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0화 (240/360)

#240 힘의 논리

“모르고 계셨습니까? 지금 연방 총사령관은 막스 조 소장입니다만.”

로버트 프루인 총영사관은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놀랍다는 듯 물었다.

프란시스 홀은 입을 쩍 벌린 채 말이 없고, 히콕은 헛웃음만 흘렸다.

‘뉴욕서 갱단 조지던 게 마지막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총사령관이 되었다고?

로버트 프루인은 이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업데이트된 내용은 대략 3개월 전으로, 게티즈버그 전투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남군이 버지니아를 넘어 메릴랜드까지 올라갔다고 하더군요.”

“...... 그럼 연방이 밀리고 있단 말입니까?”

“일단 그렇게 들었습니다. 조만간 맥두걸 대령이 오면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일본에 없단 말씀이네요?”

“중국 상하이에서 돌아오는 중입니다.”

맥두걸은 미 해군 함대를 이끌고 극동아시아를 돌며 미국 상선들을 보호했다.

프루인 총영사는 이제야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시모노세키에서 조슈번에게 공격받았습니다. 선박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있죠.”

“조슈번이 공격했다고!?”

대화를 엿듣기라도 했는지, 사무실에 있던 한 일본인이 불쑥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어눌한 영어 솜씨에 이어, 남자는 일본어로 칙쇼를 남발했다. 프루인 총영사에게 일본어로 몇 마디를 내뱉고는 영사관을 뛰쳐나갔다.

히콕이 물었다.

“누굽니까?”

“일본 해군을 총괄하는 가쓰 가이슈 군함봉행(軍艦奉行)입니다. 막부 관료죠.”

군함봉행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직책이고, 군함 제작, 건조, 기술자 양성을 관할했다.

가쓰 가이슈의 경우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위해 샌프란시스코까지 방문한 인물이었다.

‘막부의 고위 관료라.’

히콕은 가쓰 가이슈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막부에 줄을 대기에 적당한 인물이었다.

프루인 총영사가 히콕과 프란시스 홀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소파에 앉자마자 프란시스가 지금껏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일본인들은 서양과도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공격하는 게 이해가 안 가는군요.”

“겉과 속이 좀 달라요. 뒤에선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론 존왕양이를 외치죠. 제가 볼 때, 그들이 원하는 건 타도 막부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제패하고 왕의 권력을 받은 이후, 번주들은 막부의 그늘에 가려 숨죽이며 살아왔다.

조슈번이나 사쓰마번 같은 번주들은 막부를 무너트리고 왕권을 내세우는 왕정복고를 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무라이들이죠. 근 250년간 나라가 태평해서 할 일이 없어졌거든요.”

칼을 차고 다녀도 쓸 일이 없으니, 고작해야 주군들의 잔 심부름하는 정도.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농민들보다 가난해서 사무라이들의 지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라이들이 원하는 건 전란입니다. 나라가 어지러워야 자신들이 할 일이 생기거든요. 조슈번은 그들이 나설 수 있도록 존왕양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거죠.”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결국 교토의 일왕과 에도의 막부가 싸우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확실해요.”

일왕은 6월 25일까지 모든 외세는 일본을 떠나라고 선포하고, 막부는 5월까지 양이를 실천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기한이 끝나기도 전, 조슈번은 왕의 명령을 이행한다며 서양 상선들을 공격했다. 맹목적인 사무라이들은 그 명령에 따라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인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막부가 내세운 기한을 들먹이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거죠. 여러모로 막부 상황이 좋지 않아요.”

“그럼 우리 상선 수리비는 막부가 대신 책임져야겠군요.”

“그렇게 될 겁니다. 가쓰 군함봉행이 급하게 뛰쳐나간 것도 그걸 알기 때문이겠죠.”

‘괜히 총영사관이 아니구만.’

히콕은 새삼 프루인 총영사가 달리 보였다.

일본의 현 상황은 물론 앞일까지 예측하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총사령관 막스다.

뉴욕을 떠나기 전,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 일본에 내전이 일어날지도 몰라. 우리는 그 두 세력을 실컷 이용할 거고. 그러니까 양쪽에 인맥을 잘 만들어 놔.

미국에 앉아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일본의 앞날을 예측하는 게 가능한가. 아니면 조선인이라 어떤 징후를 알고 있던 걸까?

히콕이 또다른 미스테리에 몰두할 때, 프루인 총영사가 말을 건넸다.

“대통령께 내용은 전해 받았습니다만, 특수부대가 직접 올 줄은 몰랐군요.”

“그만큼 일본 시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겠지요.”

존 브라운은 막스의 요청에 따라 프루인 총영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연방의 자금 확보를 위해 무기 판로 국가를 다양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할 건 없다. 자국 상선 보호나 무역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흔했으니까.

“여기 있는 동안 제가 힘닿는 데까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뭐든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하세요.”

비록 시모노세키에서 공격은 당했지만, 미국은 일본의 최 우대국이다.

다른 유럽 열강들보다 입김이 강했다.

미 해군을 기다리는 동안 프루인은 일본 정부에 강력한 항의 서한을 보냈다.

명백한 조약 협정 위반이라며, 군사 행동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놀란 막부 관료들은 사태를 진정시키려 영사관을 찾아와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주일 뒤.

마침내 미 해군 함정 USS 와이오밍이 요코하마 항구에 도착했다.

산타할아버지처럼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노장. 데이비드 맥두걸 대령은 프루인 총영사와 함께 자신을 기다리는 무장한 미군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중 선두에 있던 화살표 코, 히콕이 악수를 청하자 엉겁결에 손을 붙잡았다.

“와이오밍 함장 맥두걸 대령이오만. 뉘시오?”

“연방 특수부대 소속 제임스 버틀러 히콕 대령입니다.”

“!?”

맥두걸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이내 악수하던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어우, 노인네가 힘이 아주.’

한번 해보자는 건가 싶어 히콕 역시 손에 힘을 주려 했다. 그런데 맥두걸이 웃음을 터트렸다.

“특수부대라니. 이거 만나서 영광입니다!”

맥두걸은 히콕의 표정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총사령관께서 게티즈버그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남군을 박살 낸 거. 아직 모르고 계셨죠?”

놀란 대원들의 입이 씰룩거렸다.

요 며칠 남군에게 밀려 퇴각한다는 소리에 걱정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속이 뻥 뚫렸다.

‘그럼 그렇지!’

보스가 누구인가. 퇴각 역시 뭔가 꼼수를 부린 게 분명했다. 멍청한 남군은 제대로 뒤통수 맞았을 테고.

“상하이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아주 난리가 났거든요.”

소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시모노세키 해협에서 일본이 서양 배를 공격했다는 소식도 빠르게 퍼졌다.

맥두걸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총사령관께서 남군을 박살 냈으니, 우린 협정을 위반한 놈들을 박살 내야겠군요.”

“동감입니다. 대충 넘어가서 될 일은 아니죠.”

히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보복이 어떤 건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프루인 총영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어설프게 넘어가면 조약은 힘을 잃는다.

이는 다른 국가에서도 미국을 우습게 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폭력이 자행되던 시대.

참는 건 곧 약하다는 뜻이었다.

다음 날.

맥두걸은 USS 와이오밍 함선을 이끌고 시모노세키 해협으로 향했다.

그리고 혼자서 조슈번 군 함선 4대를 격침 시켰다. 유럽의 노후 된 함선과 함포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맥두걸은 뒤이어 해안 포대에 융단 포격을 가해 쑥대밭을 만들었다.

이 공격으로 조슈번 군 8명이 죽고 7명이 부상 당했다. 물론 맥두걸도 피해는 있었다.

선체 11곳에 포탄이 떨어져, 6명의 해병이 죽고 4명이 다쳤다.

어찌 됐든 미 함정 하나가 무쌍 찍고 요코하마에 복귀한 사건은 일본 열도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조슈번에게 공격당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보복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란시스 홀과 히콕은 총영사와 함께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며 인맥을 만들어나갔다.

맥두걸이 작전을 위해 다시금 바다로 나가기 전, 요코하마의 한 기루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볼이 뻘게진 맥두걸은 흥에 취해 무용담을 늘어놓던 중.

“그러고 보니까, 내가 말했나 모르겠네. 상하이에 우리나라 상선이 있었는데, 배 이름이 뭔 줄 아나?”

당연히 모르지.

대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제네럴 막스 호! 그 밑엔 ‘조선의 위대한 아들 막스’라고 적혀 있었네.”

“오......”

“게티즈버그 전투에 감명받은 선주가 바로 이름을 그렇게 바꿨더라고.”

이 시기엔 종종 인물이나 지명으로 배 이름을 짓곤 했다. 막스 정도의 업적이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머지않아 조선과 무역하러 간다고 했으니, 탁월한 선택 아닌가? 하여간 선주 머리가 보통이 아니었다니까.”

“그 배 타고 조선 가면, 다들 놀라겠네요.”

“막, 폭죽 터트리고 꽃가루를 날려?”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자 옆에 있던 게이샤들도 미소를 머금으며 술잔을 따랐다.

“스고이!”

제너럴 막스 호가 몰고 올 파장을 아무도 알지 못한 채, 게이샤에 눈을 뜬 대원들은 빠르게 일본 문화에 적응해갔다.

*

미국 버지니아주 매나사스.

막스에게 서부 전선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 동부는 리치먼드 북부에서 대치 중이고, 반면 서부는 두 개의 전선을 이루고 있다.

빅스버그를 점령한 뒤 셔먼을 앞세워 동쪽으로 진격하는 그랜트 부대.

다른 하나는 ‘딥 사우스로 향하는 관문’으로 불리는 테네시의 채터누가를 함락한 킴벌랜드 군이다.

그런데 채터누가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혈 입성한 지휘관이 그랜트를 기다리지 않고 남군을 쫓다가 역습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재 상관의 명령을 무시한 윌리엄 로즈크랜스 소장은 채터누가에서 남군에 포위당한 채 공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상황을 보면, 당장은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롱 스트리트 장군이 두 개 사단을 증원했다고 하더군요.”

참모장들이 말하는 동안 막스는 지도를 응시하며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채터누가는 조지아로 향하는 관문.

남군은 북군의 조지아주 입성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다. 이를 뚫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랜트 사령관에게 채터누가 포위망을 풀 수 있도록 하고, 이 일에 존 기어리 군단을 투입할 수 있도록.”

동부에 비해 서부 전선은 리치먼드로 가기까지 거리가 엄청났다.

미시시피주, 앨라배마,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까지 거치고서야 버지니아에 도달할 수 있으니 거리만도 족히 1,700km에 달했다.

그 때문에 동부에서 서부를 지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버지니아에서 애팔래치아산맥을 넘고 채터누가까지 800km. 존 기어리가 2만 병력을 이끌고 행군하려면 20일은 걸리는 시간이다.

결국 채터누가 공성전은 그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참모장들이 나가고 막스는 책상에 쌓인 편지들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는 발신자의 이름이나 지역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정도였다.

막스는 그중 워싱턴 ‘프리덤 에코’에서 온 편지를 집어 들었다.

발신자는 데이비드 러셀이었다.

작년 클리블랜드의 정유소, 록펠러에게 대차게 까인 뒤로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치 흥신소처럼, 막스는 러셀에게 한 사람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응답을 6개월이 지나서야 보내왔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주소가 첨부되었는데, 국가가 스웨덴이었다.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자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간단한 인사로 시작했다.

[친애하는 알프레드 노벨에게.

저는 콜로라도 대학 이사장으로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막스 조라고 합니다.

특히 무기와 화학에 관심이 많은데, 얼마 전 귀하가 발명한 블라스팅 캡(뇌관)이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어디에 사용하는지에 관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또한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답니다.]

결론은 ‘관심 있으면 연락해’라는 짧은 내용이었다.

막스는 다이너마이트를 두고 수년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대륙횡단 철도 공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흑색화약으로 산 뚫다가 수백 명이 죽어 나가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막스는 특허를 도둑질하기보다, 노벨을 끌어들이는 걸 선택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뿐만 아니라 수백 가지의 특허를 취득한 천재다.

‘스웨덴이 아닌 콜로라도에 있어야 할 인재지.’

막스에게 노벨을 낚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니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하는 노벨에게 자그마한 힌트를 던져주거나, 이미 완성한 무연화약에 관한 걸 알려주거나. 과학자를 혹하게 만드는 방법은 차고도 넘쳤다.

무엇보다 막스는 노벨상, 아니 막스상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다이너마이트 특허 지분 절반으로 족했다.

막스가 편지를 봉투에 넣고 주소를 적으려 할 때, 네이선 로어가 들어왔다.

“게티즈버그로 언제 가실 거예요? 워싱턴에서도 오늘 출발한다고 들었는데요.”

시신 처리가 끝나고 기념관이 완공되자마자, 게티즈버그 행사 일정이 잡혔다.

그게 내일이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전쟁의 의미를 되살리려 행사에 직접 참여하기로 했다.

콜린은 어제 존 브라운과 주요 인물을 경호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이미 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우리도 출발해 볼까.”

막스는 네이선 로어와 대원들을 이끌고 펜실베이니아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남부 게릴라들이 게티즈버그로 향하는 철도를 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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