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비겁하게 총 말고 칼로 붙자
라이언 홀드는 삼천여 명의 인디언들을 이끌고 캔자스강을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피해야 했기 때문에, 강을 건너 북쪽을 타고 은밀히 이동했다.
그리고 로렌스에 도착할 즈음.
마을로 진입하는 대신, 변두리에서 진을 치고 언제 있을지 모를 습격에 대비했다.
캔자스 로렌스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빅불 크릭. 풀숲이 우거진 중앙 공터에서 게릴라 리더들의 회의가 열렸다.
이들은 사전 정찰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로렌스 습격을 계획했다.
“지금 로렌스는 텅 비었다고 봐도 무방해. 있어 봐야 병신같은 유색 부대뿐이겠지.”
“제임스 헨리 레인이 부대를 미주리와 아칸소로 쪼갰다. 일부는 빅스버그에도 섞였고.”
“결론은 로렌스에 있는 병력은 고작해야 백 명도 되지 않을 거란 얘기지. 거기다 대부분 총도 몇 번 안 쏴본 훈련병들이야.”
이때 모자에 삐딱하게 별 배지를 단 ‘블러디 빌’ 앤더슨이 나뭇가지를 들며 입을 뗐다.
“어제 특수부대원들이 로렌스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특수부대?”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짓자 앤더슨이 이죽거렸다.
“특수부대 이름만 들어도 두려운 모양이군. 그럴 거면 대체 여긴 왜 모인 거야?”
“전쟁터에 있어야 할 놈들이 하필 이때 로렌스로 들어온 게 이상해서 그런 거다. 그런 의문쯤은 가져야 정상 아닌가?”
조지 토드가 앤더슨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때 윌리엄 콴트릴 레이더스의 이인자이자 앤더슨을 수하로 두었던 조지 토드.
콴트릴의 죽음 후 앤더슨에게 밀려난 그는 텍사스에서 게릴라들을 모집해 활동하고 있었다.
같은 목적으로 모였지만, 앤더슨과 토드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앤더슨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문은 놈들의 머리 가죽을 어떻게 벗길지를 궁리하는 거야. 지레 겁먹는 모습을 보면 부하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여러 지역의 게릴라가 모였지만, 가장 강력한 세력은 블러디 빌 앤더슨. 오백여 명을 휘하에 둔 그는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건방진 새끼.’
속내와는 달리 토드는 입술만 씰룩거렸다.
이 이상 앤더슨과 각을 세워봐야 좋을 게 없었으니 말이다.
토드가 침묵하자 다른 게릴라 리더도 입을 닫았다. 분위기를 장악한 앤더슨이 말을 이었다.
일방적인 작전 계획이었다.
“와카루사 강을 건너면, 곧바로 오레드 산을 점거한다. 절반은 정상에 지어진 요새를 점령하고, 나머지는 북쪽 캔자스강에 있는 기지를 공격하는 거야.”
“기지라면 유색 부대 훈련소 말인가?”
누군가의 질문에 앤더슨의 눈이 가늘어졌다.
“동양인 새끼가 만든 곳이기도 하지. 지금의 총사령관이 되기까지, 놈을 키워준 곳이 로렌스다. 그러니 철저히 박살을 내야지.”
남부 연합의 존속을 위해.
노예제 폐지론자들을 척살하기 위해.
패배의 늪에 빠진 남군의 전세 역전을 위해.
그리고 백인의 자리를 빼앗은 동양인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게릴라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한편, 회의 장소와는 조금 떨어진 곳.
나무에 등을 대고 기댄 남자가 습관처럼 방아쇠를 손가락에 걸고 현란한 ‘건 스핀’을 하고 있었다.
피치에게 총을 쏜 소년. 제시 제임스도 어느덧 16살이 되어 앤더슨 레이더스의 위협적인 게릴라 대원이 되어 있었다.
“제시, 대장이 모이란다.”
“드디어 끝난 모양이네. 이제 우리 로렌스로 가는 거야?”
“글쎄. 가서 들어봐야지.”
형 프랭크의 말에 제시가 몸을 일으켰다.
이 둘이 사라지려 하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냥 가면 어떻게 해. 이거나 좀 도와줘!”
작은 키의 남자가 제임스 형제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형제는 콧방귀를 뀌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지금 머리 가죽 말리래? 우린 대장한테 욕먹기 싫다고. 알아서 하고 와.”
“아오, 개새끼들. 자꾸 그러면 나도 우리 형 데려온다?”
“없는 거 알아, 새끼야. 아무튼, 먼저 간다!”
152cm의 단신, 아치 클레멘트는 멀어져가는 제임스 형제를 보며 욕을 퍼부었다.
손은 바쁘게 나뭇가지에 말리던 머리 가죽들을 수거해 가방에 쑤셔 넣었다.
며칠 전 죽인 사람들의 머리 가죽으로, 가방 안에는 머리카락이 뒤엉킨 수십 개의 머리 가죽이 더 들어 있었다.
*
“내일 로렌스 마을을 습격한다. 다른 게릴라들이 오레드 산과 북쪽 기지를 공격할 때, 우리는 마을 중심을 장악할 거야.”
블러디 빌 앤더슨은 날카로운 눈매로 부하들을 훑어보며 지시를 이어갔다.
“주요 타겟은 로렌스 시장과 의원들이다. 메독스와 아치는 그들을 잡고, 나머지는 시청과 의회를 공격한다.”
“알겠습니다!”
“이번 습격을 기점으로, 우린 동양인 새끼를 노릴 것이다. 북군 총사령관의 목을 따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니까.”
윌리엄 콴트릴은 막스를 라이벌로 여겼다.
앤더슨도 마찬가지다. 죽은 콴트릴의 의지를 이어받은 듯, 몇 번이나 막스에게 당했음에도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에서는 충분히 막스를 상대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만큼 사람도 많이 죽이고 경험을 쌓았으니 말이다.
앤더슨의 나이는 23.
대원들의 평균 나이도 20살에 불과하다.
이들의 젊음과 패기는 전쟁을 거치며 광기와 잔혹함으로 무장되고. 전리품으로 머리 가죽을 벗기며 잔인함을 과시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가학적 사이코 집단.
그게 앤더슨 레이더스였다.
다음 날.
게릴라들이 로렌스로 진격했다.
그 수가 이천이 넘어갔다.
‘드디어 움직이는구나!’
게릴라들을 발견한 정찰병은 황급히 말 머리를 마을로 틀었다.
모름지기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보다.
이를 알고 있는 조 짐 주니어와 산초는 로렌스 주변으로 특수부대원을 점처럼 퍼트려놓았다.
그들은 정확하게 게릴라들의 접근 경로와 규모를 파악해 정보를 전달했다.
‘미친 새끼들이 진짜 습격했네.’
역시 보스의 예상은 어긋남이 없다.
라이언 홀드, 산초, 조 짐 주니어는 혀를 내두르며 기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럼 시작해 보자고.”
셋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듯 뿔뿔이 흩어졌다. 잠시 후.
대에에에앵.
로렌스 중심가에 있는 교회에 종이 세 번 울려 퍼졌다.
곧이어 퍼엉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붉은 불꽃이 쏘아졌다.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적들의 습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멈칫하며 발걸음을 세우고, 이내 움직임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적들의 습격입니다!”
“어서 여자와 아이들을 마차에 태우고 마을 북쪽으로 가세요!”
“캔자스강을 넘는 게 여의치 않으면, 기지 쪽으로 대피하십시오!”
사람들이 말과 마차, 두 발로 황급히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를 며칠 동안 꽁꽁 숨어있던 무장한 인디언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
게릴라들이 폭이 좁은 와카루사강을 넘을 때, 하늘에 떠 있는 붉은빛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야!?”
습격하는 찰나, 하늘에 떠오른 빛이라니.
기이한 불빛을 바라본 자들이 강을 건너길 주저했다. 뭔지 몰라도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동요하지 마라! 놈들이 눈치챘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병력이라곤 애송이 흑인들 뿐이다!”
“예정대로 밀고 들어간다!”
“오늘 로렌스는 불타 없어질 것이다!”
게릴라 리더들이 부하들을 채근했다. 마지못해 불빛에서 고개를 돌린 대원들은 말을 움직여 좁고 얕은 와카루사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전부 건넌 뒤엔, 병력을 나눠 각각의 목표지점을 향했다.
선두로 치고 나간 무리는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에서 모인 게릴라 부대. 로렌스를 내려다보는 오레드산이 그들의 목표였다.
“정상에 있는 요새를 점령하라!”
게릴라들이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는 요새가 있었는데, 수년 전 막스의 제안으로 제임스 헨리 레인이 지었던 ‘헨리 요새’였다.
그런데 요새가 가까워질 즈음.
요새 창문에 머리통들이 빼꼼히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옥상에서 무언가가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데. 착각인지 뭔지 빛이 일렁이며 뭔가가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드르르르륵.
‘설마!’
투드드드드드.
빗발치는 총탄이 게릴라들의 몸에 쑤셔박혔다.
빗나간 총알이 땅을 파고, 파편들이 튀긴다.
말이 곤두박질치고, 게릴라들이 뒤엉켜 넘어졌다.
파바바박.
몸을 일으킬 틈도 없이 뒤통수와 등에 총알이 쇄도했다. 피 분수가 일며 순식간에 텍사스 오클라호마 게릴라들이 전멸했다.
로렌스 북동쪽. 캔자스강에 인접한 기지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아칸소와 루이지애나에서 모인 게릴라들이 돌격하던 때.
땅에서 수십 개의 머리가 새싹 돋듯 솟아났다.
깃털들도 간혹 보였는데, 아무래도 인디언들 같았다.
“?”
게릴라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경악으로 바뀔 때, 참호에서 삐죽이 나온 총구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탕! 탕!
투드드드드.
라이플과 개틀링 기관총이 뒤섞이며 총탄을 쏟아냈다.
‘젠장!’
마을 중심부로 돌격하려던 앤더슨이 급히 말을 멈춰 세웠다. 양쪽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이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무엇보다 게릴라들은 기관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
으니까.
“퇴각이다!”
저돌적이지만 앤더슨은 눈치가 빨랐다.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누구보다 빨리 말 머리를 틀었다.
“...... 저것들은 뭐야.”
마을에서 진을 치고 잔뜩 기습을 준비했던 특수대원들이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인디언들은 도망치는 게릴라들을 향해 겁쟁이들이라며 울룰루 소리쳤다.
그들은 곧바로 매복을 해제하고, 밖으로 튀어나와 말부터 찾았다. 그리고 말허리를 박차 추격을 시작했다.
*
탕! 탕!
“이, 개자식들!”
와카루사강 건너편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강을 건너려던 앤더슨은 분노를 터트리며 다시금 동쪽으로 말 머리를 틀었다.
그 와중에 죽어 나간 부하들만 수십이었다.
“굳이 뭉칠 필요 없다! 알아서 살아남아!”
‘시발, 고작 저딴 명령을 내려?’
잔뜩 인상을 찡그린 제시 제임스가 프랭크에게 소리쳤다.
“형, 우린 서쪽으로 가자!”
프랭크는 이유는 묻지 않고 동생의 말을 따랐다. 제임스 형제가 앤더슨과 방향을 달리하자.
‘제시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콜 영거가 동생 짐을 데리고 제임스 형제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말 허리를 박차며 서쪽으로 질주했다.
와카루사강은 서쪽 클린턴 호에 이르러 강이 끊긴다. 하지만 그 전에 강줄기가 갈리게 되는데, 남쪽으로 뻗은 워싱턴강은 강폭이 좁은 대신 유속이 빨랐다. 게다가 강 주
위로 나무와 절벽이 빼곡해 눈에 띄지도 않았다.
작정하고 추적하는 적들을 뿌리치긴 쉽지 않다. 게다가 상대는 인디언들과 특수부대원이다. 여러모로 잡힐 확률이 높았다.
제시 제임스가 노린 건, 이 강을 이용해 남쪽으로 탈출하는 방법이었다.
‘언제든 탈출로는 미리 계획해두는 법.’
말을 버린 제임스와 영거 형제는 강가에 있는 쓰러진 통나무를 물가로 끌고 왔다.
그리고 이를 밧줄로 서로 엮어 통나무와 하나가 되어 물속에 몸을 빠트렸다.
“콜, 탈출에 성공하면 우리가 게릴라 부대를 만드는 건 어때?”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이름은 제임스-영거 레이더스가 좋겠네.”
통나무를 붙잡고 얼굴만 동동 내민 채 이들은 로렌스로부터 빠르게 멀어져갔다.
같은 시각.
블러디 빌 앤더슨이 인디언들에게 가로막혔다.
분노한 그는 총을 쏴 길을 뚫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총탄이 가슴에 박혔다.
‘시발, 내가 고작···. 인디언한테 죽는다고?’
죽는다 해도 상대는 총사령관 정도는 되어야 했다. 미주리주에 악명을 떨친 게릴라치곤 허무한 죽음이었다.
말에서 떨어진 앤더슨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때, 말에서 내린 인디언이 다가왔다.
그는 말없이 칼로 앤더슨의 목을 찔러왔다.
앤더슨은 모르고 있지만, 그리 억울할것 없는 죽음이다.
그를 죽인 상대는 머지않아 이름을 떨칠 인물.
치리카후아 아파치족의 젊은 추장 고야슬레.
훗날 제로니모라 불리는 인디언이었으니까.
한편, 머리 가죽 모으는 취미가 있던 아치 클레멘트 역시 인디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좆같은 인디언! 비겁하게 총 말고 칼로 붙자, 새끼야!”
총보다 칼을 잘 쓰는 아치 클레멘트.
머리 가죽 벗길 때 쓰던 보위 나이프를 들며 상대를 도발했다.
그런데 이게 통했는지, 인디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치와 마찬가지로 한 손에는 보위 나이프를 쥔 채.
“좋아, 덤벼.”
조 짐 주니어가 오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