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두 개의 전선(2)
“남군이 라파해녹강을 넘었습니다!”
“잭스 장군이 오렌지 알렉산드리아 철도를 점령했습니다!”
“롱스트리트 군단이 워런튼 정션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전투가 벌어지자, 알링턴에 꾸려진 행정실이 가장 바쁘게 돌아갔다.
워싱턴 DC와는 포토맥강 하나를 둔 이곳엔 국립 첩보 경찰국도 주둔했다.
“신병들이 도착했다! 우선 부서별로 배치를 할 테니까, 선임병들이 알아서 가르칠 수 있도록!”
행정실에 열댓 명의 군인들이 들어섰다.
4주간 하퍼스 페리에서 훈련을 마친 신병들. 하지만 고개 돌릴 시간도 없는 선임들은 서류에 고개를 파묻고 있거나 분주히 움직이며 시선도 주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상황이다! 눈치껏 요령껏, 사수 말을 잘 따를 수 있도록! 발목 잡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옛 썰!”
중대장이 눈짓을 주자 각자 사수 뒤에 바짝 따라붙는다. 한 남자는 영혼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선임이 하는 걸 지켜봤다.
‘내가 행정병이라니.’
선임은 빼곡한 숫자를 계산하며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펜으로 빠르게 써 내려가던 중, 시선은 돌리지 않은 채 말을 건넸다.
“이름은?”
“코닐 해리스입니다!”
“어디 출신?”
“콜로라도입니다!”
선임이 고개를 돌려 코닐을 쳐다봤다.
“콜로라도면 서부로 가야지, 너 잘못 온 거 아냐?”
“......”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훈련 성적도 좋고, 사격 솜씨도 다른 훈련병보다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행정병이라니?
특수 작전이 붙어 뭔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봐야 행정병 아닌가.
전투의 선두에 서고 싶었던 코닐에겐 실망스러운 직책이었다.
게다가 선임의 말처럼 서부가 아닌 동부, 그것도 워싱턴 코앞이라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어.’
코닐이 입맛을 다시는 사이, 펜 끝으로 자신의 뺨을 톡톡 치던 선임은 잉크가 담긴 병을 가리켰다.
“가서, 이것부터 채워 와.”
“알겠습니다!”
병을 챙기던 코닐에게 선임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참고로 난 존 피어폰트 모건이다. 앞으론 모건 상병으로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모건 상병님!”
모건은 입대한 지 5개월 만에 상병이 되었다.
특수 작전 행정병중에서도 자금 관련 중책을 맡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경험 있는 병사들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어제 소위가 내일은 중위가 되는 게 비일비재하던 시기였다.
사무실을 헤매던 코닐은 찾고 있던 잉크가 밖에 있는 창고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아직 배치가 덜 끝나 대기중이던 동기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대체 콜로라도 촌놈이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야?
- 우리처럼 저 자식도 300달러를 냈겠지.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서부도 아니고, 동부에 있는 게 말이나 돼?
함께 훈련받았던 동기들은 코닐이 이곳에 있는 게 불만이었다. 자기들끼리 추측하며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통에 담긴 잉크를 작은 병에 옮겨 담고, 코닐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때, 한 장교가 소리쳤다.
“서부 전선은 아무런 소식도 없나!?”
“그쪽은 전신이 닿지 않아서 정보가 느립니다!”
“총사령관께서 요청한 건 단 이틀! 서부 어디에서 전투가 벌어지는지 우리는 최소 이틀 안에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카네기 상병은 나를 따라오도록!”
앤드류 카네기는 서부와 동부에 걸친 전신주를 정보 수집에 이용하고 있다.
역마다 배치된 전신사들이 신속하게 전보를 쳐 정보들이 알링턴에 도착하면 이를 수집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코닐은 장교에게 끌려가는 카네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전장터는 아니지만, 분위기는 그에 뒤지지 않았다.
긴장감과 다급함, 분주한 행정실 분위기는 저녁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짧지만 모건 옆에서 심부름하던 코닐은 행정이라는 일이 새삼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투 보병을 갈망했다.
식당으로 꾸려진 캠프 구석에서 밥을 먹던 중, 모건 상병이 다가와 물었다.
“일리노이 대학에서 뭐 전공했어?”
“경영입니다.”
“그럼 숫자는 좀 보겠네.”
모건이 서류 뭉텅이를 던져줬다.
“내일은 이걸 한 장으로 요약해봐.”
“하, 한 장으로요?”
백 장이 넘는 서류를 하나로 압축하라니.
코닐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미 모건은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이때 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서 사람은 어울리는 곳에 있어야 하는 거야.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아야지.
- 들리겠다 야.
동기들의 조롱. 동부의 유력한 가문 자식들이라 그런지, 콜로라도에서 온 코닐을 로키산맥 숲에서 살다 온 촌놈으로 여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닐은 서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빵을 오물거렸다. 그런데 이때.
“어째 먹는 게 시원치 않다?”
“!”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 입에 넣으려던 빵과 함께 코닐의 고개가 돌아간다.
이내 환하게 미소 짓는 피치가 눈에 들어왔다.
대체 이게 얼마만일까.
코닐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뭐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어흑.”
피치와 포옹하는 코닐.
“오랜만에 얘기나 할까?”
코닐은 서둘러 서류와 빵을 챙기곤 피치를 따라갔다. 그 모습을 동기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저 여자는 뭐냐? 존나 예쁘던데.”
“낮에 선임한테 들었는데, 행정실 옆 건물에 첩보 조직이 있다는데, 그쪽 아닌가 싶네.”
“첩보?”
“전쟁터를 따라다니는 비방디에르들을 모아서 뭐 한다고 하더라고.”
“설마 그 여자도 비방디에르?”
“뭐야, 그럼 창녀잖아?”
유럽 전쟁, 특히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 비방디에르는 꽤 널리 알려진 존재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그리 좋진 않았다. 일부는 매춘부들도 상당수 있었으니 말이다.
남북 전쟁은 그 성격이 다르지만, 일부 혈기 왕성한 남자들은 비방디에르하면 매춘부부터 먼저 떠올렸다.
“나도 한 번 어떻게 안 되려나.”
“코닐이 아는 걸 보면 콜로라도 출신이겠지. 우리 정도 스펙이면 거절 못 할걸?”
“내기하자. 누가 먼저 꼬시는지.”
“콜!”
그렇게 귀한 집안 신병들의 개념 없는 내기가 벌어졌다.
한편, 밖으로 나온 코닐은 피치와 함께 캠프를 거닐었다.
“아무래도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아요, 피치. 내가 있을 곳은 전쟁터라고요.”
“그래서 어쩌려고?”
“막스, 아니 총사령관에게 요청할 겁니다!”
피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막스를 가장 오래 봤으면서, 아직도 모르네.”
“모르다뇨?”
피치는 코닐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 여기 있는 걸 막스가 모른다고 생각해?”
“..... 그럼 일부러 저를 이곳으로 보냈다고요?”
“당연하지. 막스는 너와 네 부모님을 가족처럼 여기고 있어. 그렇다고 그냥 무작정 도와주는 성격은 아니지.”
“그건 잘 알고 있죠. 어릴 때부터, 밥값 못할 거면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서 살라고 했는 걸요. 부모님 등골 빼먹는 쓰레기가 되면 자기가 총 쏠지 모른다고도 했어요.”
‘어우야···.’
피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잘 생각해 봐. 막스가 너를 왜 여기에 보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코닐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막스가 일부러 자길 이곳에 보냈다면, 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듀들리가 군의관으로 간 것처럼. 저한테도 그걸 바랬겠죠. 언젠가 막스가 그랬거든요. 자기 옆에서 사업하는 거 도우라고. 대신 그만큼 능력을 키우라고요.”
일리노이 대학, 그것도 경영학과를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 왔다고 생각했던 걱정과 고민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다시금 의욕과 열정이 코닐의 눈빛에 차올랐다.
그 모습을 본 피치가 흐뭇한 표정으로 어깨를 토닥였다.
“뉴욕에도 네가 맡아서 할 일이 많아. 나는 영 체질도 안 맞고, 어려워서 못 하겠더라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참고로, 네 사수가 누군지 알지?”
“존 피어폰트 모건이요?”
“어. 그 사람한테 잘 배워. 언젠가 뉴욕 월스트리트가를 지배할 사람이니까.”
코닐은 놀란 눈으로 피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물론 막스가 한 말이야.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한 인물이니까, 너한테 붙여준 거겠지?”
코닐의 눈빛이 반짝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막스의 눈이라면 정확할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지배할 정도라니.’
묘한 경쟁심마저 생겨난다. 코닐은 사수이자 경쟁자인 모건의 모든 것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음 먹고 둘의 발걸음이 다시금 캠프로 향했다.
“그런데 동기들하고는 사이가 안 좋아?”
“왜, 왜요?”
“아까 보니까 혼자 밥 먹길래. 콜로라도 촌놈이라고 무시하나 봐?”
“뭐, 별거 아녜요.”
“그래. SFBC라면 참아야지. 그딴 놈들한테 힘 써봐야 낭비지, 낭비.”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캠프에 도착하는 때. 어쩐 일인지 동기들이 그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때 한 명이 피치를 보자마자 바짝 다가왔다.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아름다운 레이디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1군단 3사단장 존 로비스 준장님이 제 아버님 되십니다. 전 그 셋째 아들 스티븐 로비스···.”
“그래서 뭐 어쩌라고?”
“..... 하. 보아하니 생활고에 시달려서 비방디에르가 된 것 같은데. 차라리 내 여인이 되어···. 악!”
피치가 조인트로 로비스의 정강이를 후려찼다.
그것도 모자라 뺨을 올려 치고, 뒤로 밀렸을 땐 팔꿈치로 머리를 찍으려 했다. 놀란 코닐이 재빨리 끼어들어 피치를 말렸다.
“힘 낭비라면서요!”
“안 놔!? 방금 이 미친 새끼가 한 말 못 들었냐고!”
동기들이 놀란 눈을 뜨던 때, 캠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죄다 장교들이었는데, 그들은 상황을 따질 필요도 없이 신병을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 밤.
잠들지 못한 동기들이 코닐에게 물었다.
대체 누구길래 다들 여인을 어려워하냐고.
하지만 코닐은 짧은 대답밖에 해줄 수 없었다.
“내 형수님이야.”
“너 여동생밖에 없다며. 그 형은 누군데?”
‘총사령관이다 새끼들아.’
코닐은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
매나사스 사령부.
총사령관 휘하에 세 명의 참모장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보고 하고 있었다. 그들은 준장급으로 막스가 새롭게 등용한 장군들이었다.
“잭슨과 롱스트리트가 철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습니다!”
“각 군단 위치는요?”
“1, 2군단은 컬페퍼. 3, 5군단은 레바와 스티븐 버그에서 진영을 세우고 있습니다!”
막스는 심각한 얼굴로 지도를 보며 다음을 지시했다.
“적극적인 교전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신 각 군단장에게 우리가 매나사스에서 퇴각할 시간을 벌라고 전하세요.”
“퇴, 퇴각이요?”
“하퍼스 페리 훈련소도 마찬가지. 제2지점으로 퇴각합니다.
“싸우지도 않고, 그 두 곳을 버린단 말입니까?”
막스는 손을 들어 참모장들의 입을 닫게했다.
“적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대규모 적을 상대로 공성전을 벌이기엔 이곳 매나사스는 적당하지 않아요.”
사방에 참호를 파두었지만, 평지로서 딱히 이점이 없는 장소다.
“우리 병력이 상대를 압도할 때는 유리하나, 지금은 아닙니다. 이긴다, 하더라도 출혈이 심할 거고, 만약에 뚫린다면 하퍼스 페리까지 점령당하는 건 순식간이지요.”
“...... 총사령관님의 뜻은 알겠지만, 다른 군단장들은 생각이 다를 겁니다.”
오늘의 전투를 위해 겨우내 준비했다. 그런데 사령관은 싸우기도 전, 후퇴부터 계획했다.
이미 존 포터와 맥클레넌드가 독자적인 행동을 한 이상, 다른 군단장들이 따르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명령 불복종은 군법으로 처리한다고 일러 주세요. 전면전으로 병력을 깎아 먹는 군단장이 있다면, 곧바로 경질될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막스는 마치 독재자처럼 전황을 이끌었다.
공격이 아닌 수비에서는 적합한 태도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갈등과 내분이 가라앉기는커녕 증폭되기만 했다.
그리고 이는 곧 결과로 나타났다.
“암브로스 번사이드 장군이 잭슨 장군과 교전을 벌였습니다!”
“조셉 후커 장군이 군단을 이끌고 롱 스트리트 군을 공격했습니다!”
평소에도 막스와 각을 세운 군단장들이다.
그들은 참지 못하고, 독단적인 공격을 감행.
천 단위의 사상자를 내거나, 일 개 사단이 전멸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물론 일방적인 피해만은 아니었다. 남군도 그만큼 병사들이 갈려 나갔으니까.
막스는 명령을 거부한 군단장들을 곧바로 불러들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 매나사스에서 모든 병력과 보급품을 꾸려 북쪽으로 철수를 강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내부 첩자들에 의해 남군의 귀에도 들어갔다.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로버트 리 장군은 이 보고를 두고 고민에 휩싸였다.
‘매나사스를 왜 버렸을까.’
함정, 아니면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연막작전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분과 갈등으로 지휘체계가 무너졌을까?
들어오는 첩보에 따르면 워싱턴 DC에도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모든 정보를 비춰볼 때, 가리키는 것은 하나.
‘총사령관의 무능력함, 이로 인한 지휘체계 붕괴.’
그런데도 뭔가 찜찜하다. 한 번 데인 적이 있어서인지, 로버트 리는 총사령관의 움직임에 오만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꿍꿍이가 있다 한들, 남부 연합이 가야 할 곳은 북군의 심장, 워싱턴뿐.
“리치먼드를 방어하는 병력 일만을 추가로 증원한다!”
로버트 리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