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영국의 무기상인
- 매형들, 가족 잘 부탁해요.
- 다, 당연하지.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몸조심하고.
조 짐 주니어의 집에서 하루를 보낸 대원들은 홀리데이와 함께 로렌스로 돌아갔다.
산초는 마을에 있는 라이언 홀드를 보자마자 살살 꼬드기기 시작했다.
“너 어메이징한 임무에 동참 안 할래?”
“어, 안 해. 미시시피주라 그랬지? 어휴. 잘 다녀와라. 죽지 말고."
몇 번을 꼬드겨도 라이언 홀드는 넘어오지 않았다. 하긴 제정신이 아닌 바에야 누가 적진 한복판을 찾아갈까.
그날 로렌스에서 무장을 정비하고, 산초와 조 짐 주니어는 50명의 대원과 함께 남쪽, 미시시피주로 향했다.
홀리데이는 무거운 짐을 끌고 캔자스 배에 올랐다.
토피카 시장 2년. 캔자스주가 자유주로 선포되고 초기 주도(州道) 시장이라 홀리데이는 온갖 잡다한 업무에 파묻혀 지내야 했다.
‘어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가방에는 대륙횡단 철도와 그의 염원이 담긴 ‘애치슨, 토피카 & 산타페(AT&SF)’ 철도 기획서도 들어 있다.
AT&SF 경우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바글거리는 애치슨 마을이 골칫거리였으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마을을 떠나거나 마음을 바꿔먹으면서, 부지를 내주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은 자신이 품어왔던 ‘철도의 꿈’을 실현하는 것.
홀리데이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의 기획안으로 인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텍사스에서 캔자스로.
소 떼를 몰고 다닐 카우보이들의 등장.
그들은 동부에 소를 팔기 위해 AT&SF 철도를 이용할 것이다.
*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탈출한 포로들은 건강 상태를 확인한 뒤 고향으로 향했다.
제대는 아니고, 짧은 휴가 후 다시 군대로 복귀를 해야 했다.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
“이렇게 오랜만에 모이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미주리와 테네시에서 노예들을 탈출시켰던 때가 어제 같습니다.”
존 브라운은 당시를 회상하는 듯 허공을 응시했다. 해리엇 터브먼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콜린은 입에 물은 시가에 불을 붙일지 말지를 고
민했다.
“그나저나 자유인들은 게티즈버그와 하퍼스 페리 공사 현장으로 투입 시킬 생각인데. 어떻습니까, 터브먼 장군?”
존 브라운은 예전부터 해리엇 터브먼에게 꼬박꼬박 장군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존. 아니, 대통령님.”
“말 편하게 하세요. 그리고 고맙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사실 추위와 배고픔 앞에서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노예들은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썼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생활고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노예가 되기 위해 되돌아가기도 했으니까.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존 브라운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탈출한 천여 명의 노예에게 일자리부터 제공하고자 했다.
“그나저나, 첩보 활동은 이제 그만하셔도 될 거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터브먼 장군.”
“자꾸 장군이라고 하시면, 진짜인 줄로 착각해요.”
“착각이 아니라 항상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보상했으면 좋겠군요.”
“...... 그런 걸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에요.”
저 말이 과연 진심일까.
겉으로 드러내면 자신이 한 일이 폄훼 당할 것 같고, 입을 다물자니 현실적인 문제가 터브먼을 괴롭힐 것이다.
존 브라운은 어떻게 해서든 터브먼에게 보상하고 싶었다. 그런데 걸리적대는 게 너무 많다.
남녀 차이, 인종 차이.
해리엇 터브먼을 장군, 아니 군인으로 만드는 일조차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막스가 경계를 낮추긴 했으나, 그건 막스가 특별해서일 뿐.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했다.
셋의 대화가 끝나고, 존 브라운과 콜린만이 남아 밀담을 나눴다.
“골든 써클 기사단이 또 나를 노린다고?”
“남군 게릴라들과 섞여 일을 벌인다고 했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존이 게티즈버그로 향할 때 노릴 가능성이 커요.”
“대비를 철저히 해야겠군.”
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떠나기 하루 전, 저한테 미리 알려줘요.”
“알겠네. 그날 함께 가는 일행들이 많을 텐데. 이래저래 신경 쓸 일만 늘어나는군.”
링컨 부통령, 수어드 국무장관, 섬너 전쟁장관.
그 외에 의원들과 각료들까지 게티즈버그에서 대규모 행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어찌 전쟁이 벌어지고, 2년이나 흘렀네. 지금쯤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피를 흘리는지, 어떤 국가를 지향하는지 말해줄 필요가 있네.”
미국이란 국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독립선언서에 명시되었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를 다시 천명할 필요가 있었다.
수세에서 공세로의 전환.
전쟁의 변곡점이 된 게티즈버그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
버지니아 매나사스.
사령부를 게티즈버그에서 이곳으로 옮긴 막스는 본격적인 리치먼드 조이기에 들어갔다.
“레이놀즈 군단이 도스웰까지 진격했습니다!”
“핸콕 군단이 몬트필리어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리치먼드와는 불과 4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마을. 막스는 적군의 수도를 직접 공격하기보단, 주변을 포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로버트 리가 군대를 이끌고 리치먼드에 틀어박힌 이상, 공성전은 쉽지 않아.’
한때 펜실베이니아까지 넘어온 로버트 리 장군은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막대한 병력 잃고 퇴각했다.
결과적으론 10만에 달하는 병력 절반을 날려버린 끝에 지금은 리치먼드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로버트 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지막지한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와 탈영자로 공백이 생긴 병력을 채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남부 경제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무리한 징병과 세금 징수는 미시시피주의 뉴튼 나이트와 같은 반 남부 동조 세력들의 반감만 살 뿐이었다.
‘우리는 남부 병력을 갉아먹으면서 리치먼드를 압박한다.’
물론 남부 스스로 망할 때까지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윌리엄 테쿰셰 셔먼이 남부를 초토화하는 일명 ‘바다로의 진군’. 그 끝에 동부, 서부가 합쳐 리치먼드를 공략하는 게 막스의 그림이었다.
군단들의 진영을 살펴볼 때, 이등병이 막스를 찾아왔다. 그는 해외 손님을 전문적으로 응대하는 넬른 헤리스라는 자였다.
“관전 장교들이 총사령관님과 미팅을 하고 싶어 합니다.”
“주제는?”
“게티즈버그 전투에 관한 건인데. 무기와 병력 포지션, 운용 등을 묻고 싶다고 하네요.”
“그걸 공짜로 알려달라고?”
막스가 코웃음 치자 소위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미팅과는 별개로 영국에서 온 무기 상인이 총사령관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또 개틀링 기관총을 원하는 건가? 내가 분명 거절했을 텐데.”
“이번에 온 무기 상인은 좀 다릅니다. 일본 이야기를 하더군요.”
“일본?”
흥미로운 표정을 지은 막스가 넬른 헤리스를 쳐다봤다.
“지금 만나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30대 후반의 영국인이 넬른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총사령관님. 윌리엄 하르트라고 합니다.”
“막스 조입니다.”
막스는 윌리엄 하르트가 건네준 명함을 훑어봤다. 회사 이름은 ‘자딘 매시선’이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로 시작해, 중국 광저우에 설립된 이 회사는 아편 밀수와 차를 영국에 수출했다. 또한 아편전쟁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현재는 홍콩에 본사를 두고 다방면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무기도 그중 하납니다. 최근 일본 쪽에 집중하고 있구요.”
“무기 업자들이 많을 텐데, 굳이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알기론, 총사령관께서 조선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막스가 탁자에 마주 앉은 윌리엄 하르트를 담담하게 응시했다.
그러자 그는 은근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조선과 일본은 이웃 나라인데, 함께 손잡고 무기 사업을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영국과 프랑스도 이웃 나라 아닙니까?”
“...... 그야 그렇죠.”
“마찬가집니다. 뭐, 그거야 국가 간의 문제고. 일본에 사무실을 두었다고요?”
윌리엄 하르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코하마에 사무실이 있습니다. 현재는 일본에서 녹차를 주로 수입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품목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추측해보면, 자딘 매시선이 일본에 사무실을 만들고, 그곳 책임자는 다름 아닌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 앞으로 일본에서 막스와 무기 사업 경쟁을 펼칠 인물이었다.
‘일단 모르는 척하자.’
하르트는 일본의 잠재된 시장을 어필하며 막스를 무기 사업에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자, 그는 표정을 굳힌 채 말을 내뱉었다.
“솔직히 그쪽이 일본에 관심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조셉 헤코, 프란시스 홀과 일을 추진하고 계시잖아요?”
“제 뒷조사를 했군요.”
“뭐,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정보는 필수죠.”
“흠.”
막스가 팔짱을 끼며 입을 닫았다.
하르트를 바라보는 눈빛도 바뀌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이 하르트를 압박했다.
‘시발, 총사령관이라는 걸 깜빡했네.’
그래도 설마 영국인인 자신에게 총을 쏘진 않겠지.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도 그건 절대 해선 안 될 짓이었으니까.
어찌 됐든, 영업하러 왔다가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자꾸 쳐다보고 말하다 보니까, 상대를 단순히 까다로운 동양인 고객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깨닫는 순간 적막한 분위기가 하르트를 무겁게 짓눌렀다. 총사령관이라는 무게가 더해져 하르트를 갑갑하게 했다.
방황하던 시선이 옆에 있는 넬른에게 향했다.
노골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때.
“일본에 관한 건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미 터를 닦아 놓으셨다니, 저도 도움이 필요하겠네요.”
“....... 그, 그야 그렇죠. 분명 우리 자딘 매시선이 도움이 될 겁니다.”
“전쟁 때문에 당장은 사업에 신경 쓸 겨를은 없습니다만. 명함은 잘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악수까지 청하자 하르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무리가 조금 찝찝했지만, 총사령관의 끝말을 곱씹어보면 오늘 영업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하르트는 방금 있었던 분위기를 훌훌 털어버리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둘만 남게 되자 막스가 물었다.
“넬른, 할아버지가 어디에 계신다고 했지?”
“뉴욕 맨해튼에 계십니다.”
“별로 멀지 않네. 언제 한 번 찾아뵈어야겠어.”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막스의 말에 넬른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넬른 헤리스의 할아버지는 타운센드 해리스.
매튜 페리 제독이 일본을 강제 개항시킨 인물이라면, 타운센드 해리스는 첫 일본 총영사로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성사시킨 인물이었다.
일명 ‘해리스 조약’으로 불리는 이 협상은 철저히 미국을 위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 막부를 무너트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해리스는 일본에서 꽤 인기가 많은 인물이었다. 이는 후에도 그를 존경하는 일본인이 많다는 것에도 드러나는 사실이었다.
어찌 됐든, 타운센드 해리스는 5년간의 일본 총영사를 마치고, 현재는 공직에서 은퇴.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해리스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 일본으로 간 대원들이 생각난다.
‘잘 적응하고 있으려나.’
황야와 로키산맥, 심지어 전쟁터까지 겪은 대원들이라면 일본쯤이야.
오히려 훈련도 안 하고, 팅가팅가 노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
일본 시모노세키 항구.
콰아아앙!
펑! 펑!
“시발! 이게 뭔 일이냐, 대체!”
“일단 배로 튀어!”
히콕이 소리치자, 대원들이 우르르 배 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