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220/360)

#220 콜로라도 촌놈들

사격은 총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워낙 먼 거리라 누구도 첫발에 맞출 거라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며, 명중했습니다!”

- 첫발에?

- 그것도 오늘 처음 만진 라이플이야.

저격수들도 감탄할 정도인데 보병들은 오죽하겠는가.

- 근데, 표적이 보이긴 보여?

- 총사령관인데 왜 저격을 잘하냐?

- 그냥 저격이 주특기인 거겠지.

- 보병 아니었어? 개돌도 장난 아니라던데.

병사들의 탄성과 웅성거림이 장내에 퍼져갈 때. 주특기가 저격인 히람은 세 발째에 비로소 표적을 쓰러트렸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실력이었다.

다만 총사령관의 첫발이 워낙 강렬해 의미가 퇴색되었다.

자신감이 박살 난 히람은 참담한 얼굴로 총사령관을 쳐다봤다.

- 내기에서 지면, 저격 부대는 특수부대가 지휘합니다.

부대를 어떻게 하든 총사령관 마음이다. 하지만 독선적인 변화는 불만과 저항을 불러오는 법.

막스는 내기 조건으로 히람에게 아무런 불만과 이의를 제기하지 말도록 요구했다.

졌으면 닥치고 따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 졌습니다.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인간미라곤 느껴지지 않은 총사령관의 담담한 표정.

당연한 결과라는 듯. 라이플 방아쇠울을 당겨 약실에서 탄피를 빼는 모습은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한숨만 나오지만 어쩌겠는가.

멋모르고 덤벼든 히람의 잘못이었다.

내기가 끝난 직후.

막스는 저격 부대를 소집했다.

저격 연대는 A부터 K까지 알파벳 순으로 중대를 구분했다. 특이한 점은 중대가 지역별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A는 뉴욕시에서 조직된 중대다. 지휘관인 히람 베르단 대령은 뉴욕 출신.

이후 미시간(C), 뉴햄프셔(E), 버몬트(G) 및 위스콘신주(F)에서 저격수를 모집하고.

그렇게 총 10개의 중대가 만들어졌다.

장교 포함 623명.

막스는 소집된 저격 대원들을 훑어봤다.

총사령관이라는 무게에 눌리고, 방금 본 사격 솜씨에 눌린 분위기. 대신 눈빛들이 달달했다.

더러는 저격 장인을 대하는 존경심도 엿보였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막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격 대원들의 복장이 눈에 거슬렸다.

‘그냥 풀떼기를 모아둔 것 같네.’

북군의 상징과도 같은 푸른색이 아닌 녹색 군복.

풀숲이 많은 동부 지역에선 분명 위장하는 데 효과적이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원 역사에서 남군 저격수는 일반 병사와 구분되는 녹색 군복의 저격수를 표적으로 삼았다.

높은 사격 기술, 보유한 장비들 또한 고가였기 때문에 저격수는 제거 대상 1순위였다.

막스는 이런 단점을 피하고자 수시로 탈부착이 가능한 위장 수트를 구상했다.

현재 로렌스 공장에서 만들고 있고 이후엔 뉴욕 공장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앞으로 군복은 일반 병사처럼 푸른색으로 통일한다. 대신 별도의 위장 수트를 제공할 생각이다.”

- 오오!

일부 대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특수부대원들이 입는 길리 수트는 이미 저격수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물론 그것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녹색 군복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총사령관은 이후 훈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으로 훈련은 특수부대 저격수와 함께한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현 중대 단위를 더 쪼갤 생각이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 있나?”

“......”

막스는 대원들을 보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저격수는 일당백이다. 많게는 혼자서 수백 명의 발을 묶을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저격수의 위력 아닌가?”

대원들의 가슴에 뜨거운 게 치밀어오른다.

당장이라도 500야드의 표적을 쓰러트릴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겨났다.

믿고 가자.

총사령관은 저격수의 미래였으니.

*

보병과 기병, 저격 부대까지 특수부대에 무릎을 꿇었다.

포병이 도전했지만, 그건 무시로 일관했다.

어찌 됐든 다방면에서 특수부대의 능력이 압도적이라는 건 입증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한바탕 휘몰아친 도전 열풍은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막스가 책상에 앉아 포병 전술과 무기를 고민할 때였다.

네이선 로어가 천막으로 뛰쳐 들어왔다.

“총사령관님!”

“뭐야! 남군이 쳐들어왔어?!”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이 신문 좀 보세요!”

로어가 책상에 신문을 올려 두었다.

헤드라인에 떡하니 박힌 문구는.

[긴급! 10월 1일부로 미연방 징병법 실시!]

마침내 대통령이 징병제를 공표했다.

엄밀히 따지면 대통령이 발표한 건 등록법(Enrollment Act)이다.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외국인을 포함, 20~45세의 모든 남자를 등록하라는 법으로, 목적은 징병을 위한 것이었다.

막스는 눈을 껌뻑거리며 로어를 쳐다봤다.

“이게 놀랄 일이냐?”

“헐, 설마 알고 있었어요?”

“그럼, 총사령관이 이런 것도 모르겠냐?”

“내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분명 그렇게 들었는데.”

막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원래는 그랬지. 근데 상황이 바뀌었거든.”

막스가 총사령관이 되었고, 징병제 시기를 앞당겨 달라고 요구했다.

존 브라운과 막스는 그 타이밍을 제1 캔자스 유색 부대의 승리 시기로 잡았다.

저항과 반발을 줄이기 위해서였는데, 선택은 적절했다.

핵폭탄급 소식이 연방을 뒤흔들었음에도 몇 가지 논리가 반발을 잠재웠다.

- 흑인도 총을 들고 싸우는데, 백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 백인들이여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몸소 증명하라!

- 두려워 말고 전쟁터로 나가라!

이런 기류가 퍼지며 징병제를 욕하는 사람은 되려 겁쟁이로 몰리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저항과 반발은 고개를 쳐들 것이다. 하지만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 정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징병제의 여파는 대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

일리노이주 블루밍턴-노말에 위치한 일리노이 대학.

캠퍼스엔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단연코 화제는 징병제였다.

“아아! 이 화려한 젊음을 야만 가득한 살육의 현장에서 보내야 한다니!”

“난 총 대신 펜을 들겠어!”

“그럼 펜을 날카롭게 갈아야 할 거야. 어쨌든, 널 지킬 건 필요하잖아?”

대학생들의 한탄을 늘어놓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저항보다는 체념과 수긍에 가까웠다.

물론 일부는 좀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왜 우리까지 전쟁터에 끌려가야 하는 거야!?”

“머더 뻑! 노예제 따위 어떻게 되든 난 상관없다고! 근데 왜 전쟁터에 끌려가냐고!”

“이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거야. 봉건시대나 가능한 얘기라고!”

어떤 학생들은 음모론까지 거론했다.

“하필 총사령관이 바뀌자마자 징병제를 한다?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설마 백인들을 전부 죽이려는 계획인 거야? 이 땅을 동양인으로 채우려는 거?”

“젠장! 총사령관을 동양인으로 앉히더니, 나라 꼴이 이게 뭐냐고!”

한 금발 남학생은 나름 정보를 들었는지 좀 더 깊은 말을 내뱉었다.

“우리 삼촌이 메릴랜드 하원인 거 알지?”

“알지, 알지. 근데 왜?”

“내가 삼촌한테 들은 얘기가 있는데.”

학생은 눈을 가늘게 떠 말을 이었다.

“원래는 300달러 내면 면제되는 조항이 있었대.”

“진짜? 근데 왜 없어졌어?”

“총사령관이 삭제했다더라.”

“..... 누구? 맥클레란 장군?”

“아니, 동양인.”

“에이, 시발. 그건 너무 갔다. 동양인이 법안까지 조정했다고?”

학생들은 믿지 않았다. 누군가 불쑥 끼어들기 전까진.

“놀란 말이 맞아. 나도 그렇게 들었거든.”

“오, 다닐 맥클레란.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진짜 뭔가 있나 보네.”

덩치 큰 다닐은 조지 맥클레란의 사촌이다.

일리노이는 링컨과 맥클레란 가문의 텃밭.

이들 가문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중 다닐 맥클레란은 캠퍼스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설쳐대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사촌 형이 페닌슐라 전투에서 패배하고 총사령관에 경질되면서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여전히 조지 맥클레란이 장군이라는 것.

다닐의 친구들 또한 장군들의 친척이라 기세가 등등했다.

“조지 형님이 그러는데, 동양인이 보통이 아니라더라.”

“어떤 점에서?”

“잔인하고, 악랄하대. 동양인이 거기까지 올라간 거 보면 빤하지 않냐?”

사람들을 현혹하는 말발과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기술. 더불어 경쟁자들을 잔인하고 악랄하게 제거해서 총사령관 자리에 올랐다는 건데.

꽤 신빙성이 있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라면 솔깃할 정도로 그럴듯했다.

“젠장, 그러니까 내가 군대 끌려가면 그딴 놈 밑에 있어야 한다는 거 아냐?”

“진짜 좆같다.”

말이 거칠어지자, 다른 무리에 있던 여학생이 용기 있게 끼어들었다.

“너네, 솔직히 전쟁터가 무서운 거지?”

“뭐?”

여학생을 본 다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버지는 일리노이주립 대학설립자 중 한 명이자 연방 대법원 판사. 오빠는 웨스트포인트 출신 장교.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연방에 열성적인 샐리 데이비스는 성격이 괄괄하고 상대하기 껄끄러운 여자였다.

“흑인들도 총 들고 싸우는데, 너흰 겁쟁이처럼 말로만 떠들고 있잖아.”

“쳇, 여자들은 해당 사항 없다고 맘대로 지껄이네.”

“그래서 나도 불만이야. 갈수만 있다면 총 들고 싸우고 싶거든.”

갈색 머리의 샐리는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가리켰다.

“헛소리할 시간에, 차라리 쟤처럼 운동이나 하지 그래?”

샐리의 시선이 한 남학생을 쫓는다.

아까부터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남자였다.

“뭐야, 저 새낀. 경영학과 콜로라도 촌놈이잖아?”

“캔자스 촌놈 아니었어?”

“어쨌든, 촌놈은 촌놈이잖아.”

“근데 샐리. 너 저런 타입 좋아했냐? 쟤 완전 사이코잖아.”

작년 12월.

일리노이에 폭설이 내린 적이 있었다.

누가 말 안 해도 휴강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야외 수업에 참석한답시고 폭설을 뚫고 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무려 6시간 동안 교수와 학생을 기다렸다.

이 전설처럼 회자 되는 사건이 있은 직후.

당황한 교수가 물었다.

위험하게 왜 산에 올라갔냐고.

이에 학생이 웃으며 말하길.

- 로키산맥에 비하면 언덕이죠. 덕분에 훈련 잘하고 왔습니다.

언덕? 훈련? 대체 왜? 사이코야?

고개를 갸웃거린 학생들은 점점 그 남학생과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샐리 데이비스는 달랐다.

비록 학과는 다르나 엉뚱함에 이끌렸다.

콜로라도, 로키산맥, 훈련이라는 단어 조합에도 흥미를 느꼈다.

샐리는 남학생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대는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었다.

- 어디서 꿀리지 않을 외모거늘,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말이 돼?

오기가 생긴 샐리는 더 파고들었다.

인맥을 동원하고 신문을 뒤적거렸다.

그런 끝에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 SFBC만 받는다는 혹한기 훈련!

고로 SFBC 보스인 북군 총사령관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샐리는 이 남자가 군에 끌려가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다.

생각하는 사이 캠퍼스 운동장을 크게 돌던 남자가 가까워졌다. 몇 번 말을 걸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자신의 이름도 기억 못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샐리가 갑자기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야! 콜로라도 촌놈!”

“?”

속도를 줄인 남학생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그래 너! 캔자슨지, 콜로라돈지. 촌놈!”

“......”

인상을 찌푸린 남학생은 잠시 허공을 쳐다봤다. 한숨을 내뱉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샐리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확인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샐리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총사령관 개자식! SFBC는 악마!”

달리던 남학생이 우뚝 멈춰섰다.

방향을 틀어선 성큼성큼 여학생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반응을 보였어!’

일단 어그로는 성공했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그랬냐?”

여자라고 봐줄 것 같지 않은 야수의 눈빛.

그 살기 짙은 눈빛에 샐리가 침을 삼켰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도 돌변한 남자의 태도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잔뜩 위축된 샐리의 목소리도 덩달아 작아졌다.

“..... 난 그냥 얘들이 한 말 그대로 한 거야.”

“뭐?”

샐리가 다닐 맥클레란과 친구들을 가리켰다.

남학생의 얼굴이 굳어졌다. 혹한기 훈련 때 잠깐 드러났던 분노의 눈빛이 그들을 훑어갔다.

“직접 보지 않았으면, 헛소리는 집어치워.”

‘어으, 멋있어!’

샐리의 눈동자가 요동치고, 얼굴은 벌게졌다.

역시 코닐 헤리스는 남자 중 남자였다.

샐리의 황홀한 표정과는 달리, 주변 학생들은 기가 찬 표정으로 코닐을 노려봤다.

덩치 큰 다닐 맥클레란이 앞으로 나섰다.

“너는 그 동양인을 본 것처럼 말하네. 그리고 너. 말투가 상당이 거슬려.”

“싸울 힘 있거든, 전쟁터로 가. 괜한 힘 빼지 말고.”

“좋아하는 여자 앞이라고 센 척하는 건가?”

‘좋아하는 여자?’

코닐이 주변을 둘러봤다.

얼굴이 벌게진 샐리가 수줍게 손을 들었다.

‘...... 미친년이네.’

방금까지 욕하다가 저러는 게 어디 정상인가.

이전에도 귀찮게 말을 걸더니 완전 사이코다.

코닐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올 때, 다닐이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대결이다. 자신 있으면 한 판 붙자고.”

지식보다 근육을 키운 다닐은 코닐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노려보는 눈빛엔 자신감이 넘쳐났다.

코닐의 눈이 가늘어질 때.

누군가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대신해 줘?”

안경을 쓴 의과생 존 듀들리.

그를 본 다닐과 친구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이거 뭐, 콜로라도 촌놈들은 다 모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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