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1화 (221/360)

#221 제목이 뭐예요?

지금은 전란의 시대.

신념과 신념의 대립, 크고 작은 갈등도 폭력으로 번지는 시대다.

대학 캠퍼스 한 귀퉁이에서 벌어진 싸움도 그중 하나였다.

운동으로 다져진 덩치 큰 다닐.

그에 반해 지극히 평범한 체구에 얼굴만 반반한 코닐.

‘내가 미친 년이지.’

두 남자의 싸움을 지켜보는 샐리 데이비스 손바닥은 땀이 흥건하고 눈빛은 후회로 번져갔다.

코닐 헤리스의 정체를 파악한답시고 일을 벌인 게 잘못이었다.

샐리가 이 싸움을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던 때였다.

다닐이 주먹을 내뻗는다. 덩치만큼 주먹도 컸다.

휘우우웅.

휘두르는 묵직한 바람 소리에 샐리의 가슴이 덜컥했다.

그런데.

코닐이 손쉽게 몸을 틀어 주먹을 흘린다.

동시에 후려칠 대상을 잃은 팔을 코닐이 잡아끌었다.

균형을 잃고 앞으로 몸이 쏠린 다닐. 코닐이 재빨리 그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힘껏 머리를 누른 다음엔.

퍽! 퍽!

무릎으로 얼굴을 올려 찍었다. 다닐이 가드를 하지만 팔뚝이 욱신거릴 정도로 통증이 전해졌다.

“윽! 이, 이거 안 놔!”

몇 차례 무릎으로 올려 친 코닐. 이번엔 팔꿈치로 다닐의 등을 내리찍었다. 다닐의 입에서 헛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때 코닐이 머리채를 잡은 손을 푼다. 압박이 사라지자 다닐이 고개를 쳐들었다.

‘개자식, 이제 힘이 빠졌구나!’

지금이 기회다. 다닐이 분노에 찬 주먹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코닐의 발이 얼굴 오른쪽에 꽂혔다.

빠각!

눈을 흰자위로 채운 다닐의 머리가 휘청거리고. 털썩, 땅바닥에 쓰러졌다.

"너, 너 이 새끼!"

분노한 다닐의 친구 한 명이 달려든다. 순간 듀들리가 끼어들어 팔로 놈의 목을 휘감았다. 언제 꺼내 들었지, 작은 수술용 메스를 뺨에 가져다 댔다.

"대결이라는 의미를 알려줘?"

"......."

놈은 질겁하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상대는 그냥 단순히 싸움을 잘한다 정도가 아니었다.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닌, 싸움 스킬이 몸에 배인 전문 싸움꾼이었다.

차가운 메스가 얼굴에서 사라지자, 친구는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 시발, 의대생이 왜 잘 싸우는 건데?

- 콜로라도 클라스 장난 없네.

지켜보던 학생들이 놀란 얼굴로 수군거린다.

이때 샐리가 중얼거리길.

“...... 역시 둘 다 SFBC였어.”

“응?”

“설마 그 SFBC?”

북군 총사령관과 특수부대. 그 시작이 콜로라도 금광에서 탄생한 SFBC라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 신문에서도 줄기차게 다룬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경악한 눈으로 코닐과 듀들리를 쳐다봤다.

진짜냐, 그래서 그렇게 강한 거냐고 묻는 부담스러운 눈빛들.

이에 듀들리가 답하길.

“SFBC 최약체. 그게 우리다.”

“!”

실제로 둘은 혹한기 훈련도 한 번밖에 경험하지 못한 전투와는 거리가 먼 SFBC 대원이다.

이는 학생들을 더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대장장이 제임스 헤리스의 아들 코닐. 죽은 노예 사냥꾼을 빼면, 막스가 서부에서 처음 만난 백인이다.

그리고 돈이 없어 의대를 그만두고 제이호커스가 되었던 존 듀들리. 그는 막스의 지원 덕에 다시금 의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 의사가 되든, 사업가가 되든. 제 몸 하나 지킬 정도는 돼야지? 공부를 핑계로 빌빌거리면, SFBC 제명이다.

경험상 막스의 엄포는 단순히 말로 끝나지 않는다.

더구나 동양인으로 북군 총사령관까지 된 자의 말이라면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몸은 전쟁터가 아닌 대학에 머물렀지만, 둘의 마음만큼은 언제나 SFBC를 향해 있었다. 공부와 육체를 단련하며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SFBC의 일원이 되어 함께 비상하는 날을.

“저, 저기. 여자도 SFBC 들어갈 수 있어?”

샐리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물었다. 그녀의 시선을 마주친 코닐이 입을 뗐다.

“여자가 있긴 있지.”

“진짜?! 그럼 나도 들···.”

“근데, 넌 안돼.”

“왜에! 왜 안 되는데!?”

‘미친년이니까.’

코닐은 입에 맴도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고개를 절레 저으며 등을 돌렸다.

샐리는 왜 안 되냐며 뒤를 졸졸 쫓아가고, 그사이에 끼기 싫은 듀들리는 강의가 있다며 먼저 몸을 내뺐다.

*

SFBC 보스.

동시에 북군 총사령관인 막스의 책상 위엔 편지들이 수북했다.

대부분 징병제 공표 이후 날아온 것들로 콜로라도, 텍사스, 캔자스, 뉴욕, 워싱턴 등 지역도 다양했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아들, 혹은 손자들이 징병당하게 생겼다며 징징대는 편지라는 거. 한 마디로 잘 좀 부탁한다는 청탁이었다.

‘군대 오면 다들 죽는 줄 아는 모양이네.’

이해는 한다. 갈수록 전투 규모는 커지고, 앞으로 죽게 될 군인은 늘어날 게 빤한 상황이었으니까.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청탁이든 뭐든 하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 아니겠는가.

그렇게 막스와 안면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그들과 건너 건너 알게 된 자들도 편지를 보내왔다.

막스를 더욱 어이없게 만든 건 징병 대상자의 편지였는데.

[총사령관 막스 조에게.

뉴욕에서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났군. 자네가 없어서 그런지 무료한 시간만 덧없이 흘러가는 기분이야.

더욱이 밥을 사기로 약속했는데, 자네가 갑작스레 떠나는 바람에 약속을 지킬 수 없어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네.

자네가 바쁘지 않다면, 직접 뭐라도 싸 들고 가고 심정임을 알아주게.

그나저나, 자네도 알다시피 나도 곧 군대에 갈 것 같네.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하진 못하겠지만, 같은 공간에서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렘에 잠을 설치고 있거든.

그래서 말인데.

주특기에 대한 조언 부탁하네.

- 뉴욕에서 JP 모건.]

주절주절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안전한 주특기가 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원 역사에서 JP 모건은 300달러를 내고 군 복무를 면제받는다.

하지만 막스가 바꿔놓은 법은 300달러로 주특기만 선택할 수 있었다. 여전히 형평성엔 어긋나지만, 시대를 감안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로어, 주특기 정리한 것 좀 걸어 봐.”

“옙!”

전쟁이 끝나도 군대가 사라지진 않는다.

막스는 그 체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주특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는 곧 훈련병들이 앞으로 선택해야 할 기준이 될 것이다.

막스는 나무 판에 걸린 주특기 일람표를 훑어봤다.

병과는 크게 기본과 특수로 나뉜다.

기본병과는 다시 전투병과 행정병으로 구분했다.

특수병과는 의무, 법무, 군종(개신교와 카톨릭)으로 구분했다.

“로어, 너라면 300달러 내고 어떤 보직을 선택할 거 같냐?”

“군종이요.”

“전쟁터에서 병사들과 기도해야 할 텐데?”

“...... 행정이요.”

“대부분은 그걸 선택하겠지.”

300달러를 냈다면 보기에도 안전해 보이는 걸 택할 것이다. 해서 막스는 해당 보직에 줄을 그었다.

“설마, 없애려고요?”

“행정병 없이 군대가 굴러가겠냐.”

그리고는 옆에 새롭게 이름을 써넣었다.

그걸 본 로어가 웃음을 터트렸다.

[특수 작전 행정병(Special Operation Administrative Soldier)]

“어우, 총사령관님 잔 대가리는 진짜.”

“디질래?”

“...... 근데 특수자 붙었다고 사람들이 피할까요?”

“그야, 나도 모르지.”

다만 보자마자 안도감을 주는 명칭은 바꿀 필요가 있다. 부자들이 고민에 빠질수록 돈 없고 빽없는 자들의 불만은 줄어들 테니까.

막스가 주특기 일람표를 수정하고 있을 때.

천막 안으로 서부 사령부 연락병이 찾아왔다.

“그랜트 장군의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편지를 읽는 막스의 미간이 좁아진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그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의 고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막스는 그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했다.

서부 사령관이 된 이후 율리시스는 빅스버그 공략에만 매달렸다.

그게 벌써 석 달째다.

문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거.

휘하의 장군들이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주전파’ 소속의 정치 야심가, 존 A 맥클레넌드 소장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엔 자신이 직접 빅스버그를 공격하겠다며 대통령과 전쟁 장관에게 지휘권을 달라는 요청까지 했었다.

워싱턴 의회 역시 비난하는 강도가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그들은 율리시스에게 결과를 요구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막스의 책임이 크다.

총사령관이 된 이후, 빅스버그 공략을 중단하고, 군대를 정비하는 데 집중하도록 했으니 까.

연락병이 나가자, 로어가 걱정스레 물었다.

“이러다 그랜트 장군 경질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있는 한 그렇게는 안 되지.”

“...... 총사령관님 때문에 더더욱 경질될 것 같은데요.”

막스가 로어를 빤히 쳐다봤다.

“어떻게, 오랜만에 신발 한번 벗어?”

“어우, 신발은 잠잘 때나 벗는 거죠.”

로어가 뒤로 물러났다.

막스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워싱턴 의원들은 무시해도 돼. 비난을 위한 비난일 뿐. 정치적인 놀음에 말려들 이유가 없지.”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을 내세워, 전쟁 승리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설령 실패해도 상관없다.

될 때까지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면 되니까.

아마 그들의 입을 닥치게 할 유일한 방법은 주구장창 승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빅스버그는 언제 공격하는 겁니까?”

“넌 거기가 어떤 곳인지는 알지?”

로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 자체가 미시시피강을 내려다보는 절벽에 세워져서, 난공불략의 요새라고 하던데요.”

“맞아. 동쪽 평야에서 공격하면 고지대의 포병들이 포를 쏴댈 텐데, 이건 뭐 피할 방법이 없어.”

도시 서부와 북부는 강으로 둘러싸인 삼각주.

육로로 이어진 북쪽과 남쪽은 광활한 늪과 강이 이어져 접근하는 게 불가능했다.

“거기다 물길도 많고, 복잡해서 배로 가기도 힘들어. 또, 도시 주변은 어떻고. 참호랑 포병부대도 겁나 많아요.”

“...... 그런데도 꼭 점령해야 한다는 거죠?”

“너 못 머리 알지?”

“양쪽을 이어주는 거잖아요.”

“빅스버그가 딱 그거거든.”

남부 연합은 미시시피강을 기점으로 두 지역으로 나뉜다. 빅스버그는 이 두 지역의 물적, 인적 자원을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길 점령하면 서쪽에 있는 아칸소와 루이지애나의 자원이 동쪽으로 못 넘어가는 거지.”

서쪽 아칸소와 루이지애나는 고립되면, 결국 전쟁 자원으로 쓰여야 할 가축과 말, 병력 이동 역시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중요하면 당장이라도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로어의 말에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만큼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겠지. 가뜩이나 난공불략의 요새잖아.”

“그럼 언제 공격해요?”

“언제겠어. 동부 전선이 박터지게 싸울 때지.”

로어가 그제야 깨달은 듯 탄성을 내뱉었다.

병력이 부족하면 동부 전선에서 끌어와서라도 막을 터. 결국 양동 작전이 필수였다.

“남부 연합도 그걸 알고 있을 거야.”

“그래서 어지간한 확신이 없으면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겠네요.”

막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번 겨울이 끝날 때까지, 우리도 전력을 끌어 올려야지.”

남부 연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것이다.

1862년 11월.

늦은 밤, 매나사스 동부 사령부.

쌀쌀한 날씨에 몸을 녹이려 대원들이 모닥불에 옹기종기 앉았다.

허기진 배를 따뜻한 스프로 채우고, 방금 기타를 빼앗은 총사령관의 기타 줄 조율하는 소리가 나름 운치를 만들어 냈다.

이윽고 흘러나온 음악.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뭔가 제대로 된 음악 같아 다들 놀란 눈치다.

“오, 그거 제목이 뭐예요?”

“입영마차 안에서?”

- 시발.

- 진짜 악마다, 악마야.

이 시기, 각 주에서 징집된 병사들이 하퍼스 페리로 향하고 있었다.

기차와 마차에서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들을 보는 건 꽤나 흔한 풍경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