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두 개의 전선(1)
- 총사령관님은 대체 언제 움직이시나요?
군 내부가 술렁거린다.
계절이 바뀌었지만, 막스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아서였다.
총사령관이 된 지 7개월째.
그동안 소규모 국지전을 빼면 그동안 제대로 된 전투는 딱 한 번 치렀을 뿐이다.
그 한 번으로 강렬한 인상은 심어줬지만, 대중의 열광과 지지는 이미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맥클레란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데다, 동부와 서부 사령부가 쌍으로 시간만 보내는 건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었다.
- 동양인 총사령관이 대체 언제 군인들을 동면시킨 겁니까?
- 걱정하지 마십시오. 봄이 온 건 귀신같이 알아서, 다들 잠에서 깨어나 밥부터 먹었다더군요.
한 신문 만평에는 ‘겨울잠 자는 군인과 그들을 보살피며 뜨개질하는 총사령관’ 그림이 실리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언론을 움직이고, 언론은 비아냥과 조롱으로 여론을 악화시킨다. 그리고 이 기류에 편승한 정치군인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버지니아에 주둔한 남군 병력이 얼추 우리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중 실제 전투 병력이 얼마인지, 군단 편성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죠.”
“이 이상 시간을 주면 안 됩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결과, 남군은 무섭게 병력을 늘려 연방의 80% 수준까지 따라왔다.
장군들은 이런 결과를 만든, 남부 연합에 시간을 벌어준 총사령관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최근 어디를 다녀온 건지 보름 만에 총사령관이 사령부에 나타나자 장군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오자마자 회의였다.
“대체 어디를 갔다온 겁니까!?”
“그걸 일일이 보고해야 합니까?”
회의장에 탄식이 터져나왔다.
“최소한 라파해녹강을 넘든, 뭔가 행동을 취해야 않습니까?”
“남군이 밀고 들어오면 그때도 방어만 할 생각입니까, 총사령관?”
“한번은 통했겠지만, 로버트 리와 잭슨 장군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란 말이오.”
막스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
그들의 면면을 보면 맥클레란과 친분이 있거나 혹은 막스 때문에 기회를 놓친 불만자들이다.
막스가 아니었다면 원 역사에서 한 번쯤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을 야심가들이었다.
“워싱턴 정계뿐 아니라, 대통령과 전쟁 장관까지 싸잡아 군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언제까지 공격을 미룰 겁니까?”
“다들 화가 잔뜩 난 걸 보니, 봄바람이 반갑지만은 않군요.”
계절이 바뀌자마자 막스를 전장으로 떠밀고 있으니, 차라리 겨울이 더 포근한 느낌이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우리 결정에 수만 명의 목숨이 걸려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병사들은 겁쟁이들이 아닙니다!”
“목숨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전쟁에 뛰어들지도 않았겠지요!”
막스는 듣기 싫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내 말뜻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병력을 무리하게 끌어 올리는 바람에, 남부 연합의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다고 그들이 총과 대포를 팔겠습니까? 오히려 죽기 살기로 덤벼들겠지요!”
막스는 말 한번 잘했다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또한 조급해지겠죠. 게다가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하면, 민중은 등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든든한 지지기반이 흔들리면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싸울 의지마저 꺾이는 거죠.”
“말은 누가 못합니까. 그런 식이면, 남부 연합의 군사력이 갈수록 증가하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참다못한 제2군단장 존 기어리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아까 총사령관께서 무리하게 늘렸다 하지 않았습니까! 거참, 했던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거요? 다들 이러려고 회의를 요청한 겁니까?”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그런 것 아니오!”
격렬한 토론장으로 변한 회의장은 세 분류로 나뉘었다.
호의적이거나 적대적이거나, 혹은 그 중간에서 묵묵히 말을 아끼거나.
막스는 묵묵히 회의장의 풍경을 눈에 담은 뒤, 회의를 강제 해산시켰다.
“더는 의미 없습니다. 다들 맡은 자리에서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시면 됩니다.”
막스는 밖으로 나가려던 존 기어리를 불러세웠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 존 기어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막스 편을 들긴 했지만, 분위기만 놓고 보면 분명 변화가 필요했다.
“병사들까지 술렁거리고 있네, 총사령관. 불만이 표면화하면 지긋지긋한 이유가 붙게 마련이잖아?”
동양인이라서, 혹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총사령관 자리에 취한 동양인이 뻘짓만 일삼는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건 결과가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쟁은 더더욱 그렇죠.”
“대통령까지 자넬 비판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더 엉망이야. 나야 항상 자네 편이지만, 노파심이 들어서 한 말이네.”
“잘 알고 있습니다.”
막스에게 호의적인 장군들은 존 거어리, 프랜츠 시겔, 윈필드 핸콕, 존 레이놀즈 등이 있다.
대부분 서부 사령부에서 인연이 있거나, 총사령관이 된 직후 막스가 발탁한 인물들이었다.
“장군께서 그들을 잘 다독여 주십시오. 앞으로 위기가 와도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자넬 못 믿으면 누굴 믿겠나. 걱정하지 말게.”
작전을 숨기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그게 뭔지 재촉하기보다 존 기어리는 알을 품는 암탉의 마음으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제1군단장 존 기어리가 나가자 네이선 로어가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했다.
“다들 참을성이 없네요. 길어야 한두 달인데, 그걸 못 참아서 안달이라니.”
“뭔가 하지 않으면 그만큼 불안하다는 거지.”
“그나저나, 이러다가 전쟁 시작도 전에 자리에서 쫓겨나는 거 아녜요?”
“그런 일은 없어.”
대통령과 전쟁 장관이 비판에 동참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막스의 요청에 따른 행동이다.
“얼마 안 남았어. 장군들이 내 앞에서 불만을 드러낼 정도면, 안 보이는 데선 더 할 테니까.”
“존 포터와 맥클레넌드 장군이 생각처럼 움직여 줄까요?”
“지금 같은 상황이면 유혹이 심할 거야. 언제까지 참을지 두고 보자고.”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 내분과 갈등. 이로 인해
총사령관의 자리가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미시시피주 최북단 코린트.
이곳에는 웨스트버지니아 군으로 불리는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지휘관은 존 포터와 존 A 맥클레넌드 소장.
둘 다 민주당 소속의 정치군인으로 쿵짝이 잘 맞는 자들이다.
맥클레넌드는 몇 차례나 빅스버그를 자체 공략하겠다며 백악관에 편지를 보냈었다.
매번 답이 똑같았는데, 최근 변화가 생겼다.
“대통령과 전쟁 장관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무조건 그랜트 장군의 지시를 받으라더니, 지금은 ‘고려하겠다’ 라더군요.”
맥클레넌드의 말에 존 포터의 눈빛이 반짝였다. 총사령관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심지어 군 내부에서도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때 지켜보고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존 맥클레넌드와 포터는 겨우내 전략을 세워두었다. 율리시스 그랜트가 우회 전략을 고집하는 대신, 코린트에서 그대로 남하하여 빅스버그를 육로로 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우리가 행동하면 그랜트 장군도 어쩔 수 없이 돕게 되겠지요. 일단 빅스버그 근방까지 가게 된다면, 별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빅스버그를 사수하기 위해 남부 연합의 병력이 집중될 경우다. 그만큼 그들에게 빅스버그는 중요한 위치였다.
“해법은 신속한 진군밖에 답이 없습니다. 적들이 빅스버그에 증원하는 동안 우리가 먼저 차지해야죠.”
영웅은 기회를 잡는 자가 쟁취하는 것이다.
야망이 가득한 두 장군은 전쟁의 주역이 되고자 했다. 그렇게 빅스버그 진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
일주일 뒤인 1863년 3월 15일.
미시시피주 코린트에서 존 포터와 존 맥클레넌드가 병력을 이끌고 남하했다. 목적지가 불분명하나 빅스버그일 가능성이 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버지니아의 남부 연합에 비상이 걸렸다. 로버트 리 장군은 지휘관들을 소집해 대응에 들어갔다.
“현재 4만에 가까운 북군이 미시시피주를 관통해서 빅스버그를 향하고 있소. 요새는 팸퍼튼과 그렉 장군이 사수할 거요.”
“빅스버그가 함락되면 앞으로의 전선에 영향이 클 겁니다. 둘만으로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잭슨 장군의 말에 로버트 리는 대답 대신 턱을 매만졌다.
그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빅스버그를 지키기 위해 병력을 증원하거나.
혹은 병력을 집결해 북으로 진격하거나.
이 두 가지 선택에서 갈등하던 로버트 리가 마침내 입을 뗐다.
“솔직히 이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워싱턴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거지요.”
남군이 북군에게 항복을 얻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적, 물적 자원의 차이로 보면 물리적으로 북군을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로버트 리가 바라는 건 두 가지.
관망하던 유럽국가를 끌어들이고, 남부 연합의 요구가 관철되도록 북군을 압박해 유리한 협상까지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 협상이란 노예제 철폐를 폐지하고, 남부 주들의 자치권 보장이었다.
‘이 모든 걸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얻어내야 한다.’
마침 남과 북의 눈치 싸움이 끝나갈 즈음 기회가 찾아왔다. 로버트 리 사령관은 지휘관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존 포터와 맥클레넌드는 총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게 아닙니다. 독단적인 행동이라는 거지요.”
“최근 북군 총사령관이 정치 공세에 정신을 못 차린다더니, 그게 사실이었군요.”
“휘하의 장군이 멋대로 움직일 정도면 이미 총사령관의 지휘권에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요.”
북군의 지휘체계에 균열이 생겼다.
이는 남부 세작들이 북군 여론을 흔든 것도 있지만, 북군 스스로 동양인 총사령관을 신뢰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잭슨 장군도 현 상황을 기회로 인식했다.
"존 브라운과 전쟁 장관까지 나서서 비판하고 있다니 조만간 경질되겠군요."
"사령관이 바뀌면 늘 그렇듯 진통이 따르는 법. 하지만 그때를 노리는 건 하책입니다. 공격하려면 바로 지금이죠."
로버트 리윽 비장한 눈빛이 장군들을 향했다.
"빅스버그가 난공불략의 요새라는 건 적도 알고 우리도 알고 있소. 적들이 그곳에서 힘을 빼는 동안, 우리는 북으로 진군할 거요."
제2차 북군 정벌.
1차의 뼈아픈 패배는 한 번으로 족하다.
최소한의 방어만 남긴 채, 전투 병력을 끌어모아 북으로 진격할 것이다.
로버트 리의 지시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만큼 남군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미 남부 연합은 엄청난 물가 상승률로 경제가 초토화되기 직전이었다.
남부는 전쟁 초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폐를 발행했는데. 북부에서 뒷면이 녹색인 '그린백(greenback)'을 발행했다면, 남부는 회색 지폐 '그레이백(grayback)'을 발행해 60%의 전쟁 자금을 마련했다. 그 발행 속도가 무려 북군의 세 배에 달했다.
그 결과,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물가 상승률은 한 달에 10%에 달했다.
전쟁 전 남부 가족의 식료품비는 월 6.65달러.
올해는 무려 250달러가 넘어갔다.
더욱이 연방의 필라델피아에선 의도적으로 남부의 위조지폐를 만들어 풀었다. 이로 인해 시장은 포탄 떨어지듯 붕괴하고 있었다.
밀가루를 살 돈도 없어 남부 가족들은 돼지고기 대신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까마귀, 개구리, 메뚜기, 심지어 벌레까지 눈을 돌렸다.
남부 연합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로버트 리는 총사령관이 궁지에 몰린 이때를 기회로 삼았다.
뿌우우우!
남군의 병력이 리치먼드 북부에 집결했다.
그 수가 9만.
로버트 리 사령관은 ‘스톤월’ 잭슨과 롱 스트리트 장군을 양 날개로 삼아 진군이 시작됐다.
같은 시기. 서부 미시시피주에는 존 맥클레넌드와 포터가 4만 병력을 이끌고 헤르난도 마을을 점령,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그리고 서부 사령부 멤피스에서 막 빠져나온 율리시스 그랜트. 그는 윌리엄 테쿰셰 셔먼 장군을 이끌고, 존 포터와는 다른 미시시피강 서쪽 아칸소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숨기기 위해 한 개 사단으로 하여금 미시시피강을 건너도록 했는데, 마치 존 포터와 맥클레넌드 부대를 증원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한 개 사단으로 남군의 눈길을 돌리고, 율리시스와 셔먼은 병력을 이끌고 강을 따라 남하했다. 그러던 중.
펑! 펑! 저 멀리서 포성이 들려왔다.
이곳은 남부 연합의 아칸소주.
북군의 병사들이 식겁하던 때.
휘우우웅, 포탄 하나가 날아와 떨어졌다.
빈 땅이었지만 파편과 진흙 튀기면서 일부 병사들의 몸에 묻기까지 했다. 행군하다 적들을 마주치면 곧바로 전투가 벌어질 터. 다들 얼어붙은 듯 몸을 납작 엎드려 이후의 사태를 주시했다.
‘벌써 들키면 곤란한데.’
율리시스가 미간을 찌푸리던 때.
정찰병이 달려왔다.
“저 앞에 남군 한 개 중대가 노획한 북군 패럿포를 시험 발사하고 있었습니다. 방금 날아온 건 불발탄이었습니다.”
“좋아. 그럼 무시하고 행군을 이어간다.”
율리시스 그랜트의 지시에 멈췄던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7만에 가까운 병력이지만 그 움직임은 아직 남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