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3화 (233/360)

#233 빅스버그와 사우스캐롤라이나

게티즈버그에서 대승을 거두었어도 남부 연합은 항복을 고려하지 않았다.

로버트 리 장군이 설령 퇴각하는 병력 전부를 잃어도 남부 연합 대통령은 결사 항전을 택할 가능성이 컸다.

‘그동안 남군을 너무 띄워줬어.’

제1차 불런 전투부터 페닌슐라 전투까지.

무능한 북군 지휘관들이 대차게 말아먹은 탓에 남군은 희망 고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적, 물적 자원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이길지도 모른다는 착각, 아니 집단 최면에서 남군은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좀 더 극단적인 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지.’

그러기 위해선 남부 연합을 절망으로 몰아넣을 또 다른 카드가 필요한데.

‘빅스버그’와 해리엇 터브만 장군이 바로 그 카드였다.

게티즈버그 전투가 벌어지기 전.

남북전쟁의 열쇠인 미시시피주의 빅스버그.

말을 타고 달려온 연락병이 율리시스 그랜트에게 소식을 가져왔다.

“존 포터와 맥클레넌드 장군께서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상황은?”

“조셉 존스턴 장군과 교전을 펼치고 있습니다만. 상황이 좋진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뭔가 해보겠다고 총사령관 지시까지 거부한 장군들이다.

‘이제 와서 증원 요청이라니.’

팔짱을 낀 채 볼을 긁적이던 그랜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입을 뗐다.

“증원할 여유는 없다. 두 장군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전해.”

“...... 알겠습니다.”

침울한 표정을 지은 맥클레넌드 휘하의 연락병은 다시금 북쪽으로 향했다.

총사령관 술수에 말려든 포터와 맥클레넌드.

조금은 불쌍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자기들이 초래한 상황인데.

두 장군의 독자적인 행동 덕분에 율리시스 그랜트는 남군의 전력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연방 해군이 미시시피강에서 함포사격을 하는 동안, 그랜트는 빅스버그 남쪽 3km에 떨어진 곳에서 7만여 병력을 강 건너편으로 랜딩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늪지와 강이 얽힌 남쪽을 우회하고 동쪽에서부터 빅스버그를 공략했다.

원 역사에선 이 과정까지 오는 데만 3만의 병력이 넘게 희생된다. 적군의 기습과 매복, 보급로 차단과 수로에 빠져 죽는 북군 병사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총사령관의 전략은 최대한 병력 손실 없이 빅스버그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 시작이 바로 존 포터와 맥클레넌드.

둘을 이용해 남군의 이목을 끌고 전력을 분산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적중했다.

그랜트는 무려 6개월간 계획했던 빅스버그를 마침내 포위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7만 병력이 행군한 거리가 450km.

그사이 30여 차례 교전이 있었고. 보급물자가 불에 타고 병사들도 약 3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재 셔먼은 빅스버그 동쪽 5km 떨어진 곳에서 조셉 존스턴 장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고.

그랜트는 빅스버그를 고립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는 총사령관의 지시에 따른 판단이었다.

- 난공불략의 요새를 무리하게 공격해봐야, 우리 병력만 손실입니다. 빅스버그를 고립시키면 스스로 무너질 겁니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사람이야.’

총사령관의 전술은 딱히 복잡하지도 않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크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을 계산하고 대응 방안까지 마련해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게티즈버그의 상황을 모르지만, 그랜트의 마음속 총사령관은 이미 ‘전쟁의 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랜트는 저 멀리 빅스버그 요새를 응시했다.

남부 연합의 존 팸버튼 중장이 2만여 병력과 요새에 틀어박혀 공성전에 돌입, 한 달째에 접어들었다.

‘슬슬 한계가 왔을 텐데.’

요새로 들어가기 전, 팸버튼은 주변에 먹을만한 것을 모조리 긁어갔다. 하지만 그걸로는 병사들과 빅스버그 시민들까지 먹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그랜트가 턱을 매만질 때, 셔먼 장군 휘하의 연락병이 달려왔다.

“장군님! 리치먼드 전투에서 아군이 승리를 거뒀습니다!”

‘거의 다 됐군.’

리치먼드는 빅스버그 서쪽으로 30km 떨어진 루이지애나주의 마을. 빅스버그에 루이지애나산 식품을 공급하는 중요한 보급처다.

그랜트는 셔먼 휘하의 미시시피 해병 여단과 조셉 모우어 장군이 이끄는 여단을 동원해 공격을 지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급처를 함락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요새를 철저히 고립시켰구나.’

빅스버그는 요새 자체보다 주변에서 더 많은 전투가 벌어진 특이한 경우였다.

천혜의 요새, 난공불략의 요새.

그 말이 무색할 만큼 주변부터 박살내는 전략이 적중한 셈이었다.

그랜트는 SFBC 대원이자 참모장인 클루이 준장에게 다음의 지시를 내렸다.

“버팔로를 사냥하게. 모자란 건 주변에서 공수를 해오든 상관없네. 오늘부터 병사들의 배에 기름을 좀 채워야겠어.”

“바람도 적당하니, 냄새가 잘 퍼지겠네요.”

클루이는 그랜트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는 예전에 막스가 사용했던, 굶주린 적들을 동요시키는 방법을 써먹으려 했다.

타닥 타닥.

3만에 달하는 북군이 빅스버그를 둘러싼 채 모닥불을 피웠다.

그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희생된 버팔로만 천여 마리. 그 외 야생에서 풀을 뜯는 소들까지 닥치는 대로 잡았다.

치지지직.

전군이 동시에 피운 모닥불과 적당히 고기에 늘어 붙은 소금과 후추 향내가 연기 속에 섞여 평원에 퍼지기 시작한다.

“악마 같은 새끼들.”

“고기 처먹고 배탈이나 나라!”

“...... 욕할 힘도 있구나. 애껴 새끼들아.”

빅스버그 요새 안. 피골이 상접한 남군 병사들은 신음을 흘리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게 사흘 내내 저녁때마다 불을 피워 고기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게티즈버그에서 막스가 대승을 거둔 다음 날.

윌리엄 테쿰셰 셔먼 장군이 빅스버그 동쪽에 있던 남군의 조셉 존스턴 군단을 미시시피주 주도(州都) 잭슨까지 몰아냈다.

애초에 조셉 존스턴은 공성전을 펼치려는 팸버튼 중장에게 요새를 버리고 병력을 보전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하지만 팸퍼튼은 빅스버그의 중요성을 따지며 공성전을 

고집했다.

그리고 증원군을 기다리다 지친 팸퍼튼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랜트에게 쪽지를 보냈다.

평화 협상을 의논하자는 내용이었다.

“항복이면 항복이지, 평화 협상은 무슨.”

율리시스는 참모인 클루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 했네.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포트 도넬슨 요새처럼,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대중에게 율리시스 그랜트는 ‘무조건 항복’ 장군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런데 빅스버그 공략에 지쳤는지, 그랜트는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조급함을 내비쳤다.

게다가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 했다.

요새에 있던 남군이 작정하고 뛰쳐나오면 교전이 불가피하고, 아군의 희생도 따를 터였다.

“여기 오기까지 온갖 개고생을 했네. 저녁마다 고기 먹는다고, 병사들의 피로가 풀리진 않을 걸세.”

“하면 어떤 제안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수용소에 있는 남군 포로들을 풀어주는 건 어떤가? 연방 입장으론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러운 일이니 말일세.”

수용소에 있는 군인들은 궁핍과 굶주림에 뼈다귀만 앙상한 상태다. 그들을 풀어준다 한들 다시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요새에 있는 남군 병사를 수용소로 데려가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릴지도 모르고.

원 역사에선 실제로 그랜트가 빅스버그 항복을 대가로 남군 포로 3만여 명을 풀어준다.

다시는 저항하지 못할 거라 예상했지만, 석방된 남군 병사들은 이후 전투에서 줄기차게 북군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랜트의 명백한 오판이자, 법정에 회부되어 논쟁거리를 만든 사건이었고.

막스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방법이었다.

하지만 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더욱이 항복할 때 그 처리 방법까지 시시콜콜하게 지시하는 건 상황에 맞지도 않았다.

해서 막스는 클루이에게 다음을 지시했다.

- 만약 그랜트 장군이 포로들을 풀어주려고 하면, 네가 막아. 반드시. 기필코!

막스의 편지를 떠올린 클루이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 대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알았을까?’

클루이는 막스의 선견지명에 혀를 내둘렀다.

생각할수록 놀랍지 않은가.

가끔은 이 전쟁을 보스가 벌인 게 아닐까 의심이 든 적도 있었다.

어찌 됐든. 클루이는 어떤 식으로 그랜트를 설득할지 고민이 되었다.

반대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막스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자기한테 말리라고 한다?

이는 그랜트에게 지나친 간섭, 개입으로 비춰질 걸 염려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고민 끝에 클루이가 그랜트에게 말을 건넸다.

“포로를 풀어주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째서?”

“...... 총사령관께서 그러셨습니다.”

‘문제 되면 이전 총사령관, 맥클레란이라고 해야지!’

클루이는 그랜트의 눈치를 살폈다.

막스는 클루이가 알아서 하길 바랬지만, 결국 막스를 팔았다. 그리고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흠. 총사령관이 그렇게 말했다 이거지.”

율리시스 그랜트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숨은 뜻을 파악하려 했다. 그리고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는 걸로!”

율리시스 그랜트는 지금껏 선택의 기로, 혹은 갈등 국면에 총사령관의 결정에 따랐다.

사실 포로를 풀어주는 것도 마음 한편으론 찝찝한 일이었다. 화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까짓거 며칠 버티지 뭐.’

그랜트는 총사령관이 반대하는 걸 굳이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

조건을 거절한 지 사흘.

예상보다 팸버튼이 쉽게 무너졌다.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꽉 막힌 그랜트에게 팸버튼은 1만 8천 병사들과 172문의 대포, 5만 개의 소총을 넘기기로했다.

물론 고급 장교들은 석방해주는 조건이었다.

“이건 무조건 받아야지.”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지 사흘.

서부 전선의 율리시스 그랜트가 마침내 빅스버그 점령에 성공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북부 메릴랜드에서 배를 타고 남부로 넘어온 부대가 찰스턴 해안가 마을에 상륙.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40km 떨어진 섬머빌 부근에 도착했다.

‘여기가 접선 장소로군.’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주변을 둘러봤다. 이때 나무 위에 붉은 천이 눈에 들어왔다.

대원들은 수풀 속에 몸을 감추고, 남자는 그곳을 향해 은밀히 접근했다.

그리고 이때.

“나는 죽은 흑인을 팔지 않아요.”

“...... 원하는 곳 언제 어디서나 그를 묻어도 좋습니다. (더럽게 기네).”

“풉.”

넝쿨 속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리엇 터브먼이었다.

남자 역시 스카프를 벗자, 그녀의 눈에 놀라움이 번져갔다.

“목소리가 익숙하다 했는데, 콜린이었군요?”

“나쁜 놈이 있다고 해서, 제가 직접 왔죠. 그나저나, 다음부턴 암호 좀 간단하게 해요.”

둘이 주고받은 암호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있는 구절. 투덜거리던 콜린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터브먼과 포옹을 했다.

지하철도 지휘관과 역장의 만남. 둘의 인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다시금 이어졌다.

“라파예트는요?”

“섬머빌 수용소에 있어요. 거기서 연방 포로들을 고문하고 정보를 빼내고 있다더군요.”

콜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여기까지 온 이상, 지독하게 변한 변절자를 제거해야 한다.

터브먼이 목소리를 줄여 물었다.

- 남부를 탈출하려는 노예들이 많아요. 그 수가 적지 않은데, 전부 데려갈 수 있을까요?

터브먼은 북군 포로뿐 아니라, 노예들도 북쪽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콜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 총사령관이 스케일이 좀 큽니다. 이번 작전에 배가 꽤 많이 동원됐어요. 좌석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터브먼.

어차피 해상은 진즉에 북군이 장악한 상황.

게티즈버그와 빅스버그와는 또다른 충격을 전하기 위해. 막스는 터브먼의 작전을 위해 해군 사단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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