 오고 네이선 로어 혼자였다. 기가 막힌 건.
“말 타는 걸로 내기가 벌어졌다고?”
“난리도 아니에요. 터커랑 제5군단 기병여단 테일러 대위랑 붙었습니다.”
네이선 로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길.
특수부대원도 말 타는 기술은 별것 없다면서 도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원 중 가장 말을 잘 타는 터커와 자존심 대결이 펼쳐졌다고 했다.
“근데 하필 5군단이라 이거지?”
존 포터 장군이 요즘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한심하게 막스를 향한 불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현재 막스는 군 조직을 손보는 중이다.
보병, 기병, 포병.
특히 막스는 포병에 집중했다.
산업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포병은 확실한 ‘전쟁의 신’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연방의 포병 전술은 문제가 있었다.
막스가 총사령관이 된 이상 낡은 전술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병사들의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훈련과 교육 일정도 확립할 생각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국지전 외에 대규모 전투는 벌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병사들은 한가롭게 뻘짓을 하고 있었다.
“일단 가보자고.”
막스는 네이선 로어와 함께 내기가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병사들이 잔뜩 몰려 있는 평원.
그들 사이로 뻥 뚫린 길엔 두 남자가 말에 올라 몸을 이리저리 풀고 있었다.
“기병대의 위대함을 보여줘라! 테일러 대위!”
“제5군단의 자존심을 걸고, 특수부대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
막스의 미간이 좁아질 때, 특수부대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터커! 지면 너 혼자 혹한기 보낸단다!”
“다 필요 없고. 지면 그냥 말 타고 집으로 가!”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꼈다. 같은 마음이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깃발을 들고 두 기수 사이에 섰다. 그리고 외치길.
“승부는 땅에 꽂은 열 개의 깃발을 전부 회수하고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이기는 거다! 깃발 숫자가 모자라면 패배로 간주한다!”
규칙은 단순하다.
갈 땐 우측에 있는 깃발 다섯 개, 올 땐 좌측에 있는 깃발 다섯 개를 뽑으면 되었다.
심판이 깃발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럼. 렛츠고오오우!”
깃발을 내리자, 터커와 테일러가 말 허리를 힘껏 박찼다.
다그닥, 다그닥.
먼지를 일으키며 시작된 질주.
가는 길목에 꽂힌 깃발들은 허리를 숙이고 안장에 발을 걸어야 뺄 수 있는 높이.
터커와 테일러는 곡예사와 같은 움직임으로 깃발을 손쉽게 뽑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와 낚아채는 타이밍.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승패는 결정 날 터.
‘이게 뭐라고 손에 땀이 나냐.’
팔짱을 낀 막스는 슬쩍 팔뚝에 손바닥을 문질렀다. 갈증을 느끼며 혀로 입술을 축이고, 시선을 슬쩍 다른 곳에 두었다.
그곳엔 존 포터 장군이 쌍안경까지 동원해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무슨 촉이라도 왔는지, 쌍안경이 방향을 틀어 막스를 향했다.
‘뭘 쳐다봐.’
막스는 슬쩍 오른손을 들어 가운데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자존심 대결이라, 지면 후유증이 클듯싶다.
잠시 후.
2km가량을 달린 두 기수가 턴을 찍고 되돌아왔다.
이번엔 좌측에 있는 깃발을 뽑을 차례.
초반 막상막하였던 실력도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막스는 눈을 깜빡이지 않은 채 두 기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
심판이 소리쳤다.
“승자는! 특수부대 제이미 터커 대위!”
“우와아아!”
“믿고 있었다고!”
둘의 거리는 10m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알고 있다. 경기 거리가 더 멀었다면 그 차이는 더 심했다는 걸.
경기 결과에 만족한 막스는 눈알을 굴려 존 포터를 찾았다.
언제 자리를 떴는지 보이지 않았다.
막스의 입에서 푸흐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터커가 말은 참 잘 탄단 말야.”
“혹한기 안 하려고 존나 달렸겠죠.”
“응?”
“...... 가서 터커 불러올까요?”
“아냐, 아냐. 급한 거 아니니까, 천천히 불러와.”
기분이 좋아진 막스는 네이선 로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미소를 머금은 채 지휘소로 돌아갔다.
그런데 터커는 시작에 불과했다.
특수부대에 환상 혹은 경쟁심을 갖고 있던 자들이 튀어나와 대결을 원했다.
권투, 달리기, 멀리뛰기. 심지어 포탄을 던지는 내기도 있었는데, 네이선 로어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기다렸지만 섣불리 나서지 않았던, 연방 최고의 저격수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히람 베르단 대령.
1861년 9월 2일, 윈필드 스콧 장군이 조직한 미연방 제1 저격수 연대, 흔히 샤프슈터스(Sharpshooters)라 불리는 부대의 창시자이자 지휘관이었다.
그래서인지 히람은 다른 도전자들과 달랐다.
잔챙이들은 관심 없다며, 막스를 직접 찾아왔다.
“총사령관님과 승부를 가리고 싶습니다.”
“......”
막스보다 12살 많은 히람.
입대 전 이미 직접 라이플을 개조하고, 리피팅 라이플(반복 소총)이라는 재장전 메커니즘까지 발명한 엔지니어였다.
히람은 존 포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충동질로 실없는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대결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서요.”
보더 러피안의 리더였던 스트링팰트 형제 저격.
미주리주 게릴라 리더 윌리엄 콴트릴 저격.
또한 특수부대 저격수를 길러낸 실력.
“특수부대원들이 하나같이 최고의 저격수로 총사령관을 꼽더군요.”
“그야 우리끼리 하는 소리고. 진짜 이유는요?”
히람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하길 망설인다.
막스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총기도 그렇고. 히람은 막스처럼 총알도 직접 제작해 저격에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그러하듯, 특수부대 저격수들이 철저하게 감추고 있는 총기와 탄알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궁금했는데, 마침 잘 왔네.’
막스는 흥미로운 얼굴로 히람을 쳐다봤다.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는 좀체 입을 떼지 않는다. 답답한 막스가 다시금 말을 건넸다.
“제 저격 총을 보고 싶습니까?”
막스의 예상이 적중했다.
히람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결심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총알이 제일 궁금합니다.”
“총알?”
히람은 품속을 뒤적여 뭔가를 내밀었다.
금속 탄피로 된 총알이었다.
그런데 스미스 앤 웨슨에서 보급한 밑바닥이 둥근 림파이어 방식이 아니다.
막스가 만든 센터파이어 방식의 총알이었다.
충격적인 건 화약을 터트리는 뇌관. 즉, 탄피 내 화약을 폭발하는 프라이머가 유사했다.
뜨끔해진 막스가 물었다.
“직접 만든 겁니까?”
“예. 몇 번 개선했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그런데 마침 특수부대원들이 사용하는 총알이 림파이어보다 앞선 방식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히람으로선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막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히람 베르단은 센터파이어 탄피 뇌관(프리어머리)과 총기 액세서리, 2축 잠수함 건 보트, 어뢰 네트를 피하기 위한 어뢰정, 장거리 측정기 및 파편용 거리 퓨즈를 포함. 수많은 전쟁 관련 기기를 만들어낼 발명가였다.
그걸 떠나서, 센터파이어 프리이머를 생각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막스는 사실상 그의 기술을 도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어차피 히람 베르단은 부하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 장교들의 불만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본인 저격술과 무기체계만 관심이 있지, 히람은 지휘관으로선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막스는 저격 연대를 재편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콜로라도구만.’
막스는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기에서 이기면 총기와 총알을 보여드리죠. 대신, 지면····.”
조건을 듣는 히람의 얼굴이 갈수록 똥 씹은 얼굴로 변해갔다.
다음 날.
저격 연대 지휘관과 총사령관의 대결이 벌어졌다.
조건은 동등하게 평범한 샤프 라이플.
조준경이나 부가적인 파츠를 뺀, 원 형태 그대로를 사용하기로 했다.
몇 차례 시범 발사로 각자의 조준점을 맞추고.
저격 거리는 500야드(457m).
달걀만한 나무토막이 표적이었다.
잠시 후.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앙!
총성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