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특수 작전 행정병
전쟁 기간 내내 연방은 장교들과 자원병들 사이에 갈등과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웨스트포인트와 같이 사관학교를 나온 장교들은 권위를 내세우고 복종을 강요하고. 군에 자원한 병사들은 기본 권리와 인권을 주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연방은 징병제를 실시했으니.
강제로 징집된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규칙을 세워 정신을 무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퍼스 페리 훈련소는 막 차출된 민간인을 군인으로 탈바꿈시키는 창구 역할도 하고 있었다.
4주간의 훈련을 끝낸 훈련병들이 지휘관들의 인솔하에 자대로 향한다.
수십에서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무거운 군장을 메고 터벅터벅 걷는 신병들.
사실상 훈련의 피날레는 자대로 향하는 행군이었다.
- 시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어!
단기간에 만들어진 체력보다 훈련소에서 숙성된 ‘악으로 깡으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이들이 부대에 도착했을 땐 기존 병사들도 놀랄 만큼 눈빛이 살아 꿈틀거렸다.
- 이 새끼들, 대체 무슨 훈련을 받은 거야?
자원병으로서 설렁설렁 훈련받았던 선임들이 오히려 후임들에게 기가 눌리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훈련병들이 자대를 향해 행군을 시작한 날.
연방에 300달러를 지급한 자들은 연병장에 모여 운명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 지금 정한 보직은 제대할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병사들의 눈동자에 동요가 일었다.
이미 결심을 굳힌 JP 모건도 수십 번이나 마음이 흔들렸다.
‘젠장, 그놈의 특수 작전이 걸린단 말야.’
그렇다고 보급이나, 전투병을 지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모건은 모든 고민을 떨치고,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하퍼스 페리의 훈련소장 사무실.
막스와 조 짐 주니어, 산초가 머리를 맞대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주니어가 JP 모건을 언급했다.
“솔직히 징집되자마자 끌려온 건 의외였어요. 그만한 재력이 있으면 미룰 수도 있었을 텐데.”
JP 모건뿐 아니라 1기 훈련병 중 정부에 300달러를 지급한 자들이 30명이나 된다.
전체 수로 따지면 많지 않은 수.
그런데 어떻게 될지 모를 훈련소를 초반부터 지원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막스는 그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가장 많이 죽어 나가는 건 보병, 기병, 포병 순이야. 행정병이 죽는 일은 흔치 않지. 이게 뭘 말하겠어?”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판에 징집만 미루다 행정병이 꽉 차버리면?
계산 빠른 모건이 초반에 입대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가야 할 거라면, 선택의 폭이 가장 넓은 시기를 택했다고 봐야지.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생각 자체가 나랑 다르네요.”
“뭐, 우리랑은 다른 부류들이잖아.”
막스의 말에 조 짐 주니어와 산초가 빤히 쳐다봤다. 주니어가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라뇨? 보스는 저희랑 다른 부류죠. 엄청 머리 쓰잖아요. 저흰 몸만 쓰고.”
“머리는 무슨. 그냥 잔머리야, 잔머리. 나는 몸 쓰는 걸 더 좋아한다고.”
셋이 대화를 나누는 때 사무실로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이 들어왔다.
손에는 서류가 들려있었다.
“다들 보직을 정한 모양이네.”
“손까지 바들바들 떠는데, 지켜보는 것도 꽤 재미있던데요. 서류는 보직별로 구분해 놨습니다.”
총 서른 장의 종이엔 간단한 신상 기록과 선택한 보직명이 크게 적혀 있었다.
막스는 서류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구분할 만큼 다양했다 이거지.”
“훈련하다 보면 가끔 호기도 생기잖아요. 며칠 뒤엔 후회하겠죠. 사령관님의 의도가 먹혀들어 간 것 같습니다.”
서른 명 중 ‘특수 작전 행정병’을 지원한 자들은 아홉. 그 외 보급, 의무, 군악대, 통신, 병참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었다.
서류를 훑어보던 중. 막스는 흥미로운 이름을 발견하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앤드류 카네기. 드디어 만나는구나.’
미국의 철강왕이자 미래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재벌. 전쟁 발발 직전에는 철도에 투자해 자본을 축적하고, ‘풀먼의 잠자는 열차’에도 투자한 사업가.
현재는 막스가 투자한 펜실베이니아 배낭고 카운티에 있는 컬럼비아 오일 회사에도 지분을 갖고 있었다.
JP 모건과 앤드류 카네기.
막스의 의도대로 미래의 강도 남작들이 하나둘 훈련소로 모이기 시작했다.
보직 선택은 자유지만, 어디에서 근무하게 될지는 총사령관의 재량 아닌가.
막스는 특수 작전 행정병 중에서 두 명을 따로 불러냈다.
모건과 카네기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시뻘건 모자를 쓴 교관과 훈련소를 이끄는 고위 장교 두 명을 보곤 발걸음을 멈칫했다.
“뭐해? 안 들어오고.”
교관의 말에 모건과 카네기는 잔뜩 긴장한 채 총사령관 앞에 서게 됐다.
“충성!”
“쉬어.”
몸이 빳빳하게 굳은 둘은 천장 그 어딘가를 응시한 채 서 있었다.
이때 막스가 카네기에게 말을 건넸다.
“앤드류 카네기 이등병.”
“옛 썰!”
“전신 회선 감독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던데, 왜 통신, 공병이 아닌 행정병으로 지원했지?”
“......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자네에겐 행정이 도전인가?”
카네기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을 주저했다.
회사에서 월급 받고 하는 것과 군대에서 목숨 걸고 하는 거랑 같은가.
입에서만 맴돌 뿐 차마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서든 입을 열어야 했다.
태어나서 가장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때.
“어쨌든, 선택한 이상 더는 묻지 않겠다. 존 피어폰트 모건과 앤드류 카네기 이등병.”
“옛 썰!”
막스는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자네들이 근무할 곳은. 총사령관 직속 행정실이야. 잘해 보자고.”
‘오오!’
“옛 썰!”
모건과 카네기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 할 얘기가 있으니까, 다들 자리 좀 비켜줘.”
“옛 썰!”
조 짐 주니어와 산초, 교관들이 사무실을 벗어나자 모건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이윽고 셋이 되자 막스가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야, 모건.”
“예, 옛 썰!”
“우리끼리 있을 땐 편하게 하자. 둘 다 여기 앉아. 훈련 힘들었지?”
긴장이 풀어지자 둘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말도 마. 한 2주 동안은 온 몸이 쑤셔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지금은?”
“아직도 좀 그래.”
“흠. 훈련이 별로였나 보네.”
“.......?”
순간 싸한 느낌에 뒤통수가 근질거린다.
모건이 재빨리 말을 이어 수습했다.
“아니야, 몸은 쑤셔도 진짜 튼튼해진 기분이야. 훈련을 제대로 받았다는 거지. 안 그래?”
모건의 눈빛을 받은 카네기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힘이 솟구친다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고도 말했다.
막스는 다행이라며 미소를 짓고, 모건은 이때다 싶어 질문을 던졌다.
“근데, 직속 행정실이면 무슨 일을 하는 거야?”
“당장은 서류 작업이 많을 거야. 내가 요청하는 자료를 만들어주면 돼.”
막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별로 대단치 않은 일이다. 모건과 카네기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일찍 지원하길 잘했다고.
“조만간 둘이 잘하는 분야를 맡게 될 거야. 사람이 좀 더 충원되면 부서를 따로 만들 생각이거든.”
이름하여 전략기획실.
보급부터 제반 시설, 전략 전술까지.
전쟁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루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론 정보 수집과 분석. 이를 통해 상황을 예측하고 리스크를 상정하는 부서로 만드는 게 목적이고. 그 구성원은 강도 남작들과 유력한 가문의 자식들로 채울 생각이었다.
‘이런 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아무튼,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테니까 잘 지내보자고.”
막스는 앤드류 카네기와 할 말이 많았지만, 시간을 천천히 갖기로 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상, 카네기가 있을 곳은 총사령관 직속 행정실뿐이었으니 말이다.
막스는 카네기를 보내고, 모건과 독대했다.
“파이브 포인츠 갱단들은 어때?”
“거의 전멸 수준이야. 보니까 이번에 나랑 같이 입대한 애들도 꽤 되던데. 아마 앞으로도 줄줄이 들어올걸?”
서류에 갱단이라고 쓰여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들과 구분이 불가능했다.
어찌 됐든, 징병제가 시행되고 뉴욕 갱단 대부분은 와해 된 듯 보인다.
갱단은 새로 생겨나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터. 그때 대응해도 늦지 않는다.
“그나저나, 제이슨 굴드는 요새 뭐 하고 있어?”
“트위드가 몰락하고, 그 자리를 밴더빌트랑 양분하고 있어. 내가 입대한다고 했더니, 꽤 갈등하는 눈치더라고.”
“요새 머리 엄청 굴리겠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걸 모르는 거지.”
“아니면, 전쟁이 빨리 끝난다고 생각하거나?”
모건이 막스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입대를 빨리한 이유가 뭔지 알아?”
“다른 이유가 있었어?”
모건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300달러로 보직을 결정하는 거, 막스 네 아이디어라며?”
막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모건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기회에 인맥을 만들 생각이지?”
“...... 흠.”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아무튼, 그래서 서둘렀어. 나도 그 속에 속하고 싶었거든. 무려 연방 총사령관이 깔아놓은 판인데, 안 낄 수 없잖아?”
“앤드류 카네기는?”
“당연히 모르지. 네 성격을 모르면 이런 생각하기 쉽지 않잖아.”
역시 JP 모건인가.
속마음을 들킨 게 어이없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놀라거나 당황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모건의 존재가 자극을 불러왔다.
“카네기를 어떻게 생각해?”
막스의 질문에 모건이 턱을 쓰다듬는다.
그리곤 대답하길.
“내가 이 나라를 뒤흔들 만큼 부자가 될 사람으로 딱 세 명을 손에 꼽고 있거든? 카네기가 그중 한 명이야.”
“그 정도라 이거지. 나머지 두 명은?”
“궁금해?”
모건이 놀리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자, 막스가 정색했다.
“모건 이등병.”
“...... 와, 치사하게 진짜.”
“군대에선 계급이 갱단이거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모건은 미소를 지었다.
“한 명은 당연히 막스, 너. 그리고 마지막은.”
모건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막스는 피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의 해. 너라면 충분하지.”
“총사령관이 인정해주니까 기분은 좋네.”
모건은 코를 문지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이 땅의 역사를 우리가 써 내려가는 거.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뭐, 좋은 쪽이라면 해볼 만하겠지.”
‘좋은 쪽이라.’
모건은 그 의미를 곱씹어봤다.
성격은 대충 알겠는데, 막스가 추구하는 이상이 무엇인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분명한 건 자신만큼이나 꿈과 야망이 큰 인물이라는 거. 막스가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대답은 별것 없었다.
“그냥 갈 때까지, 가보는 거야. 바꿀 수 있으면 바꾸고.”
*
해가 바뀐 1863년 1월.
혹한의 날씨 탓에 전쟁은 소규모 국지전만이 벌어졌다.
혹한의 겨울 속에 훈련병 2기가 퇴소하고, 3기가 입소했다.
막스는 2기에서 행정병 3명을 차출. 직속 행정실 인원은 다섯으로 늘어났다.
“모건은 군자금 100만 달러 모금 방안을 수립하도록. 기한은 내일 오후까지.”
“...... 옛 썰.”
모건이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훈련소 때도 없던 짙은 다크서클은 조만간 입에 닿을 것만 같았다.
누가 행정병이 편하다고 했던가.
퇴근도 없는 군인의 하루하루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물론 옆에 있는 카네기도 상태는 비슷했다.
“카네기 이병. 보급 수송 철로와 신규 노선 계획수립은 언제 보여줄 건가?”
“오, 오늘 안으로 끝내겠습니다!”
“오케이. 늦은 밤도 상관없다. 다 되면 깨울 수 있도록.”
‘악마가 군대에 숨어 있었어.’
그것도 하필 연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