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연방의 군의관들
살을 에는 추위엔 장사가 없다더니, 혹한의 추위에 땅이 얼어붙고 전쟁도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막스는 연방 사령부가 있는 매나사스 지휘소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총사령관님! 군의관이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군의관 누구?”
“조나단 레터맨 준장입니다.”
현재 연방은 두 명의 장군이 군 의료를 책임진다. 그중 조나단 레터맨 준장이 사령부를 방문한 모양이다.
‘군의관이라.’
막스는 전 사령관 맥클레란이 작성한 기록을 훑어봤다. 다방면에 걸쳐 군 조직을 손보려는 흔적들을 볼 수 있었는데, 막스가 확인하려는 건 의료부대에 관한 건이었다.
맥클레란은 의료 시스템에도 관심을 기울여 군의관에게 많은 권한을 넘겨줬다.
그 내용을 훑어본 막스는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훗날 남북전쟁은 60만 명이 넘게 죽어간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된다.
주목할 건 전투 중 사망자보다 질병으로 죽은 자들이 몇 배에 달했다는 거.
남북전쟁의 승리는 북군이 아닌 질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 해도 막스는 의학적 지식이 부족했다. 총상 입은 자의 팔다리를 무식하게 잘라내도, 조언해 줄 수가 없었다.
만약 막스가 총에 맞고, 누군가 팔을 자르려 한다면? 당연히 수술을 거부하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후.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남자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정돈된 수염과 이대팔 가르마를 한 조나단 레터맨 소장이었다.
총사령관에 임명된 후 남군을 퇴각시킨 막스는 장성급 회의를 연 적이 있었다.
그때 본 뒤론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짧은 안부가 오고 간 뒤, 레터맨이 용건을 말했다.
“몇 개월 전, 해먼드 장군과 제가 개발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맥클레란 장군과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는데, 이후론 전혀 진척이 없어서요.”
“그게 어떤 내용입니까?”
레터맨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어렵게 고안한 방식을 새로운 총사령관은 내용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긴 머릿속엔 전투만 가득하겠지.’
동양인이 의료 기술에 대해 관심이나 있을까.
레터맨 입장에선 맥클레란이 경질된 게 못내 아쉬웠다.
“..... 야전 병원입니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부상병을 즉각 치료할 수 있도록 응급처치 체계를 갖추는 거죠.”
“흠. 그 얘긴 처음 듣는군요.”
맥클레란이 기록에 남기지는 않았지만, 막스는 역사책을 통해 야전 병원을 알고 있었다.
레터맨이 말하는 건 전투가 발생했을 시, 마차에 구급 장비를 갖추고 부상자들을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는 구급차다.
막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전쟁 사상자의 치료와 후속 조치를 위한 작전 절차를 수립하고 관리 원칙까지 제정.
이런 혁신적인 구급차 시스템이 전 세계에 보급되는데, 그 창시자가 조나단 레터맨. 훗날 ‘전장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자였다.
“마차에 의료 물품을 싣고 부상자를 신속하게 치료한다, 이거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구급차 부대를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막스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총사령관의 반응에 레터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놀라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저도 부상병에 대해선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야전 의료 캠프는 병참 장교가 지휘했었죠?”
“그, 그렇습니다.”
“이참에 지휘권도 의료진에게 넘겨주겠습니다. 관리와 운영은 그쪽이 전문 아니겠습니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야.”
의료에 몰지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총사령관은 앞서간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레터맨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갔다.
총사령관과 담판을 지으러 왔는데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다.
레터맨은 내친김에 욕심을 더 내봤다.
“윌리엄 해먼드 장군이 최근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만. 혹시 아시는지요?”
윌리엄 해먼드는 레터맨과 함께 군 의료를 책임지는 군의관 중 한 명이다.
막스가 고개를 젓자 레터맨이 말을 이었다.
“치료에 쓰이는 약이 있는데. 부작용을 언급했다가 여기저기서 반발을 사고 있거든요.”
“반발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의사들 단체죠. 지금까지 잘 쓰던걸, 해먼드가 군대 내 사용을 금지했거든요.”
“내가 그것까지 개입하긴 어렵겠군요.”
군대 밖에 있는 의사들과 생긴 충돌이다.
총사령관의 권한을 넘어선 일이었다.
실망감이 들지만, 레터맨 역시 자신의 욕심이 지나쳤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무슨 약이길래 부작용이 심하다는 겁니까?”
“카로멜이라고, 오래전부터 치료에 쓰이던 약입니다.”
막스는 서랍에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이윽고 작은 병에 담긴 약을 꺼냈는데, 겉에 카로멜(Calomel)이라 쓰여 있었다.
매독, 기관지염, 콜레라, 내성 발톱, 잇몸 질환, 통풍, 결핵, 인풀루엔자 및 암. 거의 모든 병에 먹는 만병통치약으로 군인에게 보급되는 구급약품 중 하나였다.
“이게 부작용이 심하다고요?”
“해먼드가 주장하길 쇠약해진 환자가 먹으면 구토를 유발한다고 하더군요.”
“근데 이게 약 이름입니까? 아니면 성분 이름입니까?”
레터맨의 얼굴에서 ‘무식한 총사령관’이라는 글자가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굳이 의학을 모르더라도 카로멜이 뭔지는 상식 아닌가.
레터맨이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천 년 전부터 쓰인 물질로 알고 있습니다. 단일 성분은 아니고, 수은 침전물에서 변질 생성물로 형성되는 2차 광물이죠. 화학식으론 두 개의 염소와 두 개의 수은이 결합 되어 만들어진 염화수은입니다.”
총사령관을 지식으로라도 압도하고 싶은 소소한 기쁨. 짜릿한 승리감에 취한 레터맨이 미소를 머금으며 막스를 쳐다봤다. 그런데 총사령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에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은이라니. 처먹을 게 따로 있지···.”
실제로 카로멜은 20세기 초, 1차 세계 대전까지 사용된 약품이다. 하지만, 후에 수은 중독과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밝혀지면서 약으로써 사용이 중단되었다.
이런 지식까진 알지 못하더라도, 수은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상식 아닌가?
그런데 눈앞의 저명한 펜실베이니아 외과 의사가 이걸 모른다.
‘갑갑하구만.’
레터맨의 대화를 통해, 막스는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
수은에 관한 한 이 시대는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해 수은을 들이키고, 몸에 바르던 시대에서 고작해야 몇 발자국 앞섰을 뿐이었다.
*
막스는 레터맨과 함께 군 병원을 찾아갔다.
“동부 전선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은 1차로 이곳에 오게 됩니다. 증세에 따라 일부는 뉴욕이나 펜실베이니아로 후송됩니다.”
병원 밖으로 간호사들,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들은 총사령관 따윈 관심도 없는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 건물에서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이마가 넓은 대신 수염이 덥수룩한, 레터맨과 병원을 관리하는 윌리엄 해먼드 준장이었다.
“총사령관님이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진작에 방문했어야 했는데, 좀 늦었습니다.”
막스가 미소를 머금으며 해먼드에게 악수를 청했다.
셋은 병원 밖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급차 부대가 만들어지면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 필요한 건 뭐든 말씀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레터맨과 해먼드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기뻐했다. 그러던 중, 막스가 카로멜을 언급했다.
“해먼드 준장께서 그 일 때문에 곤란에 처했다고 들었습니다.”
“말도 마십시오. 며칠 전엔 의사 단체에서 전쟁 장관님을 찾아갔다고 하더군요. 이러다간 조만간 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원 역사에서 해먼드는 카로멜 때문에 강제로 군복을 벗게 된다.
의사들은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카로멜을 군용품에서 금지한 것에 분개하고, 급기야 전쟁장관을 매수하기까지 했다.
결국, 전쟁장관은 비정상적인 거짓 데이터를 이용해 해먼드를 군 법정에 세워 해임시켰다.
하지만 역사는 바뀌었다.
막스가 있는 세상에서 전쟁 장관은 에드윈 보스 섬너. 해먼드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었다. 다만.
“카로멜이 위험하다는 객관성은 확보해야 할 겁니다. 그게 없으면 의사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을 테니까요.”
해먼드는 이마를 긁적거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부작용을 입증하기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막스가 넌지시 말을 던졌다.
“문제는 수은입니다.”
‘수은?’
해먼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레터맨을 쳐다봤다. 자기도 뭔지 모른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의사도 아닌 총사령관이 던진 걸 과연 힌트로 봐야 할까.
막스는 환자들이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말이 병실이지 아치형의 커다란 비닐하우스에 침대가 다닥다닥 놓인 열악한 환경이었다.
해먼드가 사람들에게 총사령관의 존재를 알리려 할 때,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 있다 가겠습니다.”
“아, 예.”
막스는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침대 사이를 지나쳤다. 고통에 신음하는 병사,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며 죽어있는 눈을 하고 있는 병사.
그리고 절단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귓말로 속삭이는 간호사.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잠시 후. 그 환자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침대에서 발작하듯 꿈틀거렸다. 의사는 익숙한 듯 담담한 표정으로 톱질을 해댔다.
막스의 시선이 이내 다른 곳을 향했다. 메스로 살을 째는 광경이 들어왔다. 그리고 고름을 빼낸 뒤, 의사는 그 메스를 쥔 채 다른 환자에게 향했다.
간호사는 벌어진 살을 봉합했다.
일련의 행동을 한동안 지켜본 막스는 생각보다 환경이 열악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소독과 살균의 개념이 없구만.’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사용했던 의료기기를 그대로 재사용했다. 주사바늘도 마찬가지.
가벼운 상처로 병원에 찾아왔던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막스가 해먼드와 레터맨에게 말을 꺼내려 할 때. 피가 옷 곳곳에 묻어있는 중년의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왔다.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냄새가 불쾌하고 역하면 밖으로 나가세요.”
“?”
“누군지 몰라도. 여긴 깔끔떠는 분이 있을 곳이 아니거든요.”
여인의 목소리가 쌀쌀맞다.
냉기가 풀풀 날렸다.
고개를 갸웃한 막스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게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비단 여인뿐 아니라, 환자들의 눈빛도 무언의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해를 하셨군요. 냄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막스가 스카프를 내리자, 여인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갔다.
“호, 혹시 총사령관님이세요?”
병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워있던 병사들도 들썩거렸다.
갑작스러운 동요에 레터맨과 해먼드는 눈빛으로 여인을 나무랐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병원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요청할 사안이라도 있습니까?”
“많죠. 보다시피 환경이 열악하잖아요.”
중년 여인은 레터맨과 해먼드도 곤란해할 정도로 당찬 성격이었다.
“일단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합시다. 같이 가시죠.”
“좋아요!”
여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레터맨과 해먼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를 따랐다.
여인의 이름은 클라라 바튼.
불런 전투 때부터 병사들을 간호한 변호사로, 미국 적십자를 창립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막스가 병원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려 할 때였다.
사령부에 있던 연락병이 한 가지 소식을 전했다.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교전이 일어났습니다.”
남군의 도발은 아니고, 아군이 한 마을을 약탈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문제는 그 부대가 제5군단 존 포터 소장 소속이라는 점이었다.
“샬러츠빌 마을에서 민간인 세 명이 죽고, 아군 병사 다섯이 죽었습니다.”
“흠.”
막스는 존 포터가 작은 실수라도 하길 기다리던 참이었다. 해서 제5군단을 남군 접경지에 주둔시키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비록 휘하 부대의 일탈이었지만 구실로는 적당했다.
‘존 포터를 서부 전선으로 보내야겠군.’
제5군단 절반을 율리시스 그랜트가 고심하는 빅스버그 공략에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이는 존 포터에겐 또 다른 유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