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게티즈버그 전투(1)
게티즈버그는 피츠버그와 볼티모어를 잇는 철로와 간이 역이 있는, 인구 2,40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이곳이 남북전쟁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게티즈버그 마을 주변이 비교적 고지대인데다 구릉지가 많다는 것. 미리 선점하여 손에 넣는다면, 지역 전체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동시에 훌륭한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원 역사에선 기병사단장 존 뷰포드가 지리적 이점을 간파해 남군을 게티즈버그로 유인한다.
하지만 철저히 계획된 작전이 아닌 즉흥적인 탓에 지리적 이점만 있었을 뿐, 그 외 다른 전술은 쓸 수 없었다. 북군이 승리했음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막스는 그동안 두 차례나 이곳을 방문, 겨우내 은밀한 준비를 해두었다.
총사령관이 사령부를 비웠다며 남들이 비난할 때, 막스는 특수대원들과 함께 게티즈버그의 지형을 관찰하고 효율적인 방어 진지와 공격 진형을 계획했다.
“...... 이게 대체 뭡니까?”
새로 임명된 군단장과 휘하의 장교들이 속속들이 게티즈버그에 도착했다.
그들이 목격한 건 구릉지 위에 만들어진 참호들과 능선 뒤에 숨겨진 대포들이었다.
“...... 여기가 원래 요새였습니까?”
“그럴 리가요. 군 생활 30년 동안 이 마을이 요새라는 건 처음 듣습니다.”
대답하던 존 레이놀즈는 이내 탄성을 내뱉으며 주변을 훑어봤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퇴각이 아닌 유인이었다는 것을.
“아무래도··· 총사령관께선 이곳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 같군요.”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비난을 해댔으니···.”
총사령관의 지시를 따라 이곳에 오긴 했지만, 내심 욕하지 않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오늘을 위해 꽁꽁 숨겼단 말인가.’
한편으론 감탄보단 분노가 치민다.
총사령관이나 군단장들이나, 서로를 못 믿어 지금까지 이 난리를 떨었으니 말이다.
장교들이 저마다의 생각에 골몰한 때, 네이선 로어가 소리쳤다.
“사단장급 이상은 지휘 막사로 모이십시오!”
*
따로 의자는 없다.
넓은 천막 안에 웅성거리며 서 있던 장군들의 시선이 이내 단상으로 향했다.
그곳엔 방금 올라선 총사령관이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첫마디가 예상 밖이었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겠습니다. 지휘관으로서 여러분과 우리 군인들을 믿지 못했습니다. 군단장들이 명령을 어긴 근본적 원인은 결국 저라고 할 수 있지요.”
이곳에 모인 별들만 100개가 넘어간다.
‘짜잔, 내겐 다 계획이 있었다고’라는 말로 넘어가기엔 너무 일차원적이고, 장군들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그 때문에 막스는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첫 마디를 내뱉었
다.
“아무리 작전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부하를 믿지 못하는 사령관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갑작스러운 사죄와 통렬한 자기반성이라니.
장군들이 눈을 껌뻑이며 이어지는 총사령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지지부진한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 일입니다. 저를 욕하는 건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쯤 하자.’
여기서 더 주절거리면 변명이 되어 버리니까.
일부 장군들의 도전적인 눈빛에 원망과 분노가 수그러들었으면 그걸로 된 거다.
막스는 옆에 선 참모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장군께서 이곳 지형과 현 상황을 브리핑해주시죠.”
윌리엄 콕스 준장.
그를 본 제1군단장 존 레이놀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확신했다.
콕스는 한때 자신의 휘하에 있던 토지 측량 기술 장교. 매핑 전문 엔지니어다.
그런데 어느 날 총사령관이 그를 차출해갔다.
당시엔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추측이 맞는다면.
‘총사령관은 최소 몇 개월 전부터 오늘을 계획했다.’
모든 정황이 이를 뒷받침했다.
존 레이놀즈가 감탄하고 있을 때, 막스 대신 콕스가 단상에 올라섰다.
동시에 대위 한 명이 지도가 걸린 커다란 나무판을 들고 왔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게티즈버그 마을 남쪽입니다. 위치가 고지대인데다, 주변엔 더 높은 구릉지가 많지요.”
콕스는 지도를 짚어가며 지리적 이점과 진영을 설명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중.
누군가 물었다.
“만약 남군이 이곳까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찰대가 분명 우리 병력을 눈치챌 텐데요.”
보통 군대는 진군하기 전, 정찰대를 파견해 가는 길목을 확인한다. 그 역할을 기동성이 뛰어난 기병대가 맡았다. 그런데 현재 남군 기병대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
다.
“현재 남군 기병들은 본진과 떨어져 북동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
“어째서 거기에 있단 말입니까?”
남군 기병대는 자신들의 턱밑까지 추격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부대 본진과 떨어져서 갑자기 북동쪽이라니?
“우리 측 기병대가 매복과 기습으로 오전에 남군 기병 중대를 공격했습니다. 일종의 유인책이었는데, 걸려들었습니다.”
"!"
장군들의 시선이 총사령관에게 향했다.
“콕스 장군의 말대로. 현재 남군은 보병으로 정찰대로 삼고 있습니다. 온다 해도 우리 병력을 파악하기도 전에 공격당하겠죠. 그렇게 되면···.”
막스의 전략 전술이 이어지자, 장군들의 입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투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 치밀하고 엽기적인 전략이었다.
*
게티즈버그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남부 연합 진영.
‘스톤월’ 잭슨 장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로버트 리에게 물었다.
“젭 스튜어트 장군이 기병대를 이끌고 사라졌으니, 정찰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당분간 보병으로 하는 수밖에요.”
“흠. 기병대의 본분을 잊고 진영에서 이탈했습니다. 이대로 넘어갈 일은 아닌 듯합니다.”
몇 시간 전.
정찰하던 기병 중대가 적의 매복과 습격에 피해를 입었다. 분노한 젭 스튜어트는 즉각 기병연대를 이끌고 적들을 추격했다.
잭슨 장군은 상황을 심각하게 여겼다.
다른 곳도 아닌 적진 한복판. 이곳 정찰 임무를 맡아야 할 기병대가 복수에 눈이 멀어 미쳐 날뛰고 있는 게 말이나 되나.
잭슨은 로버트리 장군에게 징계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남군 전체가 승리에 취해있다.
펜실베이니아까지 올라온 탓에 남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비옥하고 식량도 풍부한 북부의 땅은 전쟁으로 황폐화한 버지니아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남군은 지나가는 마을을 약탈하고 보급물자를 챙겼다.
사실 로버트 리 장군 입장에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워싱턴은 철옹성이라 남군 병력을 긁어모아도 공격이 불가능하고. 차라리 이곳에서 연방의 보급을 차단하고 워싱턴을 압박하면 이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남부 연합의 독립 내지는 자치권을 얻는 협상을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잇었다.
그렇게 로버트 리가 장밋빛 미래를 그리던 때.
정찰을 나간 보병들이 돌아왔다.
“전방에 적들이 있습니다!”
로버트 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첩보로 얻은 정보에는 북군 병력이 워싱턴으로 향한다고 했으니. 작은 마을에 있어 봐야 민병대 정도일까.
하지만 잭슨 장군은 신중을 기하며 대대급 정찰 병력을 파견했다. 그 결과.
게티즈버그의 북군 병력과 일대 교전이 일어났다.
“적들이 게티즈버그 마을 북쪽 능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포병은?”
“많지는 않습니다!”
주력부대가 주둔한 건 아닌 모양이다.
퇴각하던 사단급 병력이 마을을 지키는 걸로 생각했다. 로버트 리는 즉시 1군단장 잭슨 장군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1군단은 당장 출정 준비를 하라!”
잭슨이 병력을 이끌고 게티즈버그로 향했다.
그동안 로버트 리는 병력을 추스르고, 여차하면 2군단장 롱 스트리트와 함께 진군할 채비를 했다.
게티즈버그 마을 북쪽.
11시 방향에 존 레이놀즈, 12시 능선엔 존 기어리가 잭슨과 맞붙었다.
콰앙!
북군과 남군의 포병 공격이 이어지고, 잭슨 장군은 병력을 전진시켜 북군을 압박했다.
시작은 원 역사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는 동안 아군의 총에 맞아 죽어야 할 잭슨 장군이 멀쩡히 살아있고. 게티즈버그 전투 시작과 동시에 머리에 총을 맞아 전사할 존 레이놀즈 장군도 멀
쩡하다는 점이랄까.
- 적들을 더 깊숙이 끌어들여야 합니다.
막스의 퇴각 전술은 아직 끝난게 아니다.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존 레이놀즈와 기어리는 밀리듯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마을 남쪽, 총사령관이 주둔하고 있는 언덕 너머로 퇴각했다.
이를 본 잭슨이 기세를 이어가며 소리쳤다.
“마을은 진군하기가 힘들다. 우회해서 적들을 추격한다!”
그런데 막상 적들을 추격한 잭슨은 능선 앞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그 위 적들이 포탄을 쏘아댔다.
‘젠장, 이곳 지형도 모른 채 싸워야 한다니.’
젭 스튜어트가 기병대를 끌고 가는 바람에 정찰이 개판이다. 여러모로 찝찝한 상황이었다.
막스의 진형은 밖에선 제대로 관찰할 수 없는 지형이다.
일명 ‘낚시’ 진형으로, 낚싯바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이었다.
굽어진 바늘 내부는 분지처럼 밖에선 보이지 않고, 이를 둘러싼 능선에선 주변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거기에 능선 뒤로는 얼마나 많은 병력이 포대가 있는지 남군을 알 수 없었다.
“포병 위치로!”
잭슨 장군은 일단 포병전으로 적들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이전보다 늘어난 북군의 화력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잭슨은 포탄도 아끼고 병사들의 체력도 비축할 겸 공세를 멈추었다.
전투 첫날. 남군은 게티즈버그 마을 북쪽을 빼앗았다. 이를 승리로 여긴 로버트 리는 모든 군을 이끌고 게티즈버그 마을로 진군했다.
그리고 둘째 날.
게티즈버그 남쪽으로 모여든 남군이 세 방향에서 북군을 공략했다.
이렇게 해서 좁아터진 마을에 모인 양측 병력이 21만. 공격을 선호하는 로버트 리는 망설임 없이 공격을 개시했다.
서로 간의 거리는 1.2km. 평야를 사이에 두고 언덕 위의 북군을 공격해야 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막스가 지휘관들에게 소리쳤다.
“적들은 이곳의 정확한 지형도, 우리의 병력도 알지 못한다! 이제부터 모든 걸 쏟아내라! 포병 위치로!”
언덕 위 흩어졌던 포대는 이미 간격을 상당히 좁힌 뒤였다. 이런 효과로 명령체계가 단일화되고, 그동안 산발적으로 쏴대던 포탄이 포병 스팸으로 한 곳에 집중포화 되어
쏟아졌다.
펑펑!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굉음이 울렸다. 이윽고 밀집된 남군 보병들이 파편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남군은 야포 190문, 북군은 421문이다.
게다가 북군은 포탄의 사정거리에서도 지리적 이점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포병전에선 남군의 포탄이 닿지 않았다.
“포병들은 두려워 말고 거리를 좁혀라!”
하지만 남군 지휘관들의 말이 무색하게 언덕 위, 길리수트와 위장복을 두른 저격병들이 남군 포병들과 장교들을 제거해나갔다.
하지만 수많은 보병의 진격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리는 보병들이 능선에 다다르자, 참호에서 대기했던 북군의 보병들이 상체를 내밀어 총탄을
쏟아냈다.
“절대 능선 위로 올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
돌격하던 남군 보병들이 평원에서 고꾸라졌다.
총탄이 빗발치는 속에 로버트 리는 조금도 전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둘째 날의 전투는 남군의 완벽한 패배로 끝났다.
평원에 진지를 구축한 남군은 병력을 정비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 밤.
하늘로 풍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수가 열 개가 넘어갔다.
“저, 저게 뭐지?”
“열기구 아니야?”
“근데 저렇게 작다고?”
북군이 관측용으로 사용한다는 열기구.
그 크기가 축소된 채 남군 진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남군의 병사들이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치이이익.
가스를 뿜어내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다가올 즈음. 콰앙-소리와 불꽃이 번쩍이더니 공중에서 파편이 퍼부었다.
“......”
천막을 뚫고 잠자다 죽고, 보초를 서다 죽는 병사들도 생겨났다.
로버트 리와 장교들은 아수라장이 된 진영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동이 틀 때까지, 이런 엽기적인 폭격이 몇 번이나 더 이루어졌다.
“야이 미친 새끼들아!”
“꼭 이렇게까지 해야 속이 후련하겠냐!”
2차대전 당시 일본이 미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열기구 폭탄을 사용했는데, 막스는 이를 응용했다.
거리가 가까운데다, 열기구 바구니에 실은 수류탄 뇌관으로 시간을 지정한 일종의 시한폭탄으로 볼 수 있었다.
어찌 됐든, 무작위적으로 쇄도하는 폭격은 비록 그 위력이 크지 않았지만 남군을 극도의 피로감으로 몰아넣었다.
병사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게티즈버그 전투 3일차.
아침이 되고 날이 밝았을 때.
극도로 분노한 로버트 리는 한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피켓 장군. 병력을 이끌고 저 능선을 탈환하십시오.”
“...... 알겠습니다!”
역사는 뒤틀렸지만, 무모함은 그대로인가.
로버트 리는 막스가 쳐놓은 심리전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조지 피켓 장군은 12,500명의 보병 병력을 이끌고 그 유명한 ‘피켓의 돌격’을 강행했다.
“우리를 멈추는 건 오로지 죽음뿐이다!”
“돌격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