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22/360)

#222 하퍼스 페리의 훈련병들

하퍼스 페리 제1 연방 훈련소.

가장 먼저 징집된 펜실베이니아와 뉴욕주의 훈련병들이 연병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선 시뻘건 모자를 눌러쓴 교관들. 보기만 해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설픈 동작, 불안한 눈동자.

집과 훈련소를 혼동하는 훈련병들을 향해 단상에 선 교관이 소리쳤다.

“본인은 오늘부터 너희들을 훈련할 교관님 되시겠다. 알겠나?”

“예.”

“대답 끝엔 반드시 썰(sir)을 붙인다. 알겠나!?”

“옛 썰!”

“너희들은 전쟁을 위한 부품이다! 승리를 위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부속품이란 말이다! 그런 부품들이 녹슬거나 고장 나지 않게, 제 기능을 다 하도록 하는 게 본 교관의 역할이다!”

교관, 아니 특수부대 대원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훈련병들을 훑어봤다.

“만약 부품이 망가지거나, 자리를 이탈하고 스스로 자유와 인권을 꿈꾼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

“......”

“전투에 도움은커녕, 훼방만 놓는 놈들에게 내려질 처우는 오직 하나. 폐기처분이다.”

조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좋아하지 마라, 그렇다고 집으로 보낸다는 말은 아니니까. 철을 녹여 다시 만들 듯, 새로운 부품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너희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건 전쟁이 끝나거나, 영혼이 되는 방법뿐이다! 알겠나!?”

“...... 옛 썰!”

“목구멍부터 다시 태어나야겠군. 일동 차렷.”

교관이 눈짓하자 좌우로 도열한 교관들이 훈련병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주먹은 달걀 잡은 것처럼 살포시 쥔다. 고개는 15도 하늘을 향한다. 어떤 놈들이 눈알을 굴리나!”

훈련병들이 움찔하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지금 네놈들은 적들에겐 꿈과 희망이다. 그만큼 형편없다는 소리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이제부터 너희들은 연방의 병기로 다시 태어난다! 알겠나?!”

“옛 썰!”

지금껏 연방에서 모집된 군인들은 연대 단위에서 조직되어 훈련받고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 기간은 채 3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기 매뉴얼, 사격 연습, 간단한 전술과 이를 중대 및 연대 단위로 훈련받는 것이 전부였다.

모의 전투나 체계적인 훈련이 절대로 부족하고. 이들을 가르치고 지휘할 경험 있는 장교 역시 부족했다.

남군이나 북군 모두 사관학교 졸업생이나 은퇴 혹은 사임한 장교들을 끌어와 지휘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맡게 되는 연대는 단일 타운, 도시 또는 카운티 출신으로 구성되어 그 기초를 형성했다.

그런데 막스가 북군 총사령관이 되면서 변화가 생겨났다.

일단 동부에서 징집된 훈련병들은 하퍼스 페리로 모여, 4주간 훈련을 받게 된다.

특이한 점은 훈련소엔 백인뿐 아니라 유색인종들이 섞여 있다는 것. 동일 장소에 모아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막스는 단순한 이유로 밀어붙였다.

- 훈련받는 데 피부색이 무슨 상관입니까? 총에 흰색 칠하면 명중률이 높아집니까?

- ......

어차피 자대 배치는 인종별로 나뉜다.

흑인과 인디언, 동양인과 같은 유색 인종과 백인들이 섞일 일은 훈련소뿐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이 있어, 백인은 번호 앞에 W를 유색 인종은 C를 붙였다.

“훈련병들은 지급된 옷 오른쪽에 이름표를 부착한다. 알겠나.”

‘설마 내가 군인이 될 줄이야.’

칙칙한 훈련복을 가슴에 끌어안은 남자들.

하나같이 전쟁과 떨어진 삶을 살다 끌려온 자들이다. 이들에게 훈련소 생활은 낯설고 두렵기만 했다.

“지금부터 10분 준다! 훈련병들은 빠르게 환복하고 연병장으로 집합할 수 있도록!”

“예.”

“예? 전부 원위치! 엎드린다 실시.”

‘젠장!’

첫날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잘 때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

기상나팔 소리가 훈련소의 아침을 깨웠다.

빰빠 밤빠빠~ 빰빠라밤빠 빰빠라밤빠~

“전부 기상! 연병장으로 집합하는데 5분 준다!”

천막이 들썩거리고 교관들이 그사이를 누비며 움직임을 재촉한다.

잡담하며 늦게 잠든 훈련병들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하나둘 연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교관들은 인원부터 파악할 수 있도록!”

다행히 첫날부터 탈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인원 점검이 끝난 직후, 교관이 소리쳤다.

“전부 상의를 탈의한다, 실시!”

“......”

때는 12월의 겨울. 입을 열 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시기였다.

그런데 옷까지 벗으라고?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다. 탈의하는 데 10초 준다. 10, 9, 8···.”

차가운 공기가 칼날처럼 몸을 난자하는 느낌.

딱따구리가 나무 파는 소리가 곳곳에 들려오고, 더러는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신음도 터져 나왔다.

“지금부터 아침 체조를 시작한다! 모두 숙련된 교관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절제된 행동으로 단상에 오른 교관. 상의를 탈의했음에도 추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

기계처럼 연방 체조를 보여주고, 훈련병들은 이를 따라 했다.

“병든 닭들이 발광하는 모습은 오늘까지다. 내일은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체조가 끝나자 다시금 추위가 뼈를 건드린다. 벗어 놓은 옷을 언제 입을까 힐끔거릴 때, 교관이 소리쳤다.

“각 소대는 2열 종대로 집합! 지금부터 구보를 실시! 간밤에 하퍼스 페리는 잘 잤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첫날은 가뿐하게 1.5km 정도를 뛰었다. 하지만 평소 운동을 안 한 이들에겐 이조차 버거운 거리였다.

거친 숨을 내쉬고 헛구역질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엔 뉴욕 월스트리트의 잘나가는 젊은 금융사, JP 모건도 있었다.

‘4주다. 4주만 버티면 해방이야!’

전투 보병으로 끌려가게 되었다면, 온갖 핑계를 대어 유럽으로 도망가는 걸 택했을 터.

300달러로 보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훈련소는 눈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일정이 빽빽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몸만 혹사하진 않았다.

첫 주는 기초 체력을 기르고, 2주 차는 몸이 적응하도록 적당한 휴식을 주기도 했다.

대신 전술과 전략, 연대 단위로 행해지는 작전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백인들은 훈련받는 유색 인종을 향해 비난과 조롱을 퍼붓곤 했다.

잠시라도 시선이 부딪히거나 동선이 겹쳤을 땐 으르렁거리며 이 땅의 주인임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던 것이 3주 차에 변화가 생겨났다.

사격과 각개전투 훈련에 돌입하면서 진정한 헬게이트가 열렸다. 지옥에 인종이 무슨 소용인가.

훈련병들의 정신과 육체는 붕괴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이때.

“지금부터 W와 C 소대가 한 팀이 되어, 모의 전투를 펼친다. 표적은 깃발. 먼저 빼앗는 팀에겐 빵과 물이 지급된다.”

“오오!”

W는 백인, C는 흑인과 인디언, 히스패닉과 동양인까지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빵과 물 앞에 그걸 따지는 건 미련한 짓이다.

물론, 결과에 따라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인종을 초월한 전우애는커녕.

“에라이, 병신새끼들아! 너희 때문에 졌잖아! 대가리에 뭐가 들어있는 거야!”

“미, 미안···.”

백인이 소리치면, 다른 인종들은 눈을 내리깐 채 죄인이 되었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화가 치밀지만, 겉으로 드러낼 분위기는 아니었다.

처음 막스가 훈련 일정을 짰을 때, 많은 교관이 이를 염려했었다.

- 오히려 증오심만 부추기는 꼴 아닐까요?

- 졌다는 건 핑계야. 원래 그랬던 놈들이 목소리만 커진 거지. 반대로 이겼을 땐 어떨 것 같아?

교관들은 방금 그 결과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발, 다들 고생했다!”

“어흑.”

빵과 물을 배급받은 훈련병들 사이에 인종의 벽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울고, 웃고 떠들며 승리를 자축했다.

간혹 우월감에 도취 된 백인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들은 평소엔 말도 섞지 않았을 부류였다.

막스가 노리는 건 일부라도 변화할 수 있다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JP 모건은 3주 차 훈련에서 승리와 패배를 모두 경험했다.

그리고 마지막 4주,

최종 훈련을 끝내고 퇴소를 앞둔 주말. 악마 같은 교관들은 오늘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오늘 귀한 손님이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다. 고로. 작업이다, 새끼들아!”

훈련병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연병장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제거한다! 쓰레기가 보일 시엔 머리로 바닥을 쓸게 할 테니, 주변을 깔끔하게 만들 수 있도록!”

커다란 덩치의 JP 모건도 쭈그려 앉아 잡초를 뽑았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고개를 들라치면.

“허리 펴지 않습니다! 매의 눈으로 잡초를 찾아냅니다!”

‘어휴, 진짜.’

대체 누가 오길래 주말에도 작업일까.

모건은 잡초를 마구 뜯고 헤집으며 분노를 삭였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

방문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일동 차렷! 총사령관님을 향하여 경례!”

- 초, 총사령관!!??

“추웅! 서엉!”

하퍼스 페리에 울려 퍼진 소리.

15도 각도로 시선을 고정한 채 훈련병들의 침 삼키는 소리만 간혹 들려올 뿐. 질식할 것 같은 정적이 훈련병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단상에 올라간 총사령관이 이윽고 입을 뗐다.

“쉬어.”

뻣뻣한 몸에 힘을 빼고, 눈알을 굴려 단상을 응시했다. 총사령관의 모습이 훈련병들의 눈동자에 새겨진다. 피부색을 초월한 거대한 존재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훈련받느라 고생했다. 전투에 투입되기엔 짧은 기간이나, 충실히 훈련받았다면 군인으로서 한 몫을 다할 거라 믿는다.”

‘...... 막스. 어흑.’

장소와 위치는 다르나, 목소리는 변함없다.

순간 JP 모건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들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곳을 벗어나거든 한 가지만 기억해라. 적과 아군. 적과 동료. 적과 내 무기. 머릿속을 적으로 채우고, 승리를 위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알겠나?”

“옛. 썰!”

유역하고 평범했던 민간인이 조금은 쓸모있는 무기가 되었을까.

짧은 기간이 못내 아쉽지만, 지금은 전시상황이다. 현장 투입을 위해선 4주로 만족해야 했다.

막스의 담담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연방의 첫 훈련병으로서 후배들의 존경과 모범을 보일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은 푹 쉴 수 있도록.”

“일동 차렷! 총사령관님을 향해 경례!”

“충. 성!”

막스는 인사를 받은 뒤 단상을 내려갔다.

훈련병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교관들이 해산 명령을 내린 뒤에야 캠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저기요.”

“저기? W 152번 훈련병. 정신 나갔나?”

교관은 기가 찬 표정으로 모건을 쳐다봤다.

“죄, 죄송합니다! 다른 게 아니라, 총사령관님을 만나 뵐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 했습니다!”

순간 주변 시선이 모건에게 집중되었다.

교관은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W 152번 훈련병.”

“옛 썰!”

“병아리가 독수리와 말하는 걸 본 적 있나?”

“...... 어, 없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은가?”

“아닙니다!”

“날아라 병아리! 라는 응원이라도 받고 싶은가?”

“....... 그냥 땅에 있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모건의 어깨를 두드린 교관이 이내 몸을 틀어 사라졌다.

터벅터벅 모건의 발길이 캠프로 향했다.

내일이면 보직 신청.

막스에게 팁이라도, 아니 조언이라도 구하려고 했는데 만남 자체가 불가능했다.

‘총사령관이 이 정도였구나.’

모건은 새삼 자신과 막스의 위치를 깨닫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천막으로 돌아올 즘.

뉴욕에서부터 알고 지낸 남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총사령관과 만남은 힘들겠어.”

남자는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모건의 고객이자 사업가이기도 했다.

“예상은 했잖아. 훈련병이 총사령관을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튼, 다른 훈련병들이 자대로 배치받는 동안, 우리는 따로 모일 가능성이 커.”

300달러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한 꼼수랄까.

막스는 훈련병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그들이 자대로 배치받은 뒤에야 보직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게 내일이었다.

훈련받는 동안 전투 보병으로 일선에 서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그러기엔 이들의 이성은 차갑고 냉정했다. 전쟁보단 사업을, 총 보단 돈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아무튼, 내일도 총사령관을 만나지 못하면, 예정대로 특수 작전 행정병을 지원할 생각이네.”

“이름이 영 불길한데.”

“내가 아는 총사령관이라면, 그런 꼼수를 쓰고도 남지. 절대 흔들리면 안 돼, 앤드류.”

앤드류 카네기.

미래의 철강왕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 보직은 인생을 바꿔놓을 만큼 중요한 선택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