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관전 장교들
평원을 뒤덮은 눈이 옅어지고, 얼어붙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한다.
계절의 전환점에서도 동부 사령부의 아침은 언제나 똑같았다.
“아, 원! 아, 투! 아, 원 투 쓰리 포!”
“멋있는! 사나이!”
부대 주변을 달리는 군인들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일찌감치 일어난 취사병들은 커다란 솥단지를 옮기며 땀을 쏟아냈다.
3km 구보, 격한 운동에 이은 명상까지 끝마친 총사령관. 그의 행동 덕분에 고위 장교들 역시 아침 운동은 일상이 되었다.
부하들을 이끌고 구보를 하는 장교들이 인사를 건넸다.
“충성!”
“좋은 아침입니다! 총사령관님!”
그들의 진심이 어떻든. 아침부터 땀 흘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총사령관을 대하는 얼굴에 상쾌한 미소가 넘실거렸다.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며 이동하던 중.
막스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어제 사령부를 찾아온 프로이센 왕국의 관전 장교였다.
“추위가 확실히 수그러들었군요.”
“그래도 아직 밤은 쌀쌀하더군요. 잠자리가 불편하진 않으셨습니까?”
“덕분에 따뜻하게 보냈습니다. 그나저나, 군대에서 사용하는 말 안장이 우리 것과 비슷하더군요.”
완전 카피품이구만!
말만 안 했지, 표정에서 드러났다.
남북전쟁 발발 전, 조지 맥클레란이 만든 몇 가지 발명품이 있다.
일명 ‘맥클레란 안장’도 그중 하나였다.
나무로 만든 등자 앞뒤가 불룩 튀어나와 엉덩이를 바쳐주고, 그 사이 바닥은 구멍이 뚫려 격렬하게 장거리를 이동할 때 치질을 예방하고 나름 안락한 안장이었다.
게다가 등자 밑, 두꺼운 가죽 치마처럼 늘어트린 생가죽엔 기병들의 무기나 장비들을 수납하기 적합하게 디자인되었다.
현재 연방은 이를 공식 기병 부대 안장으로 지정해 사용하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관전 장교를 힐끔 쳐다본 막스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듣기로는 수년 전, 맥클레란 장군께서 크림 전쟁에 참관한 적이 있다더군요. 거기서 여러 디자인을 보고 연구해서 만들었을 겁니다.”
“어쩐지 비슷하게 생겼다 했습니다.”
“맞습니다. 비슷할 뿐 똑같지는 않죠.”
‘맥클레란은 까도 내가 깐다.’
비록 사이가 좋지 않아도 어쨌든 연방의 장군 아닌가. 총사령관으로서 막스는 맥클레란을 감싸주었다.
“총사령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뭐, 전쟁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얻어가는 건 흔한 일이죠. 제가 여기 온 것도 그것 때문 아니겠습니까?”
관전 장교는 너스레를 떨며 막스의 눈치를 살폈다. 총사령관이 동양인이라 우습게 봤었는데, 판단 착오였다. 빈틈이 없어 보였다.
“어이구,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포병 훈련이 있다고 들었는데, 일정은 그대로겠죠?”
이번엔 프랑스 관전 장교다. 그는 프로이센 장교는 안중에 두지 않고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유럽의 초강대국 프랑스. 그 프리미엄 때문인지 조금은 오만한 모습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일정대로 할 겁니다. 따로 자리를 마련하라고 했으니, 관전하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그럼 시작되면 그때 봅시다.”
프랑스 관전 장교가 몸을 돌리자, 프로이센 장교가 그 뒷모습을 노려본다.
독일 제국의 가장 강력한 왕국, 프로이센도 프랑스에 비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박 터지게 싸울 날도 얼마 안 남았네.’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 일명 보불전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북전쟁 이벤트가 끝나면, 전쟁은 다시금 유럽으로 옮겨질 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벌이고, 그다음이 보불전쟁이다.
팔짱을 낀 막스는 프로이센 장교를 바라봤다.
“아침이나 같이 드실까요?”
“좋지요.”
*
남의 나라 전쟁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미국은 조금 특별했다.
내전에서 사용된 전략 전술, 무기가 워낙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각국은 군사 전문가를 파견해 이를 관찰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의 관심은 자연 ‘전쟁의 신’ 포병에 관심이 쏠렸다.
매나사스 사령부 서쪽 부근.
훈련을 참관하려던 막스는 특수작전 행정병 중 한 명을 불렀다.
“카네기 이병. 오늘은 나와 함께 참관한다.”
“......? 알겠습니다!”
“대답이 느리다. 바쁜 일 있나?”
‘바쁘냐고!?’
그걸 진정 몰라서 묻는 건가?
자기가 일을 폭탄처럼 안겨 주고!?
하지만 앤드류 카네기는 강제로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 아닙니다!”
“다행이군.”
“.......”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뜬금없이 포병 훈련이라니!?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에혀,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카네기는 막스 옆에 달라붙어 때아닌 포병 훈련을 참관했다.
잠시 후.
1km가량 떨어진 커다란 표적을 두고, 포사격이 이어졌다.
쾅! 쾅!
관전하는 각국의 장교들은 망원경으로 매캐한 연기와 폭음, 파편들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관찰했다. 하지만 그들이 관심을 기울인 건 발사한 뒤, 포병들과 포의 상태였다.
“방금 쏜 게 그 패럿포라는 겁니까?”
“야전에서 사용하는 10파운드(4.5kg)짜리 패럿포가 맞습니다.”
“혹, 사격이 끝나면 가까이서 봐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포병 가이드의 말에 관전 장교들은 다시금 망원경으로 포사격을 지켜봤다.
“뭐, 포대 배치는 이전과 다른 게 없네요.”
“오히려 전술 간 거리가 먼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패럿포가 폭발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죠.”
관전 장교들이 나름의 생각들을 늘어놓았다.
막스는 그들의 대화를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훈련이 있기 하루 전, 막스는 포병 사단장 윌리엄 프랭클린 준장을 불렀다.
- 내일 훈련에선 40야드(37m) 간격으로 포대를 배치하세요.
- 밀집대형이 아니고요?
지금까지 막스는 기존의 포병 전술을 탈피, 대규모의 포병 화력을 집중할 수 있는 밀집대형을 고집했다. 하지만 내일은 예외였다.
- 관전 장교들에게 모든 걸 보여줄 순 없죠.
-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관전 장교들은 연방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입은 스파이처럼 남부 연합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다 내쫓고 싶지만, 외교 문제가 걸려있어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막스는 관전 장교들의 말을 듣는 한편, 눈으론 대포를 응시했다.
현재 북군 한 개의 포대는 4문의 포를 운용한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하는 대포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청동으로 만든 대포와 연철, 주철을 섞어 만든 철제 패럿포. 관전 장교들의 관심은 후자, 패럿포에 쏠려 있었다.
막스는 슬쩍 카네기 귀에다 입을 가져다 대었다. 흠칫한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떠서는 막스를 쳐다봤다.
‘진짜, 나한테 왜 이러냐.’
막스가 속삭였다.
- 패럿포의 장점이 뭔지 아나, 카네기 이병?
- ...... 일단 주조가 쉽고, 가격이 청동에 비해 싸다는 거 아닙니까?
실제로 패럿포는 청동 대포 가격의 절반에 불과했다.
- 그럼 단점은?
- 알기로는 주철과 연철을 섞었기 때문에, 포신이 갈라지거나 폭발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폭발로 포병들이 살살 녹아내릴 수 있지. 그래도 우리는 이걸 쓸 수밖에 없어.
공업 능력이 떨어지는 남군은 과거 청동제 포를 사용한다.
하지만 북군은 포병이 죽든 말든, 그들의 목숨값보다 싼 패럿포를 찍어냈다. 해서 현재 포병은 북군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 포병들이 좀 안 됐네요···.
- 음? 방금 뭐라고 했나, 카네기 이병?
- 헛! 아, 아닙니다. 그냥 한 소립니다!
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새끼 개념 없네’라는 표정이다.
카네기가 식겁하던 때, 막스는 돌연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 솔직히 나도 같은 심정이야. 언제 터질지 모를 대포 옆에, 그것도 여덟 명이나 붙잖아. 볼 때마다 손에 땀이 난다니까.
물론 포를 쏠 땐 긴 줄을 잡아당겨 뇌관을 터트리지만. 터지면 다 죽는다는 사실엔 변함없었다.
- 만약 철의 경도와 강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 어떨 것 같아.
- 그럼 포가 더 안전해지겠죠.
- 어디 그뿐이겠어? 건설에 쓰이는 철골, 기차, 철로, 배 등등. 아마 앞으로 폭발적으로 사용량이 증가할 거야. 뭐, 지금도 수요도 엄청나긴 하지만.
카네기가 막스를 빤히 쳐다본다.
마치 ‘야, 너도?’라는 표정.
- 솔직히 총사령관님도 철에 관심을 가졌을 줄은 몰랐습니다.
- 둘이 있을 땐, 말 놓자.
막스가 친근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깊은 수렁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막스는 빠져나올 틈을 주지 않았다.
- 그래서, 지금 어디 투자했어?
- ......
카네기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는 막스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망설였다.
- 콜럼비아 오일, 나도 투자한 거 알지?
- 모건한테 들었습···· 지.
- 그렇구나. 그래서 어느 제철소에 투자했어?
- ...... (젠장) 피츠버그에 있는 철강소.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낮게 속삭였다.
- 나도 끼.워.죠.
쾅!
때마침 포탄 소리가 들려왔다.
카네기의 눈동자도 덩달아 흔들렸다.
매케한 화약 냄새와 함께 막스의 촉촉한 입김이 또다시 귀를 간지럽혔다.
- 일단 투자는 투자고. 내가 철강 관련해서 엄청난 아이템이 하나 있거든.
- ?
카네기가 눈을 동그랗게 떠 막스를 쳐다봤다.
그게 뭔데? 뭐냐고?
그런데 막스가 갑자기 입을 닫아버렸다.
‘이 자식, 진짜 뭐지.’
카네기는 손으로 이마를 훔치며 탄식을 내뱉었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총사령관 역시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
철강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JP 모건이 말하길, 막스는 사업에 관한 안목이 뛰어나다고 했다. 콜럼비아 오일 뿐 아니라, 손에 대는 족족 성공적인 투자만 했다고 했다.
카네기 입장에선 총사령관과 함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한편, 막스가 그 엄청난 아이템을 운만 띄우고 입을 닫은 이유가 있었는데.
‘사실 아직 나도 모르거든.’
하지만 그게 뭔지 이름은 안다.
강철 혁명을 이끌 공법.
일명 ‘지멘스-마르탱’의 평로법이다.
평로를 사용하여 강철을 제조. 선철과 고철의 비율을 개선하고, 불순물을 제거해 철의 경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공법이었다.
카네기가 철강으로 우뚝 선 것도 이와 맞물린 영향도 있었다. 전 세계에 철강 수요와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니까.
하지만 평로법이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발표된다는 것만 알지, 막스는 그 원리나 이론 따윈 전혀 알지 못했다. 설령 전생에 본 적이 있다 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철강이든 석유든, 막스에겐 그들만큼 회사를 운영하고 키울 능력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
‘묻어가기 전략이 최고지.’
막스가 혼자 생각에 잠기던 때. 포병 사격이 종료됐다. 어차피 오늘 훈련은 관전 장교들에게 보여주는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막스의 포병 전술 핵심은, 포병 스팸으로서 집중된 포격으로 적진을 쓸어버리는 전술.
이를 운용하기 위해선 포대 간 거리를 좁히고 명령 체계를 일원화하는 게 골자였다.
관전 장교는 이를 모른 채, 패럿포의 성능과 문제점. 별다른 전술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참관을 끝마쳤다.
“자, 다음은 개틀링 기관총 구경하러 갑시다.”
“오오! 그걸 오늘 보여주는 겁니까?”
“멀리서 오셨는데, 시간 끌 것 있습니까.”
‘얼른 구경하고 돌아가라고, 자식들아.’
각국의 무기상들이 접근했지만, 뉴욕 타임즈 사장에게 한 대 팔았을 뿐. 국가 단위로 구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슬슬 판매처를 확보할 때였다.
‘일단 프로이센에 팔아볼까.’
앞으로 줄기차게 전쟁을 벌일 국가라면 수요도 많을 테니. 프로이센 장교와도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저, 개틀링도 참관합니까?”
멀뚱히 있던 카네기가 물었다.
“아니. 귀병은 행정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 근데, 오늘 저를 부른 건 제철소 때문입니까?”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대포 보기 힘들거든. 조만간 행정실을 알링턴으로 옮길 생각이야.”
“예?”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질 거거든.”
‘그런데 왜?’
알링턴과 워싱턴DC은 포토맥강을 사이에 두고 불과 5km밖에 되지 않는 거리다.
‘설마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를 생각하는 건가?’
행정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는 건, 만약을 위해선지, 아니면 퇴각을 염두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네기의 불안한 눈빛을 본 막스가 웃으며 말했다.
“안 바뻐?”
“아, 아닙니다!”
카네기는 서둘러 행정실로 향했다.
*
1863년 3월.
완연한 봄기운은 남부 연합부터 찾아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서남쪽 그린빌 인근.
늪지대를 지나는 한 흑인 여인이 열댓 명의 군인을 이끌었다. 이들은 남부 정찰을 위해 침투한 연방의 군인들. 지형을 탐색하고 포로수용소의 위치를 알아내는 게 이들의 임무였다.
“이렇게 늪지대를 건너고, 애슐리 강을 따라가면 섬머빌이 나와요.”
“포로수용소가 거기 있다, 이거지?”
“맞아요.”
흑인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참 강을 따라 이동하던 때, 숲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어서 몸을 숨겨.”
리더의 말에 흑인 여인이 먼저 넝쿨 수풀로 몸을 숨겼다.
남부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는 터라, 그녀의 존재가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잠시 후. 일단의 무장한 자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선두에 선 남자가 꽤 익숙했다.
몸을 숨겼던 북군 리더가 이름을 중얼거렸다.
“라파예트. 저 자식이 왜 여기에 있지?”
남군의 포로가 되었다는 놈이 무장한 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대체 무슨 상황인 걸까.
북군의 정찰병들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라파예트가 입을 열었다.
“연방의 동지들이여. 우린 섬머빌에서 탈출한 군인이다. 나는 첩보 조직인 라파예트. 어떤 소문이 퍼졌는지는 모르나, 이 또한 작전 중 하나에 불과하다.”
“......”
“나를 못 믿는가?”
라파예트가 총을 내려놓으며 두 손을 들었다.
함께 있던 자들 역시 무기를 내려놓았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차피 상대는 자신들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다. 갈등하던 정찰대 리더는 이내 몸을 드러냈다.
“우린 헌터 장군 휘하의 정찰대요.”
뒤이어 다른 정찰대도 모습을 보였다.
라파예트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여인.
그녀 역시 넝쿨 밖으로 몸을 보이려 할 때였다.
타앙!
타앙!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정찰대들의 몸에 총알이 박히기 시작했다.
흑인 여인, 지하철도의 일원 해리엇 터브만은 떨리는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